만의 하나 당신이 꽃을 혐오하는 매우 희귀한 분들 가운데 하나라면 이 글을 읽지 마시기 바란다. 하지만 당신이 여느 장삼이사 (張三李四)들처럼 꽃 향내와 그 자태에 한번쯤 오감(五感)을 기울여봤던 분이라면 복잡한 세상사 접어두고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시길. 전라남도 무안 땅에 가면 당신의 모든 감성은 꽃으로 출렁이는 미학에 감금당한다. 연꽃, 연꽃이다. 이제 서해안고속도로도 뚫렸으니, 서울분들이라면 무안까지 네시간이면 충분히 가겠다. ◆오는 15~18일 연꽃축제 서해안고속도로 일로IC에서 나와 무안군 일로읍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들길 끝에 복용리 회산지라는 저수지가 나온다. 그 저수지에 연꽃이 살고 있다. 연꽃이 뭔가.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요, 진흙에서 자라나 순결한 꽃을 피우는 꽃 중의 군자(君子)다. 이제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넓디넓은 연잎들이 천지사방에 출렁대고 있다. 자그마치 10만평이다. 회산지에 사는 연꽃은 하고 많은 연꽃 중에서 백련이다. 향기가 일품이다. 앞에 서면 향기를 잃어버릴까 저절로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국도와 지방도에 들어가면 땅바닥에 화살표와 함께 있는 커다란 ‘연꽃’ 글자와 마주치게 된다. 한국 땅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 이름 이정표다.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이 이정표가 끝나는 곳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동네 곳곳에 “백련의 향기로 아름다운 삶을” 기타 등등의 시어(詩語)로 가득 채운 플래카드들을 만나게 된다. 여느 지방 면 소재지와 다를 바 없는 복잡한 골목골목을 지나 들판으로 나선다. 들판에 오롯하게 외길이 나 있다. 황금색 메리골드꽃들이 양편에 도열해 있는 그 길을 따라 15분 정도 차를 몰면(걸어서는 한시간 정도) 왼편에 2m 정도 되는 꽤 높은 제방이 나온다. 옳거니, 이게 바로 그 회산지로구나.
▲ 엄지 손톱만한 귀여운 꽃 '어리연'
거기에 꽃으로 충만한 바다가 있다!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른 연못이 너그럽기 그지없는 연잎으로 뒤덮였다. 장차 새하얗고 큼직한 백련을 꽃피울 몽우리가 지금 몽실몽실하게 맺혀 있다. 방죽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 물리적으로는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소모할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두시간 걸리는 사람도 있고 꽃을 혐오하여 1분도 안 걸려 퇴각하는 희귀한 사람도 있다고 하나, 직접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꽃의 하나라도 꺾는 사람은 들키는 순간 치도곤을 맞고 쫓겨나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연밥 하나 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다고 한다. 가슴으로 꽃을 보려는 이들을 위해 연못 주위 곳곳에 원두막과 의자가 마련돼 있다. 故 정수동씨 ‘연 살리기’ 각고의 노력 이 어마어마한 연못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정수동(1979년 작고)이라는 각별한 인물의 노력 덕분이었다. 일로읍에서 일로식육식당을 하는 고(故) 정수동씨의 아들 성조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열세살이나 내지 그쯤 되얏어요. 그때는 연방죽이 깨끗해 갖고 잡초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해 여름에 동생들이 나를 부르드만요. 요만큼한 이파리 열 두 개를 가지고 있는디 큰애들이 막 뺏어간다고요. 애들을 쫓고서 그놈을 아버지한테 갖고 갔어요.” “아버지 이게 머요?” “연(蓮)이다. 이게 어디가 있대?” “그걸 지금 나무다리 시작하는 곳에 심어가지고 아버지가 관리를 계속 해나오셨어요. 줄 쳐놓고 막어놓고 고기도 못잡게 하고. 그렇게 해갖고 연이 벌어져 나오게 된 것입지라.” 한국전쟁이 끝나고 2년 뒤 여름, 아이들이 발견한 연뿌리 12개가 그렇게 하여 10만평 회산지를 가득 채웠다. 열-두-뿌리가! 1-0-만-평이 됐다고!! “처음 열 두 뿌리는 원래 있던 겁니다. 그게 뭔지도 몰랐는디요. 꿈이 선몽이 되얏던 모양입니다. 학 열 두 마리가 날아와 연꽃처럼 피었다고요. 꿈 꾸시고 나서 연뿌리가 발견이 된 거지라, 허허허.” 정 할아버지는 일흔 다섯으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저수지를 돌보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계신다면, 이러콤 바다를 이룬 걸 보신다면, 하하하. (…) 저희는 밥 묵고 나면 저수지 한바퀴씩 도요.” 그래, 정수동 할아버지 고집 덕에 해마다 회산지는 백련으로 가득한 바다를 이룬다. ◆ 음악·소음 없는 ‘고요한’ 유원지 주차장 어귀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백련교(白蓮橋) 다리가 있다. 다리 위 나들이객들은 걸음걸이가 슬로비디오 화면처럼 느리다. 대개 유원지 하면 시끄럽기가 그지 없지만 이곳은 사람 수에 비해 굉장히 조용하다. 그 흔한 음악도 없고 대놓고 떠드는 사람도 드물다. 세상 시끄럽게 만들 헛소리들은 백련향이 집어삼켜 버린 게 틀림없다. 주차장 오른쪽에 700평 정도의 수생식물 자연학습장이 있다. 재래 홍련과 가시연, 개연, 왜개연, 수련, 손톱만한 어리연(아이고 귀여워라), 부래옥잠, 물양귀비(무척 요염하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독자적인 우주들이다. 회산지를 조금 특이하게 돌아보고 싶다면 비오는 날을 기다리면 좋다. 큼직한 우산으로 무장한 뒤 방죽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본다. 위에서 말한 그 소리를 들어본다. 사방은 고요한데 너른 연잎 하나에 눈길과 귀를 집중해보면 그 출렁임과 빗방울의 투명함, 그리고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빗줄기의 명징함이 감탄스럽다. 향내와 자태에 덧붙여 연꽃의 연꽃다움을 완결 짓는 입체적인 회산지 감상법이다. ▲가는길 서울 방면 - 서울역에서 일로역까지 무궁화호 하루 11회, 강남터미널에서 무안행 하루 3회, 비행기는 목포까지 5회 운항. 부산 방면 - 무궁화호 광주 거쳐 일로역 하루 2회. 버스는 목포까지 하루 9회, 비행기는 1회. 손수 운전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끝없이 내려간다. 목포에 이르기 전 일로IC를 나오면 그때부터 이정표가 곳곳에 나와 있다. ▲묵을 곳 동남관광호텔(무안읍·061-453-5511) 은하장(무안읍·061-453-3301) 파크장(일로읍·061-281-9999) 등. (박종인 조선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seno@chosun.com) ‘ 무안 오미(五味)’ 무안군이 선정한 군내 다섯가지 별미. 이걸 먹어보지 않고는 무안을 다녀왔다 할 수 없다. ▲사창 돼지 짚불구이 = 암퇘지 목살, 삼겹살, 목등심을 볏짚으로 직접 구워낸다.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이다. 석쇠에 고기를 끼워 일일이 짚불 아궁이 위에서 구워낸다. 무안역과 항공우주과학전시관이 있는 몽탄면 사창리 기차길 옆 사창식당. (061)452-3072 ▲명산 민물장어=단백질, 비타민이 풍부한 대표적인 건강식품. 몽탄면 명산리의 명산장어구이 집이 원조. (061) 452-3379 ▲양파 한우 고기=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 어린이, 노약자도 먹기 좋다. 무안읍내에는 온통 양파한우고기 식당 천지. 무안읍 무안식당 (061)454-2431 ▲무안 세발낙지=서해안 청정갯벌에서 잡은 낙지 요리. 부드럽고 담백하다. 망운면 송현리 송현횟집 (061)452-1548 ▲도리포 숭어회=인근 칠산바다에서 잡은 민어, 농어, 숭어, 우럭을 사계절 회로 만들어 낸다.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횟집 (061)454-6890 무안군청(문화관광과 (061)450-5224) 홈페이지(www.muan.chonnam.kr)에 숙박 및 교통 정보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