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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 니까야 제1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맛지마 니까야』 는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이 남기신 가르침 가운데 그 길이가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경들을 모아서 결집한 것이다. 여기에 중간 정도란 복주서의 설명대로 지나치게 길지도 않고 지나치게 짧지도 않은 길이의 경들²³⁾을 말한다. 길이가 긴 경 34개는 『디가 니까야』 에 결집을 하였다. 그리고 길이가 짧은 경들은 다시 주제별로 나누어서 2904개를 『상윳따 니까야』 에 담았고, 숫자별로 분류하여 2305개를 앙굿따라 니까야 에 모았다. 여기 『맛지마 니까야』 에는 이들을 제외한 중간 정도의 길이에 해당하는 경들 152개가 들어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에 모았다. 여기 『맛지마 니까야』 에는 이들을 제외한 중간 정도의 길이에 해당하는 경들 152개가 들어 있다.
이 152개의 경들은 모두 15개의 품으로 분류되고, 이 15개의 품들은 다시 세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묶여져서 모두 세 권으로 전승되어온다. 제1권인 『처음 50개 경들의 묶음』 (Mūla-paṇṇāsa)에는 제1품부터 제5품에 속하는 1부터 50까지의 5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²⁴⁾ 『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 (Majjhima-paṇṇāsa)이라 불리는 제2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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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na-atidīgha-na-atikhuddaka-pamāṇā suttantā ─ MAṬ.i.14.
24) 맛지마 니까야 뿐만 아니라 모든 니까야에서 10개의 경들은 하나의 품(vagga)으로 분류가 된다. 그리고 다섯 개의 품들 즉 50개의 경들은 다시 하나의 ‘50개 경들의 묶음(빤나사, 빤나사까, paṇṇāsa/paññāsa/paṇṇāsaka/paññāsaka)’으로 분류가 된다. 빤나사(paṇṇāsa)는 문자 그대로 ‘50개로 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방법을 『맛지마 니까야』 에 적용시키면 전체 152개의 경들은 15개의 품으로 분류가 되고 이들은 다시 세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분류가 된다.
제6품부터 제10품에 속하는 M51부터 M100까지의 50개 경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인 제3권은 『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 (Upari-paṇṇāsa)이라 불리는데, 여기에는 제11품부터 제15품에 속하는 M101부터 M152까지의 52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맛지마 니까야』 는 일차결집에서 『디가 니까야』 다음에 결집(합송)되어서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해왔다고 한다.(AA.i.15)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분량의 문제 때문에 이들을 전체 네 권으로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본 제1권에는 제1품부터 제3품까지의 세 개 품 30개의 경들이, 제2권에는 제4품부터 제7품까지의 네 개 품 40개의 경들이, 제3권에는 제8품부터 제11품까지의 네 개 품 40개의 경들이, 제4권에는 제12품부터 제15품까지의 네 개 품 42개의 경들이 실려 있다.
2. 한글 『맛지마 니까야』 제1권의 구성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하여 출간하는 『맛지마 니까야』 제1권에는 『처음 50개 경들의 묶음』 에 속하는 제1장 「뿌리에 대한 법문 품」 과 제2장 「사자후 품」 과 제3장 「비유 품」 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제1장에는 「뿌리에 대한 법문경」 (M11) 등 10개의 경들이, 제2장에는 「사자후의 짧은 경」 (M11) 등 열 개의 경들이, 제3장에는 「톱의 비유 경」 (M21) 등 열 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맛지마 니까야』 제1권에는 모두 3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 그럼 이 세 개의 품을 개관해 보자.
(1) 제1장 「뿌리에 대한 품」 (M1~10)
「뿌리에 대한 법문 품」 은 『맛지마 니까야』 전체의 첫 번째 경이면서
동시에 본 품의 첫 번째 경인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ulapariyaya-sutta, M1)의 이름을 따서 품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뿌리에 대한 법문은 mūla(뿌리)-pariyāya(법문)를 직역한 것이다. 주석서와 복주서의 설명대로 존재(오취온)의 뿌리는 무명과 갈애와 사견과 자만이다. 여기에 휘둘리는 자가 범부요, 여기에서 단계적으로 벗어난 분들이 예류자부터 아라한까지의 성자들이다. 본 『맛지마 니까야』 의 첫 번째 가르침인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은 이러한 존재의 뿌리를 설하는 경이기 때문에 본서의 뿌리 즉 처음에 놓였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에는 모두 8(보는자) × 24(대상)=192개의 법문이 들어있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그것을 보는 사람의 상호의견[緣, paccaya]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불교의 조건발생 혹은 연기의 가르침을 뿌리에 두고 있다. 이것도 본경을 『맛지마 니까야』 의 첫 번째 경으로 결집한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을 결집한 분들이 이러한 첫 번째 경을 담고 있는 『맛지마 니까야』 의 첫 번째 품의 이름을 「뿌리에 대한 법문 품」 으로 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첫 번째 경의 제목은 본품의 명칭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첫 번째 경의 이름을 따서 본 품의 명칭을 「뿌리에 대한 법문 품」 으로 정하였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본 품의 명칭을 너무 협소한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본 품에 들어있는 10개의 경들은 모두 이 각각의 경들이 설하고 있는 주제에 관한한 모두 뿌리에 해당하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본 품의 두 번째 경인 「모든 번뇌 경」 (M2)에는 수행자가 없애야 할 번뇌들을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등 7개의 주제로 분류하고 이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 경은 모든 번뇌들의 뿌리에 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경인 「법의 상속자 경」 (M3)에는 8가지 쌍의 16가지 버려야 할 법을 버려야지만 재물의 상속자가 아닌 법의 상속자가 된다고 나타나는데, 이처럼 본경은 부처님의 진정한 법의 상속자가 되는 토대 혹은 뿌리를 말씀하시는 경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두려움과 공포 경」 (M4)은 수행자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뿌리로 12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들고 있으며, 「흠 없음 경」 (M5)은 홈 혹은 홈의 뿌리로 19가지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들고 있다. 「원한다면 경」 (M6)은 출가수행자가 가질 수 있는 17가지의 원을 열거하고 이를 성위하려면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옷감의 비유 경」 (M7)은 버려아 할 16가지 마음의 오염원을 들고 이렇게 하여 믿음과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닦아 해탈한다고 설하고 있다. 「지워 없앰 경」 (M8)은 지워 없애야할 오염원들 44가지를 말씀하신다. 이처럼 이들 경에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뿌리가 되는 법들, 수행자들의 바람의 뿌리, 괴로움의 뿌리가 되는 여러 가지 오염원들을 들고 있다.
나아가서 「바른 견해 경」 (M9)은 팔정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바른 견해를 정의하고 있으며, 「마음챙김의 확립 경」 (M10, 염처경)은 불교수행의 핵심인 마음챙기는 공부를 정리하면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21가지 혹은 44가지로 정리하고 이를 신·수·심·법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
『맛지마 니까야』 에 포함된 여러 경들은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여러 법수(法數)들을 분류하여 열거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은 수행자들이 먼저 꼭 알아두어야 하는 번뇌, 두려움과 공포, 흠, 오염원, 바른 견해, 마음챙김 등과 같은 기본 법수들을 자세하게 나열하고 아울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 품은 이처럼 불교 수행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가르침을 모았기 때문에 본 품의 제목을 「뿌리에 대한 법문 품」 으로 정하였다고 보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2) 제2장 「사자후 품」 (M11 ~ 20)
제2장의 품의 명칭은 「사자후 품」 이다. 이것은 본 품에 포함된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인 「사자후의 짧은 경」 (M11)과 「사자후의 긴 경」 (M12)의 경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사자후(sila-nada)는 siha(사자)-nada(소리)의 역어인데 주석서에서는 “다른 교설에 의해서 깨뜨려지지 않고 자신의 교설을 명쾌하게 밝히는 두려움 없는 소리”(AA.iii.844) 등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사자후는 외도들이 결코 따를 수 없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처님과 불교 교단에만 있는 가르침을 뜻한다.
본 품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사자후의 짧은 경」 (M11)에서 세존께서는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2)라는 엄청난 사자후를 하신다. 그러므로 경의 제목도 당연히 사자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두 번째인 「사자후의 긴 경」 (M12)은 세존이 갖추신 여러 가지 특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초기불전 가운데서 부처님의 특질을 가장 많이 나열하고 가장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는 경에 속한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경의 제목을 사자후로 정한 것이다. 본 품은 이러한 부처님의 사자후가 담긴 두 개의 경을 품의 맨 앞에 배치하고 품의 이름도 「사자후 품」 으로 정하였다.
물론 본 품의 나머지 여덟 개 경들도 부처님이나 직계제자의 사자후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본 품의 세 번째 경인 「괴로움의 무더기의 긴 경」 (M13)은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이라는, 자본주의의 대표가 되는 세 가지에 대한 부처님의 사자후를 담고 있으며, 「괴로움의 무더기의 짧은 경」 (M14)에서 세존께서는 세속인이 추구해 마지않는 감각적 욕망과 고행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몰입한다는 고통이라는 이 두 가지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점검하고 계신다.
다시 「추론 경」 (M15)은 16가지 훈도하기 어려운 자질들과 반대로 16가지 후도하기 쉬운 자질들에 대한 목갈라나 존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마음의 삭막힘 경」 (M16)은 다섯 가지 마음의 삭막함과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에 대한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다.
「밀림 경」 (M17)은 비구들이 의지해서 살게 마련인 밀림이나 마을 등의 처소에 대해서 분석하고 계시며, 「꿀 덩어리 경」 (M18)은 근 – 경 – 식 – 촉 – 수 – 상 – 심 - [사량분별] -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라는 8지 연기 혹은 9지 연기로 해체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 깟짜나 존자의 꿀 덩어리와 같은 달코함 설법을 가직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사유 경」 (M19)과 「사유를 가라앉힘 경」 (M20)은 다른 경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바른 사유를 통한 4선 – 3명을 증득하는 것과 팔정도의 두 번째인 바른 사유(정사유)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본 품의 처음 두 개의 경들의 이름이 「사자후 경」 이기 때문에 본 품을 「사자후 품」 으로 명명한 것이겠지만, 이처럼 본 품에 포함된 나머지 경들도 사자의 용맹한 음성에 비유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본 품의 명칭을 「사자후 품」 으로 정하였을 것이다.
(3) 제3장 「비유 품」 (M21~30)
『맛지마 니까야』 에는 많은 비유들이 나타난다. 각각 다른 비유가 종류만으로도 175개 정도가 나타나고 이것은 본서 전체에서 모두 270번 정도나 나타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본 『비유 품』 에 포함된 10개의 경에도 모두 31개 혹은 45개의 비유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개미집 경』 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미집을 파 들어가서
마침내 용을 발견하는 15단계의 비유는 전체를 하나의 비유로도 볼 수 있고 각각을 분리하여 15개의 비유로도 볼 수 있다. 역자는 하나의 비유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심재 비유의 짧은 경」 (M30)에 조금씩 다르게 다섯 번이 나타나는 심재를 찾는 사람의 비유를 하나로 간주할 수도 있고 다섯 개의 비유로 계산할 수도 있다. 이처럼 본 품에 포함된 경들에도 뗏목의 비유나 톱의 비유 등을 포함한 비유들이 나타나는데, 이들 경이야말로 가히 비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본 품을 「비유 품」 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유의 개수가 아니라 그 비유가 그 경에서 갖는 중요성일 것이다. 본경에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비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들 10개를 모아서 「비유 품」 이라는 품의 명칭을 달아서 본서 제3품에 담았다.
그럼 본 품에 포함된 경들을 비유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개관해 보자. 먼저 「톱의 비유 경」 (M21)은 양쪽에 날이 선 톱으로 도둑이나 첩자가 사지를 마디마다 자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라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말씀을 담고 있다. 「뱀의 비유 경」 (M22)은 잘못 만지면 큰 봉변을 당하게 되는 뱀의 비유와 조계종 소의경전인 『금강경』 에도 나타나는 뗏목의 비유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조한다. 「개미집 경」 (M23)은 개미집(몸)을 파서 마침내 용(번뇌 다한 비구)을 찾게 되는 한 가지 혹은 15가지 비유를 들고 있다.
「역마차 교대 경」 (M24)은 일곱 대의 역마차를 바꿔 타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역마차 교대의 비유로 상좌부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을 설하고 있으며, 「미끼 경」 (M25)은 사슴 사냥꾼이 미끼로 사슴을 사로잡는 비유로 수행을 네 단계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스러운 구함 경」 (M26)은 부처님의 성도과정과 전법에 대한 사유와 오비구를 교화하는 부분을 자세히 설명한 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출리와 4선 – 4처 – 상수멸을 설한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 (M27)에는 『맛지마 니까야』 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가 담겨 있는데 이것을 코끼리 발자국의 비유를 통해서 나열하고 있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 (M28)은 사성제를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뒤에 사성제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심재 비유의 긴 경」 (M29)은 심재를 찾는 사람의 비유 한 가지 혹은 다섯 가지를 통해서 인간을 다섯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심재 비유의 짧은 경」 (M30)도 심재를 찾는 사람의 비유 한 가지 혹은 다섯 가지를 통해서 육사외도의 지혜는 최상의 지혜가 아니고 부처님이 설하시는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최상의 지혜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본 품의 열 개의 경들은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불교의 정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본 품을 「비유 품」 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3. 한글 『맛지마 니까야』 제1권에 포함된 경들에 대한 해설
이제 본서에 포함된 30개의 경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간단한 해설을 붙이는 것으로 본서의 해제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제1장 「뿌리에 대한 법문 품」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 해설
『맛지마 니까야』 는 존재 혹은 모든 법[諸法]의 뿌리²⁶⁾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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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본경에 해당하는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 는 본경에서 모든 법[諸法]은 오취온(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을 뜻하고 이러한 모든 법의 뿌리는 갈애와 자만과 사견과 무명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MAT.i.56ff), 이 설명은 중요하다. 특히 본경의 §§3~26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생각하다(maññati)’를 주석서는 갈애와 자만과 사견의 세 가지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을 통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MA.i.26~27, 본경 §3의 13번 주해 참조) 이처럼 세 가지 허황된 생각[空想]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신견으로 설명되는 모든 법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 된다.
『맛지마 니까야』 의 첫 번째 가르침인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모든 법[諸法]의 뿌리에 대한 법문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2)라고 말문을 열고 계신다.
본경은 모든 존재의 뿌리를 설명하면서 먼저 대상과 그것을 보는 살마으로 나누어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본경에서 대상을 24가지로, 보는 사람을 경지에 따라 여덟 부류로 분해하여, 모두 24×8=192가지로 해체해서 법문을 설하신다. 이러한 본경을 맛지마 니까야 의 첫 번째 경으로 결집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24가지 대상은 땅, 물, 불, 바람[四大], 존재들, 신들, 빠자빠띠, 브라흐마(범천, 초선천), 광음천(2선천), 변정천(3선천), 광과헌(4선천), 승자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본 것[見], 들은 것[聞], 감지한 것[覺], 안 것[知], 동일한 것, 다른 것, 전체, 열반의 24가지이다.(§3~26등) 그리고 대상을 보는 자는 범부, 유학, 아라한1/2/3/4, 여래1/2의 여덟 부류이다. 본경은 경지에 따라 대상을 보는 여덟 부류의 사람을 중심으로 크게 8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범부 : [24가지] 대상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24가지] 대상을 인식하고, [24가지]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고, [24가지] 대상을 기뻐한다.(§§3~26)
(2) 유학 : 대상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27~50)
(3) 아라한1 : 대상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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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나몰리 스님/보디 스님도 복주서의 이 설명을 존중하여 맛지마 니까야 영역본의 주해(1162쪽 3번 주해)에서 이것을 ‘모든 법들의 뿌리’에 대한 설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에 충실한 뒤에 본경을 음미해 보실 것을 독자들께 권하고 싶다.
(4) 아라한2 : 애혹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75~98)
(5) 아라한3 : 성냄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99~122)
(6) 아라한4 : 미혹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 (§§123~146)
(7) 여래1: 여래는 대상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147~170)
(8) 여래2: 즐거움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존재[有]로 인해 태어남[生]이 있고, 중생들의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알았기 때문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171~194)
여기서 (3)~(8) 즉 아라한1/2/3/4와 여래1/2는 모두 “대상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대상을 4가지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로 표현되고 있고 그 조건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본경은 각각 다른 섬세한 표현으로 범부와 5단계의 성자와 2단계의 여래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철저히 알다’는 parijānāti를 옮긴 것이고, ‘인식하다’는 sañjānāti를, ‘생각하다’는 maññati를, ‘기뻐하다’는 abhinandati를 옮긴 것이며, ‘최상의 지혜로 잘 알다’는 abhijānāti를 옮긴 것이다.²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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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냐나몰리 스님/보디 스님도 영역본의 제일 첫 번째 주해에서 밝혔든이(냐나몰리 스님/보디 스님 1161쪽 1번 주해 참조) 본경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가르침이다.
「모든 번뇌 경」 (M2) 해설
초기경들에서 아라한은 항상 번뇌 다한 자(khinasava)로 정의되고 있다.(M35 25 등) 그러므로 수행의 핵심은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6신통 가운데 마지막이면서 구경의 지혜를 실현하는 정형구는 누진통 즉 번뇌를 멸진히난 지혜[누진통]로 나타난다. 아비담마에서 번뇌는 극복되어야 할 불선법들의 모둠 10가지 가운데 제일 처음에 언급되고 있는데 (초기불교 이해 303쪽 이하 참조), 경에서 번뇌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의 세 가지로 나타나고(M9) 아비담마에서는 여기에다 사견의 번뇌를 포함하여 네 가지 번뇌로 장착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번뇌는 없어지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가?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번뇌를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번뇌를 일곱 가지로 분류하시고(4) 본경의 5 이하에서 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신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봄[견] 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여 제거되는,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疑]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의 세 가지 족쇄들을 말한다.(~)
(2) 단속하여 없애야 하는 번뇌 : 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가지 감각기능을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한다.(§12)
(3) 수용하여 없애야 하는 번뇌 : 옷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약품을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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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이다. 각묵 스님과 역자도 역시 본경의 해제를 적으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넣었다가 최종 편집에서 모두 삭제하였다. 우리의 좁은 견해로 이 귀중한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거나 편협하게 이해한 것을 독자들께 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함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하는데 배고픔과 추위 등에서 생긴 번뇌를 없애는 것이다.(§§13~17)
(4) 감내하여 없애야 하는 번뇌 : 인욕하고 견뎌냄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하는데 몸과 마음에서 생긴 여러 가지 괴로운 느낌 등에 기인한 번뇌를 없애는 것이다.(§18)
(5) 피하여 없애야 하는 번뇌 : 맹수 등과 적합하지 않은 자리 등을 피함을써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한다.(§19)
(6) 버려서 없애야 하는 번뇌 : 감각적 욕망이나 악의나 해코지와 같은 생각을 버림으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한다.(§20)
(7) 수행하여 없애야 하는 번뇌 : 칠각지로 대표되는 수행을 통해서 없애야 하는 번뇌를 말한다.(§21)
이처럼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번뇌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아서 그에 맞게 대처를 해야 번뇌를 없앨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번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경은 수행자들이 꼭 정독해야 할 가르침이다. 이 일곱 가지 번뇌 가운데 첫 번째인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가지는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번뇌 경」 (A6:58)에도 나타나고 있다.
「법의 상속자 경」 (M3) 해설
불교는 법을 근본으로 한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도 세존이 입멸하신 뒤에 “우리는 법을 귀의처로 합니다.”(M108 §9)라고 강조하면서 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고빠까 목갈라나 경」 (M108)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특히 출가자는 이 법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 교단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불자, 특히 출가수행자는 신명을 바쳐 법을 배우고 이를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마 부처님 시대에도 법보다는 재물에 눈이 팔리고 수행보다는 안락한 삶을 위해서 교단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그런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3)라고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시고 원림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閑居)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입니까?”(§5)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대중들의 요청에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본경의 주요 내용이다.
사리뿟따 존자는 본경을 통해서 탐욕·성냄, 분노·적의, 모욕·얕봄, 질투·인색, 속임수·사기, 완고함·뻔뻔스러움, 자만·거만, 허영·방일이라는 8가지 쌍의 16가지 버려야 할 법들을 든 뒤에 이를 버리기 위해서 중도(中道)가 있다고 강조한다.(§§8~15) 그 중도는 다름 아닌 초기불교의 실천도인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이며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8~15)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들은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경은 마무리된다.
「두려움과 공포 경」 (M4) 해설
수행, 특히 숲 속의 외딴 처소에 머물면서 하는 수행은 많은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온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이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부처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신 깨달음과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인가는 불교 수행자뿐만 아니라 수행을 근본으로 삼는 모든 사문·바라문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와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참으로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다고 생각합니다.”(§2)라고 말씀드린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세존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보살이셨을 때의 일화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설법을 전개하신다. 먼저 세존께서는 외딴곳에서 비구들이 지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몸과 말과 마음의 삼행과 생계의 청정을 기본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4~7)
그리고 더 나아가서 ① 욕심을 부리고 감각적 욕망들에 깊이 탐닉한 자들 ② 악의와 타락한 생각을 품은 자들 ③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자들 ④ 들뜸과 고요하지 않은 마음 ⑤ 의혹과 의심을 품은 자들 ⑥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는 자들 ⑦ 무서움과 두려움에 질려 있는 자들 ⑧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자들 ⑨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는 자들 ⑩ 마음챙김이 없고 알아차람이 없는 자들 ⑪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자들 ⑫ 지혜가 없고 멍청이 같은 자들의 12가지를 드시면서(§§8~19) 이런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음 등의 12가지를 갖추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셨기 때문에 어떤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도 생기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8~19)
그런 뒤 다시 세존께서는 “바라문이여, 내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었으며, 몸이 경안하여 교란하지 않았고, 마음이 집중되어 일념이 되었습니다.”(§22)라고 덧붙이고 계신다. 이렇게 하여 세존께서는 차례대로 네 가지 선을 갖추고(§§23~26) 밤의 초경에 숙명통을, 이경에 천안통을, 삼경에 누진통을 완성하여 깨달음을 완성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27~33)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탐·진·치를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익을 보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즉, 내 스스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믊을 보고,
또한 다음 세대를 연민하기 때문에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고 강조하시면서 경을 마무리하신다.(§34) 이렇게 하여 자눗소니 바라문은 부처님의 재가신도가 된다.
본경은 수행자 특히 외딴곳에 거주하는 비구가 가져서는 안되는 12가지 해로운 심리현상들을 들고 있는데 토굴 생활을 하고자 하는 스님들이 새겨봐야 할 가르침이다.
「흠 없는 경」 (M5) 해설
본경은 사리뿟따 존자가 급고독원에서 비구들에게 설한 가르침이다. 본경의 주제는 경 제목이 보여주듯이 흠(aṅgaṇa), 혹은 허물에 관한 것이다. 사리뿟따 존자는 특히 출가수행자가 가져서는 안되는 흠 19가지를 들고 있는데 출가자들이 깊이 새겨보고 반성해봐야 하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먼저 사리뿟따 존자는 “세상에는 네 부류의 인간들이 있습니다.”라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① 흠이 있으면서도 흠이 있다고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 ② 흠이 있으면 흠이 있다고 꿰뚫어 아는 사람 ③ 흠이 없으면서도 흠이 없다고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 ④ 흠이 없으면 흠이 없다고 꿰뚫어 아는 사람을 말한 뒤에(§2)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의 비유로 이 네 사람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4~7)
그 다음에 흠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라는 목갈라나 존자의 질문에(§9) 사리뿟따 존자는 흠이란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대답하면서(§9)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10) 등의 19가지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열거하고 있다.(§§10~28)
그런 뒤 사리뿟따 존자는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깨끗하고 광이나는 청동 그릇의 비유(§29)를 들고, 목갈라나 존자는 수레공의 아들 사
미띠의 비유(§31)와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의 비유(§33)를 주고 받으며 “서로 간의 훌륭한 대화[金言]를 기뻐했다.”(§33)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는다.
「원한다면 경」 (M6) 해설
인간은 바람을 가지고 원을 가진다. 출가수행자도 예외일 수는 없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출가수행자가 성취하기를 바라는 17가지 원을 열거하시면서 이러한 원을 성취하기를 원한다면 계를 잘 지키고 사마타를 닦고 위빳사나를 수행할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신다.(§§3~19)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세존께서는 본경에서 먼저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며 머물러라. 삐띠목카(戒目)를 지키고 빠띠모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머물러라.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조그마한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잘 받아 지녀 공부지어라.(§2)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신다. 그런 뒤에 본경의 §§3~19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 성취하기를 바라는 17가지 원을 열거하신다. 그리고 각각의 원에 대한 언급이 끝날 때 마다 “만일 비구가 [이런 것을]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禪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3~19)라고 강조하신다.
본경에 나타나는 수행자들이 성취하기를 바라는 17가지 원은 ① 동료 수행자들의 존경을 받음 ② 네 가지 필수품을 잘 얻음 ③ 네 가지 필수품 보시한 자들의 공덕 ④ 망자들의 공덕 ⑤ 싫어함과 좋아함의 극복 ⑥ 두려움과 공포의 극복 ⑦ 네 가지 禪을 얻음 ⑧ 네 가지 무색계산을 얻음 ⑨ 예류자가 됨 ⑩ 일래자가 됨 ⑪ 불환자가 됨 ⑫~⑰ 6신통을 얻음이다.(§§3~19) 이 가운데 처음의 여섯은 출가생활에 관계된 원이고, 그 다음의 둘은 삼매에, 그 다음의 셋은 성자에, 마지막 여섯은 육신통에 관한 원이다.
이렇게 17가지를 말씀하신 뒤 세존께서는 §2에서 말씀하셨던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며 머물러라. 삐띠목카(戒目)를 지키고 … 학습계목을 잘 받아 지녀 공부지어라.”는 말씀을 마직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시고(§20) 가르침을 끝맺으신다. 이처럼 본경은 출가자가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계와 사마타와 위빳사나, 즉 계·정·혜 삼학을 잘 닦아야 함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옷감의 비유 경」 (M7) 해설
불교에서 바른 노력[四正勤]과 바른 정진[正精進]은 항상 해탈·열반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법[善法]과 해탈·열반에 장애가 되는 해로운 법[不善法]의 판단에서부터 출발한다.(본서 제3권 M37의 해설 참조) 이렇게 하여 불선법을 없애고 선법을 증장시켜 깨달음을 얻고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미 니까야에서부터 불선법은 번뇌, 폭류, 족쇄 등의 여러 무리로 분류되어 나타나는데 아비담마에서는 이것을 열 가지 모둠으로 정리한다( 『초기불교 이해』 303쪽 이하 참조) 이러한 모둠 가운데 하나가 오염원인데, 본경에서는 16가지 마음의 오염원으로 타나나다.
본경은 이러한 마음의 오염원들을 제거하여 깨달음을 실현하는 다섯 단계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 다섯 가지는 ① 16가지 마음의 오염원을 버림 ② 삼보에 흔들림 없는 깨끗한 믿음을 지님(§§5~7) ③ 행복과 삼매를 체험함(§§8~10) ④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 즉 자·비·희·사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지[四梵住, 四無量心]을 체득함(§§13~16) ⑤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의 실현(§§17~18)으로 나타난다.
먼저 세존께서는 더럽고 때가 묻은 옷감과 희고 깨끗한 옷감을 예로 드시면서 옷감이 더럽고 때가 묻으면 염색공이 그 옷감을 물들이기 위해 염료에 담그더라도 물이 잘 들지도 않을뿐더러 색깔도 선명하지 않다고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옷감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면 악처(惡處)가 예상된다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반대로 옷감이 희고 깨끗하면 물이 잘 들고 그 색깔도 선명한데 그것은 옷감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선처(善處)가 예상된다고 말씀하신다.(§2) 이러한 옷감의 비유가 본경의 제목이 되었다.
① 그런 뒤에 세존께서는 16가지의 마음의 오염원(cittassa upakkilesa)을 들고 계신다.(§3) 이 16가지 오염원을 원어와 함께 병기해 보면, 욕심과 그릇된 탐욕(abhijjhā-visama-lobha), 악의(byāpāda), 분노(kodha), 적의(upanāha), 모욕(makkha), 얕봄(paḷāsa), 질투(issā), 인색(macchariya), 속임(māyā), 사기(sāṭheyya), 완고함(thambha), 뻔뻔스러움(sārambha), 자만(māna), 거만(atimāna), 허영(mada), 방일(pamāda)이다.
② 이러한 16가지 오염원을 버릴 때 그는 부처님께 … 법에 …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淸淨信]을 지닌다.(§§5~7)
③ 이렇게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깨끗한 믿음을 지니면 영감과 법과 관계된 환희와 희열과 몸의 경안과 행복을 경험하고 마음이 삼매에 든다.(§§8~10)
④ 이렇게 하여 그는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의 제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이 함께한 마음으로 온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13~16)
⑤ 이것을 토대로 그는 해탈하게 되고 “‘태어남은 다했다 …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아는”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가 생긴다.(§§17~18)
이런 가르침을 듣고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출가를 하게 된다. 그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19~22) 이렇게 해서 경은 마무리가 된다.
특히 본경에서 설하고 계신 16가지 마음의 오염원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14가지 해로운 마음부수법과 비견해 볼 수 있는 『경장』 의 가르침으로 아비담마의 해로운 법들과 비교해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지워 없앰 경」 (M8) 해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의 실현이다. 열반은 탐·진·치가 소멸된 경지로 정의된다.(S38:1 §3) 탐·진·치는 모든 불선법들의 근본이요 불섭법들은 이미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모둠으로 나타나는데 아비담메에서는 이것을 열 가지 모둠으로 정리한다. ( 『아비담마 길라잡이』 592쪽 이하 참조) 이러한 여러 가지 불선법들의 모둠 가운데 본경은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극복해야 할 것으로 44가지 오염원(kilesā)들을 담고 있다.
니까야에는 여러 가지 해로운 법들이 오염원(kilesa/upakilesa)이라는 술어로 나타나고 있다. 앞의 「옷감의 비유 경」 (M7)에는 16가지의 마음의 오염원이 나타났고, 본서 제4권 「오염원 경」 (M128) §27은 의심,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음, 해태와 혼침, 두려움, 의기양양함, 무력증, 지나친 정진, 느슨한 정진, 갈애, 다양한 인식, 형색들에 대한 지나친 명상의 11가지를 마음의 오염원으로 들고 있다. 그리고 삼매를 방해하는 감각적 욕망 등의 다섯 가지 장애[五蓋]도 마음의 오염원이라 불리고 있으며(S46:3; A5:23) 눈·귀·코·혀·몸·마노의 육내처도 역시 마음의 오염원이라고 언급되고 있다.(S27:1 §3)
본경은 급고독원에서 세존께서 마하쭌다 존자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여기서 지워 없앰(sallekha)이란 당연히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중생을 중생이게끔 오염시키고 윤회하게 하는 것이 오염원이다. 그러므로 이런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거나 말살하지 않고서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일 것이다. 그래서 마하쭌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가서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여러 가지 견해들이 세상에 일어납니다. 그런 것들은 자아에 대한 이론과 연관되어 있거나 세상에 대한 이론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막 마음에 잡도리하는 비구에게도 이런 견해들이 제
거되고 이런 견해들이 완전히 버려집니까?(§3)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초선·2선·3선·4선의 네 가지 禪과 공부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4처를 차례대로 설하신다.(§§4~11) 그러나 이러한 4선 – 4처의 증득 즉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은 오염원들을 완전히 지워 없앤 것이 아니며 오염원들을 완전히 말할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이것은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4~11) 본삼매의 경지인 4선 – 4처의 증득 자체는 깨달음이 아니다. 이런 경지들에서 출정하여 이런 경지가 무상·고·무아라고 통찰하여야 열반을 실현하고 그래서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앗타까나가라 경」 (M52)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세존께서는 극복해야 하고 지워 없애야 하는 44가지를 각각 사람과 대처 방법을 통해서 들고 계신다.(§12) 이런 측면에서 본경은 오염원을 제거하여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출·재가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바른 견해 경」 (M9) 해설
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견해란 무엇인가? 아니 바른 견해란 도대체 무엇인가?²⁸⁾ 여기에 대한 답이 본경에 들어 있다. 본경은 바른 견해에 대한 부처님의 상수제자요, 10대 제자 중에서 지혜제일이라는 사리뿟따 존자의 긴 설명을 담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본경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1) 유익함[善]과 해로움[不善]을 꿰뚫어 앎 (2) 네 가지 음식(자양분)과 그것의 집·멸·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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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디가 니까야 제1권 해제 59쪽에서 인용하였다. 견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디가나카 경 (M74)의 해설과 디가 니까야 제1권 해제 59~61쪽도 참조하기 바란다.
꿰뚫어 앎 (3)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를 꿰뚫어 앎 (4) 12연기와 번뇌를 꿰뚫어 앎의 넷을 바른 견해[정견]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럼 이들 각각을 정리해 보자.
(1) 유익함[善]과 해로움[不善]을 꿰뚫어 앎. 십불선업도가 해로움[不善]이고 탐진치가 그 뿌리이다. 십선업도가 유익함[善]이고 불탐·부진·불치가 그 뿌리이다.(§§3~8)
(2) 네 가지 음식(자양분)과 그것이 집·멸·도를 꿰뚫어 앎.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 감각접촉[觸], 마음의 의도, 알음알이가 네 가지 음식이다. 갈애가 음식의 일어남[원인]이고 갈애의 소멸이 음식의 소멸이며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음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9~12)
(3)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를 꿰뚫어 앎. 니까야에서 정의되는 고·집·멸·도의 정형구로 사성제를 설명함(§§13~19)
(4) 12연기와 번뇌를 꿰뚫어 앎. 본경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늙음·죽음부터 시작해서 무명까지의 역관으로 12연기의 각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무명의 원인으로 번뇌를 13번째로 들고 있다.(§66) 이렇게 본경에서는 모두 13가지 구성요소들 각각과 이들의 집·멸·도를 정의하는 방법으로 연기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다.(§§20~71)
한편 ‘번뇌[漏]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66)는 이 가르침은 『청정도론』 XⅦ.36에서 ‘무명도 상캬 학파에서 주장하는 쁘라끄르띠(근본 질료)처럼 윤회의 근본원인이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해소시키는 경전적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무명은 윤회를 설명할 때 출발점이 되는 것일 뿐 이것이 근본원인은 아니며, 무명은 이처럼 번뇌를 조건으로 생기는 조건발생이라는 것이다.
본경은 71개의 단락번호가 매겨질 정도로 긴 가르침이다. 이렇게 긴 가르침을 통해서 부처님의 상수제자요, 지혜제일인 사리뿟따 존자는 후학들에게 바른 견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주석서는
“이와 같이 본경에서는 열 가지 업의 길, 음식, 괴로움, 늙음죽음태어남존재취착갈앤느낌감각접촉감각장소 정신물질, 알음알이, 의도적 행위, 무명, 번뇌의 열여섯 부분을 다루었다.”(MA.i.224)라고 본경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본경에서는 바른 견해의 내용으로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팔정도의 첫 번째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M141 24), 상윳따 니까야 제2권 깟짜나곳따 경에서는 연기의 가르침이 바른 견해로 설해지고 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바른 견해를 사정제에 대한 지혜와 연기의 가르침으로 정의하시는데 이 둘은 본경의 세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한다.
마음챙김의 확립 경 해설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법을 설한 대표적인 경을 들라면 본경와 본서 제4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과 몸에 대한 마음 챙김 경 과 몸에 대한 마음 챙김 경 의 셋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본경은 초기불교 수행법을 몸느낌마음법의 네 가지 주제 하에 집대성한 경으로 초기 수행법에 관한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가장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오고 있다.
sati는 s mr(to remember)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한국에서 ‘마음챙김’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추세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마음챙김’이라 정착시키고 있다. sati를 마음챙김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 심한 의역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은 초기불교 이해 283쪽의 ‘(4) 왜 마음챙김으로 옮겼나’ 편을 보실 것을 권한다.
마음챙기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이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확립 경 에서는 이 대상을 크게 신수신법 즉 몸 느끼마음법의 넷으로 나누고 다시 이를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서 설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확립 경 의 내용은 대상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몸(kaya, 신) : 14가지
들숨날숨(4~5), 네 가지 자세(6~7)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8~9) 32가지 몸의 부위에 대한 관찰(10~11) 사대를 분석함(12~13) 아홉가지 공동묘지의 관찰(14~30)
(2) 느낌(vedana, 수) : 9가지(32~33)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세속을 여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3) 마음(citta, 심) : 16가지(34~35)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을 여읜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을 여읜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 위축된 마음 산란한 마음 고귀한 마음 고귀하지 않은 마음 위가 남아있는 마음 [더 이상] 위가 없는 마음 삼매에 든 마음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 해탈하지 않은 마음
(4) 법(dhamma, 법) : 5가지
장애[개]를 파악함(36~37) 무더기[온]를 파악함(38~39) 감각장소[처]를 파악함(40~41) 깨달음의 구성요소[각지]를 파악함(42~43) 진리[]를 파악함(44~45)
마음챙김의 확립 경 과 대념처경 은 이렇게 모두 44가지로 마음챙김의 대상을 구분하여 밝히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서 느낌을 9가지 대신에 한 가지로 보고 마음을 16가지 대신에 한 가지로 보면 이 44가지 대상은 21가지가 된다. 그래서 주석서 문헌 특히 대념처경의 주석서에서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21가지라고 언급한다.(DA.ⅲ.741) 이 44가지 혹은 21가지 대상의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경의 해당
부분에 대한 주석들을 참조하고 대념처경 과 주석서를 함께 옮긴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의 해당 부분도 살펴볼 것을 권한다.
본경과 본서 제4권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을 비교해 보면 본경은 위빳사나적인 측명을 강조하고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은 사마타 혹은 삼매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경에 대한 간단한 비교는 본서 제4권 해제 가운데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의 해설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제2장 사자후 품
사자후의 짧은 경 해설
출가하여 독신생활을 하는 인도의 모든 사람들을 일찍부터 사문(사문, samana)이라 불렀다. 니간타들(자이나 수행자들)도 사문집단이요, 육사외도들도 사문집단이요, 당연히 불교도 사문집단이다. 그러면 무엇을 일러 진정한 사문이라 불러야 하나? 집을 떠나 독신생활만 하면 사문인가?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불교 교단에만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이 없다는 사자후를 하시는데 이것은 본경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자후(siha-nada)는 siha(사자)-nada(소리)의 역어인데 주석서에서는 “다른 교설에 의해서 깨뜨려지지 않고 자신의 교설을 명쾌하게 밝히는 두려움 없는 소리”(AA.ⅲ.844) 등으로 설명하듯이 외도들이 결코 따를 수 없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처님과 불교 교단에만 있는 뛰어난 가르침을 뜻한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서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2)라는 엄청난 사자후를 하신다.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라는 이 말씀은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경(16)5.27과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사문 경 (4:239) 1에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세존의 임종 직전에 마지막으로 세존의 제자가 된 수밧다 유행승에게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불교 교단에는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진정한 사문이 있다.’라고 하신 대반열반경 의 이 말씀은 불교 만대의 표준이 되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네 부류의 사문은 이미 사문 경에서 각각 예류자, 일래자, 불환과, 아라한을 뜻하는 것으로 설해지고 있다.
그러면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슨 근거로 오직 불교 교단에만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본경의 3에서 세존께서는 그 이유를 불교 교단에는 스승, 법, 계행, 동료수행자의 네 가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다른 교단에도 스승, 법, 계행, 동료수행자는 있다.(4) 그러나 불교 교단망이 존재에 대한 견해[상견]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단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아 (6~8) 구경의 경지는 하나임을 바르게 천명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존재의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취착[취]을 철저히 알고 바르게 천명한다.(9~15) 그러므로 오직 불교 교단에만 진정한 스승과 법과 계행과 동료 수행자라는 네 가지 법이 있으며 그래서 불교 교단에만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강조하신다.(15)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다시 이 취착부터 부명까지의 9지 연기를 발생구조와(16) 소멸구조로(17) 설하시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계신다.
이렇게 하여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불교 교단에만 해탈열반을 실현한 진정한 사문 즉 예류자, 일래과, 불환자, 아라한이 있다고 사자후를 토하신다.
사자후의 긴 경 해설
본경은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서쪽 교외의 숲에 머물고 계실 때 있
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릿차위의 후손인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로부터 환속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존과 사리뿟따 존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담고 있는 길이가 긴 가르침이다. 수낙캇따의 환속을 두고 전개되는 세존과 박가와곳따라는 유행승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 다른 경으로는 디가 니까야 제3권 빠띠까 경 이 있다.
수낙캇따는 웨살리의 집회에서 “사문 고따마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없다.”라고 떠들었다.(2)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소리를 듣고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와서 말씀드리자(3)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여러 가지 지혜를 비롯한 세존의 특질 등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신다. 본경에서 세존께서 하신 말씀을 주제 위주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족통과 천이통과 타심통(6~8), 십력에 대한 지혜(9~20), 네 가지 담대함[사무외]에 대한 지혜(22~27), 여덟 가지 회중[팔회중]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 지혜(29~30), 네 부류의 태어남[사생]을 구분하는 지혜, 다섯 가지 태어날 곳[오취]을 구분하는 지혜이다.(35~42) 여기서 지혜(nana)라는 술어는 주석서를 따라서 넣었다. 그리고 다시 세존께서 보살이었을 때 감행한 극심한 난행 고행들을 상세하게 언급하시고(57~61) 그런 뒤에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이제 이 성스러운 통찰지를 갖추었음을 선언하시고(62) 여래의 출현을 천명하시면서 긴 가르침의 결론을 지으신다.
수낙캇따의 환속을 계기로 세존께소는 본경을 통해서 세존이 갖추신 여러 가지 특질을 길게 나열하여 말씀하시는데 초기불전 가운데서 부처님의 특질을 가장 많이, 가장 심도 깊게 열거하고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본경은 길이가 긴 가르침들을 모은 디가 니까야 의 여러 경들과 견주어서도 그 길이가 짧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괴로움의 무더기의 긴 경 해설
니까야에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이나 재가불자들이 시간이 나면 다른 외도 유행승들의 처소로 가서 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적잖게 등장한다. 본서에만 해도 M71, M77, M78, M79, M108 등의 경을 들 수 있고 본경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본경은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이라는 자본주의의 대표가 되는 세 가지를 다루고 있는 경이다. 어느 날 많은 비구들이 사왓티로 탁발을 나섰다가 너무 이르다고 판단하여 외도 유행승들의 원림(원림)으로 발길을 들렸다.(2) 그러자 외도 유행승들은 그 비구들에게 사문 고따마가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물질과 느낌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만 우리도 그렇다고 천명한다. 그렇다면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과 우리들의 가르침 사이에 무엇이 특별한 점이며 무엇이 차이점이며 무엇이 다른 점인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공박하지도 못한 채 ‘세존께 가서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보리라.’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왔다.(3~4) 그래서 세존께 이 사실을 아뢰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을 담은 것이 본경이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감각저 욕망과 물질과 느낌은 이들의 달콤한과 재난과 벗어남을 통해서 분명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뒤에(6) 먼저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심도 깊게 말씀하신다.(7~17) 그런 뒤에 다시 물질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소녀의 비유와 함께 말씀하시고(18~31) 느낌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설명하신다.(32~37)
현대를 살아가는 불자들 특히 출가자들에게도 가장 난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감각적 욕망이요, 자본주의의 대표가
되는 단어가 바로 물질과 느낌일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부함을 추구하고 이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운 느낌에 매료되어 살아간다. 그러므로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짊어진 가장 큰 짐이면서 내려놓아야 할 짐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주제로 삼고 있는 본경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봐야 할 부처님 말씀이 아닌가 행각한다.
괴로움의 무더기의 짧은 경 해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성취한 엄청난 물질의 향연을 즐기고 그 달콤함에 취하여 사는 현대인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과연 감각적 욕망이 진정한 행복인가. 한편 이러한 감각적 욕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고행주의자들은 고통으로 행복이 성취된다고 주장한다.(20)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해 마지않는 감각적 욕망과 고행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몰입한다는 고통이라는 이 두 가지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점검하고 계신다.
본경은 세존께서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르로다 원림에 머무시면서 삭까 사람 마하나마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마하나마는 세존께 와서 세존께서는 오랜 세월을 탐진치가 자신의 마음을 사로 잡아 버린다고 말씀드린다. 그래서 그는 ‘어떤 법이 내 안에서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때룬 이처럼 탐진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가?’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드린다.(2) 여기에 대해 세존께서는 그것은 바로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심도 깊게 말씀하신다.(6~14)
그리고 15~19에서 니칸타와 나누었던 고통과 행복에 대한 대화를
소개하신다. 세존께서 그들의 이론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씀하시자 그들은 “행복으로 행복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괴로움으로 행복은 얻어집니다. 행복으로 행복이 얻어지는 거라면 세니야 빔비사라 마가다 왕은 행복을 얻었을 것입니다. 세니야 빔비사라 마가다 왕은 고따마 존자보다 더 행복하게 사니까요.”(20)라고 항변한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세니야 빔비사라 마가다 왕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고 하루 동안 이레 동안 전일한 행복을 경험하면서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보다 더 행복하게 산다고 말씀하신다.(22)
즉 감각적 욕망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수행을 통한 행복과 이라한과의 증득에서 오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며, 이러한 행복을 증득해야 탐진치에 사로잡히지 않는 전일한 행복을 체득하게 된다는 세존의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들은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바르게 알아서 감각적 욕망을 행복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를 넘어서서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그래서 열반을 실현할 때 그것이 궁극적인 행복임을 먼저 자각해야 할 것이다.
추론 경 해설
출가는 정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팔정도의 바른 정진[正精進]은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유익한 법[善法]은 증장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참조) 그러므로 모든 정진과 모든 수행의 출발은 해로운 법고 유익한 법 즉 선법과 불선법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 할 수 있다.
본경은 마하목갈나나 존자가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악어산)의 베사
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서 비구들에게 설한 가르침이다. 본경에서 목갈라나 존자는 비구들은 16가지 훈도하기 어려운 자질들과 반대로 16가지 훈도하기 쉬운 자잘들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훈도하기 어려운 자질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 즉 불선법들에 해당하고 훈도하기 쉬운 자질은 유익한 법들 즉 선법들에 해당한다.(§§7~8) 본경에서 설하는 16가지 훈도하기 어려운 자질은 다음과 같다.(§3)
(1) 나쁜 바람[願]을 가지고 나쁜 바람에 지배됨 (2)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함 (3) 분노하고 분노를 원인으로 고집을 부림 (4) 분노하고 분노를 원인으로 적개심을 품음 (5) 분노하고 분노를 원인으로 고집을 부림 (6) 분노하고 분노에 찬 말을 내뱉음 (7) 책망을 듣고는 그 책망하는 자에게 대항함 (8) 책망을 듣고는 그 책망하는 자에게 언짢아함 (9) 책망을 듣고는 그 책망하는 자에게 말대꾸함 (10) 책망을 듣고는 그 책망을 다른 것으로 발뺌하고 주제를 바꿔버리고 분노하고 성내고 불만을 드러냄 (11) 책망을 듣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 (12) 모욕하고 얕봄 (13) 질투하고 인색함 (14) 속이고 사기침 (15) 완고하고 거만함 (16)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굳게 거머쥐어 그것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함.
그리고 다시 이와 반대되는 자질을 훈도하기 쉬운 자질로 설하고 있다.(§5) 경의 마지막에서 목갈라나 존자는 강조한다.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할 때 자신 안에서 이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모두 다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그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모두 다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그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반조할 때 자신 안에서 그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모두 다 제거된 것을 보게 되면 그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들에 대해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이다.(§§7~8)
주석서는 “옛 스님들은 이 경을 비구 빠띠목카(비구계목)라고 불렀다. 이것을 하루에 세 번씩 반조해야 한다. 이러한 해로운 법들이 내 안에 있는지 없는지 반조해야 한다. 만약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버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만약 발견되지 않으면 출가를 잘했다고 기뻐해야 한다.
하루에 세 번씩 할 수 없으면 두 번이라도 반조해야 하고, 두 번이라도 할 수 없으면 반드시 한 번은 반조해야 한다.”(MA.ⅱ.67)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음의 삭막함 경 해설
어느 시대에나 출가자나 종교인들이라고 해도 마음이 건조하고 메마르고 뻣뻣하고 삭막한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또한 이와 반대로 감각적 욕망에 빠져 살고 재물을 모으고 많이 먹고 게으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본경은 전자를 마음의 삭막함이라 부르고 후자를 마음의 속박이라 부른다. 이런 삭막함과 속박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해탈열반은 고사하고 선처에 태어나는 것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라도 그에게 다섯 가지 마음의 삭막함[心穢]이 제거되지 않고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가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함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신다.(§2)
여기서 스승 법 승가 공부지음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고 확심을 가지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네 가지에, 동료 수행자들에게 화내고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고 마음이 불쾌하고 삭막함이 생기는 것을 더하여 ‘다섯 가지 마음의 삭막함’이 된다.(§§3~7)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 몸에 대한 탐욕, 물질에 대한 탐욕,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은 뒤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 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머묾, 다른 천신의 무리를 갈구하여 청정범행을 닦는 것이 ‘다섯 가지 마음의 속박’이다.(§§8~12)
그러면 이러한 삭막함과 속박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는가?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삭막함과 다섯 가지 속박을 버리고 열의, 정진, 마음, 검증의 네 가지 성취수단[사여의족]과 분발의 다섯을 닦을 것을 강조하신다.(§26) 세존께서는 ‘분발을 포함한 열다섯 가지 조건’이라는 표
현을 쓰시는데(§27) 그것은 다섯 가지 마음의 삭막함을 버림과 다섯 가지 속박을 버림과 네 가지 수단과 분발을 말한다.(MA.ⅱ.69)
「밀림 경」 (M17) 해설
밀림이나 숲 속과 같은 외딴 처소는 삼매를 닦고 유익한 법을 닦기에 적당한 곳이다. 그러면 어떤 밀림에 머물건 그것이 다 좋은가.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같은 밀림도 어떤 비구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어떤 비구에게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본경을 설하셨는데 본경은 네 가지로 밀림에 머무는 것을 설하고 있다.
먼저 본경 §§3~6의 말씀은 다음의 넷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① 향상이 없고 필수품 얻기가 어렵다 – 떠나야 함(§3, §7 등) ② 향상이 없지만 필수품 얻기가 쉽다 – 떠나야 함(§4, §8 등) ③ 향상이 있지만 필수품 얻기가 어렵다 – 머물러야 함(§5, §9 등) ④ 향상이 있고 필수품 얻기도 쉽다 – 머물러야 함(§6, §10 등)
이 네 가지는 §§3~6에서는 밀림에, §§7~10에서는 마을에, §§11~14에서는 읍에, §§15~18에서는 도시에, §§19~22에서는 나라에, §§23~26에서는 사람에 적용시켜서 대처해야 함을 강조하신다.(§§3~26) 그래서 세존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조하시고 가르침을 마무리 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어떤 사람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가 그 사람을 의지하여 머물 때 아직 확립되지 않은 마음챙김이 확립되고 그 비구는 그렇게 숙고하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사람을 따라야 하고 비록 내치더라도 그 사람을 떠나서는 안된다.”(§26)
본경도 수행자가 거처와 환경을 잘 살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출가생활과 수행은 주도면밀한 것이어야 함을 특히 본 품에 포함된 여러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꿀 덩어리 경」 (M18) 해설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고 이것은 붓다사사나(Buddha-sāsana)를 한글로 직역한 것이다. 붓다사사나 즉 불교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가장 잘 알려진 정의가 『법구경』 에 나오는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유익함[善]을 구족하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은 부처님들의 교법이다.”(Dhp {183}, 본서 역자 서문 §1 참조)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무엇을 설하시는가에 대한 의문과 관심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당연히 있어 왔다. 본경은 부처님의 고향인 삭까에 사는 사람 단다빠니가 부처님께 이것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부처님께서는 간단명료 하지만 함축된 답변을 하시며, 여기에 대해 논의제일이라 불리는 마하깟짜나 존자가 설명해 낸 아름다운 해석을 담고 있는 경이다. 존자의 이 해석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아난다 존자는 이 가르침을 꿀 덩어리라 불렀다.(§22)
본경의 가르침은 삭까 사람 단다빠니가 산책을 나왔다가 세존을 만나서는 “사문께서는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며 무엇을 말씀하시는 분입니까?”(§3)라고 질문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냐는 단다빠니의 이 질문에 대해 세존께서는 ‘[나는] 오염원의 인식이 더 이상 잠복해있지 않음을 설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4)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본경 §8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그러자 대중들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것을 청하고(§§10~15) 그래서 마하깟짜나 존자가 이것을 다시 해설해내며(§§16~19), 부처님께서 이것을 인정하시는 것(§21) 이 본경의 전체 구조이다. 마하깟짜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눈 등의 감각기관[眼, 안의 감각장소, 內處]과 형상 등의 감각대상[境, 밖의 감각장소, 外處]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識] 등이 일어나고 이 셋의 만남이 감각접촉[觸]이고 이를 조건으로 느낌[受]이, 인식[想]이, 생각[尋]이, 사량 분별[戱論]이 생기고 다시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가
일어난다.(§§16~17)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눈 등이 없고 형상 등이 없고 눈의 알음알이 등이 없을 때 감각접촉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으킨 생각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의 일어남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18)
이렇게 해서 마하깟짜나 존자는 근- 경- 식- 촉- 수- 상- 심- [사량 분별] -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라는 8지 연기(§16) 혹은 9지 연기(§17)로 부처님의 말씀을 설명해낸다.
비구들은 세존께 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20)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인정하신다.(§21) 아난다 존자는 이 법문을 듣는 것은 마치 배가 고파지친 사람이 꿀 덩어리를 얻어서 어느 부분이라도 먹으면 달콤하고 황홀한 맛을 얻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리고, 세존께서는 “이 법문을 꿀 덩어리 법문이라고 호지하라.”고 말씀하신다.(§22) 그래서 본경의 제목은 꿀 덩어리 경 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본경은 부처님의 함축적인 말씀(§4), 간명한 말씀(§8), 여기에 대한 마하깟짜나 존자의 해석(§§16~19)의 세 단계의 설법을 담고 있다.
「두 가지 사유 경」 (M19) 해설
실천적인 측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中道)로 정리가 되고(M3 §8 등) 이 중도를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팔정도로 설명을 하신다. 팔정도의 첫 번째인 바른 견해[正見]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바른 견해 경 의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팔정도의 두 번째는 바른 사유[正思惟]이다. 정사유는 출리와 관련된 사유와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의 셋으로 정의된다.(M141 §25)
본경에서 사유로 번역한 술어는 vitakka(일으킨 생각)이고 팔정도의 바른 사유의 사유는 saṅkappa로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 두 술어가 지칭
하는 내용이 공히 출리와 악의 없음과 해코지 않음의 셋이기 때문에(§§8~10; M141 §25) 이 두 술어는 동의어이다. 그런데 니까야에서 바른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본경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의 보살이었을 때 가졌던 사유에 대한 대처 방법이 나타나므로 바른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가 된다는 점에서 본경의 가치는 크다 하겠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아직 보살이었을 적에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 악의와 관련된 사유,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를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고, 출리와 관련된 사유,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를 또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2)
이렇게 사유하신 뒤에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해코지에 관련된 사유가 일어나자 세존께서는 그것을 바르게 극복하신다.(§§3~5)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가 어떤 것에 대해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그대로 마음의 성향이 된다.”(§6)고 말씀하신다.
그런 뒤에 위의 세 가지 사유와 반대되는 출리와 관련된 사유나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나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나면 이러한 사유가 통찰지를 증장시키고 곤혹스럽게 하지 않고 열반에 이바지한다고 알고(§§8~10) 마음이 들뜨지 않게 하기 위해 안으로 마음을 확고하게 하고 가라앉히고 통일하여 삼매에 들었다고 말씀하신다.(§10)
그래서 보살(세존)에게는 불굴의 정진과 마음챙김의 확립과 몸의 경안이 생겼고 마음이 집중되어 일념이 되었다.(§13) 이것을 토대로 4선과 3명을 증득하여 깨달은 분이 되었다고 세존께서는 강조하고 계신다.(§§14~24)
바른 사유는 팔정도의 두 번째 구성요소이다. 바른 사유를 기본 주제로 설하신 경들은 만나기가 힘든데 본경이 바른 사유를 통한 4선 – 3명을 증득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대표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로운 사유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다음의 「사
유를 가라앉힘 경」 (M20)도 수행자들에게 꼭 필요한 경이라 하겠다.
「사유를 가라앉힘 경」 (M20) 해설
해로운 사유 즉 해로운 생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해로운 생각이란 탐욕·성냄·어리석음 즉 탐·진·치 삼독을 그 근본으로 한다. 좋아하고 원하고 마음에 드는 대상을 접하면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고, 또한 좋아하지 않고 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나 자신과 다른 이념을 대하면 분노가 치민다. 도대체 이러한 나쁜 생각과 나쁜 사유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그 방법을 분명하게 제시하신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높은 마음[增上心]에 몰두하는 비구는 다섯 가지 표상²⁹⁾을 때때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고 설하신다.(§2) 그리고 그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① 어떤 표상을 의존하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탐·진·치와 관련된 나쁘고 해로운 사유들이 일어나면 그 표상과는 다른 유익함과 관련된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3) ② 그래도 바쁘고 해로운 사유들이 극복되지 않으면 그 사유들의 위험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4) ③ 그래도 극복이 되지 않으면 그 사유들을 마음챙기지 말아야 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한다.(§5) ④ 그래도 극복이 되지 않으면 그 사유들의 원인을 가라앉힘을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6) ⑤ 그래도 극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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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초기불전에서 표상(nimitta)이라는 술어는 중요하다. 표상은 서양에서 image(영상)로 옮기는데 우리는 매순간 만나는 대상을 이 표상 혹은 영상을 통해서 인식한다. 이러한 표상은 특히 삼매 수행의 키워드이다. 수행자는 삼매에 들기 위해서 대상을 통해서 익힌 표상을 일으키고 이것을 닮은 표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 닮은 표상에 마음이 집중될 때 마음은 근접삼매를 넘어서 본삼매에 든다고 『청정도론』 은 설명한다. ‘표상(nimitta)’의 의미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보름밤의 긴 경」 (M109) §13의 주해와 『상윳따 니까야』 제3권 「할릿디까니 경」 1(S22:3) 6의 주해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9장 §5 이하의 [해설]들을 참조할 것.
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굳게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주석서에 의하면 유익한 마음으로 해로운 마음을) 제지하고 압박하고 짓밟아버려야 한다.(§7)
이렇게 할 때 나쁘고 해로운 사유들이 제거되어 마음이 안으로 안정되고 고요해지고 전일해져 삼매에 든다(§8)고 부처님께서는 본경에서 강조하고 계신다. 이렇게 해서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절차로 해로운 사유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본경과 앞의 경(M19)은 팔정도의 두 번째인 정사유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장 「비유 품」 (M21~30)
「톱의 비유 경」 (M21) 해설
자비무적이라는 말이 있다. 자비로운 사람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양쪽에 날이 선 톱으로 도둑이나 첩자가 사지를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본경은 톱의 비유를 통해서 자비무적의 정신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비나 자애는 치우치거나 편중되어서는 안된다. 치우침 없는 보편적인 것이 될 때 그것이 진정한 자애이다. 본경은 급고독원에서 비구니들과 가깝게 지내는 팍구나 존자를(§2) 경책하시면서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대 앞에서 어떠한 사람이 비구니들을 비난하더라도 … 그 비구니들을 손으로 때리고 흙덩이를 던지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을 내리치더라도 … ‘내 마음은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악담을 내뱉지 않으리라. 이로움과 함께 연민을 가지고 머물리라.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며 증오를 품지 않으리라.’라고 이와 같이 그대는 공부지어야 한다.”(§6)
이렇게 팍구나 존자를 경책하신 뒤에 대중들이여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도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한 법들에 전념하라. 그렇게 하여
그대들도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함을 성취하라.”(§8)라고 몇 가지 비유를 들면서 말씀하신다.
그런 후에 다시 비구들에게 다섯 가지 말의 길을 설하시는데, 그것은 ① 시기에 맞거나 맞지 않는 말 ②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닌 말 ③ 부드럽거나 거친 말 ④ 원인에 근거하거나 원인과 무관한 말 ⑤ 자애롭거나 증오를 품은 말이다.(§11) 그런 뒤에 땅을 없애려는 비유(§12),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는 비유(§14), 횃불로 강가 강을 태우려는 비유(§16), 부드러운 자루의 비유(§18)와 마지막으로 본경의 제목이기도 한 톱의 비유(§20)의 다섯 가지 비유를 드시면서 자애가 함께한 마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신다. 이런 다섯 가지 각 비유의 말미에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리라. 그리고 그 사람을 [자애의 마음을 내는] 대상으로 삼아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채우고 머물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신다.
비구니들에게 치우친 팍구나 존자의 편애는 자애가 아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한 사람이나 한 편이나 한 무리에 치우침이 없는 관심과 자애가 진정한 자애임을 강조하고 계신다.
「뱀의 비유 경」 (M22) 해설
대중생활을 하다보면 대중공사를 통해서 결의된 사항을 그 공사에 함께 참석한 사람이라도 전혀 다르게 그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아마 부처님 시대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나 보다. 본경에서도 아릿타 비구가 부처님의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한 뒤 이러한 자기식의 이해를 고집하는 일화를 들고 있다. 본경은 세존의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경계하는 가르침으로 급고독원에서 생긴 일화를 토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이다.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
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나쁜 견해가 생겼다.(§2) 비구들이 그를 설득시켜 나쁜 견해를 없애지 못하자(§3) 세존께 말씀을 드렸고(§4), 세존께서 아릿타 비구를 불러서 경책을 하시면서(§§5~6) 대중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본경의 내용이다.
본경 §§10~12에서 세존께서는 잘못 만지면 큰 봉변을 당하게 되는 뱀의 비유 두 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바른 해석을 하도록 말씀하신다. 이렇게 뱀의 비유로 말씀하시고 다시 뗏목의 비유를 들고 계신데(§§13~14) 특히 이 뗏목의 비유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 제6품 「정신희유분」 (正信希有分)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대략 일곱 가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로 ① 물질 ② 느낌 ③ 인식 ④ 심리현상들[行] 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 ⑥ ‘이것이 세계요, …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범부는 이러한 견해의 토대를 내것‧나‧나의 자아로 관찰하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렇지 않다.(§§15~17)
(2) 번민에 대한 어떤 비구와의 문답(§§18~21)
(3) 무상과 무아에 대해서 비구들과 문답을 하시고(§§22~25) 그래서 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② 무상·고·무아 ③ 염오 ④ 이욕 ⑤ 해탈 ⑥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로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해체해서 보기의 정형구를 드러내신다.(§§26~29)
(4) 이 정형구로 아라한이 된 비구를 묘사하는 “빗장을 밀어제친 자, 도랑을 가득 채운 자, 기둥을 뽑아 버린 자, 걸쇠를 푼 자라고도 하고,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라는 표현을 소개하시고(§30) 이 술어들을 설명하신다.(§§31~36)
(5) 여래에 대한 잘못된 비난을 들어서 설명하신다.(§§37~39)
(6) 그리고 다시 “그러므로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 …” 는 정형구를 말씀하시고 오온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예를 드신다.(§§40~41)
(7) 법은 잘 설해졌다고 강조하시면서 아라한, 불환자, 일래자, 예류자, 법을 따르고 믿음을 따르는 자, 믿음이 깊고 세존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가르침을 마무리하신다.(§§42~47)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중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조하신다. 부처님 당시에도 아릿타 비구처럼 부처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고서도 그것이 옳다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비구가 있었으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개미집 경」 (M23) 해설
본경은 급고독원에서 있었던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장님들의 숲에 머물렀는데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어떤 천신이 존자에게 다가와서 알 수 없는 15개의 비유가 든 말을 하고 세존께 가서 이 뜻을 여쭈어보라고 권하고 사라졌다.(§2) 존자가 부처님께 가서 이 15가지 비유에 대해서 여쭙자(§3)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그 뜻을 말씀 하신다.(§4)
① 개미집 :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 ② 밤에 연기를 내뿜는 것 : 낮에 행한 것에 대해 밤에 사유하고 고찰하는 것 ③ 낮에 불타오르는 것 : 밤에 사유하고 고찰한 것을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시키는 것 ④ 바라문 :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여래 ⑤ 현자 : 유학인 비구 ⑥ 칼 : 성스서운 통찰지 ⑦ 파는 것 : 정진 ⑧ 빗장 : 무명 ⑨ 두꺼비 : 분노에 따른 절망 ⑩ 두 갈래의 길 : 의심 ⑪ 체 : 다섯 가지 장애 즉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 ⑫ 거북이 :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⑬ 칼과 도마 :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⑭ 고깃덩이 : 향락과 탐욕 ⑮ 용 : 번뇌 다한 비구
「역마차 교대 경」 (M24) 해설
본경은 상좌부 불교교학의 토대가 되는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이 논의되는 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곱 가지 청정이 언급되는 경은 니까야에서는 본경 하나밖에 없다. 그것도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리뿟따 존자와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물론 본경의 내용이 보여주듯이 이 칠청정은 이미 세존 당시의 승가 대중에서 정착이 된 가르침이었음이 분명하고 그래서 두 존자들은 아무 거리낌이나 설명이 없이 칠청정에 관계된 술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āyasamā Puṇṇa Mantāṇiputta)는 부루나 미다라니자(富樓那 彌多羅尼子)로 옮겨졌으며 우리에게 설법제일 부루나(富樓羅) 존자로 알려진 분이다. 본경은 왜 뿐나 존자가 논의제일로 추앙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이라 할 수 있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서 머무실 때 사리뿟따 존자가 대중들이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듣고(§2) 기회가 되면 그와 대화를 나누어 보리라고 생각한다.(§3) 세존께서 유행을 하시어 급고독원으로 오시자(§4) 뿐나 존자도 그곳에 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린다.(§5) 이렇게 하여 뿐나 존자를 만나게 된 사리뿟따 존자는 뿐나 존자에게 “ ① 계행의 청정을 위해 세존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으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뿐나 존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대답한다. 같은 방법으로 ② 마음의 청정 ③ 견의 청정 ④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 ⑤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에 의한 청정 ⑥ 도닦음에 대한 지견에 의한 청정 ⑦ 지견에 의한 청정을 위해 세존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는가를 묻고 뿐나 존자는 아니라고 말한다.(9) 대신에 “도반이여,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해 세존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10)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이 계행의 청정부터 지견에 의한 청정까지의 칠청정이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인가를 묻고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11) 이렇게 하여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는 사왓티에서 일곱 번의 역마차를 바꾸어 타고 일곱 번째 역마차로 사께따의 내전의 대문에 당도하는 비유를 들어서 이 칠청정을 차례로 닦아서 열반을 성취한다고 대답한다.(§§14~15)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칭송하면서 감격해마지 않는다.(§§16~17) 그래서 경은 “이렇게 그들 두 큰 용들은 서로 서로의 좋은 말을 기뻐했다.”(§17)라고 마무리를 짓고 있다.
이 칠청정의 가르침은 계·정·혜 삼학의 초점에 맞추어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청정도론』 의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으며, 상좌보 불교 교학을 체계화하는 중요한 토대로 주석서 문헌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미끼 경」 (M25) 해설
니까야는 수행할 때 생기는 유혹들을 마라의 꼬드김으로 비유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 제1권 「마라 상윳따」 (S4)는 마라와 관련된 경들 25개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수행자들을 방해하는 마라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는 경들이다. 특히 「비구니 상윳따」 (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도 모두 마라가 비구니 스님들을 유혹하거나 겁을 주는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경에서도 세존께서는 사슴 사냥꾼이 사슴의 무리에게 미끼를 놓는 것을 비유로 들어서 수행자들이 마라의 유혹의 미끼를 물지 않고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을 사슴과 미끼의 비유로 네 단계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1) 첫 번째 사슴의 무리들은 사슴 사냥꾼이 놓아둔 미끼에 잠입해 들어와서 넋을 놓고 그것을 먹어버렸다.(§3)
(2) 두 번째 무리들은 종류의 미끼 음식을 금하고 두려움을 수반하는
음식을 금하고 숲 속 깊이 들어가서 머물렀지만 마침내는 기력이 떨어져서 미끼로 되돌아가 넋을 놓고 음식을 먹었다.(§4)
(3) 세 번째 무리들은 위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자 사냥꾼의 일행은 그들이 놓아둔 미끼를 큰 그물망으로 사방으로 완전히 둘러싸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세 번째 사슴 무리의 거처를 보았고 그곳에서 그들을 잡았다.(§5)
(4) 네 번째 무리들은 사슴 사냥꾼의 일행이 갈 수 없는 곳에 거처를 정했다. 그래서 사냥꾼 일행의 음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냥꾼의 일행들은 네 번재 사슴 무리를 무관심으로 대했다. 이렇게 하여 네 번째 사슴 무리는 사슴 사냥꾼의 지배와 힘에서 벗어났다.(§6)
세존께서는 이 네 비유를 네 가지의 사문바라문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7) 위 네 가지 비유를 사문 바라문에 견주어서 설명하신다.(§§8~11) 그러고 나서 “그러면 어느 곳이 마라와 마라의 일행들이 갈 수 없는 곳인가?”(§12)라고 문제 제기를 하신 뒤에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네 가지 禪과 공부변처부터 비상비비사처까지의 4처를 말씀하시면서(§§12~19) 각각에 대해서 “이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뒤에 마지막으로 상수멸(想受滅)의 구족을 설하시고 여기에 대해서는 위의 후렴구에다 다시 “세상에 대한 집착을 초월했다고 한다.”는 구절을 넣어서 말씀하신다.(§20) 당연히 상수멸의 구족은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도(magga)가 일어난 불환자나 아라한만이 상수멸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이상 번뇌가 있을 수 없다.
「성스러운 구함 경」 (M26) 해설
나까야 전체에서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담고 있는 경을 들라면 본경과
본서 제2권 「삿짜까 긴 경」 (M36)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본경에는 세존께서 깨달음을 실현하시는 구체적인 과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본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후에(§18) 전법에 대한 사유를 하시고(§§19~21) 바라나시로 가셔서 오비구를 교화하는 부분을(§§26~31) 자세히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삿짜까 긴 경」 (M36)은 부처님의 성도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부처님의 고행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고(§§20~30), 특히 부처님께서 고행을 버리고 수행을 통한 행복을 인정하는, 진지한 사유를 하시는 것과(§§31~33) 4선 – 3명을 증득하시는 과정도 나타나고 있다.(§§34~44)
본경은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서 법담을 나누며 모여 있는 비구들에게(§4) 하신 설법을 담고 있다. 먼저 세존께서는 “두 가지 구함이 있나니 성스럽지 못한 구함과 성스러운 구함이 그것이다.”(§5)라고 말문을 여신 후에, 성스럽지 못한 구함을 설명하시고(§§5~11), 생·노·병·사와 슬픔과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는 것이 성스러운 구함이라 말씀하신다.(§12) 그런 뒤에 §13 이하에서 부처님께서 성스러운 것을 구하여 출가하여 수행하시던 일을 말씀하신다.
먼저 알라라 깔라마 회상으로 찾아가서 그가 가르치던 무소유처를 빠르게 증득하였고 알라라 깔라마의 인가를 받았지만 세존께서는 그 법이 염오로 …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단지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라고 하시면서 그 법을 버리고 떠나셨다.(§15) 다시 웃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가서 그가 가르치던 비상비비상처를 얼마 지나지 않아 증득하였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떠나셨다.(§§16)
그 후 세존께서는 혹독한 고행을 하셨는데 이 일화는 M36에 나타나고 본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하셨다.(§17) 부처님이 4선 – 3명을 통해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과정도 본경에는 나타나지 않고 이것 역시
M36에 나타난다. 본경에서는 깨달으시고(§18) 범천의 권청을 받고 전법을 결심하시고(§§19~21) 오비구를 가르치신 일화(§§36~30)가 중점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깨달으신 뒤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고 본경은 표현하고 있다.(§19) 그러나 대범천이와서 설법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권청하자(§20) 마침내 전법을 하기로 결심하시고(§21) 그 대상으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떠올리셨으나 그들이 모두 칠일 전에 임종한 것을 알고(§§22~23) 오비구에게 설법을 하기로 결심하시고(§24)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떠나신다. 도중에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를 만나기도 하시면서(§25) 녹야원에 도착하셨다.
처음에 오비구는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있는’ 수행자라 오해하고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26) 세존께서는 그들을 간곡하게 설득하셔서 그들을 확신시킬 수가 있었다.(§§27~29) 이렇게 하여 오비구도 마침내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30) 오비구는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 경」 (S56:11)을 듣고 모두 예류자가 되었으며 「무아의 특징 경」 (無我相經, S22:59)을 듣고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다.(MA.ⅱ.192)
그리고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지 않고 흘리지 않고 푹 빠지지 않아서 재난을 보고 벗어남을 비유와 함께 말씀하시고(§§31~33) 다시 4선 – 4처 – 상수멸의 구차제멸을 설하시어(§§34~42) 이 각각에 대해서 앞의 경(M25) §§12~20처럼 “이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34~42)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4선 – 4처 – 상수멸을 설하시는 본경의 §§34~42는 앞 경의 §§12~20과 같다. 본경의 §21에 청련과 홍련과 백련의 비유가 나타나고 §§32~34에 세 가지 비유가 나타나며, 본경의 §§34~42가
앞 경의 §§12~20과 같기 때문에 경을 결집한 분들은 본경을 비유 품의 이곳에 넣은 듯하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 (M27) 해설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세존께서는 불교를 계·정·해 삼학으로 말씀하신다. 『맛지마 니까야』 에서는 이것을 계의 조목 – 4선 – 3명으로 정형화해서 말씀하시는데 본경과 본서 M38, M51, M60, M76, M79, M101, M125 등의 8개 정도의 경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이것을 역자는 본서의 해설과 주해 등으로 『맛지마 니까야』 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편 『디가 니까야』 제1권에 포함된 「사문 과경」 (D2) 등 10개의 정도의 경도 계·정·혜 삼학을 근본 가르침으로 설하고 있는데 모두 23단계의 정형구를 포함하고 있어서 역자는 이것을 『디가 니까야』 의 23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표현한다. 『맛지마 니까야』 8개 정도의 경에 나타나는 이 15단계의 정형구와 『디가 니까야』 제1권에 나타나는 23단계의 정형구는 본서 역자 서문 §8 - (3)에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본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눗소니 바라문이 한낮에 백마가 끄는 온통 흰색으로 장엄한 백마차를 타고 사와티를 나가고 있었는데 그는 유행승 삘로띠까가 세존을 친견하고 오는 것을 보았다.(§2) 왓차야나라고도 일컬어지는 유행승 삘로띠까는 코끼리의 족적에 대한 비유를 들면서(§§3~7)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네 가지 족적을 보았을 때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4~7)라는 칭송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감흥어를 읊는다.(§8)
그런 후 그는 세존을 친견하고 완성된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가르침을 듣는다.(§10) 그리고 『맛지마 니까야』 에서 정형화된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를 통해서 세존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11~26)
이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맛지마 니까야』 8개 정도의 경에 나타나는 『맛지마 니까야』 에서 정형화된 가르침이다. 이것은 본서 역자 서문 §8 - (3)에서 이미 설명하였지만 여기에 다시 표제어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청정범행을 드러냄.
② 이런 법을 듣고 집을 떠나 출가함.
③~④ 계복의 단속과 계의 구족.
⑤~⑥ 감각의 대문을 지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갖춤.
⑦~⑧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함, 다섯 가지 장애의 극복.
⑨~⑫ 초선(初禪)부터 제4선까지를 주고하여 머묾.
⑬~⑮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증득함.(11~26)
『디가 니까야』 제1권에 속하는 「수바 경」 (D10) 등을 참조해서 보면 이 15단계 가운데 ①부터 ④까지는 계의 무더기[戒蘊],부터 까지는삼매의 무더기[定蘊]로,부터 까지는 통찰지의 무더기[慧蘊]로 정리된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 (M28) 해설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많은 가르침을 베푸셨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봐야 하는가? 이것은 부처님 당시의 직계제자들에게도 중요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요 지혜제일이라는 사리뿟따 존자가 여기에 대해서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본경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움직이는 생명들의 발자국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코끼리 발자국 안에 놓이고, 또한 코끼리 발자국이야말로 그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불리나니 그것은 큰 수치 때문입니다.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善法]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내포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
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입니다.”(§2)
이처럼 사리뿟따 존자는 사성제야말로 불교교학의 근본이라고 이렇게 먼저 정의를 하였다. 그런 뒤에 §3에서 고성제부터 설명해서 들어간다. 고성제는 일반적으로 생·노·병·사의 사고(四苦)에다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와 구부득고(求不得苦)와 오취온고(五取蘊苦)를 더한 팔고(八苦)로 정의한다.(M9: §15; M28 §3 등)
이렇게 고성제를 정의한 후에 다시 오취온을 정의하고(§4) 이 가운데 색취온을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과 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所造色]들이라고 정의한 후에(§5) 경의 대부분을 사대의 각각, 즉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6~25)
그리고 §§27~38에서는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와 그것에 상응하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리고 §28 등에서는 이렇게 해서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모임, 적집, 더미가 만들어집니다.”라고 하면서 근 – 경 - 식의 삼사에 의해서 오취온으로 구성된 ‘나’라는 존재가 생긴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다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는 세존의 말씀을 인용한 뒤에(28), 오취온은 조건 따라 생긴 것[緣起]이며 이들에 욕심 등을 내는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요 탐욕과 욕망을 제어하여 없애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하면서(§28 등) 괴로움의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경을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하여 괴로움의 발생구조[流轉門]와 소멸구조[還滅門]를 밝히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연기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는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28에서 먼저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사성제 가운데 도성제에 대한 설명은
명은 본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심재 비유의 긴 경」 (M29) 해설
비구들은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출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해탈열반의 실현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출가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데와닷따이다. 본경은 데와닷따가 교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출가자를 다섯 부류로 분류해서 설하시는 가르침이다. 본경에서는 다섯 부류의 출가자를 심재를 찾는 사람의 비유 다섯 가지와 함께 설하고 있다.
(1)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출가했지만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방일하여 방일함에 빠진다. 방일해서는 괴로움 속에 머문다. 이것은 심재(속재목)을 찾아다니다가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白木質]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잔가지와 잎사귀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2)
(2)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1)에 빠지지는 않지만 계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계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다른 이를 비난한다. 이것은 심재를 찾는 사람이 겉껍질을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3)
(3)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삼매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 그는 삼매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이것은 마치 속껍질을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4)
(4)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그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 그는 지와 견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이것은 겉재목을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5)
(5) 다섯 번째 부류의 사람은 일시적이지 않은 해탈(완전한 해탈)을 성취한다. 이 사람이야말로 심재를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심
재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6)
그리고 세존께서는 종합적이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 청정범행의 목적이고 청정범행의 심재이고 청정범행의 완결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가르침을 마무리하신다.(§7) 이렇게 본다면 일시적이지 않은 해탈(완전한 해탈)과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은 같은 것으로 불교의 최상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심재 비유의 짧은 경」 (M30) 해설
수행자 혹은 출가자 혹은 사문은 누구든지 궁극적 지혜 혹은 최상의 지혜를 추구하여 출가한다. 인도에서 육사외도로 정리되는 사문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최상의 지혜를 표방한다. 본서 제3권 「데와다하 경」 (M101) §10 등에도 니간타는 이것을 선언하였다고 나타난다. 그러면 이들 가운데 누가 최상의 지혜를 얻은 자일까? 아마 당대의 지식인들에게는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본경에서도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와서 육사외도로 일컬어지는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웰랏타뿟따, 니간타 나따뿟따 등이 “모두 스스로 자처하듯이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까? … ”(§2)라고 그들의 경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린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3~7에서 앞의 M29의 §§2~6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비유를 먼저 말씀하신다. 그리고 §§8~11에서 다섯 가지 비유 가운데서 앞의 네 가지 비유를 각각 방일함에 빠지고(§8), 계의 구족에 빠지고(§9), 삼매의 구족에 빠지고(§10), 지와 견의 구족에 빠진(§11) 경우로 설명하시면서 앞의 경(M29)의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2~5)의 경우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런 뒤에 이 지와 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들로 세존께서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와(§§13~16) 공부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와 상수멸(§§17~21) 즉 4선 - 4처 - 상수멸의 아홉 가지를 드신다. 그리고 이것을 나무의 심재를 가져가는 사람에 비유하신다.(§22)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 청정범행의 완결이라고 결론지으신다.(§23) 그러므로 이러한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최상의 지혜이지 육사외도의 경지는 최상의 지혜가 아니라는 것이 부처님의 결론이라 하겠다.
이렇게 해서 삥갈라곳차 바라문은 부처님의 재가신도가 되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가 된다.(§24)
4. 맺는 말
이상으로 『맛지마 니까야』 제1권에 포함된 제1품부터 제3품까지의 30개 경들을 개관해 보았다. 제1장 「뿌리에 대한 법문 품」 에서는 유위제법의 뿌리가 되는 허황된 생각[空想]이나(M1) 여러 가지 번뇌나(M2) 버려야 할 법(M3) 등과 수행자가 가져야 하는 바른 견해나(M9) 바른 마음챙김(M10)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제2장 「사자후 품」 에서는 불교 교단에만 진정한 사문이 있다는(M11) 부처님의 사자후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르침을 음미해 보았으며, 제3장 「비유 품」 에서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분명한 입각처를 보았다.
부처님은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욕계라고 규정하신다. 감각적 욕망이 치성하고 감각적 욕망이 삶의 근본이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총동원하여 선정적인 장면과 현란한 문구와 매혹적인 노래와 사진과 영상 등등으로 온갖 종류의 감각적 욕망을 부추기는 대한민국이라는 요계에 산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각적 욕망의 지배를 받는 자야세나 왕자가 본서 제4권 「길들임의 단계 경」 (M125)에서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 마음이 하나됨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5)라고 단언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에 물들어 사는 자야세나 왕자가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보고 실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7)고 부처님께서는 단언하신다.
세존께서는 본서 「괴로움의 무더기의 긴 경」 (M13)에서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상세하게 설하셨다.(§§7~37)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이라는 이 셋은 자본주의 이념이 득세하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주제로 삼고 있는 본경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본서를 읽는 독자들께서 본 『맛지마 니까야』 를 통해서 이러한 감각적 욕망과 물질과 느낌의 부추김을 극복하는 발판을 만들고 그래서 진정한 행복인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토대를 닦으시기를 기원하면서 제1권 해제를 마무리한다.
1권 해제 사경이 끝났습니다.
이 『맛지마 니까야』 사경 공덕을 모든 중생에게 회향합니다.
법주도서관&자주선림
선다향 사경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