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때와 롯의 때
누가복음 17장 26-30절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성경은 노아의 때를 통하여 모든 인간은 물에 빠져 죽어야 할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베드로후서 2장 4-5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베드로는 노아의 때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를 연결시키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범죄한 천사)이 사람의 딸(흙으로 된 형상)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둘이 결합되므로 혼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혼적인 상태의 인간은 예외없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낸다. 모두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의 영을 흙에 가두어 사람이 되게 하였으므로 세상은 감옥이며,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인자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현재적부활을 믿는 성도에게 말씀(호 로고스)과 성령으로 재림하여 파루시안(임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외에 사람들(신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세상 일에 몰두하고 있으므로 멸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와 그 가족 일곱만 구원을 받았다.
롯의 때는 모든 사람들이 불과 유황(퓌르 카이 데이온 πῦρ καὶ θεῖον)으로 타 죽어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불과 유황에 대한 말은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도 나타난다.『텐 팀넨(못) 투 퓌로스(불) 카이 데이우(하나님의 말씀)에서』데이우를 유황으로 번역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호 로고스)이다. 불못에서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롯은 혼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나게하신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심판이지만, 롯과 가족은 구원받는 자(성령세례)로 나타난다. 불심판은 이전의 옷을 벗고 영의 몸(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그래서 롯은 소돔에서 소알 땅으로 피신한다. 롯의 부인은 소금기둥이 되었다. 소금 기둥은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 약속을 기다리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언약 속으로 들어간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육적인 것이 멸해져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 멸해지는 것이다.
성도는 물심판과 불심판을 이미 받은 존재들이다. 물에서 죄의 몸이 죽고, 불에서 옛사람의 옷을 태워버렸다. 즉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세례로 새사람의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신자들은 둘째 사망의 음부로 들어가 말씀과 성령의 불로 심판받을 것이다.
종말의 의미를 깨닫는 자만 새생명으로 나갈 수 있다. 종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재림하여 하나가 되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종말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성도는 천국이 임하지만, 율법 아래 있는 신도들은 날마다 지옥 속에서 살아간 다. 율법의 그물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신도들에게 자유함을 준다고 해도, 거짓선지자들이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신도가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의 흙에 갇힌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탐욕이 육적 자아 속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여 돌이켜야 한다. 회개는 옛사람(첫사람 아담)은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모든 인간은 옛사람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도의 무서운 적은 거짓선지자와 육적 자아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교회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물들어버렸다. 기복신앙이 넘쳐흐른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을 해도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부활도 예수님의 재림도 구원도 먼 미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육적 자아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보다 세상에 관심을 두기를 원한다. 영적으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에 몰두하게 만든다. 성도는 영적으로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잔치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17장 30-31절에서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지붕 위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고, 집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다시 율법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7장 32-33절에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프쉬켄)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롯의 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프쉬켄은 혼이다. 개역개정에서는 목숨으로 번역되었다. 복음에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섞은 일인가!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거짓선지자들은 날마다 율법에 비추어 죄를 범하는지 범하지 않는지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고, 죄를 범하였으면 예수의 피로 용서받아야만 한다는 신도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교회의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며, 자신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은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식이 이루어졌는데도, 인식일(주일)을 지켜야 한다든가, 십계명을 문자에 얽매여 지켜야하는지 마는지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십일조를 반드시 의무적으로 교회에 내도록 하고, 새로운 절기를 지켜 행하고, 마음의 할례는 모르면서, 의식화된 세례가 마치 구원의 자격증을 얻는 것처럼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