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튼 스파이어 등반기 (정용이 대신 올림)

트랑고 빙하에서 5.6km 올라와 북쪽에서 흘러내린 하이나브락 빙하가 만나는 곳에 1,300m의 쉽튼 스파이어가 홀로 위치해있다. 설사면이 없이 빙하 위에 솟아 있으며 배가 침몰하는 듯 뱃머리가 하늘로 향한 형태는 순탄치 않을 우리의 등반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우린 그저 “저 벽이야?” 했을 뿐이다. 그 뒤로 15일간을 뱃속에 갖혀 미로속의 새앙쥐처럼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메여야 했다. 7일, 배이스캠프, 트랑고 베이스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은 바위로 뒤덮인 빙하에서 벗어나 샹그릴라를 연상시키는 초원지대에 발을 딛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야생화로 가득 차있고, 작은 호수까지 있었다. 그래서 우린 이보다 좋은 베이스는 없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스무 장의 스카프를 서른 명의 포터들에게 나눠 줄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뽑기로 결정했는데, 모두들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하니 베이스의 첫날은 모두에게 밝게 시작되었다. 8일, 일주만의 햇살이라며 먼저 등반 중이던 스웨덴의 피에르와 미국인 에리카가 춤을 추며 좋아한다. 우리 팀도 망원경으로 벽의 루트를 관찰하며 등반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오후에 피에르의 말이 에리카가 산책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빙하쪽에서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틀간 빙하 깊은 곳에서부터 주위를 광범위하게 수색하였으나,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10일, 두 대의 헬리콥터가 산너머까지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11일, 피에르의 부탁으로 그들이 등반한 쉽오브풀스(ship of fools’) 루트의 120m에 데포시켜둔 장비와 홀백 5개를 회수하면서 처음 벽 밑에 서니 계획한 루트보다는 이 루트가 낙석과 낙빙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고 그 루트를 등반하려다 사고를 당한 팀의 뜻도 담겨있는 듯해 빙하를 되돌아오며 루트를 쉽오브풀스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 3일간은 무거운 비가 내렸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하는 치원성을 두고, 벽에 붙으면 못 먹을 것 같아 염치 불구하고 많이 먹어두었다. 15일, 흐린 날임에도 우린 벽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왔음에도 눈은 그렇게 녹지않아 히든 크레바스의 위험에 안자일렌으로 벽 가까이 다가갔다. 고정로프는 1피치 70m, 2피치 20m, 3피치 30m로 3피치는 마무리가 되어있지 않아 30m를 그대로 이어 등반했는데, 침니사이의 얼음과 눈에 낙석이 주방의 칼처럼 크기, 길이별로 꽂혀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일일이 칼을 빼보듯 정면으로 당겨보고 옆으로 밀어도 보는 확인 후 살짝 조심스레 잡고 딛으며 올라서야 했다. 비가 왔다 그첬다를 반복해서, 하강해서 ABC에서 포타렛지를 어설프게 설치하고 세 명이 들어가 등반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16일, 하늘엔 어제의 구름이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오전에 잠깐 구름 걷힌 틈에 3피치까지 고정로프를 다시 설치하고 고정자일을 바닥까지 한 줄 더 설치했다. 그러는 사이 치원이형이 대장님의 확보로 다음 피치에 나섰는데 35m즈음에서 자일유통이 원활하지 못해 일단 끊고, 따라 올라간 내가 나머지 15m를 자유등반으로 마무리했으나, 추운 날씨와 20일만의 등반 그리고 장비 무게로 인해 팔에 경련이 나서 풀어가며 등반해야 했다. 치원이형도 같은 증상이었는데 처음부터 부담이 조금 되었다. 그 다음 5피치는 여전히 반침니에 뜬 바위들로 크랙이 형성되어 있어 빠르게 등반할 생각으로 난 한조의 캠과 하나의 래더만 가져갔다가 길이는 생각보다 훨씬 긴 50m에 쉬워 보였던 반침니는 오버행에 나팔형으로 처음부터 손등과 손톱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작은 테라스에 로프를 끌어당기며 올라서니 그 위로 15~20m정도 위에 큰 테라스가 보여 일단 슬링으로 바위턱을 감싸 피치를 만들고 다음 6피치 20m를 좋은 테라스에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피치가 이렇게 긴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뒤에 이런 피치만 12피치가 더 나있어 기운을 다 쏟아야 했다. 곧 눈이 내려 빠르게 하강하였다. 내일은 한 명이 베이스로 돌아가니 나아지겠지 하며 다시 세명이 포타렛지안에서 쭈그러진 포타렛지안을 젓가락으로 공간을 확보하며 하루 더 버텼다. 17일(3일째), 계획은 150m 홀링하고 5피치까지 2번 더 홀링해서 홀백 하나를 올리는 작업양이다. 대장님이 베이스로 돌아가시니 눈이 10시까지 내린다. 눈이 그치자 홀백에 물 27리터, 로프, 장비를 가득 챙기니 60kg이 되어보였다. 150m 홀링이라 중간에 걸리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무리없이 올라오니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그렇게 5피치에서 홀링 준비를 하니 갑작스레 많이 눈이 내렸다. 작업양을 미루면 안될 것 같아 홀링을 하다 보니 다시 날씨가 좋아진다. 밑으로 내려오니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어 내일 눈이라도 내려 하루 쉬고 싶은 생각뿐이나 하늘은 점점 개어만 갔다. 18일(4일째), 아침부터 맑은 날씨에 캠프를 올리는 날이라 서둘러야지 했으나 캠프, 홀백 정리를 하니 벌써 9시다. 계획은 홀링 6피치 마무리하고 2피치 등반하는 것이나 처음150m홀링을 하다가 1피치만 등반하는 걸로 수정했다. 그사이 치원형이 4,5피치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홀백을 마무리 하려는데 도우러 내려왔다. 생각보단 조금 늦은감이 들지만 고맙게 도움을 받았다. 6피치에 포터렛지를 설치하고 자리를 잡으니 낙빙이 플라이에 떨어져서 그렇지, 밀키웨이라고 하는 은하수를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19일(5일째), 4일간의 힘든 노동으로 피곤하고 힘들었으나 그래도 등반은 즐겁게 해야지 하며 나섰으나, 완전한 60m 나팔 반침니에 갇혀 3시간 동안 버둥거리며 추락까지 더해 몸과 마음이 흙 범벅이 되어 7피치를 마무리 했으나, 역시 마지막은 로프를 힘껏 당겨가며 피치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나마 8피치는 조금 더 벌어져 있어 2시간 만에 종료했지만 캐머롯 6호 한 개의 사용으로 A1이 A5가 될 수도 있었다. 지쳐서 다음 9피치를 치원형에게 부탁을 하니 흔쾌히 앞서 40m를 정리를 하였다. 그 뒤에 배낭을 메고 회수를 나섰는데, 손만 뻗어서는 장비를 잡을 수도 없어 배낭을 벗었다가 회수해서 다시 메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무거운 배낭을 말이다. 9피치에서 위를 보니 3~4피치가 더 남아 보였다. 포타렛지로 되돌아오니 어제 무전에서 불과 베이스에서 100m 밖에 떨어진 곳에서 실종되었던 에리카의 시신을 10일만에 찾았다고 들었는데, 헬기가 에리카의 시신을 수송하는 듯 보였다. 주위 정황으로 보아 찾은 곳 바로 위에 좋은 크랙선이 있는데 이곳에서 볼더링하다 떨어졌고, 바로 눈사태로 묻혀 날이 좋으니 녹아서 찾을 수가 있었다고 베이스에서 설명해 주었다. 수습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은 들었으나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20일(6일째), 7피치에서 홀링하다 보니 침니에 계속 홀백이 끼여서 치원형이 바깥쪽에서 들어올려가며 홀링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퍽 하는 소리가 나서 위를 보니 홀링 로프가 백업으로 걸어둔 슬링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트랙션을 찾아보니 휘어구부려져 있었다. 홀백은 30kg 정도이고 도르래 수직방향으로 홀링해야 하나 조금 옆으로 힘을 썼을 뿐인데 휘어지다니 “장비는 100% 믿지만 100% 믿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는 일이었다. 그 뒤로 철저히 백업을 확인하였다. 1시에 홀링이 끝이나 처음으로 간식을 치원형과 같이 하고 다음 등반을 서둘러 나섰는데 4m 턱을 올라서니 멋진 캠프지가 있는 게 아닌가. 평평한 바닥에 풀이 자라고 이 곳이 마크 시놋이 말한 환상의 테라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치원형에게 올라오시게 해 신천지를 발견한 기쁨을 같이한 후, 다음 코스를 읽으니 우측 직상으로 깨끗한 크랙으로 정확하게 보였다. 그렇게 출발 진입했으나 500m의 고도감에 40m를 올랐는데 크랙은 끝이 나고 디에드르를 자유 등반으로 20m 가까이 오르고서야 볼트에 종료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체력 좋은 친구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보단 등반로프를 끝까지 끌고 와서 피치를 끊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서 윗부분 7~8m가 노동성 반침니인 것을 확인하니 또 기운이 빠져 겨우 스태틱 로프를 끌어올리고 하강하며 장비를 회수하였다. 그 동안의 피로가 쌓인 듯 열이 났지만 장비를 다시 5m 테라스 위로 올리고 화장실도 파고 나서야 포타렛지 안으로 들어가 물 티슈로 열을 식혔다. 형이 걱정이 됐는지 내일 작업은 형이 한다며 쉬라고 해서 해열제 먹고 일찍 취침했다. 21일(7일째) 일어나니 열은 내린 듯 했으나, 아직은 피로로 몸은 뻑뻑한 느낌이었다. 어제 고정시킨 로프에 등강기로 치원형이 먼저 등반하고 곧 따라갔다. 8m 반침니 넘어서는데 1시간 반, 11피치 40m 등반 시간이 4시간 걸렸는데 회수하며 확인하니 침니에 확보할 넓은 캠이 없어 너트만 구석 구석에 20개 가까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나의 예상이 적중한 코스였지 않나 싶었다. 11피치는 1시간 정도에 30m를 깔끔하게 넘어서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난 정리한 로프를 배낭에 넣고 어깨에 메기 위해 배낭의 확보를 긴 슬링 확보로 옮긴 후, 짧은 확보를 풀고 옮기는 중 중심을 놓쳐 손에서 미끄러졌다. 난 곧 슬링에 걸리리라 생각했기에, 순간 멈추는 듯 하더니 슝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등반로프는 빠져서 두 갈래로 떨어지는 걸 바라보다 안에 또 뭐가 있었는지를 생각하니 모든 하켄류와 이주일전에 구입한 치원형이 애지중지 촬영하던 캠코더가 떠올랐다. 그런 뒤 올라가서 풀 죽은 듯 자백하니 치원형이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며 하시는데 난 앞으로 등반이 괜찮지 만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치원형이 13피치를 등반하는데 확보하는 난 그래도 추웠다. 형도 어디가 피곤한지 몸도 둔탁해 보였다. 1시간 반정도 등반하다 위의 선이 확실치 않아 일단 캠프로 내려왔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삽겹살 산다며 형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리고 비아포 빙하의 라톡, 바인닥브락 방향으로 정찰을 가기로 했다. 이틀 전 화인이 생각이 많이 났다. 앞으로 4일이면 될 것 같다. 22일(8일째), 늦게 잤더니 아침해가 포타렛지를 뜨겁게 감싸도 모른 척 누웠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났다. 치원형은 여전히 누워있다. 루트 위의 눈을 확인한 뒤에 남은 물을 충분히 마시기 시작했다. 오전의 3피치를 홀백 두 개를 한 개로서 줄여 손쉽게 홀링했다. 13피치는 내가 마무리 등반에 나섰는데 헤드와 마이크로 너트를 사용해야 했고 라인이 끊겨 트레버스를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이 루트는 60m에 A2가 됨직했다. 다음 14피치는 핸드 크랙이 양호해 보이고 컨디션이 좋아 처음 15m를 자유등반하고 흔들리는 촉스톤구간부터 인공등반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헤드가 있어 올바른 루트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13,14피치는 바위를 오르는 모든 등반력을 요구하는 흥미로운 코스라 생각되었다. 앞으로 솔더를 가기 위한 선까지는 80~100m 정도라 생각되고 이틀간 날씨가 좋다면!    인샬라 23일(9일째), 그동안 좋았던 날씨는 점차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름 가득한 하늘에 망설이다 배낭에 침낭, 가스, 코펠을 챙겨서 홀링을 했고 마지막 14피치에서 확보할 준비를 했다. 그 전 선등자 확보시에 떨었기에 우모복을 입고서 확보를 봤다. 60m의 15피치를 치원형이 6시간에 완료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던 중에 나는 종료지점이 테라스로 생각해서 모든 장비와 로프를 치원형에게 올렸으나, 올라가서 확인하니 그 위에 40m정도 더 등반해야 되는 상황이기에 오후 7시에 등반하기엔 무리라 판단해 장비를 데포하고 다시 3피치를 어둠 속에서 자일을 다시 내려 하강해야 했다. 작업양도 많지 않고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서로 격려하며 저녁 달무리가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24일(10일째), 4시에 기상해 눈이 제법 내려서 운행을 하루 포기하고 다시 취침하였다. 10시에 해가 살짝 비쳐 일어나니 시꺼멓던 구름위로 맑은 하늘이 보이길래 다시 미음을 되 잡고 배낭을 챙겨 나섰다. 15피치에서 선등하려 하니 다시 싸락눈이 내린다. 10m 좁은 사선크랙을 인공, 자유등반을 섞어가며 빠르게 등반해 올라서서 그렇게 고대하던 솔더가 가깝게 보이고 사선 설사면까지 30m를 눈을 손으로 치워가며 최대한 속도를 높여 마무리하고 다음 피치를 치원형에게 넘겼다. 형은 70도 15m를 올라서더니 아이젠, 아이스엑스를 착용하고 등반해 나갔다. 피치를 종료한 치원형이 잠시 위를 보더니 내려와서 내게 다음 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바위, 눈의 믹스로 이루어있고 정상까지는 하루만에 가기는 힘들다 판단해 또다시 4피치 아래로 하강, 포타레지의 식량을 확인하니 4개밖에 없다. 나는 이 정도 식량이라면 내려가기에 맞는 양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겸허히 이번등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치원형이 굶더라도 한번 다시 포타렛지를 올려서 시도해보자고 하는 말에 마지막까지 해보자고 동의했다. 25일(11일째), 아침으로 손바닥 반만한 스펀지 빵을 형과 나눠먹고 오후 3시까지 홀링을 했다. 벌써부터 뱃속이 야단이다. 피곤했지만 숄더까지는 로프를 고정해야 하기에 이중화를 신고 등반에 나섰다. 60도의 설벽이라 생각되어 한 손에 고어텍스 장갑 한 손엔 인공 등반용 반장갑을 끼고(참고로 어제 성은 인공 등반용만 사용했다) 아이스 엑스를 휘두르는데 걸리는 게 느껴지지 않고 경사도는 80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생존 본능으로 손목까지 파묻으니 그나마 고정이 되어 버티고 버텨서 등반을 마무리 했다. 올라서서 위를 바라보니 생각했던 정상이 아주 가깝게 있는 게 아닌가. 갑자기 기운이 솟구쳐 형이 한참을 포타렛지 설치에 고민해도, 사이 좋게 자리를 잡고 서너 군데 확보를 더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녁 9시 하늘은 맑고 마음도 맑다. 인샬라. (화인이가 보고싶다.) 26일(12일째), 새벽에 일어나 포타렛지 가장자리에 무릎을 대고 한 손엔 슬링을 잡고 볼일을 보는 중 우모복 아래로 MP3가 빠져 나와 달랑거리는 것이 아닌가. 설마 떨어질까 싶은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툭``툭`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주 떨어뜨려 이젠 별 신경도 안 쓰이지만 내가 떨어질까 싶은 생각에 섬뜩하기도 했다. 고정해둔 로프로 올라가서 릿지 형태의 18피치는 암벽화를 신고서 8시에 출발 5.8급 60m길이에 너트와 하켄으로 피치가 종료되었다. 다음 피치는 처음 부분만 바위이고 위로는 설사면으로 보였다. 치원형의 확보로 7m 정도 등반한 뒤 이중화로 바꿔 신고서 설벽 등반을 시작했다. 눈은 생각처럼 등반하기가 확실치 않아 바위 쪽으로 향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리고 눈사면은 보이는 것과는 달라 경사각이 70~80도 정도 되어서 엑스를 손목 깊숙이 전체를 묻어야만 약간의 지지력을 얻을 수 있었다 30m를 오르니 오른쪽 30m 윗부분에 있는 직벽의 믹스구간을 넘어서야 되는 듯 보였으나, 너무 위험해 보여 왼쪽으로 돌아갈 수 있나 싶은 판단에 가까스로 버섯형태의 눈처마에 일어섰지만, 루트가 끊겨 있어 두개의 너트에 확보해서 다시 내려와 그 믹스 구간으로 향해야 했다. 로프는 60m를 넘은 듯 무거워 당겨지지 않은 상태에서 디에드르의 직벽에 0.5호 캠을 설치하니 최소한의 확보를 할 수 있어 발끝의 프론트와 엑스의 피크에만 힘을 집중시켜 겨우 마지막 턱에 일어설 수 있었다. 점점 정상이 옆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이 피치가 동벽의 능선으로 생각 되고 나아가야 할 남벽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야 했다. 이 방향에서 보이는 쉽튼의 뒤쪽은 우리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깎아지른 날카로운 능선이며, 눈이 그 위에 덮여 있어 더욱 더 루트를 정하기 어려웠고 위험성도 높아 보였다. 그러나 그나마 확보 가능한 바위로 나는 등반선을 선택해야 했다. 25m의 믹스구간을 통과해서 15m의 큰 바위를 둘러가야 했다. 마지막 15m에서 난 아이젠으로 다운 클라이밍한 뒤 슬랩을 통과하듯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머리 위의 볼트를 보고서야 루트가 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눈은 내리고 다시 가야 할 루트를 확인 후 하강하였다. 27일(13일째), 4시에 기상. 푹 잔 느낌이다. 6시에 출발해 8시 반에 4피치 위 마지막 고정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지쳐서 가져간 물을 모두 마셔버릴 것 같았다. 치원형이 선등할 다음 루트 역시 바위를 아래로 둘러가야 했는데 눈 상태 역시 얼지않아 그대로 눈과 같이 흘러내려 갈 정도였다. 마지막도 2m바위를 올라서야 하는 까다로운 코스로 느껴졌다. 다음 피치가 동벽에서 남벽안부로 넘어가는 구간으로 정면이 솟아있는 바위와 높은 눈버섯으로 인해 루트를 관찰할 수 없어서 힘든 구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구간이었다. 조금은 망설인 끝에 치원형이 앞서나갔다. 시작부터 능선 위의 눈버섯으로 인해 바위 가장자리의 눈을 부셔가며 살금살금 안고 넘어가 8~12m정도 크랙을 3호 캠을 가까스로 설치한 뒤 하강해 다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넘어갔다. 곧 로프를 길게 당기더니 종료를 할 듯 로프를 고정하자는 것이 아닌가. 정상으로 갈려면 60m가 두 동 필요하기에 이곳에 설치하면 등반로프 한 동으로는 힘들 것 같아 다시 물었다. 다시 일단은 고정하라고 해서 도대체 어떤가 싶어 로프를 따라갔다. 앞에 펼쳐진 능선은 뱀이 기어가는 듯 좌우로 휘어져 아래로 향해 있고 한발이라도 잘못 딛으면 허공에 발이 빠지는 그런 눈처마였다. 어쩔 수 없이 고정할 수 밖에 없었다. 건너편에 치원형이 너트에 확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바위 가장자리로 돌아 사라지더니 갑자기 “고정” “늦춰”라는 신호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완료”, 이 구간은 아래 안부로 떨어지는 부분으로 눈처마를 넘자마자 아래로 꺼지듯이 빠져 다리는 허공을 휘 젖고 아이스엑스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2~3m를 왼쪽으로 내려가야지 발이 딛어지고 다시 5m를 내려가서야 두 벽 사이의 안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정상 설벽이 시작되는 부분이었다. 4피치 정도 남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치원형은 솔로로 30m를 등반해서 바위에 로프로 확보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등강기보단 속도가 빠른 등반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젠 선등을 바꿀 때라 느껴 로프를 메고 옆으로 트레버스해서 위로 등반해 나갔다. 눈 상태는 양호한 편이였고 이제부터는 하산할 때 생각에 확보할 수 있는 크랙을 찾았으나 쉽게 들어오는 선이 없어 일단 조금 더 단단한 설벽의 선을 찾는데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60m를 거의 등반했을 때야 암각에 슬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니 3피치가 아니라 다시 4피치가 남았구나 싶었다. 시간은 2시정도이나 벌써부터 구름이 몰려와 있어 상황을 계산해야 했다. 형이 올라오자 마자 곧 다시 등반해 나갔다. 사선으로 등반해서 곧 바로 정상으로 향해야 3피치가 될 수 있으나 피치를 끊을 바위가 보이지않아 위쪽으로 나아가야 했다. 60m가 다 되어서 밑에서 로프를 당기는데 난 확보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3m를 더 올라가서 너트에 확보 후 완료를 외쳤다. 앞으로 트레버스가 2피치 정상까지 1피치 높이 60m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로프가 1동밖에 없어 서로의 생각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형은 트레버스보다는 정상으로 향하는 커니스에 가능성을 얻기를 원했다.나는 넘어서기 위해 엑스로 약한 부분은 부수고 그나마 지지력을 얻을 수 있는 부분에 슈피체를 깊숙히 박은 뒤에야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남벽쪽 커니스는 너무 약하고 경사각이 심해 한명만이 갈 수는 있겠으나 되돌아올 수는 없어 보였다. 짧은 순간을 깊이 둘려보고 난 뒤 다시 내려와 형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우린 대장님과 무전기로 하산을 결정했다. 그 뒤 자정이 되어서야 캠프로 돌아 올 수 있었고 이틀 뒤 베이스로 돌아왔다. 파트너 윤치원형에게 감사드리고 원정을 만들어주신 김재수 대장님과 후원업체인 영원무역, 노스페이스, 세레또레에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쉽튼베이스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에리카의 명복을 빕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정용이대신 올리는 등반기임. 질문은 박사장한테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