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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傳道
그 學期가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분의 執事님과 저를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같은 MBA 과정에서 Systems Analysis 를 專功하시던 陸士出身 김진호 집사님(이분은 지금 분당에서 목회를 하고 계심), 그리고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서 Finance를 전공하시던 이재현집사님(애통하게도 歸國後 경희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집사님을 하나님께서 10여년전에 먼저 불러 가셨습니다. 李 집사님은 夫婦들이 사는 Apartment 團地---Eagle Heights 라고 하지요---에서 Single들이 사는 동네까지 每週 토요일 나를 데리러 와서 교회 새벽기도회에 함께 갔다가 다시나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신 내가 만난 또 한名의 天使였습니다.) 경영대학원 건너편에 있던 감리교회에서 교실 하나를 빌어서 우리 셋은 매주 화요일 점심식사후 1시에서2시까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만나면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한週동안 은혜받은 성경말씀을 서로 나눈후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던 너무나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이 기도회에 어머님의구원을 위해 기도제목을 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났을 때 가장 먼저 어머님의 얼굴이 떠 올랐습니다. 저의 母親께서는 딸만 둘을 낳으신 후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십사고 절에 가서 빈 덕택에 부처님 恩德으로 저를 낳았다고 鐵石같이 믿고 계셨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명절날에는 저를 위한 燈이 절마다 매달려 있었고 저의 속옷에는 늘 절에서 받아온 符籍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겨울에도 얼음을 깨뜨리고 목욕을 한 후 致誠을 드릴 정도로 열심을 내어 부처님을 섬기셨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까지 우리 집 Tape Recorder에서는 불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늘 불안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사셨습니다. 한 時도 마음이 편안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사시는 어머님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아, 어머님께서 이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고 사시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 얼마나 평안한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탁 드렸습니다. “어머님, 30여년 동안 부처님을 섬겼지만 한 時도 마음이 편안한 적이 있으셨나요? 제가 만난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세요. 참 평안을 누리실 것입니다. 불경을 외우시느라 그토록 힘드셨는데, 제발 이제는 성경을 한번 읽어 보세요.”
한편 저는 제가 아는 한국 학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찾아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전도를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하고 전도를 하는동안 하나님께서는 한국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님께서 과천에 살고 계셨는데 아파트 옆 빈 땅에 야채를 기르고 계셨나 봅니다. 그 옆에 사랑의 교회 장로님 권사님부부가 또 농사를 지으시며 어머님께 전도를 하십니다. 옆집에 예수 믿는 부인이 이사를 와서 간증을 하고 전도를 합니다. 야구르트를 배달 하시는 아주머니(이 분은 사람들을 만나 전도하기 위해 야구르트 배달을 하십니다)가 배달와서는 한참을 전도를 하다가 가십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의 마음을 열으셨습니다.
내가 직접 전도를 못해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동안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을 어머님께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時空을 超越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정확하게 6주일 후에 어머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성탄절부터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편 어머님께서는 마음 문을 여시고 주님을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하셨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로님 부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상들을 다 버리고 불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로님 부부께서 목사님과 교인들을 모시고 어머님댁으로 왔습니다. 우상과 불경책들을 밖에 나가 다 불사르고 들어 오셨을 때, 어머님께서는 속으로 무척 놀라셨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을 정말 두려움이 없구나. 부처님께 禍를 당할 것이 두렵지도 않은가보네?”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제가 보내드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요!”
그 봉투 안에는 저의 전도편지와 함께 成績表가 들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5과목 13학점 그리고 PASS를 하기에도 힘들거라던 700 단위의 두과목?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학기에 저는 5과목 모두 A를 받았습니다. A만 받은 것이 아니라 試驗을 칠 때마다, Paper를 쓸 때 마다 全科目을 Class 에서 最高 성적을 받았던 것입니다. C만 받아도 좋다고 했는데, 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주일날은 공부를 접어두고 평일에도 성경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셔서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게 하시고 한번 들은 것은 꼭 기억하게 하심으로 최고성적을 받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예수님의 약속이 사실임을 체험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義를 救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학생이 원하는 것이 Straight A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온종일 공부만 했어도 받기 힘들었을 Straight A를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 나라를 救했을 때, 덤으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 後 부처님을 섬기시던 精誠으로 주님을 섬기셔서 사랑의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집사님이 되셨고 또 70세 되던 해에 명예권사님이 되셨으며 지금도 열심히 분당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시며 교회를 섬기시고 계십니다 (2012년까지). 그 어머님께서 변화되신 모습을 보고 感動을 받은 저의 작은 누님 가족 또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축복을 누리고 있으며 누님은 얼마前 筍長이 되어 봉사 하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To Be Continued)
斷酒
이것도 그 學期에 생긴 일입니다. 변화를 받고 하나님을 내 삶 속에서 체험을 했을 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술을 끊기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 제 별명이 酒溺菌(술에 빠진 곰팡이)이었던 만큼 제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고 잘 마시던 사람인가는 짐작이 가시겠지요?
그 당시 週末이면 single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며 유행가를 부르고 (노래방이 따로 필요 없었지요) 카드놀이를 하거나 당구와 볼링을 치는 것이 정해진 行事였습니다. 술 뿐아니라 雜技라면 모두 좋아하던 저 였기에 유학생활 첫 일년간은 빠지는 데가 없이 골고루 참석을 했었지요. 그러나 은혜를 받고 나서는 모두 淸算을 하였지만 Single들이 모이면 의례 맥주캔을 앞에 놓고 談話를 나누는데 그것을 뿌리치지를 못한 것입니다.
사실 미국 오기 전에 1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어서 친구들에게 毒種이라는소리까지 들었는데 이 술 만큼은 끊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가 술 마시는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지만 참 끊어지지 않습니다. 제 힘으로는 불가능 하오니 도와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모임에 갔을 때, 또 내 앞에는 여전히 맥주캔이 놓여 있었고 제 손은 그 캔을 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맥주를 들이 마시는데, 맛이 이상한 것입니다. 전혀 맥주 맛이 나질 않고 맹물 맛입니다. 이상하다 생각을 하는 순간 깨달음이 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셨구나.” 생각이 이에까지 미치자 “만약에 앞으로 계속해서 맥주를 마실 때 이렇게 맹물 맛이 난다면 맹물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맥주와는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와서 우리 기숙사에서 party 가 벌어졌습니다. 여학생들을 waitress 로 고용하여 멋진 Thanksgiving Dinner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wine이 따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실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늘은 특별한 날인만큼 마시면 좋겠다. 다들 마시는데 나만 안 마시는 것도 좀 어색하구나.” 그리고는 한 모금, 그것도 아주 조금만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난리가 난 것입니다. 잠을 자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으로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습니다. 밤을 새워 술을 마셔도 멀쩡하던 나 였는데 wine 한 모금을 마시고 머리가 깨어지는 통증으로 시달리는 것입니다. 즉시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wine 이든 무엇이든 절대로 술이라고는 입에도 가져가지 않겠사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그러자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에 내가 술 마실 때마다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큰일이겠다. 이크, 무서워라. 일찌감치 술과 작별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지요?
“내 아들아 主의 懲戒하심을 輕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落心하지 말라. 主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2:5b –6).
聖靈의 恩謝 體驗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또하나의 요구를하십니다. 내 마음 속에 내가 체험한 것을 나누어야하겠다는생각이 자꾸 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정성껏 차려놓으신 저녁을 함께 마친 후 저는 목사님께 간증을 드리고 교우들에게 이 간증을 할 기회를 주십시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하시더니 며칠 후 돌아오는 성탄주일에 간증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날은 성탄절이자 主日이었습니다(1983년). 주일 대예배시간에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자 친교시간에 많은 교우들께서 찾아와 은혜를 받았다고 자기들도 같은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 세사람이 시작한 기도회가 부부를 포함하여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장소도 Eagle Heights Apartment로, 모이는 시간도 저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 매디슨 교외에 수천명이 모이는 恩賜중심의 교회 (Charismatic Church)가 있었습니다 (교회이름이Madison Gospel Tabernacle이라고 합니다).주일 저녁에는 버스가 캠퍼스에 와서 학생들을 교회로 실어갑니다. 우리는 이 저녁예배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예배 도중 사람들이 方言을 하고 豫言을 하는 비정통적인 분위기 였으나 목사님과 교인들이 모두 진지하고 성령의 임재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예배였습니다.
그 교회의소그룹 성경공부반에 참석을 했습니다. 인도자는 Shawn이라는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의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인데 그는 틈나는대로 학교 캠퍼스에서 노방전도를 하며 설교를 할 정도로 열성입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서로 sharing 하는 (의견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제가 무슨 의견을 내 놓았을 때, Shawn 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익균, 네가 지금 한 말이 성경 어느 책, 몇 장 몇 절에 있는 말씀이지? 나는 누가 그런 말을 했던지 상관 않겠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의 말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겠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나도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장 몇절 까지 대며 암송을 하는 훈련을 하는 소그룹 멤버들 앞에서 큰 도전을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며 Shawn에게 감사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膳物을 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은사를 받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하루 금식을 하고 저녁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Shawn이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면서 내가 방언을 받았다고 말해 주었지만 나는 전혀 그런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실망을 하면서 돌아오는 車 안에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분명히 기도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고 나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 했는데 내가 못 받았다면이상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제 입에서는 방언이 줄줄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언을 받고 기뻐하는것을 보고 우리 기도회 멤버들도 恩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간절히 구하게 되었고 하나씩 둘씩에게 은사가 臨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환교수로 오신 柳교수님이 Madison Gospel Tabernacle의 저녁예배에 參席하셨습니다. 예배 후에 아픈 사람을 위해 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 받기를 원하는 아픈 사람들은 손을 들라고 하셨는데, 유교수님이 그 禮拜 도중 다른 말은 다 알아 듣지 못했어도 그 말 만큼은 알아 들으시고 손을 드셨습니다. 사람들이 유교수님 주위에 둘러서서 손을 얹고 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유교수님이 침대에서 일어 나시다가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똑바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척추 디스크로 오래 고생하시던 유교수님은 한번도 침대에서 똑바로 일어나지를 못하고 옆으로 굴러서 일어 나셨었는데 그날은 똑바로 일어나신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고 기뻐서 그분은 조심스럽게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 보았습니다. 또 똑바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좋아서 어린아이 처럼 몇번을 누웠다 일어났다 또 누웠다 일어났다 하셨습니다. 전날 저녁에 기도할 때 고침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신유의 기적을 체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 우리 기도회 회원들에게 방언의 은사 뿐 아니라 방언통역과 예언의 은사, 병고침의 은사를 아낌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중 한 자매님에게 예언의 은사가 임하는 것을 내가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한마디 한마디 성령의 시키심을 따라 말하는 훈련을 시키시면서 예언의 은사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때쯤 하나님께서는 증거(사도행전2:30)했듯이, 이선지자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가 말씀을 기록한 것이 시편이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했다고 증거합니다. “여호와의 神(성령)이 나를 憑藉(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사무엘하23:2). 이것이 예언의 은사가 그 자매님에게 임할 때 일어난 현상임을 제가 目擊한 것입니다.
내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무척 답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언 통역하기를 위해 기도했을 때(고린도전서 14:13), 한 자매님에게 통역의 은사가 임했습니다. 그 자매님이 저의 방언 기도를 통역할 때에 놀랍게도 제가 그날 아침에 혼자서 기도한 바로 그 내용을 똑같이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되었고 우리에게 임하신 분이 정말 성경 속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이 임할 때는 그 예언의 내용 또한 제가 그 날 읽은 성경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을 주심으로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지요(고린도전서 14:29). 예언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얼마나 알기 쉽고 자세하게 풀어 주시는지, 우리는 그 때 성경의 著者가 直講하는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은사에 대한 誤解를 풀어볼까 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이 참되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이유로 성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도 정당하지 못합니다. 또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 은사를 사용하지 못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가 나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받은 은사는 나를 위해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쓰여지도록 주십니다. 따라서 소수인들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필요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어린아이의 목욕물이 더러워졌다고 그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내다 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사도바울이 방언이 필요 없다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18) 하신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또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린도전사14:5), 결론적으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린도전서14:39)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성령의 은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12:7). 성령의 은사를 思慕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사랑이 가장 좋은 성령의 은사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린도전서 12:31) 한 뜻은 사랑이 제일 좋은 은사라는 뜻도 아니고 사랑이 있으면 다른 은사가 없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가 다 소용 없다는 뜻이지요. 결국 “은사 빼기사랑은 헛것이요, “사랑 더하기 은사”가 진짜 라는 뜻이지요. 또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이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면서 쓰인 것임을 기억하신다면 결혼식장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위해 인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성령 안에서의 성도간의 교제를 위해서,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쓰인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復興
점점 많은사람들이 기도회에 모이게 되었고 우리는 그 중 가장 큰 집이었던 교환교수로 오신 柳교수님댁에서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묶어 주실 때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친 兄弟 姉妹 보다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하루라도 안보면 견딜 수가 없어 거의 每日 모였습니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거의 밤을 세우다시피 찬송하고 말씀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전혀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는그 때 천국이 우리 가운데 임한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때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訓練을 시키십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으신 자매님에게 장로님을 찾아 가라 하십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Madison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던 장로님을 몇사람이 찾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님을 통해서 장로님을 責望하시는데,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옛날에 얼마나 婦人을 힘들게 하였으며 큰 잘못을 저지르셨는지를 낱낱이 暴露하십니다. 오래 前 일이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장로님은 너무나 큰 衝擊으로 떨고 계시고 사모님은 시종 눈물을 흘리며 울고 계십니다. 그 장로님이 살아계신 하나님 , 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깨어지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는 現 성균관대학교 崔교수님, 그리고 부인 집사님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모질게 핍박하시던 육군장교 出身 現 강원대학교 洪교수님 (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믿음의 은사를 주셔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즉시로 낫는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마가복음 16:18; 사도행전 19:12). 유학생 가족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고 주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새벽2시에 한 형제님이 내 방문을 두드리는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홍교수님 부인께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고 같이 기도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 때가 토요일 새벽이었는데 병원에 갔더니 목속에 혹 같은 것이 크게 생겨서 전혀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레지던트가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월요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합니다. 저는 응급실에서 누가 듣던 말던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셔서 영광을 받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지나가던 레지던트가 걱정이 되어 우는줄 알고 수술을 받으면 괜찮을거라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상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면 눈물이 잘 나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성령님이 감동 하시는줄 깨닫습니다). 홍교수님 부인께서 월요일에 수술을 받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을 때 그 혹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그 집사님이 남의 험담(gossip)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치시려고 그 집사님을 혼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거룩해지는훈련을 받았습니다.
召命
1984년 봄 卒業을 앞두고 저는 전교에서 top 5%안에 드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National Business Honor Society(전국 경영학과 우등생 협회)인 ΒΓΣ (Beta Gamma Sigma)의 평생회원이 되는영광을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연봉 십만불의 job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까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요한복음 21장을 읽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신 대목에서 베드로가 아니라 저에게 묻고 계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예,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세번 똑같은 질문을 하셨고 저는 세번 똑같이 울면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牧師가 되라는 말씀인줄은 몰랐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이전에 나는 하나님 품을 떠나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저를 기억하고 따라 다니셨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맨 먼저 생각나는사람은 집사님이셨던 저의 유치원 보모 선생님이셨습니다. 대구 제일교회 부속 제일 유치원 시절 저를 끔찍히사랑해 주시던 집사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머님 金順貞 권사님께서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시면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것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進路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 께서는 제 눈 앞에 제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어릴 때 할머님 댁에서 몇번 뵌 적이 있는 나이 많으신 傳道師님 한 분을 떠 올리셨습니다. 저희 할머님께서는 中年에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는데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내 몸에 칼을 대지 않겠다고 (무서워서 그러셨겠지만) 수술을 거부하셨습니다. 그 때 전도사님께서 할머님을 주님께 인도하셔서 할머님께서 神癒의 은총을 입으시고 깨끗이 낳으신 것입니다. 그 후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새벽기도를 다니셨습니다. (그 할머님께서는 93세를 享壽 하시다가 2000년에 하늘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잃어버린 羊들을 찾아 전도하시는 그 전도사님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을 하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 때 또주님께서 자매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어머니를 구원해 주면 내가 시키는 것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기억하느냐?” 부끄럽지만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내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너의 약속을 지켜라. 나는 네가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두말없이 “네” 하고 응답드렸습니다. 이렇게해서 목회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선포를 했을 때, 기도회 회원을 제외하고는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아까운 사람 버렸다고 혀를 찼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살살 믿지 너무 믿다가 돌아버린 것 아니냐고. 그러나 저는 사랑하는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옥합을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리고 소중히 간직할만한 秘密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結婚
부르심에 응답하고 신학교에 급가려고 決心하였을 때,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압박감에서 도피하려는 생각에서 유학을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제는 결혼이 하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회에 기도제목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 때 한국 대학생 선교회 (Campus Crusade for Christ) 총재였던 김준곤 목사님이 쓰신 간증 가운데 이런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결혼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배우자의 조건으로 열 몇가지 요구사항을 적어 놓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막상 결혼 해보니 정말 하나님께서 그 모든 요구조건에 맞는 아내를 주신 것을 알으셨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음식 솜씨가 아주 없으시답니다. 요구사항을 책크 해보니 그 조항이 요구사항 중에 빠져 있던 것을 발견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창세전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모태에서 나를 지으셨으니 내가 나 자신을 아는 것보다 훨씬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러니 나에게 어떤 배우자가 필요한지는 나보다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시고 또 이미 정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꼭 맞는 사람을 주시는줄 믿고 아버지께서 짝 지워주시는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한달도 안되는 어느날 입니다. 뉴욕에 있는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내용인즉, 누님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께서 좋은 혼처가 있는데 동생을 결혼시킬 마음이 없느냐고 물으시더라는 것입니다. 누님은 “제 동생은 외아들이고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혼할 마음이 없을걸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사모님께서, “그것이 동생 기도제목인줄 어떻게 아느냐?” 하고 말씀하시기에 과연 그럴까 하고 한번 전화를 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제목으로 내어놓고 기도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것이 기도응답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름학기 도중 7월3일에 뉴욕으로 날아와서 장로님 따님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7월 4일 선을 보고 사흘 후7월 7일에 약혼을 했습니다.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했던 Business Law 를 여름학기에 마치고 8월에 뉴욕에 와서 우리는 일단 Court에 가서 Judge 앞에서 혼인을 하고 정식 결혼날짜를 12월1일로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 아내가 출석하던교회가 뉴욕에서는 두번 째로 자체 聖殿을 짓고 있었는데 그 교인들 모두 신실이가 새 성전에서 첫번째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우리 결혼식 날짜에 맞추어 입당을 하게 되었고 입당예배를 드린 그 주 토요일에 우리는 막 깔린 Carpet 위에서 결혼식을, 그리고 아직 패인트 칠도 안된 친교실에서 피로연을 가졌습니다.
피로연 사회를 맡았던 성우 출신 집사님께서 결혼식 전날 우리에게 피로연에서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가족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제가 외아들로 자라났고 장인 어른도 외아들 이시고 제 매부도 외아들이요 제 처남도 외아들 입니다. 상의 끝에 하나씩은 너무 외로울 것 같으니 아들 둘, 딸 둘, 모두 넷을 낳자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피로연에서 “아들 둘 딸둘입니다” 하니 모두 폭소를 터뜨립니다. 농담인줄 아셨던가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12월1일 결혼식을 올리고 1월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아펜셀러 선교사 (아펜셀러 선교사 부부와 총각이었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같은 배를 타고 같은날 한국에 도착했음)선교사를 배출하고 그를 한국으로 환송한 Drew 신학교에 들어가 신혼을 신학교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딸 둘 아들 셋 이렇게 다섯을 낳아 기르니 자식이 많다고 부러워 하시기도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의문거리였고 믿음의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넷을 원했는데 왜 다섯을 주셨을까?” 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해답을 얻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습니다.
Honeymoon Baby를 가져서 출산일이 가까와 오자 다들 아들 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David” 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었던 저를 불러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며 “Ruth”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째를 또 금방가졌는데 또 다들 아들 배라고 합니다. 의사가 “아기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거냐?” 하고 묻습니다. “David” 하고 대답하자 “그럼 딸이면 무엇이라고 부르지?”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딸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이름도 짓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또 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너무 흔한 이름인 Grace (은혜)를 피하고 같은 의미인 “Jane”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딸 둘을 낳았으니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딸 둘 아들 둘을 원했지만 다음에 또 딸이면 어떻하지? 설상가상으로 같은 교회의 유학생 부부가 세번째 딸을 출산했습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또 아이가 들어섰습니다. 아들인데 사실 그동안 아이들 외할아버지께 손녀들 이름 지을 기회를 드리지 않아서 죄송하게 생각을 하던 차라 이번에는 할아버지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분께서도 평소에 늘 “David” 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생각하시던 차라 분명히 “David”이라 하실 것을 기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Christopher”라 하십니다. 하기는 그때는 그 이름이 가장 인기있는 이름 중 하나였지요. 우리는 “David”을 원했었는데.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또 다시 아들이 나왔을 때, 저는 성경을 보다가 예수님을 제외하고 성경 속에 흠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 둘을 발견했습니다. 다니엘과 요셉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이미 다니엘 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니 저는 아들 이름을 “Joseph”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던 대로 아들 둘 딸 둘을 주셨으니 그만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숨쉴 겨를도 없이 아이가 아직도 엄마 젖을 먹고 있는데 아이가 들어 섰습니다. 모유를 먹는 동안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는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하나를 덤으로 주셨을 때,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이름지어 주기를 원했던 “David”이 우리에게 없었음을 깨닫고 “David” 이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읽다가 야곱이 아들 하나를 더 갖기를 원하여서 지은 이름이 요셉 (더하다 =add)임을 깨달았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곧이 곧대로 저에게도 하나를 더하여 주셨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요셉이를 아들로 가지신 분은 하나 더 주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저의 아내는 5년 사이에 아이 다섯을 진통제도 맞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섯을 모두 모유로 키웠습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가는 곳마다 Baby boom을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신학생들은 우리를 보고 용기를 얻어 아이들을 갖게 되었고, 재미있는 것은 교인들 중에도 우리가 자식 많은 것을 흉보던 사람들, 그것도 자그만치 4가정이, 그 중 두 가정은 30대 후반에에 늦둥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子息은 여호와의 주신 基業이요 胎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편 127:3)
Epilogue
그동안 저의 간증을 愛讀해 주신 여러분께 感謝 드리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恩惠와 祝福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슬에 매여 있으면서도 증거 하기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結縛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라” (사도행전 26:29) 하였듯이 저도 여러분이 제가 만난 주님을 만나 하늘나라의 소망을 확실히 가지고 사시기를 빕니다.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의 法則에 관해 체험한 것을 함께 나누며 이만 끝맺고자 합니다.
개척교회 시절 몇 안되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우리 가정이기에 아내는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아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순간 순간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지요. 제 주머니에는 단 $1 이 없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맥도날드 해피밀(Happy Meal)도 사주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도 Happy Meal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햄버거에 콜라, French Fries, 그리고 특히 장난감을 끼워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좋습니다.) 다만 생일날, 그것도 모두 사주지 못하여 생일을 맞은 아이한테만 혜택이 돌아 갔습니다. 이렇게 눈물나게 키운 아이들이 그래선지 무슨 조그만 것만 받아도 “아빠, 감사해요”를 되풀이 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한 녀석이 잘못하면 모두 달려들어 엄마 아빠에게 잘해야 된다고 야단치며 서로 경쟁을 하듯 효도하는 것을 보면 자식 많이 낳은 보람이 있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주일날 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성도님께서 성탄절 선물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라고 하면서 봉투를 건내 줍니다. 열어 보았더니 $100 이 들어 있습니다. 친교시간에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집사님이 와서 누가 나를 찾는다고 합니다. 가 보았더니 중년의 어느 부인이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지 사흘째 걸어서 가는 길이라고 어느 모텔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때 $100 이 들어 있는 봉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이 돈으로 방을 얻어 드리자.” 그래서 그분을 모시고 가서 모텔 방을 얻어 드리고 돌아 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이웃 교회에서 성탄절 칸타타가 있어서 온 식구가 차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조그만 도요다 코롤라에 7명이 타고 옵니다. 갈 때는 괜찮았는데 오는 길에는 밤이라 어린 아이들이 다 졸면서 서로 기대니까 좁아서 싫다고 싸움이 났습니다. 그래서 또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미니밴(Minivan)이 필요합니다.” 사실 minivan을 위해서는 전부터 쭉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었지만 주의 일을 하는 종에게 필요한 것이니 채워 주실줄 믿고 무슨 van을 달라고 할까 하면서 조사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린 식구가 많으니 Dodge Grand Caravan 정도는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Grand Caravan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립니다. 하와이에 사는 처제입니다. “형부, 미니밴이 필요하시죠? 우리가 돈을 드릴테니 가서 골르세요.” 다음날 당장 가서 Grand Caravan을 몰고 왔습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을 줄 믿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제가 그 $100을 포기하고 무숙자가 된 아주머니를 도와 드렸더니 그것이 미니밴이 되어 돌아왔읍니다. 제가 천사를 대접한 것일까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不知中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1-2).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에게 $100을 건내준 성도님도 부유한 가정은 아닙니다. 평범한 봉급장이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는데 그 분도 열살짜리 쌍둥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직후 그 남편이 삼층짜리 집이 딸린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100이 수백배의 열매를 맺고 되돌아 온 것이지요.
저희에게 Minivan을 사준 처제의 남편이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개업하고 있는 병원의 위치가 조금 좋지 않아서 좋은 자리로 옮기기를 원하고 있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어느 나이 드신 의사께서 은퇴를 하시면서 그 자리를 제 동서에게 물려 주어서 원하던 좋은 자리로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체험으로 제가 터득한 하늘나라의 법칙은, 내가 다른 형제 자매의 필요를 채워주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법칙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런 삶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바라시는 삶이 아닐까요? 좋으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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