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가 싶더니 벌써 저만치 달아나려한다.
지구촌 온난화의 영향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봄을 즐기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뭔가 있을것 같지도 않고.
지구 온난화의 원인에 대해서야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기는 하나
온수와 난방, 이동을 많이하는 것 이외에
내가 온난화에 기여하는 것이 뭐 있지? 싶은 정도이구.
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은 산에서 더 많은 수분과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
금북정맥의 두번쨰 산행이건만 세번째 산행이 끝난 이 시점에도 산행기를 올리지 않은 게으름(?) 이면에는
핑계같지 않은 핑계도 숨어있음을 고백한다.
산행지 : 금북정맥 2구간 (배티고개 ~ 서운산 ~ 부소산 ~ 위례산 ~ 유량리고개) 총 24.8km
날씨 : 맑음.
한참을 산행기를 쓰지 않다보니 무슨 내용으로 글을 구성해야할까?
막막하다.
손가는대로 쓸 수 밖에.
미륵의 땅 안성은 경주만큼이나 골프장이 많은 것 같다.
에멀슨 골프장 앞 버스 한대 댈만한 공간이 남은 곳에다 주차를 한 버스에서
새벽부터 몸을 포갠채 자는둥 마는둥 실려온 이십명 조금 안되는 인원이 쏟아진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동명이치(同名異峙)의 배티재를 지나왔다.
이번에 찾아온 배티재의 행정 주소는
네비정보 네비정보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37-1 / 백곡면 배티로 771 이다.
이티재 370m 이정표가 서있는 뒤쪽으로 가야 할 산길은 열려있고,
산행준비를 하는 사이 적지 않은 숫자의 승용차들이 고갯마루를 넘나들었다.
이전석에 둘러모여 기념사진 한장 찍고 모두 출발이다.
초반 약간의 땀이 날 정도의 오름질로 시작을 한다.
이정목에 정상 3.2km라고 적혀져있는데 서운산 정상까지의 거리이다.
완만한 오름길로 등로는 매우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배티성지 갈림길 진행하는데 약 15분 정도.
배티성지는 최초의 신학생이었던 최양업 신부의 사목 중심지였고, 최초의 신학교마을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최방제에 이어 세번쨰 신학생이었다.
머나먼 마카오와 중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중국 상해 장가루 성당에서 두번째로 신부서품을 받았다.
중국과 조선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장티푸스와 과로로 41세에 선종을 하신다.
기해, 병오, 병인 박해를 거치는 사이 배티성지는
신앙인들의 거처 역활과
카톨릭 학교의 전신이라할 수 있는 신학교마을로 거듭나게 된다.
공민왕 13년(1394) 나옹선사가 지정연간(1341∼1367)에
이 산을 지나면서 지혜의 해가 거듭 빛나고 자비의 구름이 광채를 냄에 이 곳에 신비한 징조가 있겠다고 생각하시고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과연 꽃비가 내리고 상서러운 구름이 일면서 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이 곳에 주석을 하시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여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청룡사라 명명하였다.
瑞雲山은 상서러운 구름이 일어났다는 의미의 산이름이다.
그 서운산 정상부근에다 만든 성이 서운산성으로
그 구조나 내혁은 위의 안내판에 나와있는대로다.
서운산 정상에서 내려본 안성시 서운면과 미양명 일대는 공장지대와 혼재된 주거시설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출발지점인 배티고개에서 서운산 정상까지 약 40분정도 소요된다.
서운산성 구조는
경기도 기념물 제81호. 둘레가 600m 정도인데, 지금은 너비 2m이고 높이가 1m쯤 되는 토루가 약 300m 남아있다.
남문과 북문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안에 높이가 2m이고 너비가 1m의 석불이 있고, 남문터 아래로 근래에 세운 약천암과 토굴암이 있으며, 동남쪽 1km쯤 아래엔 청룡사(靑龍寺)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 홍계남(洪季男)과 이덕남(李德男) 장군이 왜군을 격퇴한 엽둔령(葉屯嶺)이 진천군과의 경계인데, 홍계남이 서운산 정상에 쌓은 성을 우산성(右山城)이라 하고, 덕봉리 앞산에 이덕남 장군이 쌓은 성을 좌산성(左山城)이라고도 한다.
기록에는 서운고성의 둘레가 3리라 하고, 금강고성을 둘레 5리라 하였다. 산 아래에 홍계남 장군이 싸운 곳에도 토성이 있다고 한다.
참꽃과 같이 핀 매화말발도리의 전경은 마가목님 추천 작품이다.
두개 같이 찍어 놓으면 보기 좋겠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꽃 모양이 매화를 닮았다고해서 매화말발도리라고 불리는 아이란다.
곳곳에 붓꽃도 많더구만 어쩌자구 벌레먹은 이파리를 가진 아이를 모델로 삼았더냐?
서운상 정상에서는 잠시 청룡사방향(엽돈재)으로 진행을 한다.
그리고는 엽돈재 방향이다.
충남과 충북의 경계인 엽돈재는 34번 국도가 지나간다.
생거진천이라는 표지석 뒤로 시그널이 달려있다.
얼핏 보기에도 제법 많은 라이더들이 있었다.
자전거, 오토바이 두어 무리가 뒤섞여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의 엽돈재였다.
엽돈재에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만뢰지맥 분기점이 있다.
지맥 쪽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으니 알바 주의를 요한다. 정맥 길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부소령에는 비석이 서있다.
하단에는 백제 첫 도읍지 하남위례성 직산 백제시대라고 음각이 되어있다.
현재 천안시 작산읍 지역으로
이곳에서 약 13년 동안 있었다.는 내용이다.
부소산과 위례산을 이어주는 부소령은 부소치, 부소문치, 부수문이 고개등으로 불려지는데
부소란 소나무를 뜻하는 의미라고 하니
솔고개의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에 나오는 내용이 옆면에 음각되어있었다.
몇대의 차량이 주차되어있는 공터 위에 또 다른 공터가 있어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봄철에 올라오는 부드러운 찔레순은 먹을거리였다.
먹을 것과 못먹을 것, 놀 수 있는 것과 못 노는 것.
참으로 단순한 이분법을 가진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한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분 들이 몇분 있었나보다.
찔레순이 달짝지근하니 맛있네.
찔레꽃은 따서 말려 차를 끓여도 향긋한 꽃내음이 배어나와 좋단다.
구슬봉이는 봄에 피는 봄꽃이다.
노루귀나 제비꽃과 같은 봄철 꽃이다.
크기가 작아서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쉽다.
여름에서 가을에 피는 용담초와 비슷한 용담과의 식물이다.
석용담이라고 불리우는데
장내의 염증성 질환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소령이후 임도를 만나면 임도를 따르다가 만난 통나무 계단, 이후에도 여전히 길은 좋다.
두 개의 돌탑이 서있는 곳이 524봉이다.
위례산 정상에는 약간 기운 정상석이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곳을 위례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포장도로인 우물목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성거산 천주교 성지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천주교 성지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30여분 정도 진행하다가 만난 공군부대 정문 좌측 옆으로 난 길로 진행을 한다.
공군부대를 우회하는 길이다. 공군부대 안에 성거산 정상이 있다.
다른 분들 열심히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어오는 동안
수단(?) 좋은 몇명은 지나가는 차를 얻어탔다.
승용차 운전자 분도 금북정맥 종주를 하신 듯
몇 구간뒤 광덕산 오름길이 좀 힘이 들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신다.
친절하신 운전자 내외분은 지나가면서 성거산 순교성지가 유명한 곳이며
한번 들러서 구경하고 가도 좋을 것이라는 설명도 잊지않고 해주신다.
부대앞까지 공짜로 날라온 세명은 뒤 따라오는 동료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있었는지
쉬엄쉬엄가잔다.
축 퍼지고 앉아 한참을 쉬고 있으려니 한두분씩 나타나시더니
언제 여기까지 왔냐고
신출귀몰(?)하는 세명의 행적에 궁금증을 나타내신다.
물먹고 간식까지 챙겨먹고 나서야 다시 길을 나선다.
정상을 대신하는 성거산 정상석을 만난다.
성거산에서 태조산까지 금방일 것 같더니 한참을 걸어서야 도착을 한다.
동네 뒷산답게 동네주민들이 자주 보였고
생전 처음오는 태조산임에도 몇번이나 등산로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몇개의 정자를 지나 제법 센 오름질을 하다보면 이게뭐지 싶은 담장이 나온다.
연수원에서 설치한 담장인데 그 사이로 진행을 하면 태조산 정상이 나온다.
그럴듯한 정자가 서 있고
휴일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도 제법 있었다.
전혀 고개같지 않은 아홉사리고개 지나고 10여분후 동물생태통로인 유량리 고개가 나타난다.
네비정보 충남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101-2
빤히 내려다 보이는 이차선도로 한켠에 타고 온 차량이 주차되어있다.
하산주 자리는 고개 아래 비학산 칼국수집.
30여년 동안 포행 해병대에서 근무하다 딸 식구를 따라 천안으로 옮겼다고 하시는 주인 내외의 배려 속에
땀에 절은 얼굴과 손을 씻고
제육볶음에 칼국수 맛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