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수도공동체와 남도 순례기
-목포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韓國─姉妹會)-
노 종 해(CM리서치)
* "목포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전경
개신교 초교파 독신여성 수도공동체인,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근의 "목포 디아코니아 노인요양원"을 먼저 방문하여 부활주일 오후2시 예배를 인도하며, 2박3일 남도 순례여행을 하였다.(2018.4.15-17) 요양노인들은 인지능력을 상실하여 홀로살 수 없는 치매에 들어선 90대 노인들로 60명이었으며, 직원 40명과 개신교 수녀 언님들이 10여 명이 있었다. "언님"이란 순 한국어로 "착한이, 어진이"란 뜻이다.
*어진이, 튜립 밭에 모인 언님들(창립20주년일:2000.5.1.)-가운데 노영순 언님
예배 후 복도를 지나 원내식당 카페로 갔으며,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창립"(1980년) 때 첫 언님(어진 삶)으로 헌신한 "노영순 언님"(목사, 92세)을 만났다. 10년 전 천안분원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환영해 주셨던 노영순 언님은 치매로 알아보지 못하시고 조용히 따듯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노영순 목사님은, 1956년 감리교회에서 여성으론 두 번째로 목사안수 받으셨고, 논산, 천안, 전주 등에서 목회하시었다. 파주에선 윤락 여성들을 위한 봉사와 선교 활동하시었고, 1980년 창립 된 "개신교 독신 여성 수도공동체인 디아코니아 자매회"로 헌신하시어, 올해로 38년 동안 어진 섬김의 삶인 언님으로 "광야의 생활"을 이어오고 계시고 있다.
*언님 노영순 목사님과 공동체 언님들 안규숙, 한은숙, 노종숙 언님(기장 목사, 필자동생)
노영순 언님은 한산촌에서 환자들과 함께 삶을 살며 상담과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섬김의 삶을 일구신 것이다. 그는 "이곳이 나의 '광야 생활 터'이며, 나 자신을 비우는 철저한 기도 생활이 나의 '광야 생활'입니다"고 말하셨다.("한국 디아코니아자매회 25년사",p301)
나는 두 손으로 손을 잡고, "말레이시아 선교사 노종해 목사입니다"고 인사할 때, 언님 노영순 목사님은 힘주어 내 손을 잡으셨다. "아! 손에 힘이 있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말할 때, "그럼"하시며 힘주어 손을 잡아 주셨다. 언님들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000..."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 노래하지만, 노언님은 잔잔한 미소 만이었다. 38년 동안 함께 공동체 삶을 나눈 분들인데..., 그래도 행복한 웃음으로 답하고 계신 노영순 목사님! 주 안에 기쁨으로 행복하세요. 인사를 나누었다.
*삿갓모양의 한산촌 얘배당 입구 계단에서
목포 "디아코니아 노인요양원"은 "한산촌"이라 하며, 행정구역은 목포시 경계선 인근에 있는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 산55, 한산촌"으로 전에는 결핵환자 촌이었다. 한산촌은 여성숙 선생이 "목포의원"(개원 1961년)을 운영하면서, 결핵환자 무의탁 환자들을 위한 "한산촌"을 설립하였다. 여성숙 선생은 50년대에 전주 예수병원과 광주 기독병원 결핵과장으로 섬기시던 분이였으며, 아예 이들을 위한 "한산촌"이란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목포 한산촌 예배당(착공:1983년6월, 봉헌:1984년5월8일)
여성숙 선생(101세)은 "디아코니아 공동체의 언님들의 삶"을 보고, 평생 친구요, 동지인 안병무 박사 함께 의논하여, 1980년 전 재산을 헌납하여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를 창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성숙 선생은 70년 대 후반 수도권에서 갈 곳 없는 결핵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경기도 양평에 요양소 설립을 계획 추진했으나 공안당국과 주민들의 반대로, 목포 한산촌을 디아코니아 자매회에 헌납하여 "노인요양원'으로 운영되어 오고 있다.(참고-한계례신문, 2017.1.10.)
*목포 한산촌 예배당 내부-삿갓 지붕살과 천정의 둥근 한국창문에서 하늘빛이 환하게
지금도 여성숙 선생을 요양원 뒤에 거쳐를 마련하고 계시고 있고, 한국양식으로 삿갓모양의 "한산촌 예배당"도 있다. 요양원 뒷 언덕길을 오르니 삿갓형의 "한산촌 예배당"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가서 문을 열고 보니 천정에는 한구가옥 창문 살로 둥근 하늘 창에서 "밝은 빛"이 환하게 비쳐오고 있었다. 마음속에는,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영화롭고 찬란해...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쳐 주시옵소서" 찬송이 맴돌았다.
*한산촌 예배당 봉헌(1984.5.8.)-(앞줄) 안병무 박사, 김경재 교수, D Schweitzer, 여성숙, 유경운-(둣줄) 언님 최근숙(감신68'졸업), 노영순 등(사진: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25년사" 화보에서)
개신교 초교파 여성독신 수도공동체인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본원"은 목포시내 분기점 부근 대로에서 소로로 접어들고, 산길로 들어서면 고즈넉하게 서있다. 울창한 나무들의 아치 사열을 받으며 들어서면 2층의 아담한 본원이 보인다. 봄 꽃샘추위에 바다 바람이 솔솔 불어 옷깃에 스며들어 오지만, 2층 숙소에 들어서니 따듯한 열기가 몸을 감싸주어 가슴까지 평온해 진다.
*순천만 뻘 자연습지-갈대빝
다음날(4.16.) 아침 본원 뒷동산 동백꽃 길을 올랐고,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 후, 언님들과 함께 순천만 자연습지로 향하였다. 하늘택시를 타고 자연습지도 둘러보았고, 순천시내에 살고 있는 "이현주 목사" 댁을 방문하였다.
이현주 목사님은 순천에 둥지를 틀고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며, 한 달 전에 집을 수리하고, "말씀과 밥의 집"을 열었다. 노래와 화방, 정다운 담화가 피어오르는 공간에서 삶을 나누었다.
"수원이나 인천 등에선 서울에 가도, 종로에선 어떻게 서울에 갈 수 있겠는가?", 뜬금없는 물음은 오늘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고 있는 신앙의 삶을 깨우쳐 주었다.
* 정갈하고 솜씨가 맛의 예술인 남도 밥상-이후로도 맛의 예술은 계속 밥상에 올라
목포로 나와 평화로에서 남도의 "한정식"을 맛보았다. 남도밥상의 정갈하고 맛깔스런 솜씨는 예술이었고, 그 풍성함과 배포가 기를 세워주고 있었다. 만족과 기쁨의 삶을 나누며 숙소로 돌아와 나른한 몸을 쉬었다.
새로운 날(4.17.), 목포대교를 건너 신항에 인항되어 반쯤 누워 있는 "세월호"를 찾아보았다. 흉물스럽게 녹슬어 있었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림막으로 차단하였다. 입구 주변에는 "잊지 말자"는 노란리본과 현수막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래도 추모 방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목포구항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목포대교 입구의 구항에서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보여 주는 듯했다. 동생 언님 노종숙 목사의 운전으로 30년 만에 만나고, 점심도 나누고 목포역에 이르러 KTX로 충주로 향하며 남도 순례 길을 마치였다. 동생이 "왜 결혼도 않하고 "언님"으로 헌신했는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겨 소원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노동하는 영성의 삶으로 기도하며 공동체 생활을 이루는 "어진님, 언님의 삶"을 이제야 깨달았으며, 이 길이 기도를 몸소 살고 있는 크리스챤의 삶인 것을 깨닫고 가슴 깊이 간직하였다. 이젠 정년은퇴준비로 34년 선교사를 마감하며, 기도의 손을 모았다. 주여 감사합니다.(rch)
*목포 밤 바다 분수쇼-평화공원에서 본 "목포 춤추는 바다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