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天 독트린(doctrine) 선포
< 13회 김병기 >
●서울서도 새 하늘 우러러 보며
2008년 12월 29일 재경 순천사범 13회 동창들은 서울 상제리센터에서 부부 송년모임을 가졌다. 작년 부부 송년회보다 적은 숫자(15명)가 참석한 이번 가족 모임은 12시 정각에 시작하여 15시까지 계속되었다.
“아침마다 새 하늘 우러러 보던" 13회 가족송년회라는 현수막아래서 진행된 이번 모임은 다음과 같은 13개 항목의 식순으로 진행되었다.
①1년이 하루처럼 하루를 1년처럼 ②우리 인생의 응원가③대권(大權)을넘기면서 ④하느님 보우하소서.⑤2008년 13회 인물 ⑥올해의 13회 부인(夫人) ⑦4자 성어와 13회 독트린 선포 ⑧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⑨천도(天道) 시야(是耶) 비야(非耶) ⑩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소 ⑪쓰잘 데 없는 이야기 ⑫계속 승리하리라 ⑬기념 촬영
● 왜 부부 송년회를 갖는가.
재경 순사 13회는 80년대 중반 부부 동반하여 몇 번 송년회를 가진 바 있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작년에 이어 2008년에도 부부 망년회를 가짐으로써 부부동반 송년회를 제도화 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부부 송년회는 매우 어색하고 상당히 불편한 모임이다. 남자와 달리 부인들은 옷차림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분들이 있고 늙은 남자 중심의 회합에 나이든 부인들이 끼어드는 것을 거북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날 어떤 친구가 급서하여 영안실에 갔을 때 그 친구의 부인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무척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최소한 부인들의 얼굴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할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부 송년회를 하기 쉬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려워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추진한 것이다. 이런 것이 순천사범 13회 정신이기도 하다.
지금의 경제 공황은 부부 송년회나 하면서 노닥거릴 낭만적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가 전혀, 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서운 경제 불황이 덮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최소한의 소비생활마저 억제한다면 국가의 내수는 위축되고 소득은 더 떨어지게 된다고 불세출의 경제학자 keynes가 이미 ‘절약의 역설’을 부르짖지 않았던가.
더구나 동창회라는 것은, 특히 중.고등학교의 동창회라는 것은, 늙은이에게 ‘죽음에 이리는 병’이라는 고독을 치유할 해독제가 된다. 특히 우리처럼 단선적인 교직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에게 순사 동창회는 노년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나시장 경제체제가 인류가 발견한 최선의 제도는 아니지만 차악(次惡)의 제도이듯 연말의 동창회나 부부송년회가 최량의 회합은 아니지만 노인들에게 덜 나쁜 모임인 것만은 틀림없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나니.
봉화산을 등지고 순사가 우뚝 서 있었듯이,우리들 대부분은 順師를 등지고 살아왔다.특히 교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따라서 지금까지는 순사가 있어서 우리가 있었지만, 모교가 없어져버린 이제는 우리가 있음으로써 순사가 추억 속에서나마 존재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교가를 부른다. 우리의 교가는 김광섭 작사, 이흥렬 작곡이다. 김광섭씨는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 출신의 항일 민족투사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공보비서관(지금의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그리고 문인총연합회 대표를 지낸 ‘성북동비둘기’‘저녁에’같은 명시를 남긴 한 시대를 풍미한 대 시인이다. 이흥렬씨 또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곡가로 숙명여대 음대 학장을 지낸 분이다. 이것이 진부한 시조시인이나 고등학교 국어선생이 작사하고 음악선생이 작곡한 것이 통례인 일반 고등학교의 교가와 품계가 다른 순천사법학교 교가의 실체적 진실인 것이다. 또 그 교가를 불렀던 순천사범학생들의 품질의 정신적 수위였던 것 이다. 그렇기에 만 15세부터 20세까지 불렀던 순사의 교가는 우리에게 청춘의 노래이고 운명의 노래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영혼을 위무해 주는 인생 응원가였다. 때문에 이번 가족 송년회에서 우리는 교가 지휘를 특별히 부속국민학교 교장의 아들인 김인규 군이 하도록 했다.
건배는 13회 중 최연소자(43년생)인 김용직 군이 했다. 늙었으나 가장 젊은 김용직 군은 순사시절 합죽이 김희갑이 같이 생긴 송병수 선생에게서 고어 시간에 배웠다는, 정철의 장진주사 중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 덧붙여서 예이츠의 술의 노래를 건배사로 추가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나니,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진실로 알 것은 이것 뿐, 나는 술잔을 입에 대고 늙어가는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노라.”
문자향이 흐르고 서권기가 넘치는 건배사를 한 김용직이나 정명훈처럼 요란스럽게 교가를 지휘한 김인규는 둘 다 한국 최고의 명문 양반인 광산 김 씨이다. 혼자 있을 때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며 이불속에 있을 때도 염치없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호를 신독제(慎獨齊)로 정한 김집(金集)의 후손답게 김인규와 김용직은 말술을 들이킬 때도 술잔만은 기품 있게 부딪쳤다.
우리와 같이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광주의 k고 9회는 500명의 졸업생 중, 30명이 2008년에 죽었다고 그들의 동창회보에 실렸다. 그러나 200명이 졸업한 순사 13회는 이 근래에 한사람도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하늘의 보우하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이춘 군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춘 군은 교직은 물론 쌍용의 임원을 거쳐 오랫동안 개인사업을 했으며 신도가 많은 방배동 성당의 평신도 회장을 지냈다. 인생살이의 산전수전을 다 체험했다 할 수 있다. 경륜 있는 이춘 군이 올리는 간절한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두드렸다.
● 2008년 13회 인물과 13회 부인(夫人) 시상
우리는 2008년의 13회 인물로 유남근 군을 선정했다. 학창시절이 우리 인생의 제 1악장이라면 제 2악장은 직장생활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13회 모두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제 3악장이라 할 수 있는 정년 후의 우리 인생은 상당히 다양한 생존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남근 군은 정년 후 고향 순천 황전으로 내려가서 6천 평의 매실농장을 직접 경영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연금 타서 세월 보내는 소극적인 우리들에게 강렬한 자극과 신선한 역할 모델이 되고 있기에 그를 2008년 13회 인물로 뽑았던 것 이다. 시상은 정순기 군이 했다. 정순기는 우리들 중에서 최연장자 이기도 하지만, 학창시절 생목동의 평화와 조례동의 치안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순사의 김두한 이었다. 때문에 힘 있는 정순기의 시상은 우리가 제정한 상의 권위를 한껏 높여 주었다.
상품으로는 자기 몸을 태워 주위를 밝혀주는 촛불처럼, 시력도 판단력도 침침해지는 친구들에게 마음까지 밝혀주는 밝은 빛이 되어 달라고 양초를 한 자루 주었다.
재경 순사 13회는 ‘올해의 13회 부인’으로 허주 군의 부인 황승례 씨를 뽑았다. 사실 재경 13회 친구들은 남녀 공학하는 학교를 다녔다 해도 숫기가 없어 여학생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성관계에는 짜잔했고 연애 거는 데는 지진아들이었다. 그래서 좀 쑥스럽지만 고백하건대 결혼한 부인들이 우리들의 첫 사랑이었고 참 사랑이었다. 그리고 사랑 끝이었다. 헌 사랑이 되어버린 지금도 헛 사랑이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13회 친구들의 부인 사랑이 남다른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의 중량보다 더 무거운 소시민의 가난을 아내와 함께 짊어졌으며 우주의 신비보다 더 복잡한 인간사의 미로를 아내와 함께 헤엄쳐 왔다. 처녀 때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아등바등한 한 평생을 동영상을 드려다 보듯 회고할 수 있는 사람, 이 지구상에 유일한 운명의 공유자가 13회의 부인들인 것이다.
그 중에서 허주 군의 부인 황승례 씨를 ‘올해의 13회 부인’으로 선정한 것은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가 많지만, 아직도 젊음이 가시지 않는 미모가 송광사의 국보처럼 젊음의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것을 억지로 숨기려한다면 허주와 황승례 씨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시상은 남편 허주가 13회 남자를 대표하여 아내 황승례씨 에게 직접 했다. 상품은 자기 몸을 풀어 남편과 가족에게 헌신한 그 정신을 기리어서 빨랫비누 두 장을 주었다.
●13회가 선정한 사자성어 ‘태연자약(泰然自若)’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이면 전국의 교수들이 한 해를 정리하면서 1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골랐는데 2008년은 ‘호질기의(護疾忌医)’를 선택했다. 남의 탓만 하고 주위의 충고를 듣지 않는 정부를 비웃는 말이다.
교사와 교수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순사 13회가 어찌 이 시대의 트랜드에 뒤질 수 있겠는가,그래서 우리도 1년을 결산하면서 2008년을 압축하는 4자성어로 ‘태연자약(泰然自若)’을 선택했다.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보도, 감원사태로 실업자의 홍수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 이미 여러 나라가 국가 부도 사태라는 뉴스, 거기다가 자식들의 직장과 사업이 불안해도, 아파트 값이 폭락하고 정력마저 떨어져버린다 해도, 별로 갈 곳이 없는데 방안에만 쭈그리고 앉아 있다고 마누라의 잔소리가 많아진다해도, 태연자약 하자는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돈은 못 벌면서 젊은이와 몰려다니며 헛소리나 떠들고 다닌다고 얼굴에 물바가지를 퍼붓는 크산티페(소크라테스의 처)나, 일은 않고 허구헌 날 강가에 앉아서 낚시질만 하고 있다고 집을 뛰쳐나가버린 강태공의 처마 씨 같은 악처가 없기 때문에 ‘태연자약’이라는 4자성어가 순사 13회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어휘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밖에서는 큰소리 탕탕 치다가 집안에만 들어가면 찍소리 못한다는 소문이 없지 않는 순사 11,12,14,15,16회 선.후배와 광주일고, 광주고, 순천고, 여수고 출신들에게 더 절실한 어휘일 것이다.
그러나 아득한 반세기 전, 1957년 2월, 우리가 순사 13회 입학시험을 볼 때, 태연자약이라는 어휘를 한문으로 쓰라는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순사 13회와 태연자약은 어떤 숙명성을 지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順天 독트린 선포
우리는 1년 만에 13회 가족이 건강하게 자리를 함께 했으므로 그 큰 의미를 문서화하여 전 세계에 공포하기로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13회順天독트린'
50년 이상 친교를 맺어온 순천사범 13회 동창들은 99세까지만 건강하게 살면서 노추에 물들지 않고 품위 있게 여생을 즐기겠습니다.특히 13회가족들은 나이 順서대로天명을 받들어 후손들의 축복 속에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2008년 12월 29일 순천사범 13회
이 선언문은 이장로 군과 그의 부인 신경자 씨가 함께 낭독했다.세상을 살다보면 서럽고 괴로운 일도 많이 겪게 된다. 그렇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단장’의 비통이나 아내가 먼저 떠나가는 ‘고분지통’의 아픔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사내 나이 70이 되어 살만큼 산 우리들은 아내와 직계 존비속이 나이 순서대로 죽는 고종명의 축복을 갈구하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기독교의 자유를 허용한 밀라노 칙령이나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이 13회 順天 독트린인 것이다. 그렇기에 권위를 세워 보려고 공부깨나 했다는 이장로 부부에게 낭독을 부탁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모두 실망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문맹자처럼 말을 더듬거렸을 뿐만 아니라 이군의 부인 신경자씨는 수학교수 답지 않게 발음까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문안을 잘못 읽었다 해도,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센터에서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과학자’의 자격을 우리 힘으로는 박탈시킬 수가 없고 '2008년 세계 TOP과학자 100인'의 지위도 우리 마음대로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장로 군은 지금까지, 사범동창들이 범용한 일상에 안주하여 침체에 빠질 때마다 뜨거운 눈짓으로 우리들을 일으켜 세워 주었고, 대학교 학장, 한국전자기학회 회장으로,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는 국제적 대학자로서 성취한 학문적 영예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미덕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장로가 이름이 우스꽝스럽고 키가 작고, 용모가 좀 무식하게 생겼으며, 바람기가 많은 등 치명적 결함이 수두룩했어도 그를 관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군의 부인 신경자씨는 호남교육계에 전설적 신화를 뿌리고 다녔던 신준식 학장(여수 대)의 장녀지만 엄숙하게 보이는 금테 안경도 끼지 않았으며, 겸손은 몸에 배어 있으나 이지적으로 보이게 훌쭉하지는 않다. 그러나또 어쩔 것인가. 예부터光男興女[남자는 광양사람이 제일이고 여자는 흥양(현 고흥)사람이 최고]라는 말이 전남일대에 회자되지 않았던가(이장로는 광양출신이고 그의 부인은 고흥사람이다. 13회에는 위광우 김용직 등도 고흥여자를 아내로 맞는 처테크를 했다). 그렇기에 13회의 마그나카르타인 順天독트린을 이장로 부부가 서투르게 선포했어도 우리들은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 天道 是耶 非耶
연말연시가 되어 여러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자기나이를 되새겨 보고 세월의 덧 없음과 인간사의 부조리에 소름끼칠 때가 많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 요절하여 못 보게 될 때나 이 세상에서 꼭 배제해 버려야할 사람이 떵떵거리면서 잘사는 것을 볼 때는 더욱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그럴 때마다 2100년 전,전제군주 한 무제의 비위를 건드려 무고하게 남성을 거세당하고 울분 속에서 ‘사기(史記)를지었던사마천의 천도(天道) 시야(是耶) 비야(非耶)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세월이 흘렀어도 마찬가지다.선하고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은 못살고 악랄하고 교활한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세상인데 자식들에게 계속 '교장선생의 훈화'같은 말만 해야 할 것인가, 사마천의 분노처럼 하늘이 정말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소리쳐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당위적 존재양태에 대해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정순기 군과 이춘 군은 세속의 법과 하늘의 법은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세속에서 밥 먹고 숨 쉬고 똥 싸는 우리에겐 그래도 의문이 많다.
천주교 교리에 해박한 이춘은 발제 강의에서 창조주의 피조물인 인간의 엷은 생각으로 하느님의 큰 역사를 마음대로 해석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잠깐 살고 있는 우리일생은 하느님의 시간으로 재면 순간적인 찰라 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하느님의 거룩하고 큰 역사를 긍정하지 않는다면 친일파나 변절자가 잘살고 부정축재자가 호화호식 하는데, 독립 운동가는 사형당하고 무고한 유태인의 홀로고스트 같은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광대무변한 창조주의 큰 뜻을 티끌만한 인간의 그릇에 다 담을 수 없고, 영원불멸한 하느님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계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이장로 군은 신의 시간에 대한 인간의 시간과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물로서의 인간의 존재 방식을 현상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현세적 세계관의 응전이고 신앙적 우주관의 섭리에 대한 과학적 합리성의 탐구라 할 수 있었다.
이장로 군이 인간의 시각에서 본 시간의 상대론적-고전적물리학적 의미를 요약하면 대강 이런 것이었다. 시간의 정의는 시각(언제)과 시간(동안)을 포함한 수적인 개념과 연속의 두 개념을 포함해야한다. 시간은 제 4차원의 좌표로서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3차원 공간+1차원 시간)의 한 좌표이긴 하지만 성질만큼은 공간의 성질과 전혀 다르다. 공간 속에서 우리는 앞뒤, 좌우, 상하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나 시간의 방향은 오직 한쪽, 즉 미래라 불리는 방향으로만 고정되어 흐른다.
시간은 균일한 속도로 흐른다는 뉴튼까지의 고전적 개념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 않고 구부러지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하며 지체되기도(시간지연현상) 한다는 시간혁명이 일어났다. 그 후 하이젠베르크는 어떤 물체의 초기위치와 초기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원리을 발표하여 시간개념을 새로 정리하였다. 이렇게 시간에 대한 운명론이 설 자리를 잃게 되어 미래는 단 하나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다양한 미래가 존재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쉽게 말하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일방향성) 그래서 청계천 물처럼 되돌려서 두 번 사용할 수 없으며(일회기성)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가변성)는 것 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면(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력) 시간이 서서히 흐른다는 이론에 대해 한 친구가, 골방에 처박혀서 잠만 자는 게으른 사람이 팍 늙어버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아니냐고 해서 우리들은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이장로 군은 작은 목소리로 설명하는 조용한 강의였지만 동서고금을 종횡무진 하는 참으로 심오한 이론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개인적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공공적으로 해석해 보면서 서로 다른 길을 멀리 걸어온 친구들과 세월의 흐름을 다면적으로 음미해 보았다.
이것이 순천사범학교 동창회의 진면목이고 권세나 부귀와 거리가 먼 그늘에서 이 나라 기초 교육을 담당했던 순사 생들의 송년회인 것이다.
순사 13회 가족 송년회, 이 모임자체가 작지만 큰 하나의 교육 시스템이었다.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송년회는 연말에 갖기 때문에 그 성격상 약간 씁쓸한 맛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늙어가면서 갖는 망년회는 망령회나 망신회로 추락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년에 이어 부부 송년회를 또 가졌다. 독특한 개성들을 지닌 13회의 부부송년회에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 않았다고 순사13회의 동창지수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자학하지 말자. 또 어떤 사람 보기 싫어서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면서 13회 자체를 폄하하지 말자. 순천사범 13회는 인성검사하고 입학한 학생들이 아니다, 국민학교 2급 정교사로 취직하기 위해 모여든 촌놈들의 선발집단이었다. 때문에 모두 싸가지가 많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래도 우리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음악지수가 교사지수보다 빼어난 김인규 군은 노사연이 부른 <우연>을 노사연 못지않게 멋들어지게 뽑으면서 노래자랑을 시작했다. 모두 왕년에는 한가락씩 뽑았다는 듯이 구닥다리 노래를 뽑았다. 그러나 노래하는 사람 혼자서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면서 핏대를 올렸지 딴사람들은 쓰잘데 없는 이야기나 흐지부지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사이다를 홀짝거렸다. 상당히 촌스럽기도 하고 결코 고상하다고 생각될 수 없는 한물 간 뽕짝들을 불러 제꼈다. 다행히 우리가족들 이외에는 구경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아, 쭈글쭈글해지는 우리 얼굴처럼 시시한 점이 너무 많은 우리 시대의 가족송년회를 우리는 우물쭈물 끝냈다.
● 운명의 카렌다
이렇게 2008년 12월 29일 오후 3시, 순사 13회의 망년회를 마쳤다. 작년 송년회를 2007년 12월 28일에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치루었기 때문에, 만 1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12월 28일에서 29일로 단 하루만 지난 것처럼 착각되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세월이 하루처럼 흘러가버린 것이다.
한국남자의 평균 수명이 76세라는 것을 상기하면, 70이 된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올 것인가가 생각되어 등줄기가 서늘해지기도 하였다. 또 우리에겐 시간이 가장 희귀한 자산인데 시간이 남아도는 역설을 곱씹으며 하루를 1년처럼 소중하게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옆방에서 망년회를 끝낸 늙수그레한 남녀들은 옆구리에 카렌다를 한부씩 끼고 나왔다.
우리들은 특수상대론적 시간의 선택에 따라 미래로 흐르는 시간 속에, 보람찬 여생을 창조하겠다는 운명의 카렌다를 가슴속에 품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우리 인생처럼 12월의 오후지만 해가 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때 어느 위대한 시인의 절규가 들려왔다.
” 시간은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있습니다.
부수고 창조할 시간은 있습니다. “
(T. S. Eliot)
조호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