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가라쓰코스(2)
이때에는 나고야성을 중심으로 반경 3km 범위에 130여개의 다이묘(지방영주)들의 진영이 집결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력을 나고야성 주변에 총집결시킨 후 이 성에서 1592년 3월 조선침략전쟁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조선 침략전쟁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나고야성 건물은 대부분 가라츠성(唐津城)을 쌓기 위해 옮겨갔으며, 정문인 오오테문(大手門)은
센다이성(仙台城)으로 이전해 갔으니 나고야성은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성의 상징인 천수각이 있던 천수대에는 러시아 발틱함대를 무찌르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의 전승기념비가 우뚝 서 있을 뿐이다.
다만 수백 년 된 고목들이 오래된 성이었음을 알려준다. 일본 국가지정 특별사적으로 지정된
나고야성터는 한국인에게는 치욕적인 장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된다는 다짐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고야성 천수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국인에게도 역사적 아픔을 금방 잊어버리게 한다.
현해탄을 바라보며 타원형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한 그루는 평화를 수호하려는 수호천사처럼 외롭게 서 있다.
우리는 그 나무 옆에 서서 나고야성터로 다가오는 천혜의 풍경에 넋을 잃는다.
둔덕처럼 부드러운 구릉지대를 짙푸르게 감싸고 있는 숲이 마을을 감싸 안아 포근하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시리도록 아름답다. 드넓은 바다에 듬성듬성 작은 섬들이 떠 있어 화룡점정이 된다.
아담하면서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요부코(呼子)와 카베시마(加部島)를 연결해주는 요부코대교도 지척에서 눈길을 유혹한다.
백제 무령왕의 탄생지로 알려진 섬, 가카라시마(加唐島)가 가깝고 저 멀리 대마도도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성곽 아래에는 잔디가 잘 가꾸어진 진영터도 있다.
나고야성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봄철에는 벚꽃명소가 되기도 한다.
천수대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두고 내려가려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고목 사이를 뚫고 성곽 아래로 내려서니 길쭉한 마장(馬場)터 있다.
마장터에서는 나고야성박물관과 조금 전 지나왔던 방죽과 주변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이제 마을로 내려와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 골목길을 걷다보니 가라쓰 도자기를 생산하는 하나타가마(炎向窯)가 기다리고 있다.
예로부터 다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가라쓰 도자기를 굽는 하나타가마에는 갤러리까지 갖추고 있다.
2층 갤러리에 올라가니 이곳 히나타가마에서 구워낸 다기를 비롯한 생활도자기들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이곳 전시장은 주로 올레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많이 들린다고 한다.
농경지와 옛 마을이 어울린 정겨운 농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을 걷는다.
숲 동산을 갖춘 ‘소년자연의 집’에서는 어린이들이 숙박을 하며 자연체험을 한다.
소년자연의 집 아래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 군청색을 띤 바다 뒤로 가카라시마(加唐島)가 떠 있다.
길은 해변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언덕위로 올라간다.
해변의 조그마한 몽돌 위로 파도가 하염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한다.
소년자연의 집 정문 앞을 지나 잠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농로로 접어든다.
우리나라 시골길을 걷느 것 같다.
농로와 숲길을 반복해서 걷다가 하도미사키 캠프장에 닿는다.
소나무 밭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프장은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캠프장에서 곧장 내려서서 해변길을 걷는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해변과 주변 바다의 풍경이 제주올레 중에서도 바당올레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바위에서는 바다낚시를 즐기는 태공들이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해변길을 걸어가는데, 제주도에서 많이 보았던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다. 주상절리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울려 더욱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주상절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서서 이 세상 최고의 예술가는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상절리 옆 해변에는 큼직한 돌들이 함께 어울린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잠시 상록활엽수림을 따라 걷기도 하지만 주로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걷게 되어 있다.
국민숙사에 도착하기 직전 하도미사키 곶의 끝이 보인다.
곶 뒤에서 하도미사키를 바라보고 있는 두 개의 섬들이 고개를 내민다.
해변은 지나는 사람도 없어 우리만이 오롯이 바다의 주인공이 된다.
바닷가 의자에 앉아 있으니 바다는 더욱 고요해진다.
고요함 속에서 외로운 충만감이 내 몸을 휘감는다.
군청색 바다는 검은 돌과 다정한 벗이 되어 밀어를 속삭인다.
해변의 바위들은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는 해변의 바위를 온몸으로 껴안는다.
이렇게 바다는 해변 바위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도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국민숙사 하도미사키’에 도착한다.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다.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배낭을 넣어두고 남은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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