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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의 법칙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할 능력이 있지만 모든 종교가 그 잠재력을 작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이 사는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가호 아래 묶어두려면, 종교에는 두 가지 추가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첫째,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한다. 둘째,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달리 말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이슬람교나 불교처럼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상 대부분의 고대 종교는 지역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신자들은 국지적 신과 영혼을 믿었으며, 인류 전체를 개종시키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한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하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1) 애니미즘과 다신교
농업혁명은 종교혁명을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 동식물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의 영혼과 더불어 사는 수렵채집인과 달리 농부들은 동식물을 소유하고 조작했다.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문제를 낳았다. 농부는 양 떼의 전염병을 막고 새끼를 많이 낳기를 원했지만 스스로 통제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의 기원에 대한 지배적 이론은 신이 이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고대 신화의 많은 부분은 인간이 동식물을 지배하는 대가로 신들에게 영원히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담은 법적인 계약이었다. 창세기의 첫 몇 장이 대표적 예다. 농업혁명 이래 수천 년간 종교의 예배는 주로 인간이 신에게 양과 포도주, 케이크를 바치고 그 대가로 풍성한 수확과 가축의 다산을 약속받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평생 좁은 지역에서 보낼 때는 지역의 정령만으로도 자신들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으나, 왕국과 교역 망이 확대되자 왕국 전체나 교역 지대 전체를 아우르는 권력과 권위를 지닌 존재들이 필요해졌다.
이런 수요에 부응하고자 하는 시도는 풍요의 신, 비의 신, 전쟁의 신 등 다신교의 출현으로 이어졌으며, 다신교의 출현으로 애니미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악마, 요정, 유령, 신성한 바위, 신성한 샘이나 나무 등은 모든 다신교를 이루는 핵심요소로 남아 있었다.
2) 우상숭배의 이점
다신교 제국은 피정복 민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기도교인들에게 신앙과 의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제국의 수호신과 황제의 신성에 경의를 표할 것을 기대했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격렬하게 거부하고 화해를 위한 모든 시도를 거절하는 데까지 나아가자, 로마인들은 정치적 전복을 꾀하는 세력이라고 보아 박해로 대응했다. 이런 박해조차 주저주저하는 식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300백 년 만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할 때까지 다신교를 믿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사건은 네 차례를 넘지 않았다. 지역의 행정관과 총독이 나름으로 반기독교적 폭력을 일부 일으켰을 뿐이다.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 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16~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은 특히 악명 높다. 관련자 모두가 예수의 신성 그리고 관용과 사랑이라는 그의 복음을 믿었지만, 그 사랑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16~17세기 신학논쟁은 매우 격렬해서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는 수십만 명이나 서로 살해했다.
1572년 8월 24일, 선행을 강조하는 프랑스 가톨릭교도들은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강조하는 프랑스 개신교 공동체를 공격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불리는 이 공격에서 5천~1만 명의 개신교도가 살해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로마 교황은 프랑스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자 몹시 기뻐하며,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축하 기도회를 조직하고 바티칸의 방 하나를 대학살에 대한 프레스코(벽화를 그릴 때 쓰는 방식으로, 덜 마른 석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로 장식하게 했다. 이 하루 동안 기독교인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다신교를 믿는 로마 제국이 제국의 존속 기간을 통 털어 살해한 기독교인의 숫자보다 많았다.
3) 일신교 내의 다신교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기원후 1세기 초반, 세상에는 일신론자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 기원후 500년경이 되자 세계 최대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느라 바빴다. 오늘날 동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런저런 유일신을 충실히 믿고 있으며, 세계 정치질서 또한 유일신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다신교 내에서 애니미즘이 계속 살아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신교에도 다신교가 역시 살아남았다. 사실 일신론 신학은 최고신 이외의 모든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감히 그런 잡신을 믿는 자에게는 지옥불과 유황을 퍼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학 이론과 역사적 실재 사이에는 늘 틈이 있기 마련이다. 일신교들은 요란한 팡파르를 올리면서 대문으로 잡신을 내쫓고서는 창문을 통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자들로 구성된 나름의 만신전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은 다신교의 만신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기독교 왕국에는 수호성인이 있어서 이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준다. 도시와 읍, 전문직, 심지어 질병에도 자신만의 성인이 있었다. 성 엘모는 굴뚝 청소부들을 보호했고, 성 마테오는 괴로워하는 세금 징수관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두통이 있다면 성 아가티우스에게 기도해야 하지만, 치통을 앓는다면 성 아폴로니아가 훨씬 더 잘 맞는 기도 대상이었다.
기독교 성인들은 옛 다신교의 신과 단순히 닮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신들이 변장한 경우도 흔했다. 가령 기독교 전래 이전 켈트 섬의 최고 여신은 브리지드였다. 이 섬이 기독교화하자 브리지드도 세례를 받았다. 이제 성 브리지드가 된 그녀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큰 추앙을 받는 성인이 되었다.
4) 선과 악의 싸움, 일신교와 이신교
다신교는 일신교만 낳은 것이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다. 이신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의 존재, 즉 선과 악을 믿는다. 일신교와 달리 이신교에서 악은 독립적인 힘이다.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그 신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 이신교는 온 세상을 이들 선과 악의 두 힘의 전쟁터로 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싸움의 일부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할까? 왜 고통이 존재할까?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일신론자들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려면 지적인 곡예를 부려야만 했다. 널리 알려진 하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악이 없다면 인간은 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유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답으로서, 즉각 수많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악을 선택하도록 허락한다. 많은 사람이 악을 택하며, 일신교의 정통적 설명에 따르면 이런 선택은 반드시 신의 벌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그 인물이 자유의지로써 악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신이 알았다면, 신은 왜 그를 창조했을까? 신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런 답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일신론자들이 악의 문제에 쩔쩔매고 있다는 점이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도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한다. 만일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신교는 1천 년 이상 번성했다.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란 이름의 예언자가 중앙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의 교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마침내 이신교인 조로아스터교가 되었다. 그 신봉자는 세상을 선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인 앙라 마이뉴 사이의 우주적 싸움터로 보았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 아카메네스 제국(기원전 550~350)에서 중요한 종교였고, 나중에는 사산제국(기원후 224~651)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이후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거의 모든 종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노시스파와 마니교 등 여러 이신교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마니교는 기원후 3~4세기 동안 중국에서 북아프리카로 퍼졌으며, 잠시나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누르고 지배적인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니교도들은 로마의 영혼을 기독교도들에게 빼앗겼고,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한 사산 제국은 일신교를 믿는 무슬림들에게 무너졌다. 오늘날 이신론을 믿는 공동체는 인도와 중동에 한 줌 정도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신교의 물결이 이신교를 싹 쓸어낸 것은 아니었다.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이신교에서 수많은 신앙과 관례를 흡수했으며, 오늘날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이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이 강력한 악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 악마로 부르는 것이 그런 존재다.
일신론자가 어떻게 그런 이신론적 신념을 품을 수 있을까(구약에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순을 믿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은 심지어 선한 신이 악과 싸울 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 중에는 지하드와 십자군을 일으켜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된다.
또 다른 이신교인 그노시스파와 마니교의 핵심 개념은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을 정확하게 구분한다. 이들 종교에 따르면 선신은 정신과 영혼을, 악신은 물질과 육체를 창조했고, 인간은 선한 영혼과 악한 육체의 전쟁터 역할을 한다. 일신교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일신론자들은 악의 문제를 다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 이신론자들의 이분법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으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 역시 그 기원은 이신론에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믿음은 흔적도 없으며, 영혼이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산다는 주장 또한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일신론은 역사에서 나타났듯이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 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다.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諸說)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 종교일지 모른다.
5) 자연의 법칙
인도의 자이나교와 불교, 중국의 도교와 유교, 지중해 분지의 스토아철학, 견유철학, 에피쿠로스주의와 같은 종교의 특징은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신조에 따르면 세상을 지배하는 초인적 질서는 신의 의지와 변덕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소산이다. 이런 자연법칙 종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신들도 인간이나 동식물 못지않게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보았다.
불교에서는 고통은 번뇌에서 오고,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나며, 집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법(Dharma, 다르마)으로 알려진 이 법칙은 ‘고통은 집착에서 생긴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진리로써, 물리학에서 E=mc2과 같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6) 인간 숭배
근대는 강력한 종교적 열정의 시대, 전대미문의 포교 노력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종교를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비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물론 공산주의와 다르다. 세상을 지배하는 초인적 질서는 전능한 창조주 신의 명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 역시 신을 가차 없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종교로 분류된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자연적 질서와 불변의 법칙을 믿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이다.
유신론적 종교는 신에 대한 숭배에 초점을 맞춘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인간, 좀 더 정확하게는 호모 사피엔스를 숭배한다. 인본주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특유의 신성한 성질이 있고, 이 성질은 다른 모든 동물이나 다른 모든 현상의 성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이다. 모든 인본주의자는 인간성을 숭배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다. 인본주의는 ‘인간성(humanity)’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세 개의 경쟁 분파(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나뉘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분파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이 사상은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주된 계명들은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자유를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계명들을 통칭하여 ‘인권’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일신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인의 자유롭고 신성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롭고 영원한 개인의 영혼을 믿었던 전통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런데 영원한 영혼과 창조주 하느님에 의지하지 않을 경우 자유주의자로서 사피엔스 개개인이 뭐 그리 특별한지를 설명하기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성’이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신성하게 보는 것은 개별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체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개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반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가령 부자가 가난한 자에 비해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본질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가 된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나치가 다른 인본주의 분파와 구별되는 점은 ‘인간성’에 대해 진화론이 깊이 강화된 좀 색다른 정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치가 인류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아리아인을 보호육성 해야 하고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자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퇴화된 종류들은 격리하거나 심지어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는 적어도 1960년대까지 미국 정치의 주류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었다. 유색인종의 호주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는 1973년까지 유지되었다. 호주 원주민은 1960년대까지 동등한 정치권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대부분은 선거에서 투표권조차 없었다. 시민 구실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밀레니엄의 여명기인 지금, 진화적 인본주의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히틀러와의 전쟁이 끝난 후 60년간, 인본주의를 진화와 연관시키는 것은 금기였다. 생물학적 방법에 의한 호모 사피엔스의 ‘업그레이드’를 옹호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런 프로젝트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하급 인종이나 열등한 집단을 멸절시키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인간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해박한 지식을 이용해 초인간을 만드는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조와 생명과학의 최근 발견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내적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기서 아무런 영혼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유전자, 뇌신경 시냅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7) 역사는 2단계 카오스 계다
4세기가 시작할 무렵 로마 제국 앞에는 다양한 종교적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제국은 전통적인 다채로운 다신교를 고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내란으로 갈기갈기 찢겼던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서 분명한 교리를 지닌 단일 종교를 믿으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제국을 통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30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기독교는 비밀스러운 동방의 분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이 종교가 곧 로마의 국교가 될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면 사람들은 웃었을 것이다. 기원후 600년에 사막에 살던 한 무리의 아랍인이 머지않아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누가 믿었을 수 있었겠는가. 1913년 10월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작은 급진주의 파벌에 지나지 않았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파벌이 불과 4년 내에 이 나라를 접수하리라고는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결정론적이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이 믿는 민족주의, 자본주의, 인권이 우연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 카오스 계다. 카오스 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 계다. 날씨는 무수히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만일 우리가 내일의 석유 가격을 1백 퍼센트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석유 가격은 예측에 즉각 반응할 것이고 해당 예측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도 2단계 카오스 계다. 소련 연구가들은 1989년 혁명(198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붕괴되면서 동구권에 혁명이 전개되고, 1990년 독일 재통일과 1991년 소련 해체로 이어진다)을 예측하지 못했고, 중동 전문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튀니지에서 일어난 반독재 혁명(재스민 혁명)이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 장기집권 독재정권을 단숨에 몰아냄)을 예측하지 못했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8) 역사의 여신은 장님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필연적으로 개선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인류에게 이로운 문화가 반드시 성공하고 퍼진다든가, 덜 이로운 문화는 사라진다든가 하는 증거도 없다. 기독교가 마니교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든가, 아랍 제국이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도 마찬가지로 없다.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라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척도는 우리에게 없다. 물론 늘 승자는 자기네 정의가 옳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승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마니교에게 승리한 것이 인류에게 유익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과 의견을 같이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들은 사산 왕조 제국이 무슬림의 손에 무너진 것이 인류에게 이익이 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이익이 명백한 것은 우리가 무슬림 세계관을 받아들였을 때뿐이다. 어쩌면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사라지고 패배했더라면 우리는 더욱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