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연대기, 인생2막을 쓴다
이준영
삶은 죽음 앞에서 침묵한다. 두려워 떠는 공포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건한 예의다. 삶의 예언이며 가장 안전한 평안이다. 이제 삶이 길어졌다. 친구들은 공직을 마치기 시작했고 우리 나이의 사람들은 백세시대의 도래를 바라보며 삶의 여정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인생2막은 또 다른 시작이다. 더 뒤로 갈 수 없는 출발선이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과 호기심으로 보았던 청춘보다 더 나쁠 것도 없다. 한 가지가 부족하다면 육체가 조금 불편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더라’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괜찮더라’ 판단도 되고 지혜도 생겼다. 요령이라면 요령도 가지고 있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때보다는 약간의 여유도 있고 대담해졌다. 이제 인생2막이 시작되었고 나는 출발선에서 약간의 고민을 하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청춘의 한 시절에 청년문화라는 세류의 낭만이 있었다. 청바지와 기타와 긴 머리로 불리어진 시대에 나는 종로2가의 쏟아지는 빗줄기에 더운 피를 식혔다. 그 아이들을 지금은 7080시대라고 불어준다. 광화문 아이에서 종로의 노인으로 변화된 세대 그 거리를 걸어보았다. 참 세상은 많이 변했다. 늙어도 죽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목사다. 늦게 주님을 만나 부름을 받았고 20년을 허둥거리며 복음을 들고 다녔다. 복음을 들고 넘어지고 깨지고 비웃음을 들으며 하늘을 보고 원망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아파 웅크려져 숨기도 했다. 육체는 세월을 따라 기운이 빠지고 뼈는 구멍이 생기고 소리가 났다. 병실에 누워 뒹굴던 몸은 너무 아팠다. 움직이면 살과 뼈가 덩렁거리며 호흡을 막았다. 숨을 쉴 적마다 갈비뼈의 한 조각에 가시가 일어나는 고통은 슬프고 지쳐갔다. 사실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가’라는 절망이었다. 감히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원인조차 모르는 이 상황은 나만이 혼돈에 빠졌다. 그런 나에게 나만의 존재를 증명하고 마지막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펜을 잡는 것이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모든 것을 쏟았다.
창세기로 들어가 시작한 성시의 노래는 간절한 기도였고 종이는 나에게 성전이 되었다.
태초의 탄생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선으로 그려진 기도는 풍경이고 창조고 영혼의 흐느낌이었다. 어두운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에덴의 회복이었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칠해진 평안의 길이었다.
사라져버린 물욕과 세속적인 일들에 대한 무관심, 동시에 에덴에 대한 동경은 온통 신의 숨소리에 채워져 있었다. 기댈 곳도 없는 바닥에서 주워든 종이와 연필로 신의 숨소리를 베꼈다. 이제는 이것밖에 남지 않았고 할 일도 없었다. 나이 60이 넘어 비로소 나는 내가 출발선에 있음을 깨달았다. 훌쩍 어디서 자라온 아들의 모습에 미안하고 부끄럽다.
좋다. 이제 종이 위에 복음을 심자. 사도의 행전을 따라 사진을 찍고 그의 발자취를 그리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자. 인생2모작은 그렇게 모판에서 다시 심겨질 논바닥에 흙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가고 난후에 생각나는 얼굴, 그리고 이름, 그것은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흘러간 팝송으로 여유를 찾고 긴 호흡을 내쉬어보지만 역시 지나온 날은 후회뿐이다. 그러나 젊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백세의 노인에게 육십대 같다고 칭찬하는 것은 위로다. 세월을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노년의 삶이 지혜다. 그렇게 하면 노인은 결코 사회에서도 무가치한 잉여인간으로 남지 않는다. 젊음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젊음은 좋은 것이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시작하라고 하면 싫다’고 말한다. 세월이 가면 지혜로울 수 있다. 바둑이나 운동경기를 보면 관람자가 더 냉정하고 정확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을 본다. 삶을 살면서 자연히 몸에 익은 습관과 생각이 지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젊은 사람들도 지혜로울 수 있고 노인이 어리석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인정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남은 생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잠자리에 눕는다. 어쩌면 죽음이란 긴 잠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그 잠에서 일어나 또 다른 삶을 살아갈지 모른다. 노년은 육체적 힘을 잃는다. 그래서 육체로 하는 일보다는 기도나 격려처럼 잔잔한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에서도 노년의 삶 속에서 소명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모세는 여든의 나이에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고향을 떠났고 그의 아내 사라는 폐경이 훨씬 지나 아들을 낳았다. 늙은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낳았고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했다. 노인 안나와 시므온은 성전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다. 사도 요한도 구십이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글을 남겼다.
일을 잘하려면 사람들과의 교제와 협력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추진력이 필요하다. 서로를 섬기는 것은 일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도구다. 그 몸을 잘 간직하여 선한 청지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노년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일을 하는 데 녹록치 않다. 육체적 힘이 약해질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진취적이지 못하다. 환경에 불만이 많아지고 의지도 상실이 된다. 자신에 대한 포기가 빠르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시련을 이기고 일어서야 한다. 이런 것들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섬김이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으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백세시대의 풍경은 재롱잔치다. 60대가 되고 70대가 되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자식의 자식이 있지만 여전히 누구의 아들, 딸이다.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감동하는 부모 앞에서의 재롱이다. ‘老老 케어Care’다. 그렇게 산다는 것도 끝이 있다.
나에게 3모작의 인생은 없다. 이제 단 한 번의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30대 초반에 막장이라는 곳을 경험했다. 운영하던 작은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하늘을 가린 나무 밑으로 숨었다. 깊은 굴속에 들어가 세상을 잊어버리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곳은 갱도의 가장 안쪽에 있어 그 자체가 위험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막장인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벽을 보면서 더 살고자하는 의지가 철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막장이라는 표현으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는 말을 쓴다. 더 이상의 불륜도 없고 더 이상의 패륜도 없고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 이야기를 막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욕하면서 묘하게 중독되어 버리는 안방극장의 드라마에 그 이름을 붙인다. 묘하다. 막장코드가 개연성 없는 파격적 경계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막장은 폭력과 질투와 미움이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라 삶의 가장 진지한 터전이다. 그곳은 새로운 시작이 되는 곳이다.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 것이다. 막장을 기점으로 삶은 운명적 진화를 꿈꾼다. 개개인마다 막장의 의미는 다르다. 나는 세상보다 그 막장이 오히려 편했다. 그러나 고흐처럼 오래 가지는 못했다.
고흐는 이십대 초반 신학을 공부하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목회자가 되고자 벨기에의 가난한 탄광촌 보리나슈에 갔다.
통로를 따라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굴들은 작아지고 마침내 광부들은 누워서 팔꿈치만으로 곡괭이를 휘둘러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부들의 체온이 굴 안의 기온보다 높아지고 석탄 먼지가 허공에 자욱해져서 그들은 계속 헐떡거리면서 뜨겁고 검은 검댕을 한입씩 들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갱도의 끝 막장에 이르렀을 때 고흐는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자신의 방에서 뱃속이 따뜻하고 침대는 넓고 편안했지만 그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며 비열한 사람인을 깨달았다. 광부들에게는 가난의 덕을 설명하면서 자신은 할 수 없었던 위선으로 그는 자학하고 꿈을 버렸다. 빈털터리가 되고 믿음마저 상실한 그를 다시 세상에 던진 것은 그림이었다. 그는 넘치는 상상력으로 역동적 형태와 힘찬 선을 바탕으로 자신의 그림을 남겼다. 평생 동생 테오에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야했던 열등감은 희망을 포기한 고독이었다. 37세의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긴 이야기가 내 가슴에 들어오는 것은 답답한 연민이다. 나도 한때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목회자가 되었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불우한 고흐의 삶에서 묻듯 어쩌면 그렇게 살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열한 동정이었을까. 목회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정말 원했던 목회자가 되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형은 위대한 천재이고 언젠가 베토벤 같은 인물과 비교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를 평생 돌보았던 동생 테오도뤼스 반 고흐의 말은 그 자신에 대한 또 다른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재주는 그의 발바닥에 묻어있는 작은 티끌에도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의 생에 대한 막연한 추억뿐이다.
‘동물원의 동물은 행복할까’ 로브 레이들로는 질문했다. 그는 전 세계 1,000여 곳 이상을 탐방한 캐나다 동물보호활동가다. 그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좋은 동물원이라도 동물의 생활방식을 충족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를 가두고 있는 것들 안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무리 야생의 삶이 녹록치 않다고 해도 그곳에서 있을 때 행복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속화에 희생당한 목회의 길은 행복한 길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에게 찾아온 2모작의 시작은 목회의 정의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았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그럴 것이다. 먼저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배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 말을 하고자 글을 쓰면서도 먼저 써진 글들을 모아야 하는 흉내가 정신을 들게 한다. 사실 재간이라는 것도 먼저 누가 한 말과 글을 잘 이용해서 말하고 쓰는 재주인 것 같아 미안하고 씁쓸하다. 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묵은 것을 토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야 한다.
세상은 참 시끄럽다. 많은 사람들의 부딪치는 소리도 요란하고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의 동작도 시끄럽다. 사람이 사는 곳을 떠나면 세상은 참 조용하다. 자연의 경쟁은 늘 조용하고 은밀한 순종이다. 죽어간 것들을 넘어 그 위에 엎드린 경건하고 거룩한 복종이다.
나는 새로운 무대에서 펼쳐질 2막의 대본을 쓰면서 전율하고 있다.
이준영
1958년 부여에서 태어나 대구대학교, 총회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한국기독교원로목자회재단 사무총장과 <평생목회>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신의 숨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