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국 속으로 ⑤> 장산국 고씨할매와 고수레
재송당사 고씨할매에서 ‘고시레’가 유래되었나?
고수레는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무당이 굿을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민간신앙적 행위다.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고수레’라고 외치면서 던지지 않으면 체하거나 탈이 난다고 믿는데,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적으로 퍼진 풍습이다(강원이나 경남 지역에서는 ‘고시레’라고도 한다). 그런 만큼 그 유래도 다양하다.
먼저 고시(高矢)는 단군 때에 농사와 가축을 관장하던 신장(神將)의 이름으로, 그가 죽은 후에도 음식을 먹을 때는 그에게 먼저 음식을 바친 뒤에 먹게 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씨(高氏)라는 성을 가졌던 여인의 넋을 위로하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경북 안동지방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다. 의지할 곳 없는 고씨라는 노파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의로 끼니를 이어가며 연명하고 있었다. 얼마 뒤 고씨 노파가 세상을 떠나자 들 일을 하던 사람들은 죽은 고씨 노파를 생각하고 음식을 먹기 전에 첫 숟가락을 떠서 ‘고씨네!’하고 허공에 던져 그의 혼에게 바치게 되었다고 하며 점차 이 행위가 전국에 퍼졌다.
또 경기도 양평에서는 조금 복잡한 내용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고씨 성을 가진 어느 대갓집의 하녀가 겨울에 냇가로 빨래하러 갔다가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먹고 임신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복숭아에 연유하여 ‘도손(桃孫)’이라 지었다. 도손은 장성해 총명해졌지만 천한 출신이라 주위의 멸시를 받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가서 풍수를 배우던 중 그의 스승이 어머니가 운명하게 됨을 알려주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머니의 시신 묻을 곳을 찾아 전국을 돌다가 자리가 좋은 김제 만경들판에 몰래 장례를 지내고 중국으로 다시 건너갔다. 그 후 어느 해에 만경들판에 흉년이 들었는데 도손 어머니 묘의 옆에 있는 논 주인이 임자 없는 무덤이 된 그녀의 묘를 정성껏 돌봐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인지 그 사람의 논은 흉년을 벗어나게 되고, 이 소문이 번져 그 근처 논 주인들이 몰려들어 임자 없는 무덤을 손보아 주는 일에 참여하자 그들 역시 흉년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매년 그 묘는 돌보는 손길이 많아졌다. 멀리서 이 소문을 들은 농부들은 무덤까지 갈 수가 없자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첫 숟가락을 떠 도손 어머니의 영혼에 바치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남아메리카의 페루에서도 조사되었는데, 거기서는 음식물(술도 포함)을 입에 가져가기 전에 으레 대지에 뿌리면서 “대지여, 어머님이시여! 우리에게 훌륭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송동 장산 기슭 고씨할매 당사의 고선옥 할매에서 연유되었다는 고씨(高氏)네, 고시레가 있다. 하지만 고씨네 또는 고시레는 고수레의 경상도적 표현으로 보인다. 일찍 멸망한 부산지역 장산국의 고씨할매 추모사가 전국으로 퍼졌다고 보기 어렵다. 고씨(高氏) 또한 고(高)씨가 아닌 위대한 고(姑)로 볼 때 고씨네나 고시레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고수레가 재송당사에 모셔진 할매를 추모하려 했다는 고씨네, 고시레에서 연유되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여겨진다.
/ 예성탁 발행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