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독서클럽 ⑥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이 어디 있는 산이에요?”
요즘 2~30대 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빨치산은 6.25전쟁 전후에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단어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바로 그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외동딸 고아리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겪은 이야기다. 빈소를 찾아온 다양한 조문객들과 아버지와의 인연이 갖가지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 데는 인절미처럼 찰진 전라도 사투리도 한몫 톡톡히 했다.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 같았다. 웃다가 코끝을 찡하게 하고 때론 울컥 솟구치게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는 듯했다. 차이가 있다면 작가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한때나마 대척점에 섰던 사람, 즉 빨치산 토벌대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 집안도 소설 속 집안 못지않게 사촌 형제들끼리 좌우익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925년생으로 일제강점기 한복판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 소속으로 사할린에서 복무하시다가 러시아 군의 포로가 되셨다. 시베리아에서 3년간 유형 생활을 마치신 후 기적적으로 생환하셨지만, 또다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온갖 고초를 겪으셨다.
그동안 해방공간과 남북 간 이데올로기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꽤 많았다. 예컨대, 이병주의 『지리산』,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이문열의 『영웅시대』,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이다. 이 소설들은 진지하고 드라마틱했지만 대개 편향적으로 보였다. 이와 달리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달랐다. 편향적인 운명을 타고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좌도 우도 아닌 따뜻한 인간애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 당시 치열했던 현장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젊은 세대 독자들이 자칫 빨치산 전사들을 그저 로맨티스트로 착각하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병주 작가는 그의 소설 『피에로와 국화』에서 말했다.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참으로 훈훈한 책이다. 저자가 그랬듯이 나 자신도 내 아버지에 대한 마음 빚에서 상당 부분 해방된 기분이니까 말이다.
끝으로 빨치산 아버지 고상옥이 상투적으로 쓰던 그 말이 두고두고 귓가에 맴돌 것 같다.
“오죽하면 글겄냐??”
/ 박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