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해운대는?
해운대는 전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시설(이하 원전)이 가장 밀집해 있는 기장군 고리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이다. 후쿠시마와 달리 우리나라 원전에는 완벽한 안전조치가 되어 있어 원전 사고 위험이 제로에 가깝다고 하지만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저장시설과 처리 방법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수립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부지 내 저장시설’에 핵폐기물의 영구 저장 가능성이다. 그렇게 된다면 원전과 가까운 지역민에게는 20만 년이 지나야 안전성이 확보되는 고준위 폐기물을 옆에 끼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사용후핵연료처리장) 건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84년으로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해였다. 이때 정부가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원칙’을 정하고, 경북 울진·영덕·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사전조사 중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1990년 정부는 ‘서해 과학연구단지’란 이름으로 안면도에 방폐장을 건설하려고 했으나 방폐장을 연구소로 속였다며 안면도 인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해 무산됐다. 1993년에는 전남 장흥과 경남 고성, 1994년 경북 울진 등에도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그해 말 주민 9명에 불과했던 인천 옹진군 굴업도에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으나 지질조사 결과 방폐장 건설이 불가능한 ‘활성단층’ 지역으로 밝혀져 백지화됐다.
2003년엔 전북 부안이 후보지로 떠올랐다. 그해 부안지역 위도 주민들이 80%의 주민 동의를 받아서 유치 신청을 했으나 부안군의회가 이를 부결시켰고, 부안군수가 의회 결정에 반하여 유치 신청을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부안사태 이후 정부는 2004년도에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구분해서 건립 추진하기로 했다. 2005년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주민투표에 의한 부지 선정과 부지적합성 평가를 하도록 하고, 유치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 획기적인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다. 이후 유치 신청을 한 경주에서 중저준위 방폐장으로서 주로 원전 내 작업자가 사용한 장갑이나 피복 등이 처리된다.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와 관련된 공론화는 2014년 박근혜 정부 때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두 차례 실시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6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최종권고안을 마련했는데, 2051년 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2020년까지는 처분시설 부지 또는 이와 유사한 지역에 지하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20년 말 산업부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확정했지만 원전 입지 지역과 시민사회의 큰 반발에 직면해 진척이 없다. 제2차 기본계획의 핵심 쟁점은 영구처분장과 중간저장시설 건설 전까지 기존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권고안은 영구처분장과 중간저장시설을 동일부지에 ‘집중형’으로 건설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질구조와 주민 수용성 등을 고려할 때 향후 30~40년 내에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구나 ‘부지 내 저장’의 기간과 해당 시설이 임시저장인지 중간저장인지, 관계시설인지 관련시설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원전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은 ‘부지 내 저장’이 영구처분장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