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마다 새 가지에 한암스님
한 스님이 경청선사께 묻기를 「새해 아침에 도리어 불법이 있습니까?」 사가 이르시되 「있느니라.」 스님이 이르되 「어떤 것이 신년 들어 불법입니까?」 사가 이르시되 「설날 아침에 복을 비느니라.」 스님이 이르되 「스님께서 말씀해 주심을 사례하나이다.」 사가 이르시되 「경청이 오늘 손해 봤도다.」 또 한 스님이 명교선사에게 묻기를 「새해 아침에 불법이 있습니까?」 사가 이르시되 「없느니라.」 스님이 이르기를 「해마다 좋은 해요 날마다 좋은 날인데 어째서 없습니까?」 사가 이르시되 「장씨노인이 술을 먹었는데 이씨노인이 취했느니라.」 스님이 이르기를 「도도하고 건방지더니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사가 이르시되 「명교가 오늘 손해 봤도다.」
뒷날 운문고선사(雲門杲禪師)가 이 이야기를 들어 이르시되 「이 두 존숙(尊宿)이 하나는 높고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섰으되 이마를 드러내지 않았고 하나는 깊고 깊은 바다 밑을 향하여 다녀도 발을 적시지 않았으니 옳기는 옳으나 약간의 잘못됨이 없지 않도다. 오늘 저녁에 누군가가 고(杲)상좌에게 묻기를 「새해 아침에도 불법이 있는가?」 한다면 그에게 말하기를 「오늘 한 떼거리의 하인놈들이 찻방안에서 촌뜨기 노래와 덩더꿍이 춤으로 귀신을 롱(弄)하다가 점흉존자(點胸尊者)의 악심을 발(發)하게 하여 발우봉(鉢盂峰)을 잡아 한번 던져 항하사 세계 밖으로 지나가니 교진여(憍陳如)가 놀라서 허겁지겁 노주(露柱)를 거꾸로 타고 외고집 선객의 코구멍으로 뛰어 들어가 서주(舒州)의 천주봉(天柱峰)을 쳐서 거꾸러뜨리니 안락산신(安樂山神)이 참다 못하여 뛰쳐나와 존자(尊者)의 가슴을 잡아 주저앉혀 이르되 「존자는 이미 아라한이라 불리우니 삼계이십오유의 진노(塵勞)를 벗어났고 분단생사(分段生死)를 초월했거늘 어째서 아직도 허다한 무명이 있는가.」
그 한 질문에 존자는 정신(精神)이 어지러워 다시 불전(佛殿)으로 돌아와 세째 자리에 앉아 여전히 가슴을 두드리고 팔뚝을 두드리면서 말하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한다」 하고 이어 스스로 말하되 「그만두라, 고상좌야 새해 아침에 불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허공에서 곤두박질 치면서 헛소리로 사람을 속이는가?」하고 양구했다가 말하되 「고상좌가 오늘 손해를 보았도다.」하시니 이 위의 세 존숙의 답화가 각각 출신처가 있어서 기특한 중에 다시 기특하고 미묘한 중에 더욱 미묘하나 자세히 점검해 보면 평지 위에서 마을 남녀들을 미치게 하여 마칠 날이 없도다.
오늘 어떤 사람이 한암에게 묻기를 「새해 아침에 불법이 있습니까?」 하면 곧 그를 향하여 말하되 「오대산 위에 그물을 치리라」하리니 만약 어떤 이가 이 말을 알면 일생 동안 참구하던 일을 마치리라. 비록 그러나 요즈음 이 도리에 그러한 사람을 얻기 어려우니 시절이 그래서인가 숙명적인가 또한 어찌하겠는가. 또한 기억하건대 심문분선사(心聞賁禪師)가 경청ㆍ명교 양 존숙의 화제에 대하여 송하기를
七寶盃酌葡萄酒(칠보배작포도주)하고
金華紙寫清平詞(금화지사청평사)로다.
春風靜院無人見(춘풍정원무인견)하니
閑把君王玉笛吹(한파군왕옥적취)로다.
이 게송을 자세히 해석하자면
칠보의 보배잔에 포도주를 마시고
금화지(金華紙) 위에다 청평사를 쓰노라.
봄바람 고요한 후원에 보는 사람 없으니
한가히 군왕의 옥피리를 분다.
하셨으니 이 게송에 무한한 취미와 기권(機權)이 사람의 흉금을 서늘케 하고 여흥이 진진하여 한번 읽으면 일체 진로망념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하여 자연히 적양화(摘楊花) 소식을 얻는 줄 알지 못하거니와 다시 한번 살펴보면 바람 없는데 파랑을 일으킴이며 일이 없는데 일을 만듬이라, 어찌 이렇듯이 낭자한고. 한암이 또한 게송이 하나 있느니 기권 의미는 비록 옛사람의 송에 미치지 못하나 직절현현(直截顯現)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가 쉬우니 시험으로 대중께 들어 바치려 하노라. 게송을 이르되
舊歲(구세)는 已隨石猿去(이수석원거)하고
新年(신년)은 暗逐木鷄來(암축목계래)라
時人(시인)은 善聽木鷄聲(선청목계성)하고
更莫戀顧石猿才(경막연고석원재)어다.
이 게송도 한번 다시 해석할 것 같으면
옛해는 이미 돌잔나비를 따라갔고
새해는 가만히 나무닭을 좇아오는지라
지금 사람은 나무닭의 소리를 잘 들으시고
다시 돌잔나비 재주를 생각하여 돌아보지 말지어다.
비록 이렇게 보기는 쉬우나 이 게송이 지는 문이 둘이 있으니 만약 누가 가려내면 네가 친히 조사를 친견했다 하리라. 알겠는가. 한암이 오늘 손해를 보았도다.
(『禪苑』 제4호, 193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