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식 선생의 조카 신영호(申英浩) 1919년 청주 소년 독립만세운동과 강직한 정의감
2025년 3월 1일
신규식 선생(1880-1922)의 조카 신영호(申英浩, 1902-1947)는 1919년 16살 어린 나이에 청주에서 소년들을 이끌고 독립만세운동을 가장 먼저 일으켰습니다. 일본 순경에게 붙들려가서도 일본 순경이 누가 시켰는지를 자백하라고 공갈 협박하고 유혹하였으나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신영호는 “나는 내 마음에 따라 행동하였으니까(我行我素) 나를 협박하거나 구슬려서 자백을 받겠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또 누가 시켜서 행동하지 않았소!”라고 말하고 순경의 협박과 유혹을 강직하게 곧바로 거절하였습니다.(直折)
신영호는 1년 징역을 마치고 출옥하던 17살에는 감옥 관원이 그에게 다시는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서약할 것을 협박하였습니다. 신영호는 끝까지 굽히지 않으면서(掘強) 서약하지 않고 “당신들이 내 생각(志)을 빼앗기는 어려울테니까 당신들 마음대로 처리하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영호 선생은 어린 나이 16살에 일본인 순경의 협박과 유혹을 강직하게 곧바로 거절하였고 17살에는 자신의 생각을 완강하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그가 타고난 애국자라고 칭찬하였습니다.
1919년과 1920년 당시 험난한 세상에서 신영호 선생은 어린 나이에도 협박과 유혹을 강직하게 곧바로 거절하였다는 직절함(直折)과 자신의 뜻을 끝까지 지키려는 완강함(掘強) 두 가지를 지켜야만 지사(志士)라고 불렀고 애국심을 타고난 성격(根性)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신영호 선생이 직절하고(直折) 완강하게(掘強) 자신의 뜻을 지키면서 소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고 애국하였습니다. 직절하고 완강한 태도는 요즘 말로 말하면 정의감(正氣)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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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TV 뉴스를 보면서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대통령이 사람들 앞에서 이리저리 거짓말하고 종범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립니다.
이들은 진급시켜주겠다는 간사한 유혹을 강직하게 곧바로 거절하지(直折) 못하고 참여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리사욕에 빠져서 교묘한 거짓(巧僞)을 넘어 교묘한 사기(巧詐)를 치는 것입니다.
순자(荀子)도 인용하였듯이 “도리를 따르고 임금의 어리석은 말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從道不從君)
계엄 선포와 탄핵에서 가장 크게 잃은 것은 우리 사회의 정의감입니다.
다만 몇몇 사람들은 강직하고 정직하게 자백하였기에
우리는 정의감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어떤 나라 또는 어떤 왕조가 멸망할 때는 직접적인 원인이 행정 부패와 재정 적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행정 부패와 재정 적자에 앞서 사회에서는 정의감이 떨어지고(浮薄, 澆薄) 사람들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이 먼저 보입니다. 그래서 거짓(巧僞)과 사기(巧詐)를 물리치려고 사회 도덕심과 정의감을 회복하자는 말부터 나옵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신규식 선생과 신영호 선생 두 분의 직절하고 완강한 태도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 당시의 직절하고(直折) 완강한(掘強) 태도를 돌아보고
현재 정치사회에서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거짓(巧僞)과 사기(巧詐)를 물리치고
강직한 정의감(正氣)을 더 높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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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소년 애국자 출옥(幼年愛國者出獄)」
출처 : 『진단(震壇)』, 제11호, 한국기원 4253년(대한민국 2년, 1920년) 12월 19일
한국 청주(淸州)에 사는 신영호(申英浩)는 올해 17살이며 지난해 청주군(淸州郡)에서 소년들을 주동하여 가장 먼저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에 붙들려갔다.
일본인 관원이 그의 나이가 어리니까 공갈 협박하고 또 살살 구슬리며 누구의 선동을 받았는지를 자백하면 당장 풀어주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신영호는 자백하지 않고 “나는 내 마음에 따라 행동하였으니까 나를 구슬리겠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또 누가 시켜서 행동하지 않았소!”라고 말하고 관원의 유혹을 강직하게 곧바로 거절하였다. 일본인 관원은 결국에 징역 1년을 판결하였고 지난달(11월)에 만기 출옥하였다.
감옥 관원이 그에게 다시는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서약할 것을 협박하였으나 신영호는 끝까지 굽히지 않으며 서약하지 않고 “당신들이 내 생각을 빼앗기는 어려울테니까 당신들 마음대로 처리하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일본인 관원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소년은 타고난 애국자라고 많은 사람이 칭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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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年愛國者出獄」
『震壇』(週報),第十一號,韓國紀元四千二百五十三年(民國二年,1920年),12月19日
韓國淸州居住申英浩君,今年十七歲,上年在本郡揮動少年,首唱獨立萬歲。爲日警捕去,吏因其年幼,恐嚇緩誘,使其自白爲人所煽,當即釋放。申君不肯,以爲“我行我素,願無我誘!亦無被動。”直折應對。日吏遂判役一年,去月滿期出獄。獄吏更迫誓再不行動,申君掘強不欲,以爲“我志難奪,任爾處置!”日吏亦無奈,而該少年根性愛國,莫不贊歎云。
참고 자료︰
直折 剛折︰
折挫不撓, 百折不撓, 百折不回, 百折不屈에서 折은 상대방을 挫折시킨다 또는 상대방을 꺾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直折應對”는 곧바로 상대방의 각가지 응대를 꺾어 거절한다는 뜻입니다. 당장에 곧바로 꺾어 거절하려면 평소에 강직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剛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齊宣王之自言其好貨好色之疾,孟子不直折其所好,乃就其所好而爲之說也。
『荀子』,「臣道篇」第十三︰
忠信而不諛,諫爭而不諂,撟然剛折端志而無傾側之心,是案曰是,非案曰非,是事中君之義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