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원한 봄날이에요:)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나누는 글인데, 까먹고 있다가 이제야 올리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잊지 않고 부지런히 나누고 밝히며 살겠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이 내게 남긴 얼_*오심즉여심
*오심즉여심: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뜻으로, 한울님과의 대화에서 한울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근본에서 서로 같음을 이르는 말
자치를 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은 얼과, 스스로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_25.04.08 대안과 전환 철호선생님
독립학습을 나와 삶의 주인으로 서가는 때 보내며 나의 중심, 얼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흔들리고 있는데, 배운 것들, 함께 꿈꾸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얼밝히는 공부에 간절했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하게 된 첫 수업에서 ‘사람은 뜻으로, 얼로서 사는 존재이다. 얼 밝혀왔던 사람들의 삶을 공부할 때 나의 얼도 밝혀질 수 있다.’ 는 말씀을 들었다. 나의 얼이 무엇인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흔들리는 우리들에게 얼밝히며 살아간 사람들의 걸음을 알아간다는 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아가는 과정-나에게 내려주신 소명을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공부하며 배우는 사건들, 사람들 앞에서, “저것이구나..! 가슴이 쿵쿵 뛰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나는 무엇을 신앙하며 살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묻고, 느끼며 꿈틀거리는 마음 있었다.
그렇게 삶을 배워가는 공부 속에서 언제부터인지 뜨거운 마음 있었다. 꺼지지 않는 그들 삶의 불꽃이 지금까지 닿았던 건지. 그렇게 나의 얼을 확인하고, 그들의 불꽃을 자꾸 내 가슴에 옮겨 붙이면서, 꺼질 때마다 찾고 구하고 배우고.. 그렇게 끝없이 밝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나의 얼을 찾아서, 그 얼을 지키며, 내 삶 속에서 이어받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얼로서 사는 삶이고 진정 살아있는 삶일 테다.
얼 밝혀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함께 공부하며, 저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을 만났다. 내가 처음 만난 분은 의암 손병희 선생님이었다. 손병희 선생님은 1861년 조선에서 태어나, 1922년 일제강점기 때 돌아가신 분으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셨다. 선생님의
*도호인 의암은 옳을 의, ( : 1.옳다 2. 의(義) 3. 뜻 4. 은혜) 자에, 암자 암, 우거질 암( : 1. 암자(菴子) 2. 우거지다 3.초목이 무성함 4.깨끗한 대쑥) 자이다. 의암의 뜻을 떠올려보며, 의로운 암자라는 의미로 와닿기도 했고, 은혜가 우거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은 그 이름처럼, 깨끗한 대쑥 같은 뜻 하나를 품고 한 생을 사셨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초롱초롱한 두 눈을 가진 호걸 소년에서, 동학에 입도해 매일 3만 번의 주문 수련과 짚신을 삼으며 정진하셨고, 해월 선생님의 아끼는 제자가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전봉준과 의형제를 맺으며 최전선의 지도자로 싸웠고, 동지인 전봉준이 전사하고, 동학농민혁명이 일제에 의해 끝나자, 해월 선생님을 모시고 정부의 눈을 피해 사셨다. 그리고 해월 선생님이 돌아가시자 동학 제3 주교가 되어 동학을 짊어지고, 망명하며 사랑하는 제자들, 수족들의 배신에도 꿋꿋이 동학-*천도교를 지켜내셨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천도교 활동뿐만이 아니라, 새 세상을 만들어갈 주체를 기르는 교육 운동을 했으며, 같은 뜻 품고 일하는 수많은 조직들(기독교, 천도구국단,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대하며 자금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3.1 운동을 준비하고 일으켰다. 독립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언제까지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런 선생님의 삶을 읽으면서, 점점 더 마음이 아팠다. 뜻을 품고 산다는 게 무엇인가, 어떻게 저렇게 고된 것인가, 저렇게 몸 마음이 다 찢어지는 것인가. 그 거친 풍파 속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을 삶의 무게는 대체 어땠을까, 그럼에도 한 뜻 품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 이야기해오는 이들에게 베풀고 또 베풀었던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의’라는 것이, ‘뜻’이라는 것이 ‘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마음이 들었다.
3주 동안 선생님의 삶을 책으로 읽고 공부하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넌지시 말씀하셨던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형무소에서 받으셨던 가혹한 고문과, 생활에 몸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시고, 의식이 거의 사라졌을 때에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몸이 안 좋아지신 뒤여서 독립을 보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눈을 감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한 ‘나를 좀 일으켜 주게. 내 보여줄 것이 있네....*춘암, 내 어깨를 손으로 좀 만져보시오. 어떻소? 보통 사람의 어깨와.. ’ ‘좀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그럴 것이오. 춘암도 잘 알지만은 내가 20년 가까이 해월 신사를 모시면서 가마 앞 채를 혼자 매었소. 나도 사람인지라 힘이 들 왜 들지 않았겠소. 꾹 참고 말 한번 한 적이 없소. 아직 굳은살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오.’
*손병희 선생님의 다음 찬도교 교중인 박인호 선생님의 도호)
그 어깨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생각하며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고, 계속 선생님의 어깨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선생님 마음의 어깨 또한 다른 이들과 달랐을 것이다. 거치디 거칠었던 그 세상에서, 얼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단단해지고 또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의암 선생님은 통합의 지도자였다. 한 뜻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누가 하든지 간에 두 팔 걷고 나서 함께했다. 독립선언서를 읽고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에도 ‘우리도 단결하여 독립의사를 발표하니 너희들도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의사를 발표하라’ 고 말씀하시며 국민들의 주체성을 강조했고, “사람들이 배우지 못해서 세상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일구어갈 주체들을 길러내기 위해 오래도록 교육운동을 해오셨다. 3.1 운동이 민족해방을 목표로 계층, 신분, 성별, 지역, 종교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범민족적으로 전개된 민족혁명이 될 수 있었던 그 중심에도 (우리의 운동은 범민족적인 차원에서 비폭력적으로-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뜻이 있었다.
3.1 운동을 공부하며, 종교나 조직, 성별, 계급.. 그 어떤 구분 없이 뜻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선생님의 걸음을 배우며 뜻 속에서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시는구나, 느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과 같다는 걸 알고, 내가 걷는 걸음이 이 뜻 속의 동지들과 함께 걷는 걸음임을 다 아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과 한 얼 속에, 한 뜻 속에 있다면, 시 공간을 넘어서서 지금 우리의 걸음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함께 걷는 걸음을 깨달으면, 내 삶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게 된다. 홀로 있어도 홀로가 아니게 된다. 외롭지 않게 된다. 살아있는 얼 속에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과 선생님들을 깨닫게 된다.
그가 나의 동지 이듯이 나도 그의 동지가 되고 싶다. 그 누군가의 어깨를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얼을 밝히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