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계해변의 돌침》 — 삶을 일으키는 석침
石(돌 석)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 온 단단한 존재다. 針(바늘 침)은 바늘처럼 몸을 자극해 잠든 감각을 깨운다는 뜻이다. 석침(石針)은 글자 그대로 돌바늘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의 돌을 밟으며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는 의미로 쓴다. 돌침, 곧 돌로 몸을 깨우는 일이다.
돌침은 거창한 치료법이 아니다. 자연의 돌을 밟으며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걸으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의 지혜다. 안전을 위해 처음에는 부드러운 모래나 작은 자갈 위에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강한 자극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발끝에 닿는 온도와 압력,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천천히 알아차리는 일이다.
이러한 돌침을 경험하기에 신안 자은도 분계해변만큼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올 때마다 새롭고, 바라볼수록 정겨우며, 오래 머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사랑과 은혜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조용히 사람을 품어 안는다. 자갈과 굵은 모래 위에 맨발을 내려놓으면, 오래 잠들어 있던 발바닥의 감각이 파도처럼 천천히 되살아난다.
분계해변은 작고 아담하다. 작은 자갈과 굵은 모래, 여인송과 해송 숲이 어우러진 풍경에는 여인송에 깃든 그리움과 사랑의 이야기가 오래 배어 있다.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걸으면 서로의 온기가 손끝으로 번지고, 숲과 바다가 품은 정취도 한층 깊어진다.
어머니 품이 그립거나 세파에 지쳐 문득 고향을 떠올리는 이에게도 이곳은 조용한 안식처가 되어 준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해변을 걷다 보면 가슴 깊이 쌓여 있던 피로는 모래알 사이로 스며들 듯 서서히 가라앉는다.
솔숲 사이로 번지는 은은한 솔향이 걸음마다 깊이를 더한다. 돌밭에 들어서면 차갑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발바닥을 조심스럽게 건드린다. 바다는 멀리서 낮게 숨을 쉬고, 발밑의 돌들은 말없이 몸의 문을 두드린다.
처음에는 “아아, 아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낯선 감각에 몸이 움찔하고, 한 걸음 내딛는 일조차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조금 지나 발걸음의 리듬을 찾으면 “아휴, 아휴” 하던 탄식도 어느새 호흡처럼 잦아든다. 맨발에 닿는 돌의 감촉은 선명하고 짜릿하다. 아픔과 깨어남의 경계에서 몸은 오래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만난다.
돌은 크기와 모양, 색과 결, 온도와 촉감이 모두 다르다. 둥글고 매끈한 돌, 거칠고 울퉁불퉁한 돌, 햇볕을 머금어 따뜻한 돌, 파도에 젖어 서늘한 돌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발바닥에 말을 건넨다. 한 걸음마다 감각이 깨어난다. 발가락을 벌리고 몸의 중심을 낮추면 그 느낌은 종아리와 무릎을 지나 허리와 머리끝까지 잔잔하게 번진다. 어느새 온몸의 균형이 걸음 속에 실리고, 몸은 바다의 리듬을 닮아간다.
걷다 보면 발은 돌의 결에 서서히 적응한다. 처음에는 피하고 싶었던 돌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발걸음을 이끄는 작은 이정표가 된다. 발바닥은 돌의 모양을 기억하고, 몸은 그 기억에 맞추어 조용히 자세를 고친다.
본래 분계(分界)는 땅과 바다가 나뉘는 경계를 뜻한다. 그러나 맨발로 돌밭을 딛고 파도 소리를 마주하는 순간, 그 경계는 물결처럼 조용히 흐려진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몸과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침내 굳게 잠긴 마음의 빗장마저 스르르 풀린다.
분계해변의 부드러운 곡선과 여인송에 깃든 사랑과 그리움, 파도가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가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솔숲의 향기와 자갈 구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걷는 이는 어느새 선계(仙界)에 들어선 듯한 고요를 만난다. 바람은 옷자락을 스치고, 햇빛은 돌 위에 작은 은빛 조각을 남긴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음은 하나둘 잦아들고, 낯설었던 자극은 맑은 깨어남으로 바뀐다. 걸음은 가벼워지고 몸의 균형도 돌아온다. 걷기는 자연스럽게 호흡을 고르는 명상이 된다. 자연을 밟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잠시 멈추어 삶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발바닥을 통해 조용히 알려 준다.
“이제 깨어나렴.”
돌의 모양과 결, 온도와 촉감은 걸음마다 다른 느낌과 깨달음을 건넨다. 솔향과 파도 소리, 자갈의 감촉이 한데 어우러지는 동안 몸과 마음은 서서히 깨어난다. 그 끝에서 오래 묵어 있던 감정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조용히 닫혀 있던 삶의 문이 바람 한 줄기처럼 다시 열린다.
돌침,
돌을 밟아 발을 깨우고,
발을 통해 몸을 깨우며,
몸의 감각으로 마음을 맑게 하고,
마침내 삶을 다시 일으키는 자연의 사랑과 은혜다.
而之 金永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