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 1956)는 유럽에서 셰익스피어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독일 극작가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패전 후 서독이 아니라 동독을 자신의 모국으로 선택하였다. 그는 사회주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 지식인이었다. 1953년 6월 16~17일 양일간 있었던 동독 시민들이 봉기에서 겉으로는 시민들의 행동을 견제하면서도, 안으로는 권력의 폭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브레히트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코리올라누스’를 재해석하는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를 완성하지 못 하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의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적국(볼스키족)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귀족들은 그를 집정관(최고 권력자)로 만들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에서 민중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코리올라누스는 광장에서 로마 군중들에게 자신을 들어내고 환심을 사는 몇 마디 연설만 하면 됐다. 그러나 그는 군중들을 변덕스럽고 무지한 존재로 보고 이를 거부했다. 로마 민중들과 호민관들은 이에 반발하여 그를 추방해 버렸다. 분노한 그는 적국의 적장인 아우피디우스와 손을 잡고 로마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의 어머니 볼룸니아의 설득으로 이를 포기하게 된다. 그는 결국 적장의 손에 살해당하게 된다. 세익스피어는 배신의 배신을 거듭한 전쟁 영웅의 비극적 삶에 촛점을 맞춘 극을 썼다고 한다. 브레히트는 이를 재해석하여 어떻게 표현하려 했을까?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는 동독에서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반공산주의 시위였다. 1949년 독일이 분단된 후 동독은 소련의 지원 아래 공산당 1당 독재, 비밀경찰 감시, 언론.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1950년대 초, 식량부족, 소비재 부족으로 생활수준이 떨어지고, 노동 강도는 증가하였다. 1953년 6월에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은 유지하면서 생산량 10%를 올릴 것을 요구하자 16일에 노동자들이 노동 할당량 철회, 생활 조건 개선등을 내걸고 시위에 나섰다. 이튿날 시위는 정치봉기로 발전하여 100만 명이 참여하여 자유선거 실시와 정부 퇴진, 정치적 자유 보장과 공산당 독재 종식을 요구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소련군의 탱크를 투입하여 진압에 나서고 봉기는 하루 만에 진압되었다. 최소 50명 이상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고. 만여명이 체포되었다.
귄터 그라스
(1927~2015)는 당시 브레히트에 비견되는 서독의 비판적 지식인이자 작가로서 이 봉기에서 취한 브레히트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는 희극을 썼다. 초연은 1966년 그의 나이 39세였다. 상황은 봉기날 브레히트(단장으로 표현)가 ‘코리올라누스’ 희곡을 연습하는 극장 무대에 노동자들이 난입해서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극장의 단장으로 쉽게 민중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다. 이후 봉기가 진압되고 정부의 대변인이 찾아와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요구하자, 또한 이를 거부한다. 그라스는 여기에서 지식인의 정치적. 윤리적 딜레마를 표현하려했다. 이 극은 독자들에게 '민중과 권력, 지식인의 침묵과 책임, 예술과 현실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김창활(金昌活)
이라는 분이 이 극을 1975년 5월에 출판하였다고 한다. 이 때가 중요하다 당시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강력히 시행되던 시기였다. 74년 08월에 문세광 저격사건, 민청학련 사건. 75년 4월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당하는 희대의 사법살인이 있었던 때이며,긴급조치9호가 발효되었고, 75년 4월 11일에는 서울대생 김상진이 이에 항거하여 할복자살을 하였다. 한마디로 엄혹한 시절 검열에 걸려 제대로나 출판되었지 의심스러운 이 희극을 대한민국 한 지식인이 번역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분은 이 희극을 통해 지식인의 행동을 촉구하고 반정부 투쟁의 일환으로 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알모서점 낭독 모임
나는 이 극을 일산 알모서점에서 진행하는 희곡 낭독모임의 발표를 보고 알았다. 낭독의 신선한 모습이 흥미로웠지만, 사실 인류의 독서 역사에서는 지금의 홀로 암독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서 형태이다. 특히 전문 배우가 아니라 열정적인 독서 시민들이 모여 서로 기운을 돋워가며 좋아 죽겠다는(^^) 모습이 하나의 1박 2일 추억여행처럼 보여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분들은 원본의 오역을 바로잡고, 직접 원전을 재해석하고, 오늘날의 언어로 부드럽게 교정하는 놀라운 기술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속한 책마을에서는 이 분들을 초대하여 같이 낭독의 즐거움을 공유했는데, 역시 희극은 현장에서 들어야 그 감동이 배가 되며, 사전 독서를 통해 그 맥락을 이해할 때 몰입감이 최고가 됨을 깨닫게 되었다.
단장과 인민작가
결국 귄터와 번역자 김창활님이 이야기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봉기에 적극 반대하여 권력의 편에 선 인민작가(코상케)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진압 후 단장에게 서명을 요구하는 그에게 단원들이 헤겔과 칸트도 모르는 통속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하하자, 이에 격분한 그는 공산당 테제들을 떠들어 대며 이래도 내가 모른다고 외쳐댄다. 여기서 우리는 헛똑똑이 지식인의 달을 못 보고 손가락만 보는 우를 보게 된다.
단장은 인민작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민중들의 요구를 못 들어 준것에 사과하는 듯 싶다. 또한 그러함으로써 민중 봉기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장은 희극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코리올라누스를 역사적 사실 그대로 몰락시키는 것으로 종결했던 세익스피어와는 달리, 민중에게도 책임이 있고 각성해야 하는 존재로 민중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은 아닌지 싶다. 단장은 코리올라누스를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몰락시키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극자체를 무대에 올리는 것을 포기한다.
단장을 코리올라누스였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동독 시민(로마민중)들에게도, 적국(권력)에게도 버림받고 결국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장군의 모습이 바로 단장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단장은 그대로 코리올라누스를 몰락시키는 것으로 끝내면 되는데, 왜 코리올라누스가 우리를 몰락시키는 것이라고 했을까? 그건 아마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못한 지식인의 자책이고, 그 표현이 귄터의 브레히트에 대한 비판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권력자와 나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항상 이렇다. 내부의 혼란을 틈타 외부의 적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우리의 의식을 발목 잡는 그 외부의 적이 사실은 내부의 권력자들의 영화를 누리게 하는 꽃놀이패는 아닌지. 그 적대적 공생하에서 우리의 모순적 삶이 노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그 관계에서 행하고 있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실제 의도를 간파하고,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는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