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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고향과 시대를 진정성으로 채색한 풍경화
- 김명남의 시 세계
[1]
그는 우연히 만난 동지였다. 동지!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려는 고풍스런 그 이름이여! 허무하게도 세월의 격랑 속에 침전되어버린, 다소 낭만적이면서도 비장한, 은근히 무겁고도 자랑스러운 한때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울렸다.
때는 바야흐로 막연하게 들뜬 국민들의 정신을 몽롱하게 다 녹여버릴 듯이 온 나라가 올림픽 열기에 매몰되어가던 1988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마치 조국 대한민국의 명운을 송두리째 건 듯한 그 미증유의 광기를 감히 그 누가 거역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미미하게나마 역사는 항상 반역을 잉태해왔으니, 경인 지역의 교사들 몇몇이 감히 그 열기에 맞서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의기투합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교사문학’이라는 동인의 탄생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 남루한 교육 현장에 대한 울분과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 시대의 우울을 참지 못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작은 외침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묵이여』(1989), 『너에게 묻고 싶은 봄이 있다』(1996) 등의 수상한 외침이 연이어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아주 미미하나마 예기치 못한 파문이 다소간 일었다. 다시 『반성문은 필요없다』(1997)라는 세 번째 돌멩이가 그 이름도 불순하게 던져졌다. 그런데 그 외침 속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낯선 이름이 끼어 있었다.
“저 유서 깊은 강릉 소나무의 청정한 향기를 풍기며 김명남 선생이 새로운 식구로 가세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나태해진 감성에 일대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올 그 활력이 내심 기대된다.”라고 서문을 빌어 동인들은 일제히 그를 환영했다. 처녀작으로 짐작되는「들꽃 1」외 8편의 시를 수줍게 선물처럼 들고 그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부러울 정도로 화안한 미소와 서글서글한 눈매와 훤칠한 키를 지닌 싱그러운 신인이었다.
그 후 그는 비슷한 울분으로 만난 또래의 많은 시인들과 차분하게 교분을 쌓아가며 울분을 구체화시켜나갔다. 2002년 겨울쯤인가 모르겠다. 정세기, 허완, 박일환, 김형식 시인 등과 휩쓸려 경주 감은사지와 동해 등지를 두루 둘러보는 유람길 끝에 강릉 명주군에 있는 김명남 시인의 생가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게 되었다. 무릇, 품어 기른 고향의 자연을 보면 그 속에서 자라난 사람의 품성을 짐작할 수 있을 터, 당간지주로 유명한 굴산사지가 있는 유서 깊은 옛 명주 고을 산자락 아래 아늑하게 펼쳐진 들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농가에는 순박한 인정 넘치는 부모님들이 살고 계셨다. 우리는 그의 그 아름다운 고향과 인자하신 부모님과 유복해 보이는 환경을 내심 부러워하면서 꽤 오랫동안 그와 어울렸다. 한 마디로 그는 소탈하고 순수해 보였다. 간혹, 문학이나 시를 세속적인 명리를 얻기 위한 삶의 방편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이들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그만은 한결 같았다.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불륜을 꿈꾸어 왔던 것이
아무 대답없이
마치 시처럼 소설처럼 영화처럼 정치처럼
하늘거리는 가랑잎 우수 떨듯
세찬 폭풍우에 젖은 날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다 속으로 희망없이 처박힌 비둘기떼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갈 순 없지 않은가
몸속 惡氣가 살아날 때쯤
피는 맑아지리라
쉼없이 사랑하리
원수처럼 사랑하리라
무덤이 허락하는 날까지
아무도 모르게 가슴에 묻고 갈 업보가
눈물처럼 시리다
-「내가 나에게」전문
그가 초기 모임에서 내민 서시 같은 자화상이다. 마치 윤동주의 서시를 연상하게 하리만치 비장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근원적 의식의 지향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소한 모순마저도 묵과할 수 없는 그의 심성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맑고도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불륜’은 순수한 삶에 대한 역설적 실천 의지이며, ‘惡氣’는 모순으로 가득 찬 동시대 현실과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저항 의지일 것이며, ‘눈물’은 간절하고도 비장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여기서 사랑은 삶의 진정성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하늘 아래에는
자신의 가시밭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들꽃이 있단다
생각해보렴
너가 그 들꽃이라고
이제 그 들꽃이 되어 보지 않으련
-「들꽃」전문
마치 또 하나의 서시 속편을 보는 듯이 명징한 느낌을 주는 이 시는 그의 삶과 문학의 지향점이 애초부터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하는 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 준다. 당시 반민중적이며 반민족적인 부정한 권력이 양산해내는 모순이 대중들의 삶을 부패시키며 황폐화시키던, 마치 ‘가시밭길’과도 같은 동시대 한복판을 회피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걸으며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결의가 간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여기서 들꽃은 풍찬노숙(風餐露宿)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으로서 장차 시인이 지향해 나갈 삶의 풍향계와 동일시되고 있다.
[2]
최근 김명남 시인이 첫 시집을 발간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속에는 초기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거의 10여 년 동안 시인이 축적해온 삶과 문학에 대한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옛 동지를 다시 만난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 시집을 읽었다. 그리고 과거의 내 생각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만난 것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삶의 진정성에 대한 옹호였다.
시집 『시간이 일렁이는 소리를 듣다』(2010)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풍경과 관념이다. 그리고 풍경은 다시 가족과 고향, 시대 현실로 양분된다. 우선 그가 포착한 동시대의 가장 친근한 세부 풍경은 무엇보다도 가족과 고향이다. 그에게 가족은 곧 고향이며 의식의 뿌리이다.
시인의 시집에는 가족을 소재로 한 <옥시끼>, <하루를 삼키다>, <추석은 없다>, <IMF 시대의 소>, <화려한 인생>, <농부의 명함>, <번개시장>, <어머니 2>, <흙편지> 등의 시편들이 즐비하다. 그는 이들을 통해 고향에서 힘겹게 생계를 영위해가고 있는 부모님의 누추하고 고단한 일상을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것은 단순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가족애가 아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부모님은 소외계층으로서의 농민의 표상이다.
IMF 구제금융으로 사료공장이 문 닫아버리고
그나마 재고까지 바닥나서 사료를 못 구했다며
농협에 다녀 온 아버지는 고개를 떨군다 //
나라살림이 외채상환에 시달린다는 것
마구에 있는 소 배창자까지 주름지게 한다
이젠
마굿간 소까지 달러를 구하러 가야 한다
- <IMF시대의 소> 부분
지게작대기와 바지랑대가 새벽빛 틈새로 서로 눈짓하는 사이
꼬챙이로 툭 건들면 몸을 돌돌 마는 고추벌레처럼
호박 고추 당근 가지 비듬나물 옥수수 손톱이 빠져라 깐 콩 감자 푸새것들
어머니의 손길 따라 번개시장에서 몸을 비틀고 있다 //
어머니의 손톱은 자라지 않았다.
- <번개시장> 부분
시인은 부모이자 농민인 시적 주체들의 “고개를 떨구고 비틀린” 삶의 애환을 통해 우리 시대 소외 계층의 왜곡된 삶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자 한다. 더욱이 배경이 실제 현장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고,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 되고 있다. 단적으로 배창자까지 주름질 정도의 궁핍에 직면해 있고, 손톱이 자라지 않을 정도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동시대 농민들의 삶은 일견 눈물겹기만 하다. 아울러 순박하고 우직한 민중들을 이토록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는 정책 당국이나 권력에 대한 냉소와 울분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게 된다.
한편, 이토록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 부모님들의 현재는 어떠한 모습일까? 먼저 아버지는 “순전히 농사만으론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 게 힘들어 막노동판에서 품을 팔거나 미장이 방수쟁이”(<농부의 명함>)가 되었다. 한편, 어머니는 “정강이가 으깨지고 / 어깨가 부서지고 / 손에는 볏이 돋은 듯 / 이젠 관절염과 골병으로 늙음마저 저당 잡혀 / 팔이 떨어져나갈 듯한 통증에 / 냉장고 문도 못 여시는 / 부들 같은 당신”이 되어 “황혼의 볕뉘마저 쓸어내며 저물어가고”(<어머니 2>) 있다. 한 평생 우직하게 천직으로 종사한 농사가 보상은커녕 농민을 배신하여 퇴출시키고, 회복 불능의 정신적 ․ 육체적 병만을 안겨준 이 기막힌 현실 앞에 화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울분을 내면 깊숙이 곰삭힌다.
어머니, //
지금쯤 집 앞 담벼락엔 주홍빛 능소화가 한창이겠군요? 마당가에는 꽃 진 철쭉이며 영산홍, 영롱하게 서 있는 백일홍도 묵묵하지요? 고향집 들판엔 벼가 푸르게 물결치고 흙내에 싸인 어머니의 손은 더욱더 분주하겠군요. //
가난한 논바닥에 철썩 붙은 개구리밥마냥 이젠 살붙이가 된 관절염도 여태지요? 아들자식 하나 있는 게 멀어서 더욱 소슬하지는 않으신지. //
이마주름은 햇살에 더욱더 자글거리고 뒷산등성이는 발에 더욱 익었겠네요. 어둠이 손등을 덮어야 쟁기를 손에서 놓고, 없는 찬으로 저녁 한 술 뜨시고 종일 고단함에 땀내 물씬한 몸을 뉘는, //
웃밭 감자 캘 때가 지났지요? 어릴 적 제 손톱에서 떠나지 않던 흙, 지금은 내 손에서 사라진 흙을 다시 줍고 싶군요. //
하늘에는 강판에 갓 간 감자반죽 같은 구름 서둘러 가네요. 저 구름도 고향생각에 저렇게 바람에 쫓기듯 서두르는가 봅니다.
- <흙편지> 전문
한 마디로 눈물겹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떨어져서 “살붙이가 된 관절염”과 더불어 “없는 찬으로 저녁 한 술 뜨시고 종일 고단함에 땀내 물씬한 몸을 뉘는”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은 “어릴 적 손톱에서 떠나지 않던 흙을 다시 줍고 싶”어 “강판에 갓 간 감자반죽 같은 구름”을 쫓아 고향 쪽으로 마음을 눕히는 그리움으로 반전된다. 연민이 그리움으로 향수로 발돋움해가는 시인의 의식 전환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직접적인 울분을 자제한 채 오히려 더욱 애절하게 그 모순의 공간인 고향을 그리워하는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가족을 배반하고, 그들의 삶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모순된 터전인데도 말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을 배신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모순된 정책을 양산하고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할 정책적 책무를 외면한 권력자들이기 때문일까. 그는 그 유형의 땅 같은 고향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애정이다.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누구보다도 몸소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시를 쓰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는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아픔을 함께 보듬고 누려나가자는, 진정 인간다운 삶의 초석이 되는 의식 공동체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나가자는 그의 처절한 호소력은 그래서 더욱 큰 생명력을 얻는다.
한편, <여찬리 눈바람>, <호미, 지게를 만나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추석 전날>, <찌그러진 마음을 펴는데 치루어야 하는 상실은 얼마쯤 될까>, <의약분업 제외약국>, <소>, <여찬리 서낭당> 등과 같은 시를 통해 시인은 고향에 대한 추억과 현실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우선 고향은 시인의 삶과 의식이 발아한 터전이다. “내 몸이 흙에 엎드리며 땅 속으로 스며들 때 나는 나의 숨결을 느꼈다 나는 살아있었다 오로지 흙을 위해서, 내 시퍼런 날로 인해 흙 속에 있는 씨앗이 꿈틀거릴 때 나는 숨을 쉬었다 내 온몸의 북돋움이 생명을 세우는 의미로 자라날 수 있었던 건(<<호미, 지게를 만나다>)” 바로 고향 덕분이다. 그러나 그 은혜로운 고향의 추억 저 편에는 여전히 “뭉치바람에 은결든 문풍지가 세월의 잔혹을 읽고, 밤새 눈보라가 꽃잎처럼 부서지는 소리에 가슴을 졸였던 부뚜막”(<여찬리 눈바람>)이 상처처럼 남아 있다. 또한 “불온한 혁명의 꿈을 간직한 유적 굴산사지 당간지주”(<굴산사지 당간지주>)가 있는 그곳은 지금 “한 해 농사 돌아볼 새 없이 날아든 농협 빚 독촉에 집집마다 소슬바람이 휘감고 시름빛이 깔린 겨울벌판이 되는 마을”(<찌그러진 마음을 펴는데 치루어야 하는 상실은 얼마쯤 될까>)로 전락해 있다.
저 쪽 지방방송 끄라는 혀 꼬부라진 소리가 들리고 모두 얼콰불콰 눈동자 풀린 너나 나나 왁자지껄 시끌벅적 동네방네 고래고래 신세타령이 등 뒤로 낙엽처럼 떨어진다 //
이미 喪主가 된 불알도 상주가 될 불알도 조용히 술잔 속에 낙엽 하나 띄워 메마른 숨결을 적신다 마음의 기슭까지 넘실댄다 //
영원히 봄일 것만 같던 우리들의 눈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폭압적인 여름을 지나 바람이 길을 트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겠다 //
짜식들의 가슴마다 추억들이 흐느끼고 있음을 알겠다 //
취한 나뭇잎 취한 전봇대 취한 도랑 취한 들길과 함께 둥근 보름달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허위허위 발길을 돌린다
- <추석 전날> 부분
‘불알친구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마치 토속적 풍경화의 완결판으로 불림직한 저 백석의 <여우난골ㅅ족(族)>을 연상시키리만치 구수한 입담이 정겹다. 그런데 자의든 타의든 헤어져 살아가고 있는 어릴 적 고향 동무들이 모처럼 모여 나누는 추석 명절 전야의 정담치고는 너무도 뒷맛이 씁쓸하다. “흐느끼는 추억”을 안고 신세타령을 낙엽처럼 뱉어내며 허위허위 살아가고 있는 부초 같은 인생들을 응시하며, 그 모태인 고향은 또 얼마나 아린 가슴을 밤새 쥐어뜯었으랴.
[3]
다음으로 그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풍경은 시대라는 거대한 세계이다. 시인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 현실이 바로 그것인데, 가족과 고향에서 발현된 작가의식이 그 외연을 넓혀 시대를 조망하고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적어도 시인이 편협한 이기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건강한 시선과 마음을 키워왔다면 말이다. 그가 사심 없는 마음으로 그려내는 정직한 풍경화는 그 소산일 것이다.
“그저 자본만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등쳐먹고 등쳐먹힌 이야기”와 “외부차량 주차금지라는 남 밀어내는 정신만이 거리를 떠도는”(<주부토로>) 곳이 바로 시인이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이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이곳에서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황량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2009년 1월 20일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용산이라는 곳에서 사람이, 뻔히 보는 사람 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몰아내며 죽이는 걸 보면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럴 수 있나 하겠지만 미치지 않고도 저럴 수 있는 게, 대한민국 사람 같은 개들인지, 대한민국 개 같은 사람들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안다고 또 그게 뭐 울화통만 터질 뿐이지만, 그런 식지 않는 분노가 있다고 또 저 개인지 개 같은 것인지, 개만도 못한 인두겁인지, 어찌하여 그런 빌어먹을 개들만 세상 떵떵거리는지, 아 대한민국은 이제 용산하면 미군기지도 전자상가도 아닌 용산참사라는 슬픈 언어만이 꽃떨기로 남아 있을지니
그들은 유년기 때 예감했을까? 나중에 자신들이 사냥개가 되어 평생 폭력자본을 위해 짖어대며 살아가리란 걸
- <아, 대한민국, 으깨진> 부분
이 시는 현 정권의 인권 정책과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거론되는 이른바 저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슬픈 증언이다. 시인의 의식은 권력과 결탁한 거대 폭력 자본의 횡포를 향한 가눌 길 없는 분노와 저주로 떨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시인이 시선을 돌리는 곳곳마다 풍경은 왜곡된 채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 “법을 법으로 보지 않으니 /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 백성을 백성으로 살피지 않고 / 땅을 땅으로 인정하지 않고 / 물을 물로 가만두지 않는”(<깨달음>) 시끌시끌한 나라에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법마저도 신뢰를 상실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태양이 넘어오지 못하게 / 사람들은 바다를 철책으로 가두었다 / 철책에 걸린 바다의 살빛은 먹빛이다 / 오늘 한낮의 햇볕은 아무리 공짜라도 즐기기엔 숨이 막힌다”(<38선 휴게소>)라는 신음을 뱉어내게 하는 분단의 풍경도 고통스럽기만 하다. “머나먼 땅 이라크에서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이 죽어 간다. 사막마저 모래폭풍으로 눈물을 덮는다 / 전쟁이 났다 / 일상의 숨통은 막혀 있다”(<저기, 하늘이 붉다>)라는 절박한 호소를 자아내는 풍경도 그를 갈등 속으로 추락시킨다. 이처럼 작게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회, 정치, 법, 조국, 인류 등등의 거대담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모순의 가면이 여지없이 벗겨지고, 왜곡된 실상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있다.
[4]
풍경은 비단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두루 포착한 세부 현실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정류하고 재구성하여 내면화한 것이 관념이다. 따라서 관념은 자신만의 공식이자 내부에 존재하는 창조적인 풍경화인 셈이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관념화에는 위험성이 따른다. 자칫 미완의 공식은 세계를 왜곡할 수 있으며, 어설픈 창조는 단순한 모방보다도 유치하게 풍경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김명남 시인은 이미 발표한 많은 시를 통해 적지 않은 관념의 풍경을 그려내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굳이 그것들의 성패를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현란한 기교가 깊이 있는 사유와 감동을 대체하고, 오로지 자신 만의 절대 쾌락을 위하여 골방에 갇혀버린 작금의 시들이 많은 독자들을 시로부터 유리시키고 있는 현 시기 우리 문단의 풍경 또한 우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는 건강하고 호소력 강한 김명남 시인의 시가 우리 문학의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내 시가 주머니 속에 곱게 잠든 손수건이 아니라 비바람 속에 숨을 팔딱거리는 찢겨진 깃발이 되길 바란다 //
나는 내 시가 나들이객들의 흥취로 물든 호수 공원이 아니라 목 타는 새벽 누군가 머리맡에 놓인 자리끼가 되길 바란다 //
나는 내 시가 햇물 든 단풍잎이기보다 종일 곤죽이 된 삭신을 지질 수 있는 구들장을 데우는 불쏘시개이길 바란다 //
비록 내 시가 밥도 국도 되지 못할지언정 삶의 경계선에서 마음에 쑥물 든 길손이 디딤디딤 쉬어가는 살피꽃밭이길 바란다
- <내 생애 가장 큰 것을 탐하다> 전문
혹여라도 비록 그 붓끝이 다소 투박하다 할지라도, 시대의 변덕스러운 유행에 다소 뒤처질지라도, 그 맑고 곧은 정신에서 발현되는 정서의 건강성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숭고하고 값진 것이리라. 하여, 나 또한 바란다. 무릇 시인이여, 뚜벅뚜벅 그대 길을 가라. 그리고 탐하라. 그대 생애 “가장 큰 것”을 마음껏 탐하기를. 그리하여 그대의 시대가 더 밝고 평화로워지기를, 더불어 그대가 그려내는 예언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그를 위하여 끝끝내 진정성이라는 무기만은 절대로 내려놓지 말기를.
- 『작가들』 35호 (2010.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