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조실록 > 세조 3년 정축 > 9월 12일 > 최종정보
세조 3년 정축(1457) 9월 12일(계유)
03-09-12[04] 이조의 건의로 각도 역(驛)의 관할을 조정하고 정역 찰방을 두다
이조에서 병조의 수교(受敎)한 관문(關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경기 양주(楊州)의 평구역(平丘驛)과 광주(廣州)의 덕풍역(德豐驛)ㆍ봉안역(奉安驛)ㆍ경안역(慶安驛)과 양근(楊根)의 오빈역(娛賓驛)과, 지평(砥平)의 전곡역(田谷驛)ㆍ백동역(白冬驛)ㆍ천녕(川寧)의 양화역(楊花驛)과, 여흥(驪興)의 신진역(新津驛)ㆍ안평역(安平驛), 충청도 충주의 가흥역(可興驛) 등은 부근의 경기좌도 수참 판관(京畿左道水站判官)에게 붙여서 맡아 다스리게 하되, ‘경기좌도 수참 전운 판관(京畿左道水站轉運判官) 겸(兼) 정역 찰방(程驛察訪)’이라 일컫고, 그 나머지 장림역(長林驛)ㆍ황강역(黃江驛)ㆍ연원역(連原驛)ㆍ오천역(吾川驛)ㆍ아천역(阿川驛)ㆍ유춘역(留春驛) 등은 수로(水路)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아울러 수참(水站)에 붙이는 것은 불가하나, 연원도(連原道)는 그대로 경기 충청도 정역 찰방(京畿忠淸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고, 경기의 오천역(吾川驛)ㆍ아천역(阿川驛)ㆍ유춘역(留春驛) 및 충청도의 장림역(長林驛)ㆍ황강역(黃江驛)ㆍ수산역(水山驛)과 황강도(黃江道) 소관(所管)의 모든 역도 또한 경기ㆍ충청좌도에 정역 찰방(京畿忠淸左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며, 양주(楊州)의 쌍수역(雙樹驛)ㆍ구곡역(仇谷驛)과, 가평(加平)의 감천역(甘泉驛)ㆍ달동역(達洞驛) 등은 경기ㆍ강원도 정역 찰방(京畿江原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고, 도원도(桃源道) 소관의 모든 역은 경기우도 정역 찰방(京畿右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며, 중림도(重林道)ㆍ동화도(同化道) 양도(兩道) 관하의 모든 역은 경기ㆍ충청우도 정역 찰방(京畿忠淸右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소서.
충청도의 이인도(利仁道)ㆍ시흥도(時興道)ㆍ금정도(金井道) 삼도(三道)의 모든 역을 한 도(道)로 통합하여 이인도(利仁道)라 일컫고, 율봉도(栗峰道)ㆍ증약도(增若道) 양도의 모든 역과 전에 경기ㆍ충청좌도 정역 찰방의 소관이던 괴산(槐山)의 인산역(仁山驛)과 음성(陰城)의 감문역(甘門驛)은 한 도로 통합하여 증약도(增若道)라 일컫고,
경상도의 창락도(昌樂道)ㆍ안기도(安奇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道)로 통합하여 안기도(安奇道)라 일컫고,
유곡도(幽谷道)ㆍ장수도(長守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장수도(長守道)라 일컫고,
김천도(金泉道)ㆍ사근도(沙斤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사근도(沙斤道)라 일컫고,
성현도(省峴道)ㆍ황산도(黃山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황산도(黃山道)라 일컫고,
소촌도(召村道)ㆍ자여도(自如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소촌도(召村道)라 일컫게 하소서.
전라도 제원도(濟源道)ㆍ오수도(獒樹道) 양도의 모든 역과 전에 삼례도(蔘禮道) 소관인 고산(高山)의 옥포역(玉包驛)과 영보도(永保道) 소관인 낙안(樂安)의 낙승역(樂昇驛)과 경양도(景陽道) 소관인 순창(淳昌)의 창신역(昌新驛), 옥과(玉果)의 대부역(大富驛) 등을 한 도로 합하여 오수도(獒樹道)라 일컫고, 삼례도(蔘禮道)ㆍ앵곡도(鷪谷道)ㆍ경양도(景陽道) 삼도의 모든 역과, 청엄도(靑嚴道) 소관인 장성(長城)의 단엄역(丹嚴驛), 진원(珍原)의 영신역(永申驛)과, 영보도(永保道) 소관인 보성(寶城)의 가신역(可申驛)ㆍ파청역(波淸驛) 두 역과, 흥양(興陽)의 양강역(陽江驛) 등을 한 도로 합하여 삼례도(蔘禮道)라 일컫고, 청엄도(靑嚴道)ㆍ영보도(永保道) 양도의 모든 역과 삼례도 소관인 임피(臨陂)의 소안역(蘇安驛), 함열(咸悅)의 재곡역(才谷驛)과, 앵곡도(鷪谷道) 소관인 부안(扶安)의 부흥역(扶興驛), 김제(金堤)의 내재역(內才驛), 고부(古阜)의 영원역(盈原驛) 등을 한 도로 통합하여 영보도(永保道)라 일컫고, 황해도의 기린도(麒麟道)ㆍ청단도(靑丹道) 양도를 통합하여 청단도(靑丹道)라 일컫고, 다 같이 역승(驛丞)을 혁파(革罷)하고 정역 찰방(程驛察訪)을 두게 하되, 그 찰방(察訪)의 고찰하는 모든 조건은 잇달아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주-D001] 정역 찰방(程驛察訪) : 조선조 태종 때 백성들의 형편과 지방 수령의 폭정(暴政)을 살펴보기 위하여 나라에서 각 역로(驛路)에 파견하던 3품 이하의 조정 관원. 세종 17년(1435) 이후로는 찰방(察訪)으로 동일하게 불리었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임창재 (역) | 1978
..........................
세조실록 > 세조 6년 경진 > 2월 5일 > 최종정보
세조 6년 경진(1460) 2월 5일(임자)
06-02-05[04] 병조에서 전국의 역의 정비에 대한 일로 아뢰니 따르다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여러 도(道)의 여러 역(驛)에 역승(驛丞)을 없애고 찰방(察訪)을 두고서 혹은 한 도, 두 도, 세 도, 네 도를 아울러서 하나의 도로 하였으나, 역로(驛路)가 너무 멀어서 때때로 순시(巡視)할 수가 없습니다. 또 역마(驛馬)를 타고 왕래하는 자가 한 도라고 생각하여 원근(遠近)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수일정(數日程)을 달려서 지나가다가 인마(人馬)가 함께 곤폐(困弊)하여지니,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청컨대 경기(京畿)와 하삼도(下三道) 여러 역(驛)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려서 도를 나누소서. 경기(京畿)의 중림도(重林道) 소관(所管)인 인천부(仁川府)의 중림역(重林驛)ㆍ경신역(慶新驛), 금천현(衿川縣)의 반유역(盤乳驛), 양천현(陽川縣)의 남산역(南山驛), 통진현(通津縣)의 종생역(種生驛), 부평부(富平府)의 금륜역(金輪驛), 안산군(安山郡)의 석곡역(石谷驛)과, 동화도(同化道)의 소관(所管)인 수원부(水原府)의 동화역(同化驛)ㆍ청호역(靑好驛)ㆍ장족역(長足驛), 남양부(南陽府)의 해문역(海門驛), 양성현(陽城縣)의 가천역(加川驛), 안성군(安城郡)의 강복역(康福驛)과, 양재도(良才道)의 소관(所管)인 금천현(衿川縣)의 양재역(良才驛), 광주(廣州)의 낙생역(樂生驛), 용인현(龍仁縣)의 구흥역(駒興驛)ㆍ금령역(金嶺驛), 죽산현(竹山縣)의 좌찬역(佐贊驛)ㆍ분행역(分行驛), 이천부(利川府)의 아천역(阿川驛)ㆍ오천역(吾川驛), 음죽현(陰竹縣)의 유춘역(留春驛)ㆍ무극역(無極驛) 총 23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경기좌도(京畿左道)라고 칭하여 경기좌도 찰방(京畿左道察訪)으로써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충청도(忠淸道)의 성환도(成歡道) 소관(所管)인 직산현(稙山縣)의 성환역(成歡驛), 천안군(天安郡)의 신은역(新恩驛)ㆍ김제역(金蹄驛), 목천현(木川縣)의 연춘역(延春驛), 청주(淸州)의 장명역(長命驛)과, 일신도(日新道)의 소관(所管)인 공주(公州)의 일신역(日新驛)ㆍ광정역(廣程驛)ㆍ유구역(唯鳩驛)ㆍ단평역(丹平驛)ㆍ경천역(敬天驛), 연산현(連山縣)의 평천역(平川驛)과, 증약도(增若道)의 소관(所管)인 옥천군(沃川郡)의 증약역(增若驛)ㆍ가화역(加禾驛)ㆍ토목역(土木驛)ㆍ순양역(順陽驛)ㆍ화인역(化仁驛), 회덕현(懷德縣)의 전민역(田民驛), 영동현(永同縣)의 회동역(會同驛), 보은현(報恩縣)의 원암역(原巖驛)ㆍ함림역(含林驛), 황간현(黃澗縣)의 신흥역(新興驛)과, 율봉도(栗峯道)의 소관(所管)인 연기현(燕岐縣)의 금사역(金沙驛) 총 22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성환도(成歡道)라 칭하여 증약도 찰방(增若道察訪)으로써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이인도(利仁道)의 소관(所管)인 10역(驛)과 금정도(金井道)의 소관(所管)인 12역(驛)과 시흥도(時興道)의 소관(所管)인 5역(驛)은, 이인도(利仁道)라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율봉도(栗峯道)의 소관(所管)인 청주(淸州)의 율봉역(栗峯驛)ㆍ쌍수역(雙樹驛)ㆍ저산역(猪山驛), 진천현(鎭川縣)의 태랑역(台郞驛)ㆍ장양역(長陽驛), 문의현(文義縣)의 덕류역(德留驛), 청안현(淸安縣)의 시화역(時化驛)과, 연원도(連原道)의 소관(所管)인 충주(忠州)의 연원역(連原驛)ㆍ단월역(丹月驛), 연풍현(延豊縣)의 안부역(安富驛)ㆍ신풍역(新豊驛), 음성현(陰城縣)의 용안역(用安驛)ㆍ감원역(坎原驛), 괴산군(槐山郡)의 인산역(仁山驛)과, 황강도(黃江道)의 소관(所管)인 청풍군(淸風郡)의 황강역(黃江驛)ㆍ수산역(水山驛)ㆍ안음역(安陰驛), 단양군(丹陽郡)의 장림역(長林驛)ㆍ영천역(令泉驛), 영춘현(永春縣)의 오사역(吾賜驛), 제천현(堤川縣)의 천남역(泉南驛) 총 27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율봉도(栗峯道)라고 칭하여 경기 충청우도 찰방(京畿忠淸右道察訪)으로써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전라도(全羅道)의 오수도(獒樹道) 소관(所管)인 25역(驛) 가운데 남평현(南平縣)의 광리역(廣里驛)ㆍ오림역(吾林驛) 양 역(驛)을 떼어내어 영보도(永保道)에 붙이고, 영보도(永保道)의 소관(所管)인 20역(驛) 가운데 장성현(長城縣)의 단엄역(丹嚴驛), 무장현(茂長縣)의 청송역(靑松驛)을 떼어내어 삼례도(蔘禮道)에 붙이소서.
경상도(慶尙道)의 안기도(安奇道) 소관(所管)인 영해부(寧海府)의 영양역(寧陽驛)ㆍ병곡역(柄谷驛), 영덕현(盈德縣)의 주등역(酒登驛)ㆍ남역(南驛), 장수도(長守都)의 소관인 청하현(淸河縣)의 송라역(松羅驛)ㆍ흥해군(興海郡)의 망창역(望昌驛), 영일현(迎日縣)의 대송역(大松驛), 장기현(長鬐縣)의 대봉역(大峯驛), 경주(慶州)의 조역(朝驛)ㆍ육역(六驛)과, 황산도(黃山道)의 소관(所管)인 경주(慶州)의 노곡역(奴谷驛)ㆍ구어역(仇於驛), 울산군(蔚山郡)의 부평역(富平驛)ㆍ간곡역(肝谷驛) 총 14역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송라도(松羅道)라고 칭하여 새로 찰방(察訪)을 설치하여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유곡도(幽谷道)의 소관(所管)인 19역(驛)과 장수도(長守道) 소관(所管)인 12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장수도(長守道)라고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김천도(金泉道)의 소관(所管)인 16역(驛)과 사근도(沙斤道)의 소관(所管)인 15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사근도(沙斤道)라고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소촌도(召村道)의 소관(所管)인 65역(驛)과 자여도(自如道)의 소관(所管)인 13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소촌도(召村道)라고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황산도(黃山道)의 소관(所管)인 10역(驛)과 성현도(省峴道)의 소관(所管)인 15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황산도(黃山道)라고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그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창락도(昌樂道)의 소관(所管)인 7역(驛)과 안기도(安奇道)의 소관(所管)인 12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안기도(安奇道)라고 칭하여 본도(本道)의 찰방(察訪)으로써 옛날 그대로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김구진 (역) | 1978
..........................
소촌도(召村道)의 소관(所管)인 65역(驛)과 자여도(自如道)의 소관(所管)인 13역(驛)을 합하여-> 召村道所管二十五驛、自如道所管十三驛合爲一道, 稱召村道, 以本道察訪仍舊掌之。
*원문이미지 또한 二十五驛
..........................
세조실록 > 세조 8년 임오 > 8월 5일 > 최종정보
세조 8년 임오(1462) 8월 5일(정묘)
08-08-05[04] 병조의 건의로 각도의 역ㆍ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과 역승을 두다
[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이보다 먼저 제도(諸道)의 참ㆍ역(站驛)을 혹은 역승(驛丞)을 파(罷)하고 각각 그 부근에 합하여 하나의 길[道]을 만들어서 찰방(察訪)을 두었으나, 관할하는 역(驛)이 많고 길이 멀리 떨어져서 찰방이 두루 살피기가 어려우므로 역로(驛路)가 조잔(凋殘)하니, 이제 다시 마감(磨勘)하여 대(大)ㆍ중(中)ㆍ소(小)의 역로 및 원근(遠近)을 나누어서 그 전의 역승을 각 역로에 차견(差遣)하여 1찰방마다 역승 1명을 더 두게 하소서. 삼가 뒤에 갖추 아룁니다.
충청도 연원역(連原驛)ㆍ단월역(丹月驛)ㆍ황강역(黃江驛)ㆍ수산역(水山驛)ㆍ안음역(安陰驛)ㆍ안부역(安富驛)ㆍ신풍역(新豐驛)ㆍ인산역(仁山驛)ㆍ감원역(坎原驛)ㆍ용안역(用安驛)ㆍ장림역(長林驛)ㆍ영천역(靈泉驛)ㆍ오사호역(吾賜乎驛)ㆍ천남역(泉南驛) 이상 14역은 연원도 찰방(連原道察訪)으로 일컫고, 율봉역(栗峯驛)ㆍ쌍수역(雙樹驛)ㆍ저산역(猪山驛)ㆍ장양역(長楊驛)ㆍ태랑역(台郞驛)ㆍ시화역(時化驛)ㆍ증약역(曾若驛)ㆍ가화역(嘉禾驛)ㆍ토파역(土破驛)ㆍ순양역(順陽驛)ㆍ화인역(化仁驛)ㆍ전민역(田民驛)ㆍ덕류역(德留驛)ㆍ회동역(會洞驛)ㆍ신흥역(新興驛)ㆍ함림역(含林驛)ㆍ원암역(原巖驛) 이상 17역은 율봉도 찰방(栗峯道察訪)으로 일컫고, 성환역(成歡驛)ㆍ신은역(新恩驛)ㆍ금제역(金蹄驛)ㆍ장명역(長命驛)ㆍ영춘역(迎春驛)ㆍ일신역(日新驛)ㆍ광정역(廣程驛)ㆍ경천역(敬天驛)ㆍ평천역(平川驛)ㆍ금사역(金沙驛)ㆍ단평역(丹平驛)ㆍ유구역(惟鳩驛) 이상 12역은 성환도 찰방(成歡道察訪)으로 일컫고, 이인역(利仁驛)ㆍ유양역(楡楊驛)ㆍ용전역(龍田驛)ㆍ은산역(銀山驛)ㆍ영유역(靈楡驛)ㆍ숙홍역(宿鴻驛)ㆍ신곡역(新谷驛)ㆍ두곡역(豆谷驛)ㆍ청화역(菁化驛)ㆍ남전역(藍田驛) 이상 10역은 이인도 승(利仁道丞)으로 일컫고, 시흥역(時興驛)ㆍ창덕역(昌德驛)ㆍ일흥역(日興驛)ㆍ화천역(花川驛)ㆍ장시역(長時驛)ㆍ순성역(順城驛)ㆍ흥세역(興世驛)ㆍ급천역(汲泉驛) 이상 8역은 시흥도 승(時興道丞)으로 일컫고, 금정역(金井驛)ㆍ광시역(光時驛)ㆍ용곡역(龍谷驛)ㆍ세천역(世川驛)ㆍ몽웅역(夢熊驛)ㆍ해문역(海門驛)ㆍ청연역(靑淵驛)ㆍ풍전역(豐田驛)ㆍ하천역(下川驛) 이상 9역은 금정도 승(金井道丞)으로 일컫을 것.
전라도 삼례역(蔘禮驛)ㆍ앵곡역(鶯谷驛)ㆍ반석역(半石驛)ㆍ오원역(烏原驛)ㆍ갈담역(葛蕈驛)ㆍ소안역(蘇安驛)ㆍ촌곡역(寸谷驛)ㆍ양재역(良才驛)ㆍ거산역(居山驛)ㆍ천원역(川原驛)ㆍ영원역(瀛原驛)ㆍ부흥역(扶興驛)ㆍ내재역(內才驛) 이상 13역은 삼례도 찰방(蔘禮道察訪)으로 일컫고, 오수역(獒樹驛)ㆍ창활역(昌活驛)ㆍ동도역(東道驛)ㆍ응령역(應嶺驛)ㆍ인월역(引月驛)ㆍ지신역(知申驛)ㆍ잔수역(潺水驛)ㆍ양률역(良栗驛)ㆍ낙수역(洛水驛)ㆍ덕양역(德陽驛)ㆍ익신역(益申驛)ㆍ섬거역(蟾居驛) 이상 12역은 오수도 찰방(獒樹道察訪)으로 일컫고, 청엄역(靑嚴驛)ㆍ영신역(永申驛)ㆍ선엄역(仙嚴驛)ㆍ신안역(新安驛)ㆍ녹사역(綠沙驛)ㆍ가리역(加里驛)ㆍ경신역(景申驛)ㆍ광리역(廣利驛)ㆍ오림역(烏林驛)ㆍ영보역(永保驛)ㆍ단암역(丹巖驛)ㆍ청송역(靑松驛) 이상 12역은 청엄도 찰방(靑嚴道察訪)으로 일컫고, 제원역(濟原驛)ㆍ달계역(達溪驛)ㆍ소천역(所川驛)ㆍ단령역(丹嶺驛)ㆍ옥포역(玉包驛) 이상 5역은 제원도 승(濟原道丞)으로 일컫고, 벽사역(碧沙驛)ㆍ진원역(鎭原驛)ㆍ통로역(通路驛)ㆍ별진역(別珍驛)ㆍ남리역(南利驛)ㆍ녹산역(祿山驛)ㆍ가신역(可申驛)ㆍ파청역(波淸驛)ㆍ양강역(陽江驛)ㆍ낙승역(樂昇驛) 이상 10역은 벽사도 승(碧沙道丞)으로 일컫고, 경양역(景陽驛)ㆍ덕기역(德奇驛)ㆍ가휴역(加休驛)ㆍ인물역(人物驛)ㆍ검부역(黔富驛)ㆍ창신역(昌新驛)ㆍ대부역(大富驛) 이상 7역은 경양도 승(景陽道丞)으로 일컬을 것.
경상도 장수역(長水驛)ㆍ청통역(淸通驛)ㆍ청경역(淸景驛)ㆍ우곡역(牛谷驛)ㆍ화양역(華陽驛)ㆍ압량역(押梁驛)ㆍ모량역(毛良驛)ㆍ아화역(阿火驛)ㆍ의곡역(義谷驛)ㆍ경역(鏡驛)ㆍ잉보역(仍甫驛)ㆍ사리역(沙里驛)ㆍ조역(朝驛)ㆍ구어역(仇於驛)ㆍ노곡역(奴谷驛)ㆍ인비역(仁庇驛) 이상 16역은 장수도 찰방(長水道察訪)으로 일컫고,
창락역(昌樂驛)ㆍ죽동역(竹洞驛)ㆍ창보역(昌保驛)ㆍ평은역(平恩驛)ㆍ도심역(道深驛)ㆍ선안역(宣安驛)ㆍ안교역(安郊驛)ㆍ유동역(幽洞驛)ㆍ안기역(安奇驛)ㆍ옹천역(甕泉驛)ㆍ운산역(雲山驛)ㆍ송제역(松蹄驛)ㆍ금소역(琴召驛)ㆍ통명역(通明驛)ㆍ철파역(鐵破驛)ㆍ청로역(靑路驛) 이상 16역은 창락도 찰방(昌樂道察訪)으로 일컫고,
김천역(金泉驛)ㆍ문산역(文山驛)ㆍ추풍역(秋豐驛)ㆍ작내역(作乃驛)ㆍ장곡역(長谷驛)ㆍ무촌역(茂村驛)ㆍ생초역(省草驛)ㆍ성기역(星奇驛)ㆍ답계역(踏溪驛)ㆍ안언역(安彦驛)ㆍ무계역(茂溪驛)ㆍ설화역(舌化驛)ㆍ고평역(高平驛)ㆍ양원역(楊原驛)ㆍ동안역(東安驛)ㆍ양천역(楊川驛)ㆍ부쌍역(扶雙驛)ㆍ안림역(安林驛)ㆍ팔진역(八鎭驛)ㆍ권빈역(勸賓驛)ㆍ금양역(金陽驛) 이상 21역은 김천도 찰방(金泉道察訪)으로 일컫고,
성현역(省峴驛)ㆍ범어역(凡於驛)ㆍ금천역(琴川驛)ㆍ수안역(水安驛)ㆍ금동역(金洞驛)ㆍ양동역(良洞驛)ㆍ용가역(龍駕驛)ㆍ유산역(幽山驛)ㆍ무흘역(無訖驛)ㆍ유천역(楡川驛)ㆍ매전역(買田驛)ㆍ서지역(西之驛)ㆍ오서역(鰲西驛)ㆍ온정역(溫井驛)ㆍ일문역(一門驛)ㆍ내야역(內也驛)ㆍ쌍산역(雙山驛)ㆍ창인역(昌仁驛)ㆍ영포역(靈浦驛) 이상 19역은 성현도 찰방(省峴道察訪)으로 일컫고,
유곡역(幽谷驛)ㆍ요성역(聊城驛)ㆍ덕통역(德通驛)ㆍ지보역(知保驛)ㆍ수산역(守山驛)ㆍ쌍계역(雙溪驛)ㆍ안계역(安溪驛)ㆍ낙평역(洛平驛)ㆍ낙동역(洛東驛)ㆍ낙양역(洛陽驛)ㆍ낙서역(洛西驛)ㆍ장림역(長林驛)ㆍ낙원역(洛原驛)ㆍ상림역(上林驛)ㆍ영향역(迎香驛)ㆍ구미역(仇彌驛)ㆍ안곡역(安谷驛)ㆍ소계역(召溪驛) 이상 18역은 유곡도 찰방(幽谷道察訪)으로 일컫고,
사근역(沙斤驛)ㆍ제한역(蹄閑驛)ㆍ정곡역(正谷驛)ㆍ임수역(臨水驛)ㆍ유린역(有隣驛)ㆍ신흥역(新興驛)ㆍ소남역(小南驛)ㆍ평사역(平沙驛)ㆍ정수역(正守驛)ㆍ안간역(安澗驛)ㆍ신안역(新安驛)ㆍ벽계역(碧溪驛)ㆍ율원역(栗院驛)ㆍ마전역(馬田驛)ㆍ횡보역(橫甫驛) 이상 15역은 사근도 역승(沙斤道驛丞)으로 일컫고,
소촌역(召村驛)ㆍ부다역(富多驛)ㆍ영창역(永昌驛)ㆍ문화역(文和驛)ㆍ평거역(平居驛)ㆍ덕신역(德新驛)ㆍ완사역(完沙驛)ㆍ양포역(良浦驛)ㆍ관율역(官栗驛)ㆍ동계역(東溪驛)ㆍ송도역(松道驛)ㆍ구허역(丘墟驛)ㆍ배둔역(背屯驛)ㆍ오양역(烏壤驛)ㆍ상령역(常令驛)ㆍ지남역(知南驛) 이상 16역은 소촌도 역승(召村道驛丞)으로 일컫고,
자여역(自如驛)ㆍ근주역(近珠驛)ㆍ양민역(良民驛)ㆍ신풍역(新豐驛)ㆍ보평역(報平驛)ㆍ춘곡역(春谷驛)ㆍ파수역(巴水驛)ㆍ적항역(赤項驛)ㆍ생법역(省法驛)ㆍ남역(南驛)ㆍ덕산역(德山驛)ㆍ금곡역(金谷驛)ㆍ대산역(大山驛) 이상 13역은 자여도 역승(自如道驛丞)으로 일컫고,
| 驛院 南驛。在府東五里。 德山驛。在府東三十七里。 金谷驛。在府北三十五里。 省法驛。在府西二十八里。 赤項驛。在府南三十一里。 太山驛。在太山部曲。 |
황산역(黃山驛)ㆍ윤산역(輪山驛)ㆍ위천역(渭川驛)ㆍ소산역(蘇山驛)ㆍ휴산역(休山驛)ㆍ신명역(新明驛)ㆍ아월역(阿月驛)ㆍ간곡역(肝谷驛)ㆍ굴화역(堀火驛)ㆍ부평역(富平驛)ㆍ덕천역(德泉驛) 이상 11역은 황산도 역승(黃山道驛丞)으로 일컫고,
송라역(松羅驛)ㆍ남역(南驛)ㆍ주등역(酒登驛)ㆍ병곡역(柄谷驛)ㆍ영양역(寧陽驛)ㆍ망창역(望昌驛)ㆍ대송역(大松驛)ㆍ화목역(和目驛)ㆍ문거역(文居驛)ㆍ청운역(靑雲驛)ㆍ봉산역(峯山驛)ㆍ육역(陸驛)ㆍ각산역(角山驛) 이상 13역은 송라도 역승(松羅道驛丞)으로 일컬을 것.
강원도 은계역(銀溪驛)ㆍ신안역(新安驛)ㆍ대창역(大昌驛)ㆍ서운역(瑞雲驛)ㆍ생창역(生昌驛)ㆍ옥동역(玉洞驛)ㆍ건천역(乾川驛)ㆍ용진역(龍津驛)ㆍ산양역(山陽驛)ㆍ원천역(原川驛)ㆍ방천역(方川驛)ㆍ함춘역(含春驛)ㆍ수인역(水仁驛)ㆍ마노역(馬奴驛)ㆍ부림역(富林驛)ㆍ남교역(嵐校驛)ㆍ임천역(林川驛) 이상 17역은 은계도 찰방(銀溪道察訪)으로 일컫고, 보안역(保安驛)ㆍ인람역(仁嵐驛)ㆍ부창역(富昌驛)ㆍ안보역(安保驛)ㆍ원창역(原昌驛)ㆍ연봉역(連峯驛)ㆍ천감역(泉甘驛)ㆍ창봉역(蒼峯驛)ㆍ갈풍역(葛豐驛)ㆍ오원역(烏原驛)ㆍ안흥역(安興驛)ㆍ유원역(由原驛)ㆍ단구역(丹丘驛)ㆍ안창역(安昌驛)ㆍ신림역(神林驛)ㆍ신흥역(新興驛)ㆍ양연역(楊淵驛)ㆍ연평역(延平驛)ㆍ약수역(藥水驛)ㆍ평안역(平安驛)ㆍ벽탄역(碧呑驛)ㆍ호선역(好善驛)ㆍ여량역(餘糧驛)ㆍ운교역(雲交驛)ㆍ방림역(方林驛)ㆍ대화역(大和驛)ㆍ진부역(珍富驛)ㆍ횡계역(橫溪驛)ㆍ고단역(高丹驛)ㆍ임계역(臨溪驛) 이상 30역은 보안도 찰방(保安道察訪)으로 일컫고, 평릉역(平陵驛)ㆍ달효역(達孝驛)ㆍ덕신역(德神驛)ㆍ수산역(守山驛)ㆍ흥부역(興富驛)ㆍ옥원역(沃原驛)ㆍ용화역(龍化驛)ㆍ교가역(交可驛)ㆍ사직역(史直驛)ㆍ낙풍역(樂豐驛)ㆍ안인역(安仁驛)ㆍ대창역(大昌驛)ㆍ구산역(丘山驛)ㆍ수계역(水界驛)ㆍ동덕역(冬德驛) 이상 15역은 평릉도 역승(平陵道驛丞)으로 일컫고, 상운역(祥雲驛)ㆍ연창역(連蒼驛)ㆍ오색역(五色驛)ㆍ강선역(降仙驛)ㆍ인구역(麟丘驛)ㆍ청간역(淸澗驛)ㆍ죽포역(竹泡驛)ㆍ운근역(雲根驛)ㆍ명파역(明波驛)ㆍ대강역(大江驛)ㆍ고잠역(高岑驛)ㆍ양잔역(養珍驛)ㆍ조진역(朝珍驛)ㆍ등로역(登路驛)ㆍ거풍역(巨豐驛)ㆍ정덕역(貞德驛) 이상 16역은 상운도 역승(祥雲道驛丞)으로 일컬을 것.
황해도 청단역(靑丹驛)ㆍ남산역(南山驛)ㆍ금곡역(金谷驛)ㆍ심동역(深洞驛)ㆍ신행역(新行驛)ㆍ망정역(望汀驛)ㆍ금강역(金剛驛)ㆍ문라역(文羅驛)ㆍ유안역(維安驛) 이상 9역은 청단도 찰방(靑丹道察訪)으로 일컫고,
기린역(麒麟驛)ㆍ안산역(安山驛)ㆍ문라역(文羅驛)ㆍ박산역(朴山驛)ㆍ진목역(眞木驛)ㆍ연양역(延陽驛)ㆍ원산역(元山驛)ㆍ다만역(茶滿驛)ㆍ신흥역(新興驛)ㆍ위라역(位羅驛)ㆍ소곶이역[所串驛] 이상 11역은 기린도 찰방(麒麟道察訪)으로 일컫고,
칠참 찰방(七站察訪)과 함길도(咸吉道)ㆍ평안도의 찰방은 예전대로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주-D001] 칠참 찰방(七站察訪) : 황해도의 경천(敬天)ㆍ용천(龍泉)ㆍ금교(金郊) 등의 칠참(七站)을 관할하던 참로 찰방(站路察訪).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김익현 (역) | 1978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경상도(慶尙道) / 함양군(咸陽郡)
【역원】 제한역(蹄閑驛) 군 서쪽 15리 지점에 있다.
○ 이첨(李詹)의 시에, 운봉(雲峯) 고갯길이 시내 곁에 났는데, 나귀를 편하게 타고 긴 휘파람 한 번 분다. 서쪽 산이 만 길 높다 말하지 말라. 객이 여관에 들어도 석양이 못 되었네.”하였다. 사근역(沙斤驛) 군 동쪽 16리이며, 역승(驛丞)이 있다. 본도의 속역이 14인데, 유린(有麟)ㆍ안간(安澗)ㆍ임수(瀶水)ㆍ제한(蹄閑)ㆍ정곡(正谷)ㆍ신안(新安)ㆍ신흥(新興)ㆍ정수(正守)ㆍ횡포(橫浦)ㆍ마전(馬田)ㆍ율원(栗元)ㆍ벽계(碧溪)ㆍ소남(小南)ㆍ평사(平沙)이다.
○ 승(丞)이 1명이다.
○ 신우(辛禑) 6년에 왜선 5백 척이 진포(鎭浦)에 정박하고, 3도를 침략하였다. 상주(尙州) 부고(府庫)를 불태우고, 경산(京山)을 경유하여 사근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삼도원수 배극렴(裵克廉) 등 아홉 장수가 역 동쪽 3리쯤에서 싸웠으나, 패전하여 박수경(朴修敬)ㆍ배언(裵彦) 두 원수가 죽고, 군사도 5백 명이나 죽어서 냇물이 다 붉었다. 그리하여 지금 혈계(血溪)라 부른다. 이로 말미암아 왜적의 군세는 더욱 성하여, 군 성을 무찌르고 남원을 향해 인월역(引月驛)에 주둔했다가 우리 태조에게 섬멸되었다. ○ 이첨의 시에, “운봉산 밑에는 가을 바람이 이르고, 햇살이 엷고 날씨가 추우니 나뭇잎이 마른다. 이때에 우리 군사가 왜놈에게 패하여, 피를 함양 언덕의 풀에 뿌렸네. 양부의 원수가 진 앞에서 죽었으니, 하찮은 군사들이야 신명 보전도 어려웠으리라. 슬픈 피리 두어 곡조에 장부도 눈물 지으며, 늙기 전에 국치(國恥)를 씻으리라 맹세하였네. 남쪽으로 출정한 장수 누가 군사 없으랴마는, 깃발도 천천히 갔던 길 돌아가도다.” 하였다. ○ 역 남쪽에 제법 넓게 트인 정자가 있다. 이숙번(李淑蕃)의 시에, “객의 귀 밑에 눈서리 더하여도, 흐르는 세월은 조금도 멈추지 않네. 윤음(綸音)이 금궐(金闕)에서 내려오니, 옛 벗들 우정(郵亭)에서 전송한다. 시내와 산은 집을 둘러 훌륭하고, 소나무는 구름을 스칠 듯 푸르도다. 임금의 은혜를 갚기는 어려우니, 어찌 반드시 궁궐에 가야 하리.” 하였다. ○ 정이오(鄭以吾)의 시에, “가는 길 우리 고향과 가까워, 더욱 기쁘다. 말 머리가 내일에는 산음을 지나리. 사람들은 왕인(王人)이라 보지만, 재간 없는 취한 한림인 줄 어찌 알리오.” 하였다. 『신증』 지금 임금 5년에 승(丞)은 혁파하고 찰방을 두었다.
광혜원(廣惠院) 성 남쪽 2리 지점에 있는데, 다락집이 있으며 사신을 맞이하는 곳이다. ○ 이항무(李恒茂)의 시에, “총총히 겨를 없어 누에 못 오르다가, 이날에야 올라보니 눈이 잠깐 트인다. 북으로 한양을 바라보니 구름이 아득하고, 남으로 지리산 쳐다 보니 눈만 높이 쌓였네. 2년 동안 녹 먹으며 무슨 일 했나. 천리 밖 고을을 맡았으나 재주 없는 것 부끄러워라. 어찌하면 호탕하게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송백(松栢)이나 잘 가꾸워 볼까.”하였다. 사근원(沙斤院) 사근역 동쪽에 있다. 도현원(桃峴院) 도현(桃峴) 밑에 있다. 덕신원(德信院) 군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신증』 【교량】 사근교(沙斤橋) 사근역 남쪽에 있다. 대교(大橋) 군 남쪽 5리 지점에 있다.
......................
사근역(沙斤驛) 군 동쪽 16리이며, 역승(驛丞)이 있다. 본도의 속역이 14인데, 유린(有麟)ㆍ안간(安澗)ㆍ임수(瀶水)ㆍ제한(蹄閑)ㆍ정곡(正谷)ㆍ신안(新安)ㆍ신흥(新興)ㆍ정수(正守)ㆍ횡포(橫浦)ㆍ마전(馬田)ㆍ율원(栗元)ㆍ벽계(碧溪)ㆍ소남(小南)ㆍ평사(平沙)이다.
유린 지명
경남 합천군 삼가면 동리
【역원】 신안역(新安驛) 현 북쪽 16리 지점에 있다. 벽계역(碧溪驛) 단계현에 있다. 신안원(新安院) 신안역 동쪽에 있다. 송계원(松界院) 송계부곡에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경상도(慶尙道) 단성현(丹城縣)>
【역원】 마전역(馬田驛) 현 북쪽 16리 지점에 있다. 율원역(栗原驛) 현 동쪽 23리 지점에 있다. 횡포역(橫浦驛) 현 서쪽 29리 지점에 있다. 횡포원(橫浦院) 횡포역 동쪽 1리 지점에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경상도(慶尙道) 하동현(河東縣)>
【역원】 소촌역(召村驛) 주 동쪽 24리에 있으며 역승(驛丞)이 있다. 본도에 속한 역이 열 다섯이 있는데, 상령(常令)ㆍ평거(平居)ㆍ부다(富多)ㆍ지남(知南)ㆍ배둔(背屯)ㆍ송도(松道)ㆍ구허(丘虛)ㆍ관율(官栗)ㆍ문화(文和)ㆍ영창(永昌)ㆍ동계(東溪)ㆍ양포(良浦)ㆍ완사(浣沙)ㆍ오양(烏壤)ㆍ덕신(德新)이다. ○ 승(丞) 1명이다. ○ 정이오의 시에, “역에 나무 그늘 짙고 시냇물 흐르는데, 오랜 나그네 몸 고달파 잠깐 머문다. 말 발굽 남북으로 어느 때나 쉴까나. 강 위 인가에 죽루(竹樓)가 있네.” 하였다. 『신증』 금상(今上) 5년에 승을 없애고 찰방을 두었다. 영창역(永昌驛) 주 남쪽 52리에 있다. 문화역(文和驛) 주 남쪽 60리에 있다. 평거역(平居驛) 주 서쪽 10리에 있다. 정수역(正守驛) 주 서쪽 54리에 있다. 평사역(平沙驛) 주 서쪽 1백 19리에 있다. 소남역(召南驛) 소남진 서쪽에 있다. 안간역(安間驛) 주 북쪽 42리에 있다. 부다역(富多驛) 주 동쪽 59리에 있다. ○ 정이오(鄭以吾)의 시에, “바람과 햇빛 맑고 고와서 가을 기운 높은데, 역정(驛程)의 단풍잎이 말 머리에 나부낀다. 전송하고 맞이하는 것은 오직 소나무인데, 길을 끼고 우뚝 서서 허리 굽히기를 부끄러워한다.” 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晉州牧)>
......................
大東地志 卷十 / 慶尙道 / 驛站
安奇道。 琴召, 雲山, 松蹄,【安東。】 鐵坡, 靑路,【義城。】 靑雲, 梨田, 文居, 和睦,【靑松。】 角山,【眞寶。】 寧陽。【寧海。】
長水道。【新寧。】 牛谷,【義城。】 靑通, 淸景,【永川。】 阿火, 牟梁, 沙里, 朝驛, 仇於, 鏡驛, 仁庇, 義谷,【慶州。】 華陽,【河陽。】 山驛,【慈仁。】 富平。【蔚山。】
省峴道。 鼇西, 楡川, 買田, 西芝,【淸道。】 押梁,【慶山。】 凡於, 琴川, 舌化, 幽山,【大丘。】 雙山,【玄風。】 內野,【昌寧。】 一門, 溫井。【靈山。】
黃山道。 渭川, 輪山,【梁山。】 無訖, 金洞, 龍駕, 水安,【密陽。】 德山,【金海。】 蘆谷,【慶州。】 阿月, 新明,【機張。】 肝谷, 掘火,【蔚山。】 蘇山, 休山,【東萊。】 仍甫,【慶州。】 德泉。
松羅道。【淸河。】 南驛, 酒登,【盈德。】 柄谷,【寧海。】 陸驛,【慶州。】 望昌,【興海。】 大松,【迎日。】 峯山。【長鬐。】
昌樂道。 竹洞,【順興。】 平恩, 昌保,【榮川。】 甕泉, 幽洞, 安郊,【安東。】 道深,【奉化。】 宣安,【禮安。】 通明。【醴泉。】
幽谷道。 聊城,【聞慶。】 德通,【咸昌。】 大隱, 知保,【龍宮。】 守山,【醴泉。】 安溪, 雙溪,【比安。】 召溪,【軍威。】 洛源, 洛陽, 洛西, 洛平, 洛東, 長林,【尙州。】 安谷, 龜尾, 迎香, 上林。【善山。】
金泉道。 秋豐, 文山,【金山。】 楊川, 扶桑,【開寧。】 楊原, 東安,【仁同。】 高平,【漆谷。】 踏溪, 安堰, 茂溪,【星州。】 安林,【高靈。】 八鎭,【草溪。】 金陽, 勸賓,【陜川。】 茂村, 星奇, 省草,【居昌。】 長谷, 作乃。【知禮。】
沙斤道。 蹄閑,【咸陽。】 臨水,【安義。】 正谷,【山淸。】 碧溪, 新安,【丹城。】 有隣,【三嘉。】 安澗, 召南, 正守,【晉州。】 新興,【宜寧。】 栗原, 馬田, 橫浦, 平沙。【河東。】
召村道。 平居, 富多, 文和, 永昌,【晉州。】 東溪, 官栗,【泗川。】 浣紗, 良浦,【昆陽。】 德新,【南海。】 松道, 背屯, 邱墟,【固城。】 烏壤,【巨濟。】 常令,【鎭海。】 指南。【宜寧。】
自如道。 新豐, 近珠, 安民,【昌原。】 昌仁, 靈浦,【漆原。】 南驛, 赤項, 金谷, 省法, 太山,【金海。】 報平,【熊川。】 巴水, 春谷,【咸安。】 良洞。【密陽。】
共一百六十一驛, 三等馬一千四百一匹, 吏卒四萬二百七十六名。
[주-D001] 召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韶”로 되어 있다.[주-D002] 坡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破”로 되어 있다.[주-D003] 睦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目”으로 되어 있다.[주-D004] 景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鏡”으로 되어 있다.[주-D005] 牟梁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萬機要覽・軍政編・驛遞》,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毛良”으로 되어 있다.[주-D006] 鼇西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烏栖”로 되어 있다.[주-D007] 芝 : 《世祖實錄》 8年 8月 5日에는 “之”로 되어 있다.[주-D008] 琴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金”으로 되어 있다.[주-D009] 野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也”로 되어 있다.[주-D010] 輪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由”로 되어 있다.[주-D011] 訖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屹”로 되어 있다.[주-D012] 蘆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奴”로 되어 있다.[주-D013] 阿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何”로 되어 있다.[주-D014] 掘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堀”로 되어 있다.[주-D015] 德泉 : 底本에는 없다. 《世祖實錄》 8年 8月 5日, 《萬機要覽・軍政編・驛遞》, 《大典通編・吏典・外官職》, 本文 驛站의 總合에 根據하여 補充하였다.[주-D016] 酒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朱”로 되어 있다.[주-D017] 源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原”으로 되어 있다.[주-D018] 龜尾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仇彌”로 되어 있고,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仇味”로 되어 있다.[주-D019] 迎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延”으로 되어 있다.[주-D020] 豐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風”으로 되어 있다.[주-D021] 桑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雙”으로 되어 있다.[주-D022] 堰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萬機要覽・軍政編・驛遞》,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彦”으로 되어 있다.[주-D023] 村 :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林”으로 되어 있다.[주-D024] 星奇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聖基”로 되어 있다.[주-D025] 隣 : 《萬機要覽・軍政編・驛遞》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麟”으로 되어 있다.[주-D026] 澗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間”으로 되어 있다.[주-D027] 召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小”로 되어 있다.[주-D028] 原 : 《世祖實錄》 8年 8月 5日에는 “院”으로 되어 있고, 《萬機要覽・軍政編・驛遞》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元”으로 되어 있다.[주-D029] 浦 : 《世祖實錄》 8年 8月 5日에는 “甫”로 되어 있다.[주-D030] 浣紗 : 《世祖實錄》 8年 8月 5日에는 “完沙”로 되어 있고, 《萬機要覽・軍政編・驛遞》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浣沙”로 되어 있다.[주-D031] 邱墟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丘墟”로 되어 있고,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丘虛”로 되어 있다.[주-D032] 指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知”로 되어 있다.[주-D033] 安 : 《世祖實錄》 8年 8月 5日에는 “良”으로 되어 있다.[주-D034] 太 : 《世祖實錄》 8年 8月 5日 및 《大典通編・吏典・外官職》에는 “大”로 되어 있다.[주-D035] 報 : 《萬機要覽・軍政編・驛遞》에는 “保”로 되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교감표점 한국고전총간 | 2022
......................
중종실록 > 중종 18년 계미 > 6월 16일 > 최종정보
중종 18년 계미(1523) 6월 16일(을묘)
18-06-16[03] 삼공이 찰방의 설치에 대해 의논드리다
삼공(三公)이 다시 의논하여 아뢰기를,
“당초에 《대전(大典)》의 법에 따라 역승(驛丞)을 복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겼었는데, 지금 경상도 관찰사가 그 폐단을 없애려고 4도(道) 【황산도(黃山道)ㆍ자여도(自如道)ㆍ소촌도(召村道)ㆍ사근도(沙斤道).】 의 찰방을 복설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역승이 모두 여섯인데 4도만을 요청하고 2도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으니 지금 역졸(驛卒)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관찰사에게 편의 여부를 물어서, 군정(軍情)의 비보(飛報)같은 것을 전할 때 사객(使客)이 서로 만나기 요긴한 곳에 다시 찰방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 전교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임정기 정기태 (공역) | 1981
..........................
남계(南溪) 선생 : 강응철(康應哲, 1562~1635)로,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명보(明甫), 호는 남계이다. 1590년(선조23) 진사에 입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과 합세하여 왜병을 무찔렀다. 벼슬은 사근도(沙斤道) 찰방(察訪)에 이르렀으나 향리에서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다. 상주의 연악서원(淵岳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남계유고(南溪遺稿)》가 있다. 《입재집》 권27에 〈재령 강씨 세덕사 실기서(載寧康氏世德祠實紀序)〉가 있다. 거기에 따르면 강응철은 정경세(鄭經世)의 자형(姊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