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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오해가 하나 생깁니다.
“선을 이룬다”를 “내 인생의 모든 일이 잘 풀린다”로 해석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4. 바울은 “선”을 바로 다음 구절에서 정의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8:28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고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여기서 “선”이 무엇인지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선은:
그리스도인의 사업 성공
도 아니고,
건강
도 아니고,
편안한 인생
도 아니고,
원하는 일이 잘되는 것
도 아닙니다.
궁극적인 선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로마서 8:28을 완전히 다른 말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5. 그래서 질문하신 “사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문제가 풀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이 망한 것인가?”
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업이 성공한다.”
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실패까지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과정에서 사용하실 수 있다.”
는 뜻입니다.
사업의 실패 자체가 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패라는 사건까지 사용하여 궁극적인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여기서 “모든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울은 “좋은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앞의 문맥을 보십시오.
로마서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8:22:
피조물이 함께 탄식합니다.
8:23:
성도들도 속으로 탄식합니다.
8:26: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니까 8:28은 고난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과 탄식과 연약함 속에 있는 성도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7. 그래서 8:26과 8:28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질문하신 부분입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우리가 알거니와…”
이것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8:26의 성령의 중보를 받는 사람 =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문맥상 연결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 기도하는 특정 수준의 신자만 8:28의 대상이다.”
라고 좁히는 것은 본문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8:26은 성령께서 성도의 연약함 가운데서 도우신다는 보편적인 성령의 사역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8. 8:26의 핵심은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이 강한 성도만 도우신다.”
가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말씀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즉 로마서 8장의 성도는 완벽한 신자가 아닙니다.
연약하고, 탄식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을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완벽한 신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질문하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합니다.
로마서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성령의 인도를 완벽하게 받아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이라고 정의하면 너무 높은 기준이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그 사람들도: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완벽한 성취 상태라기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방향과 관계를 말합니다.
10. 그런데 질문하신 “타락하는 사람”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믿다가 타락하고 범죄하는 사람”
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로마서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던 것입니까?
여기서는 성경이 모든 사례를 하나의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일시적으로 크게 넘어지는 성도
가 있습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도 크게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습니다.
반면 성경은:
믿음을 버리고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람
에 대해서도 심각한 경고를 합니다.
그러므로 “한 번 크게 범죄했다 =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였다”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어떻게 살아도 한번 믿었으면 로마서 8:28의 약속을 자동으로 적용받는다”
라고 말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11. 그런데 로마서 8:30이 아주 강력한 힌트를 줍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가 최종적인 영화까지 이어진다는 관점에서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28의 약속은 단순히
“현재 내가 예수 믿는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 영화롭게 하시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사용하신다.
는 약속입니다.
12. 이것이 “합력하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문맥의 핵심은 “모든 사건 자체가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함께 사용하셔서 궁극적인 선을 이루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질병 자체는 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패 자체도 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신 자체도 선하지 않습니다.
죄 자체는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들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사건까지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궁극적인 선을 이루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는 것이 로마서 8:28의 놀라운 선언입니다.
13. 그리고 8:29의 “선”은 굉장히 결정적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이것이 8:28의 “선”을 해석하는 가장 직접적인 문맥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8:28의 “선”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나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며, 결국 영화에 이르게 하시는 것.”
입니다.
14. 그러면 질문하신 가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질문하신 생각은:
“8장 26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했고, 그런 사람들의 삶만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였죠.
저는 앞부분은 맞지만, 뒷부분은 조금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부분
8:26과 8:28은 분명히 같은 성도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연약함
↓
성령의 도우심
↓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성령의 간구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이런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수정해야 할 부분
그러나 이것을
“성령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그리스도인만”
이라고 제한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는 성도 자체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5. 사실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함께 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두 표현은 서로 분리해서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관심은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몇 점짜리 하고 있는가?”
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
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최종적인 방향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16.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로마서 8장 문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하게 되어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향해 변화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이 정의라면:
그런데 그 모든 과정에서 성령께서 그 사람을 붙드시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게 하신다는 것이 로마서 8장의 메시지입니다.
17. 그래서 로마서 8:28을 “성공 공식”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잘못된 해석: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사업이 잘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
“힘든 일이 생겨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8:28의 약속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을 보십시오.
그는:
그런데도 로마서 8:28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선”은 편안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과 최종적인 구원과 영화입니다.
18. 사실 로마서 8:28은 8:35 이하와 함께 읽으면 더 놀랍습니다
바울은 곧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리고: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논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
그러므로 고난이 없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한다
↓
환난도 올 수 있다
↓
곤고도 올 수 있다
↓
박해도 올 수 있다
↓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다
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28의 진짜 강력함입니다.
19. 그러므로 질문하신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질문하신 생각은 상당히 좋은 출발점입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단순히 명목상의 신자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사람 역시 연약하고 넘어질 수 있으며 고난을 겪지만, 성령께서 그 연약함을 도우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구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그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
이렇게 이해하면 8:26 → 8:28 → 8:29 → 8:30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20.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된다.”
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가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심지어 그의 연약함과 고난과 실패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궁극적으로 그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으시고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
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질문하신 분께서 느끼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정말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잘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다음 단계로 가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로마서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요한복음 14:15의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2:9-12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는 사람”을 연결해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단순한 감정인지, 아니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실제적인 관계인지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깊이 들어갈 가치가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로마서 8:26-30을 출발점으로 해서 요한복음 14:15, 고린도전서 2:9-16을 연결하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종교적 고백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관계라는 사실이 상당히 선명해집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성령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결과로 순종이 나타난다.
이 순서를 놓치면 율법주의가 되고, 반대로 순종을 완전히 배제하면 값싼 은혜가 됩니다.
1. 먼저 세 본문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세 본문을 나란히 놓으면 재미있는 구조가 나옵니다.
로마서 8장
성령 → 연약한 성도를 도우심 →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 그리스도의 형상
요한복음 14장
예수님을 사랑함 →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 → 성령을 보내심 → 성령이 함께하심
고린도전서 2장
성령을 받은 사람 →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앎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
세 본문 모두 결국 성령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 14:15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여기서 순서를 잘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면 내가 너희를 사랑하겠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라고 하십니다.
즉 사랑 → 순종입니다.
순종이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순종을 만들어 냅니다.
3. 그런데 바로 다음에 성령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4:16-17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즉 구조가:
예수님을 사랑함
↓
예수님의 말씀을 지킴
↓
성령께서 함께하심
이라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서 8장과 연결됩니다.
4. 로마서 8장에서도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은 우리에게 힘을 조금 더 주는 “능력” 정도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특히 8:27이 중요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기서 다시 “하나님의 뜻”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령 → 하나님의 뜻 → 성도의 기도
라는 연결이 생깁니다.
5. 이제 로마서 8:28과 연결해 보십시오
8:27: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
↓
8:28: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
↓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심
이것은 우연한 연결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단순히: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감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령의 역사에 의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만들어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훨씬 강합니다.
6.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2장은 왜 중요한가?
고린도전서 2장에서 바울은 성령의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리고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성령의 역할 중 하나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뜨겁게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7.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주의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흔히:
“성령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성령의 인도는 단순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강한 느낌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판단할 때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
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경의 뜻에 일치하는가?”
가 훨씬 중요합니다.
8.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계속 정당화한다면,
성경은 그 고백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9. 그렇다고 “순종 = 완벽함”은 아닙니다
이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로마서 8장의 사람은 연약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그리고 탄식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나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간다.”
입니다.
10.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완벽한 사람”은 다릅니다
이것을 세 단계로 구분하면 좋습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습니다.
죄를 지어도 죄를 죄라고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연약한 사람
죄와 싸웁니다.
넘어집니다.
때로는 크게 실패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책망을 받고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③ 성숙한 성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분별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더욱 적극적으로 복종시킵니다.
하지만 ②와 ③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숙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11. 그렇다면 “타락한 사람”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여기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동안 하나님을 떠났다고 해서 우리가 즉시:
“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다.”
라고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넘어졌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현재 실패만 가지고 그 사람의 최종적인 영적 상태를 우리가 판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디까지 이끌어 가시는지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12. 이것이 로마서 8:28의 “부르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말한 다음 바로: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은 단순히:
“교회에 한번 초대받았다.”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는 구원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8:30까지:
부르심 → 의롭다 하심 → 영화롭게 하심
으로 이어집니다.
13. 그러므로 로마서 8:28의 약속은 상당히 강력합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질문했던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정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일이 좋은 일이 된다는 의미라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의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궁극적인 구원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의미라면 그렇다.”
입니다.
14. 그리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8:29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8:29가 8:28의 ‘선’을 정의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시는 가장 큰 선은:
돈을 많이 버는 것
이 아닙니다.
사업 성공
도 아닙니다.
건강
도 아닙니다.
편안한 가정
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궁극적인 선은 아닙니다.
궁극적인 선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는 것
입니다.
15. 그래서 어떤 사람의 사업 실패도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업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실패 때문에:
사업 실패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사용하여 그 사람에게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28입니다.
16. 심지어 우리의 잘못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죄 자체가 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서:
하나님은 그 죄의 결과와 실패까지도 사용하여 그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죄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명령하신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죄까지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좌절시키지는 못합니다.
17. 여기서 요셉 이야기가 아주 좋은 예가 됩니다
창세기 50:20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이것이 사실 로마서 8:28을 이해하는 데 매우 좋은 구약적 배경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것은 악이었습니다.
그 악이 선한 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악을 사용하여 더 큰 선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원리와 매우 잘 맞습니다.
18. 이제 성령의 기도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8:26-27: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 다음:
“우리가 알거니와…”
그리고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이것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성도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의 삶 전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
입니다.
19. 이것이 로마서 8장의 아주 깊은 위로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라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은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더 큰 것을 약속합니다.
“네가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이해하고 계신다.”
“네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몰라도, 성령께서 아신다.”
“네가 지금 겪는 일이 악하고 고통스러워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하나님은 결국 너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신다.”
이것이 로마서 8:26-30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20.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가장 깊은 의미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좋아한다.”
는 감정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을 나의 주권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나의 뜻보다 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령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자기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지만 결국에는 제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방향으로 갑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도 연결됩니다.
21. 여기서 주기도문과도 다시 연결됩니다
앞에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이야기했죠.
주기도문의 핵심 중 하나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이것과 로마서 8장을 연결하면 아주 아름다운 구조가 나옵니다.
주기도문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
로마서 8:26-27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심
↓
로마서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
로마서 8:29
그 선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
즉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과 로마서 8장에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것이 서로 연결됩니다.
이 점은 앞서 질문하셨던 주기도문 논쟁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단서입니다.
22.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구별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두 극단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극단 1
“모든 교인, 모든 신자는 자동적으로 어떤 일을 하든 무조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 이것은 로마서 8:28이 아닙니다.
극단 2
“성령의 특별한 계시를 받고 높은 수준의 순종을 하는 소수의 신자만 이 약속을 받는다.”
❌ 이것도 본문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힙니다.
성경적인 균형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연약하고 실패할 수 있으며 고난도 당하지만, 성령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삶의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그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신다.
이것이 제가 보는 로마서 8:26-30의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한눈에 보면 이렇게 됩니다
성도의 연약함
↓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름”
↓
성령께서 도우심
↓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심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 받은 자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
그 선 =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음
↓
부르심 → 의롭다 하심 → 영화롭게 하심
이 흐름을 보면 로마서 8:28은 “성공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성도의 궁극적 구원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질문하신 관찰 가운데 특히 “8:26의 성령의 탄식과 8:28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연결해서 읽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부분은 매우 좋은 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특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소수의 신자”로 제한하기보다는, 로마서 8장의 성도 전체가 성령의 도우심 안에 있으면서 그중에서도 연약함과 탄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본문에 충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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