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노동은 인간이 이미 정해진 자연의 순환운동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마치 낮과 밤, 삶과 죽음이 이어지듯이 아무런 목적 없이 규칙적으로 행복하게 수고와 휴식, 노동과 소비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86쪽)
이 양식에서 우리는 삶을 속박하는 필연성과 더불어 삶 자체를 느낀다. (201쪽)
상민: 인간이 제작자인 한, 그는 모든 것을 도구화하며, 그의 도구화는 모든 사물이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즉 내재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15쪽)
수미: 인공세계의 제작자인 '호모 파베르'의 이상 영속성 안정성 지속성은 '노동하는 동물'의 이상인 풍요함을 위해 희생되었다... 노동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을 노동으로 변화시켰고, 노동을 미세한 부분으로 쪼개어 분업에 적합하게 만들었다. (218쪽)
아라: 자신의 육체나 가축의 도움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하는 동물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자 지배자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자연과 지구의 하인으로 남았다. 오직 호모파베르만이 전 지구의 군주이자 지배자처럼 행동한다. 그의 생산성은 창조주인 신의 이미지로 보이고, 그래서 신이 무에서 창조한다면 인간은 주어진 물질로 창조하는 까닭에, 인간의 생산성은 정의상 프로메테우스의 반란의 결과다. 신이 창조한 자연을 파괴함으로써만 인공세계는 건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223쪽)
인정: 신이 무에서 창조한다면 인간은 주어진 물질로 창조하는 까닭에, 인간의 생산성은 정의상 프로메테우스의 반란의 결과다. (233쪽)
지영: 인간의 도움 없이도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자연 과정의 특징이다. (245쪽)
재현: 호모 파베르의 기준이 이 세계의 건설에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완성된 세계도 지배하도록 허용된다면, 호모 파베르는 결국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단순히 자신의 수단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254쪽)
다운: ‘거래하고 교환하려는 인간의 성향’이 교환대상의 원천이고 인간의 사용능력이 사용물의 원천이듯이, 예술작품의 직접적 원천은 인간의 사유능력이다. (255쪽) 예술작품은 사유의 산물이다. (중략) 사유를 현실로 만들고 사유의 사물을 제작하는 것은 최초의 도구인 손을 가지고 인공세계의 다른 지속적인 사물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장인정신이다.(256쪽)
세연: 우리는 앞에서 사유가 구체적인 사물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사물화와 물질화는 항상 삶을 위해 이루어지고 그 대가도 삶 자체임을 언급했다. 구체적인 사물은 언제나 '죽은 문자'다. 즉 '살아 있는 정신'은 그 속에서 생존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죽음이며, 이로부터 사물이 구조될 수 있는 길은 죽은 문자가 자신을 부활시키려는 삶과 접촉하는 것뿐이다. (266쪽)
감자: 호모 파베르가 건설한 인간의 세계는 사멸적 인간의 거처가 된다. 이 세계의 안정성이 항상 변화하는 인간의 삶과 행위의 운동을 견뎌내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이 세계가 소비를 위해 생산된 사물의 기능주의를 초월하고 이용을 위해 생산된 사물의 유용성을 초월할 때다.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