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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더!"
상과대학 69학번은 경영과/경제과/무역과 3과로 구성되어 재학시절 군복무를 택하지 않은 사람은 종암동 캠퍼스를 4년 다녔고, 재학 중
군에 다녀온 사람은 새 관악 캠퍼스에서 남은 학점을 이수한 학번이다.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대장정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세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평균적으로) 70을 바로 바라보는 '靑老'그룹이다.
69학번 동기생은 많은 소모임을 유지하고 있어 각각의 모임이 건강한 실핏줄을 형성하여 69동기회의 큰 혈맥을 받치고 있으며,
그 중 '商山會'는 1997년 4월에 첫 산행을 시작하여 2017년 3월 제 240차 산행으로써 만20년의 이정표를 세웠고, 새로 20년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1997년 봄은 따사로왔으나 그 해 가을 부터는 소위 'IMF 사태'를 맞아 나라와 국민은 미증유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상산회'는 그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동기들에게 일편의 생기를 제공했다고 자부한다. 1997년 4월 제1회 산행 이후, 本會는 단 일회의 궐번도 없이 매달 세번 째 토요일엔
국내외의 산을 쫓아 올랐다. 주로 서울과 경기도의 산들을 올랐으나,지리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울릉도성인봉 등을 포함 지방의 크고 작은 산들도 올랐고,
특별 次數에 임해서는 白頭山과 중국의 泰산/嶗山/黃산, 대만의 玉산을 찾았다.
아래에 소개하는 산행기는
本會 산행 20년을 마감하고 새로 20년을 여는 특별기획으로 4/9 ~ 4/12 (3박 4일) 간 일본 北Alps의 '北穗高山 獨標'를 원정하고 그 旅程을 정리한 기행문이다.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후배님들께 이 여행을 공유해주십사하는 기대로 글을 올린다.
상산회 諸賢,
지난 달 3월 산행은 20년을 마감한 산행이었고, 이번 4월 산행은 21년 차로 들어서는 '새 20년'의 gate-opening 산행.
상산회 회장/총장은 이미 오래 전에 20년 마감을 기념할 special event를 예고했었고, 2월 중순에 '니시호타카다케 北穗高岳'로 원행할 것을 결정했다.
행사를 주관할 여행사를 물색했고, 날짜를 정했고, 산장·비행기·숙소 예약등으로 '募客'의 시한이 무척 빠듯했으나 1주일 만에 20명이 참가를 통보했고,
미국에서의 귀국 일정에 차질이 생긴 P를 제외한 19명이 4/9(일) 장도에 올랐다.
* 산행일 : 4/9 ~ 4/12 (3박 4일)
* 산행지 : 일본 북Alps (北穗高岳 獨標 : 2701-M)
* 참가자 : 강병서, 강신찬, 김상희, 김한주, 김호경, 배진한, 신상기, 윤용국, 윤한근, 이정우
이제용, 이종기, 이종원, 장인주, 정찬인, 정태성, 최해관, 추호석, 한택수 / 19명
매 산행 때마다 집행부의 첫 째 고심(?)은 산행기 집필자를 정하는 일, 이 번에 소생이 지목됐다.
역사적 紀行의 기록자로 지목되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으나,
그 동안 本산행기에 몇 줄 토나 달던 경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솔직히 부담을 느낀다, 사진도 찍어야하는데.
그러나, 누구라도 해야할 것이니.... .
D-1 (4/9 : 날씨 - 청명)
여행사에서 공항에 도착해달라는 시간은 아침 6시 30분, 그러자면 各人은 나름대로 매우 일찍 집을 나서야 했을 터, 나는 집 근처 정거장에서 5시 발 공항뻐스를 탔다.
공항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이미 상당 수의 멤버들은 check-in절차를 진행 중, 대전서 당일 올아왔다는 B君은 대전發 3시 반 뻐스를 탔다던가.
그리하여 일행 19명 전원은 예정된 시간에 탑승게이트에 모였고, 이에 응답하듯 아시아나 OZ122편은 정시에 나고야로 이륙했다.
산악人인 여행사 K대표와 니시호타카 山 사정에 밝은 가이드 J도 인천공항서부터 동행했다. 그래서, 팀 총원 21명.
OZ122은 나고야에 정시 도착했고(, 이후 식사시간 포함 모든 일정에서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은 나흘의 여정 동안 거의 오차 없이 집행됐으니 '메이와꾸'의 실현이라고 할까,
아니면 우리 19명의 체적된 경륜이라고 할까), 대기하고 있던 전세뻐스에 승차
고속도로 운행 중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두툼한 돈카츠로 점심하고,
'물과 춤의 도시'라는 '구조하치반 郡上八幡'으로 이동, 일본 100대 名水의 고장이고 또한 에도시대의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란다. 정취가 있고 깨끗하다.
마을 곳곳엔 '春まつり(축제)'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는데 아직 축제는 개시 전, 일요일 오후 거리는 한산했고 우리는 여유있게 마을 여기저기를 소요했다.
길마다 골목마다 잘 정비된 水路엔 맑은 물이 넉넉히 흐르는데, 매년 물과 바람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는 일본 열도이지만,
풍부한 수량이 이 나라 번영의 천혜적 바탕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治水를 잘 하면야..., 물이 만물의 생존과 번영의 근본이니까.
아침에 떠나온 나의 조국은 봄가뭄을 걱정하고 있었다.
'구조하치반'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차내, L君이 희사한 위스키로 흥을 올리고, 그 사이 차는 시골 온천 동네 平湯[히라유]의 프린스 호텔에 도착.
방을 배정 받고, 온천하고, 유카타로 改衣한 후, 호텔 內 다다미방 너른 Banquet Hall에서 정식 '카이세키'로 만찬을 했다. 맥주로 목을 축인 후엔 日本酒가 출현했고
동시에 B君이 제공한 위스키가 횡행했다. 이 번 여행의 主 동기는 상산회 출범 20년을 기념하자는 것, 19명 전원은 돌아가며 각자 自祝의 메씨지를 던졌다.
상산 20년을 새삼 음미하며, 동기들과의 여행은 감사한 것, 자주 모이자, 건강하자, 등등. 누구의 코멘트였나.... "향후 20년 후에도 같은 자리를 만들자!"
(* 다음 날, 본격 산행을 끝내고 산장에서 석식할 때, 여행사 대표가 "어제 20년을 말씀들 하시던데, 10년 단위로 잘라서 하자시는 것이 더 현실적 아니겠습니까" 라고 웃으며 '히니꾸'했지).
만찬이 끝난 후 몇은 여전히 취흥을 유지하자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사람들, 내일 2700고지 오르려는 70 老客들이야?
D-Day(4/10 : 날씨 - 청명 & 흐림)
이번 원정의 Highlight 北Alps의 '니시호타카다케 北穗高岳'로 오르는 날, 날이 매우 청명하다. 봄인데... 누가 한국의 가을 날씨같다고 했다.
그렇게 날이 맑았다. 바람도 없다.
간 밤 '대연회'의 그 장소에서 和食으로 조식을 하고, 산행장구와 산장에서 묵을 때 필요한 용품만 배낭에 챙기고, 나머지 짐은 호텔에 놔둔다.
날이 무척 좋은데 우산을 지참할까, 말까... . 지참하기로 한다. 동산에 오르더라도 준비는 히말라야 가듯이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호텔 (여)주인은 안전산행을 기원한다며 작은 다과 봉지를 하나 씩 건네며 예의 그 일본식 친절한 몸짓과 살가운 음색으로 환송한다.
산행지로 출발하기 위해 호텔을 나선다. 호텔 주변 벚나무들, 대한민국 남도의 벚꽃은 이미 졌을 터, 그 보다 위도가 많이 낮을 이 곳인데
이 산골동네의 벚나무들은 아직 꽃망울 상태다.호텔 인근 일반뻐스 정거장까지 걸어갔고, 거기서 뻐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 Cable-car Station으로.
등산 시작 점까지 우리는 케이블카로 오른다(* 케이블카를 Rope-way라고 부르더군).
드디어 케이블카 탑승, 고도를 높이자 시야에 雪山의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케이블카의 하차 지점은 고도 2160M, 전망대가 있고 등산 출발 기점이다.
전망대 데크에 오른다, 사방이 雪山이다. "와~!" (음력)춘삼월에 雪界로 들어선 것이다. 蒼空을 배경으로 길게 줄 지어진 '니시호다카'의 連峰들,
그 중 우리의 목표峰 '獨標'도 선명하다.
날씨가 정말 화창하다. 누가, "'자네, 우산은 짐 되게 왜 가지고 왔나?" '괜히 지고 왔나...... '.바닥에 눈이 두툼히 쌓여있다.아이젠을 찬다.
선두는 여행사 K대표, 후미는 니시호타카 전문 가이드 J. 출발!
출발하자 마자 등산로는 양쪽으로 雪壁을 치고, 설벽을 벗어나자 山은 아름드리 전나무(? 가문비 나무?)와 군데군데 (붉은 樹皮의) 자작나무 群으로 무성하다.
앞 사람이 다진 눈길을 따라야지 벗어나면 발이 무릎까지 빠진다. '오이코시'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팀의 진행은 일렬이 되는데 21명의 행렬은
각자 다른 색의 등산복으로 멋진 蛇行을 만든다.케이블카 종점에서 1차 목표지인 山莊까지 오르는 코스는 1시간 반으로 예정했고,
청명한 날씨에 날도 따사해 진행은 제법 여유가 있었다.
4월에 이런 雪國에 갇힐 수 있다니..., 눈길 보행이 다소 숨을 가쁘게 했지만 일행은 기막힌 雪景에 희열했다.미끄러지며 빠지며 사진을 박아가며...
어느 새 숲을 벗어나자 눈언덕 너머에 산장의 지붕이 보인다. 예정된 시간에 산장에 도착했다.
무리는 陽地의 벤치에 앉아 산장의 점심 준비를 기다리며 멀리 오늘 우리의 목표 2701-M 峰 '北穗高岳 獨標'를 바라본다. 날이 맑아 지근 거리에 있는 듯 하다.
'獨標'에 이르는 루트, 남쪽 사면은 (눈이 녹아) 검은 지표색이고 北斜面은 눈으로 하얗다. 능선을 경계로 두 색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흑백의 진한 油畵를 보는 듯 하다.
하늘은 여전히 청징하다. 누가, " (이번 산행의 목표 고지) '獨標'를 넘어 더 멀리까지 가자!"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날도 좋고,
주변의 맑은 기운에 스스로 느끼는 몸의 기력도 왕성했고, '독표'는 가까이(?)에 있으니까. 四圍가 새하얀데, 일행은 백설위의 강아지 같이
천방지축하며 自寫(Sel-ca)도 하고 他寫도 하며..., 俗事를 생각하지 않으니 비록 머리는 쇴으나 아이들이다, '늙다리'가 아니다!
점심으로 산장에서 제공한 우동(또는 라멘)을 먹고, 그리고 산장을 출발한 시간이 12:45분. 오르는 데 1시간 반, 내려오는 시간 1시간으로 예정한다.
능선을 경계로 눈 쌓인 오른 쪽 북사면을 걷는 21명의 행렬은 壯觀이다. 旣視感! 문득 本會가 백두산의 西坡->北坡를 주파할 때(2010년 8월) 어느 구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능선의 북쪽은 만주벌판으로 열렸고 그 반대는 천지 쪽 斜面인데 한 쪽에 형성된 안개는 다른 쪽을 침범하지 않아 능선의 경계를 매우 명확히 했다).
그런데..., 호흡이 평지를 걸을 때와 같지 않다. 서울 주변 산을 오를 때와 다른다. 눈길 산행의 부담이 있는 것에 더해서 우리는 이미 2400~2700 고지를 오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네팔 히말라야 관련 부서의 자료에 의하면, 해발 2500-M의 산소 용존량은 바닷가의 그 것에 비해 1/4이상 적다 : 73%). 더해, 멀리서 보면
우리가 갈 길이 평평한 눈의 벌판으로 아무데를 밟아도 될 것 같이 보였으나, 앞 사람의 흔적을 밟지 않으면 바로 함정이다. 발이 빠진다.
앞 사람의 발자국을 밟아 걸어도 어느 경우엔 발이 푹 빠지고 때론 무릎을 넘는다. 눈이 무르게 쌓여있다는 뜻인데 지표에서 올라오는 지열때문이란다.
오른 발이 빠져 빼려고 왼발에 힘을 주면 왼발이 빠지고, 이러기를 수도 없이... .
그러나, 전후좌우의 雪景은 우리를 夢遊시키고, 틈나는대로 사진을 담을 욕심에 팀원은 각자 나름대로 바쁘다. 전체의 전진 속도가 일사불란하지 않다.
여의치 않다, 헛 구덩이는 여기저기에 있고.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생각하며 언뜻 뒤돌아 보니 먼 쪽 능선엔 거무튀한 구름이 올라 앉아있고,
그 기운이 이 쪽을 향하는 태세다. 높은 산의 천기는 과연 믿을 수 없다.
오늘은 월요일, 산엔 우리 외에 두어 팀 서너 명의 개별 산객 뿐,
오르면서 만난 그들은 이미 하산 중이었고, 北Alps 그 구간을 우리가 전세내고 있었으나 일행의 진행이 더뎌 뭔가 편안하지 않다.
드디어 '獨標'를 눈 앞에 둔 지점 도착, 쇳날 같이 뾰족한 바위가 맹수의 치아로 드러나는 구간이다, 칼바위다, 불안정한 바위다.
가이드 J가 "길 좀 정리하겠습니다"하며 바위를 밀어내니 날카로운 바위조각이 힘없이 떨어지며 아래로 구른다. '바위가 살아있는' 것이다.
緊張! 저 걸 모르고 의지했었더라면..., 이미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변했고 안개(산객들은 이 것을 '깨스'라고 부르지)가 다가서고 있다.
그 지점부터 '독표' 정상은 급경사, 여행사 '카일라스' K대표가 눈 쌓인 경사를 클라이밍해 정상에서 올라 로프를 내렸다. 그 줄을 잡고 오르는 것이다.
문제는, 산정이 좁아 21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이 올라서면 자칫 추락의 위험이 있단다. 5명씩 오르랜다. 5명이 오르고 내려서면
다시 5명이 오르고, 그러니 시간은 예정에서 많이 지나고 날은 어두워질 것인데... .
시간이 많이 걸려 불안한 상황으로 진전될 것을 염려한 후미 그룹은 정상 등정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본격 하산,
오를 때보다 눈 속에 발이 빠지는 경우가 잦아진다. 발이 빠지면 저 혼자 힘으로는 다시 빼기가 힘겨운 경우도 있다. 동행이 거들어줘야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랬는데 마음이 바빠 더 그랬나... . 숙제(?)를 마치고 하산하는 마음이 가벼워야 하나 신경은 온통 '함정'을 딛지 않으려고 곤두 서있다.
산장에 공지된 일몰까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나 태양은 이미 '깨스'에 가려진 상태, 태양이 사라진 만큼 일행의 마음 여유는 졸아들고, 그래서 더 미끄러지며, 빠지며, .... .
일행이 다시 산장으로 전원 안전하게 귀환한 시간은 5시, 예정시간을 많이 넘겼다. 저녁 식사 때 카일라스 K대표는 "정상등정을 포기해 주신
어르신들께 감사를 드리고 존경한다"고 했다. K대표는 전원을 정상 등정도 시켜야 할 사업적(?) 부담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전산행과 무사귀환이
우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서울 주변 산의 암릉을 우습게 타는 Y는 '獨標'를 밟고 내려와서 "용궁에 갔다 왔다"고 했고,
'獨標'를 넘어 더 멀리있는 봉우리까지 오르자고 했던 산행 시작 전 코멘트는 계면쩍게 상기됐다.
산을 탈 때 '그 산 얼마나 높니?
몇 미터야?'는 기본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산에서는 Altitude보다 Attitude가 중요하다고 한다. 높 낮이를 떠나 산에 대한 경외 그리고 겸손함,
그리고 동행과의 연대감. 그런 점에서 그 날의 雪山 등산은 우리에게 또 한 수를 가르쳤고, 일부의 막판 철수는 분명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큰 산에서 천기가 불순할 때 정상을 눈앞에 두고 퇴각을 결정하는 것은 용기고 지혜인 것을 많은 산악사고가 가르친다.
방을 배정 받고(8인실 두개, 5인 실 하나), 식당으로. main 과업을 마친 우리는 이제 자유다! 산장의 식사는 여건 상 小餐일 수 밖에 없으나,
식탁엔 B君의 '아다라시' 위스키병이 또 나타났고, 산장에서 파는 日本酒 · 맥주 그리고 서울서 가지고 간 빨강 뚜껑 '진로'도 합류해 盛餐을 만들었다.
우리 외에 客이 두엇 더 있었나... 스스로 고성을 조심했음에도 산장측으로부터 "'좃도' 조용히 해주세요" 의 경고도 들으면서 산상 만찬을 유감없이 즐기는 사이
시간도 흐르고, 9시에는 소등해야 하므로 침소로 돌아간다. 아니, 이미 그 전에 산장의 주류는 재고가 동이 났고, 그렇게 D-Day가 지나갔다.
D+1 (4/11 : 날씨 - 눈(보라) & 비)
산장엔 투숙客이 이용할 上水道 시설이 없다. 양치질을 하고 싶으면 자판기의 생수를 사야하고 세수도 물을 사서 또는 물 티슈로 해야한다.
치약은 사용할 수 없다. 산의 환경은 결국 그렇게 해야 보호될 것이라고 일말 동감했다.조식은 6시부터, 식당 창을 통해 본 밖은 흐쁘옇다.
어제 오전 그렇게 청명하더니.... . 政情(!)을 살피러 밖에 나서니 눈보라가 친다. 기온도 매우 차다. 이 4월에....
역시 和食으로 조찬하고, 짐 꾸리고, 하산 준비.
완전 동절기 복장에 바람/비막이 옷을 덧 입고, 털모자 쓰고, 아이젠 다시 동여 매고. 동절기 악천후 복장이다. 준비해간 일체의 장구가 다 소용된다.
이런 날에 산행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더구나 4월 봄철에. 뒷동산에 오르더라도 준비는 히말라야 가듯이 하라는 말은 맞다.
일행은 조심스레 일렬 종대를 이루며 산장을 떠나 하산 길로, 우의가 바람에 뒤잡혀 시야를 가리고, ... 다시 숲속 구간으로 진입해서야 바람이 잦는다.
전나무 침엽수 잎 위엔 눈이 수북하다. 한 봄의 성탄절 풍경! 그렇게 다시 미끄러지며 빠지며 1시간 여 걸어 케이블카 驛站으로, 옷은 눈에 젖고 땀에 젖고.
하산 케이블카의 승객도 우리 뿐, 지상에 서니 비가 온다. 전세뻐스를 타고 다시 호텔로, 친절한 (여)주인은 여전히 우리를 반기고 곧 떠날 客에게 온천을 제공한다.
물한방울 쓰지 못했던 산장에서의 께끈함을 따뜻한 湯에서 씻어내고, 맡겨 논 luggage를 찾아 싣고 다음 목적지, 인근 식당으로.
점심하러 들른 산골 동네의 너른 주차장을 갖춘 식당, 일본 것 답지 않게 매우 spacious하여 마치 미국 서부의 어느 식당에 온 듯, 축소지향的 일본이라는데..., 크다.
메뉴는 그 지방 특산 飛驒牛를 얇게 저며 양배추/숙주나물과 함께 불판에 올린 '스키야키(?)' 같은 것. 양이 적다고 할까봐 여행사는 2인에 3인분의 양을 준비했단다.
맛 있다. 그러나 야채를 더 얹어 달라고 했는데 그 큰 집에 추가로 준비된 게 없단다.
식사 후, 일본 최고의 자연림이라는 '미즈기사와 水木澤' 숲으로 향한다, 트레킹 프로그램이다. 비는 계속 온다.
숲 입구의 안내판엔 숲을 '原始林' '太古林'으로 구분했는데, 얼마나 오래된 숲이기에 둘로 구분하나...., 둘 중 어느 것이 더 오래 된 것일까... .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꺼내 들고 숲으로 들어선다. 좁은 숲길, 위에선 비가 내리나 바닥 산길엔 눈이 쌓여 있다. 아이젠을 벗어버린 걸음거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편백나무[히노끼]가 빼곡하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우람한 편백나무가 셀 수 없이 많다. 본래 계획은 전망대까지 오르려 했으나 雨天에 전망이 가려있을 것이고...,
550년 樹齡의 2.5M 직경 편백나무를 터치하고 돌아섰다.그 시간 그 숲을 찾은 客도 우리 뿐이었다. 우리 외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큰 자연에 우리 홀로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개인 적으로 이런 고요를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비 오는 길을 두어 시간 달려 다음 숙소가 위치한 '木曾路 Kisoji'로.
이동하는 시간 차 안은 K의 '봄'에 관련된 詩의 소개와 해설이 있었고, H의 한반도 정세에 관련해서 군사전략에 관한 상황분석과 판단이 있었다.
상대출신들의 관심과 몰입의 분야는 참으로 다양하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 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 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봄의 정원'/잘잘루틴 루미(페르시아 시인)
'기소지'호텔, 시골 마을에 이렇게 큰 호텔이 있다니... .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또한 일본色이 훔씬 묻어나는 규모있는 시설, 온천장도 만족스러웠고.
저녁은 (일식+양식의) 부페식, 일행은 이제 일정 상 큰 부담이 없어 더 자유롭게 그 호텔의 家釀맥주와 日本酒, 그리고 이번엔 L君의 위스키병을 새로 따며 여정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일부는 그 후 노래방으로 까지... .
D+2 : 中山道[Nakasendo]의 妻籠宿 -> 馬籠宿 구간 (둘레길) 트레킹 : 날씨 - 청명
4일 째, 오전 나절에 '둘레길'을 걷고 귀국하는 날.
아침 7시, 조식 차 식당에 들어서는 일행들, 그 전 3일 간의 일정과 통음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을 터이나 온천욕 덕인지... 얼굴들이 부유하다. 누구는 몸무게가 얼마가 늘었다고 했다.
식사 후, 짐을 챙기고 뻐스를 기다리며 호텔 로비에 여기저기 편히 앉아 차 타기 전 여유있는 한담을 나누는데, 다른 L君 曰, "앞으로 무슨 기념일에만 이런 거 하지 말고 수시로 하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로 천도하면서 쿄토에서 에도로 향하는 길을 5개 만들었는데 그 街道 중 하나가 '나카센도 中山道'. 554Km의 全長에서 妻籠宿[Tsumagojuku]
- 馬籠宿[Magomejuku] 7.7Km 구간이 경치와 건축물 보존의 관점에서 그 중 백미란다. 이 길을 걷는 것이다. 한 驛站에서 다른 驛站까지, '한참'을 걷는 것이다.
中山道에는 69개의 驛站 마을이 있었고 이를 '宿場[슈쿠바]'라고 한다는데 이 중 妻籠宿 - 馬籠宿 구간의 마을들은 1976년에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유지되고 있고, 에도시대의 분위기가 잘 간직된 환경이라고. 찻집과 식당과 여관과 상점과, ...., 일본인의 디테일 관리가 어찌 세밀한지 그 진가를 또 느끼게 된다.
(에도 시대?의) 목조주택들,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작은 여유엔 작은 정원을 가꿨고, 꽃을 심을 데에는 봄 꽃이 단정히 피고 있고, 큰 나무도 마치 분재를 해
놓은 듯 모양을 냈으며, 돌계단 또한 몇 백년을 또 견딜 수 있도록 탄탄해 보였다. 집집마다 지붕에 얹은 기와는 하도 반듯해 이 마을이 예전 마을인지 의아하게 한다.
집이든 길이든... 마을이 개끗했다. 7.7Km 긴 구간을 걷는데 쓰레기로 여겨질 건덕지를 하나 찾지 못했다. 아니, 한 조각 찾았는데 내가 줏어 내 배낭에 넣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적용될까봐 過客인 내가 염려한 것이다. 족히 8~90은 돼 보이는 老부부는 작은 화단에 떨어진 낙엽을 정성스레 정리하고,
일본 고유의 청소복 apron을 걸친 노마씨들은 길가 창틀의 먼지를 찾아서 닦는다. 여기에 story를 붙여 이를 소개하니 세계 각 처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와 역방향으로 걸어오는 '둘레꾼'들을 제법 많이 만났는데, 주로 유럽 인종들.
일본人들의 名前[다테마에]와 本音[혼네]를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고 누가 조언하나, 친절하고 깨끗한 '와타나베 여사'에게 일단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설혹 내 간을 뺏기드라도.
그 길을 걸으면서 이번 여행에 이 일정을 넣은 것은 참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雪]산 등산의 고됨 같은 것이 '둘레 길'을 걸으면서 풀어지는 느낌이다.
마을을 지나고 숲길을 걸으며, 폭포를 지나 마루턱을 넘어서 다시 마을길로.... . 날은 더 할 수 없이 청명하다, 어제 그렇게 눈/비를 뿌리더니.
19명 일행이 긴 구간을 계속 뭉쳐서 다닐 수는 없는 일, 자연스레 뿔뿔이 걷게 된 우리는 트레킹의 종착지 馬籠宿[Magomejuku]에서 다시 집결했고,
뻐스로 점심 장소로 향했다. 이동하는 차창 밖 환경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春陽이 따사로운게 마치 우리 땅 남도의 매화 마을을 지나는 것 같다.
C가 "양지 바른 게 묘 쓰기 좋겠다!" .... 때가 된겨? 일정의 마지막 식사도 돈카츠, 그러나 첫 날의 고속도로의 그 것과는 격이 달랐다. 유서 깊은 식당이란다.
주인이 써브하는 소바를 곁들인 돈카츠, 무엇보다 주인 여자의 미모가 출중하다는 데 일행은 입을 모았다. 우리는 남정네다!
그리고, 공항으로.
나고야의 OZ123편은 역시 정시에 이륙해서 정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렇게 우리의 3박 4일의 일정은 끝이 났다.
1차 세계대전 직후 '4월은 잔인하다'고 Eliot이 당대의 봄을 표현했는데, 지금 우리의 봄도 매우 편안하지 않다.
그럼에도, 오랜 친구 20명과 20년 산행을 自祝하는 이번 여행은 아주 푸근했다. 4월의 雪山에서 새로이 팀웤을 다졌고, 앞으로 "20년 더!"를 기약했다.
L은 귀국 후 다음 날 카톡방에 '그 동안 상산회 해외원정 산행들이 나름대로 멋있었지만 이번 북 알프스 설국 산행은 정말로 최고였습니다'라고 썼다.
개인 사정으로 이번 원정에 동행하지 못한 산우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충실한 내용으로 여정을 꾸미고 행사를 무사히 치루느라 심려가 컸던
本會 김상희 회장/윤한근 총장에게 다시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HK-필자 김 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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