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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정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제주교구 학술대회 및 제213회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 발표회
개회사: 문창우 주교(제주 교구장)
발표1 : 기억과 기록을 통해 본 정난주(정명련)의 삶에 대한 검토
- 호명(呼名)의 역사에 대해서
권이선 (한국교회사연구소)
발표2 : 문학으로 만나는 천주교 여성,정난주와 유섬이
김윤선 (고려대학교)
발표3 : 정난주 유배길 연구 - 제주 산록길을 중심으로
김장환(한국교회사연구소)
발표4 : 정난주 기념관의 방향성 모색 , 역사와 활용 사이에서
송란희 (한국교회사연구소)
폐회사: 조한건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장)
제2 발표
문학으로 만나는 천주교 여성,정난주와 유섬이
문제 제기
2. ‘입도조(入島祖) 이야기’에서 ‘어머니 서사’로
3. 잃어버린 모성과 모성성의 회복
4. 어머니들의 어머니 정난주
5. 어머니의 딸 동정녀 유섬이
6. 맺음말
1. 문제 제기 : 평신도,박해,여성 그리고 제주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핵심어는 ‘평신도’와 ‘박해’ 혹은 ‘순교’이다. 제주교구 천주교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제주교구의 경우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여성’. 여성에서 시작된 천주교 복음의 전래! 이 세 개의 특징을 제주지역 천주교 전래의 시작이자 특징으로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정난쥐1773~1838) 때문이다.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지역 천주교 전래의 시작을 연 인물이다. 제주교구에서 제주 선교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제주 천주교회 100년사』에 따르면,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되어 유배형을 받은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지역으로 유배를 오면서 제주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알려진다.1) 제주는 정난주에 의해 천주교 신앙이 알려지고, 이후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 사건으로 첫 미사가 봉헌되었으며,1858년 김기량에 의해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고,후에 김기량이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함으로써 그는 제주 출신 첫 순교자가 되었다.
이러한 제주교구에 의한 제주교구사는 한국 천주교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지역의 교구사는 무엇보다 자신의 교구 역사에서 무엇을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교구의 관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제주교구의 경우 그 첫 시작을 정난주 마리아의 유배로 기술하는 것은 연대기적 서술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정난주를 교구사의 시작으로 보는 서술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것이아니다. 즉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 제주교구의 제주 교회사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알려진다’라는 서술어가 의미하는 바다. 여기서 천주교를 알린 주체는,혹은 주인공은 ‘정난주’라 할 수 있는데,그 대상은 누구인가의 문제다. 당연히 이러한 서술에는 당시 제주민에게 천주교가 알려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정난주가 제주에 유배 오면서 제주에 알려진 사실들이 고증되어야 한다. 정난주가 천주교 때문에 제주도 관비로 정배되어 유배를 오면서 유배의 이유 때문에 천주교가 알려진 것인가,아니면 이후 그녀의 삶 때문에 천주교가 그녀로 인해 알려진 것인가.
둘째,‘알려진’것만으로 교구사의 시작으로 기술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그 기
점을 공동체 형성에서부터 잡는다. 1784년 이전에도 당시 조선 사회에서 천주교 혹은 서학이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승훈의 세례와 함께 교회 공동체가 형성 되는것을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제주교구에서 천주교는 제주민이 천주
교 세례를 받고,천주교 공동체가 형성된 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전까지의 역사는 전사(前史)로서의 의미가 있을지언정 제주 천주교회의 시작은 아닐 수 있다.
셋째,정난주 마리아가 제주도로 유배 왔을 때,그녀를 통해 천주교를 알았다는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 과연 그녀를 통해 제주민들은 천주교를 알았을까? 단지 천주교라는 이름을 안 것인지,그들이 알게 된 천주교는 무엇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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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편,『제주 천주교회 100년사』,천주교 제주교구, 2001,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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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정난주에서 비롯된 제주 천주교 공동체의 시작. 이에 대한 사료를 찾고 확인하는 작업은 교회사를 비롯한 역사학에서 고증하고 연구해야 할 영역이다. 정난주가 천주교인으로서 제주에서 산 신앙의 흔적들을 사료로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녀가 배교자 혹은 넁담자로 제주에서 살았다고 규정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난주 관련 '이야기’의 전승과 이것이 문학으로 이어지면서 창작된 정난주 관련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 이야기들에서 정난주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난주는 역사적 기록뿐 아니라 ‘이야기’와 여기에서 파생된 문학 작품들을 통해 교회의 여인,제주의 여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정난주 관련 이야기들이 전승되면서 정난주는 제주민들과 함께 했고, 그 이야기를 통해 교회와 이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정난주는 제주교구사의 시작 혹은 전사(前事)로서의 의미뿐 아니라,천주 신앙이란 무엇이며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재고하게 한다. 게다가 정난주 관련 문학 작품들은 현재 더 적 극적으로 교회 밖 한국 문단에서 창작 향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녀는 교회의 한 인물,과거의 한 인물로만 머물지 않고,여전히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고 이 시대 한국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은 아닐까? 이글은 이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 인물 정난주보다는 문학적 인물로 탄생하고 있는 정난주에 주목한다. 또한 같은 시기에 거제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유섬이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비교도 덧붙일 것이다.2)
이를 통해 신유박해 당시 유배된 두 여성,정난주와 유섬이에 대한 문학적 현상 안에서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인 정난주를 더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난주와 유섬이는 교회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은 존재들이 아니었다. 가정생활이 주가 되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이 가정의 경계를 넘어 역사에 흔적을 남기거나 역사적 인물로 부상하는 일은 양반가의 여성이었다 하더라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정난주와 유섬이는 천주교로 인하여 그녀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가능하게 했다. 정난주와 유섬이는 연좌제에 따라 유배형을 받은 사학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며,유배자였고,관비였던 그녀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풍부한 것은 아니다. 특히 유배 생활 중 그녀들의 기록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 기록의 공백은 정식 기록 문헌보다는 구전과 같은 방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되어 전승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실제와 상상 사이에서 당시 사람들의 시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야기와 노래의 계보를 잇는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문학적 대상으로 주목받은 천주교 여성 인물이 정난주다. 이에 비해 유섬이는 아직 교회 밖 문단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물론 유섬이가 정난주보다도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과 2022년 한국 문단에서 정난주를 주인공으로 한 장•단편 소설이 발표되었다.『난주』(김소윤,2018)와「난주의 바다 앞에서」(김연수,2023)가 그것이다. 널리 읽히지는 않았지만 천주교회에서 발표된『순교자의 나라』1〜4권(박도원,2007)과『고요한 종소리』(장정옥,2016)에서도 정난주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두 소설에서의 정난주는 주인공은 아니다. 신유박해의 한 인물로,황사영의 부인,황경한의 어머니로 작품 중 일부에서 등장할 뿐이다. 2018년과 2022년『난주』와「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정난주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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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난주와 유섬이(柳暹伊)를 비교 연구하게 된 것은 주최 측의 제언에 따라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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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작품은 교회의 지원이나 지지를 받지 않은 채 문학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로써 정난주는 교회의 경계를 넘어 좀 더 많은 독자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 위인도 유명인도 아닌
정난주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녀의 친정인 정약용 가문과 남편 황사영 때문이기도 하고,교회의 이야기가 교회 밖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가능했을 것이다.
제주에 마련된 정난주를 기리는 대정 성지도 정난주를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특히 정약용, 정약전 관련 소설,영화 등의 작품과 문화 콘텐츠의 등장 역시 정난주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난주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의 등장은 작가가 주목한 정난주가 지닌 가치가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정난주는 시공을 넘어 한국현대소설에서 문제적 개인으로 부활하였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이들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정난주는 천주교회에서는 어떻게 수용되고 의미화될 수 있을까? 제주교구의 시작으로서 정난주의 영성을 이러한 문학작품을 통해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 글에서는 문학작품속 정난주의 특징과 가치가 어떻게 복음적 진실과 만날 수 있는가를 전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정난주라는 인물과 그 서사의 특징을 추적하고자 한다.3) 이를 통해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이기도 한 정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추이와 변화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이글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2000년대 이후에 발표된 정난주 관련 작품으로『순교자의 나라』(박도원,2007),『고요한 종소리』(장정옥,2016),『난주』(김소윤,2018),「난주의 바다 앞에서」(김연수,2022)와 시집『마리아 정난주』(이청리,2011), 유섬이 관련 시극『순교자의 딸 유섬이』(강희근,2016)이다.
이에 앞서 2002년에 채록한 추자도 설화 역시 대상으로 삼았다.4)
2. ‘입도조(入島祖) 이야기’에서 ‘어머니 서사’로 :
추자도 설화「황씨와 오씨가 결흔 안 하는 이야기」의 전승과 변주
『순교자의 나라』(박도원,2007),『고요한 종소리』(장정옥,2016)
역사소설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서사물들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문학적 사
실로 서술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거짓을 진실인 양 서사화하는 것을 문학적 허용으로 무조건 관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이 둘 즉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사실 사이의 긴장과 변주가 문학적 진실로 구현된다. 작가의 문학적 변용과 창작의 과정으로 재창조된 문학작품을 사실 그대로 수용하여 사실과 문학이 추구하는 진실을 혼동하는 독법도 문제지만,문학적 진실보다는 사실 여부의 잣대만으로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난주를 비롯한 천주교 역사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에서도 이 점은 늘 문제다. 작품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서술된 부분들을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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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번 학술발표의 다른 발표자의 연구에서 역사적인 연구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두 인물에 대한 사적 검토보다는 문학 작품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4)학술발표이지만 연구자 중심의 발표가 아니라는 점,문학작품을 읽지 않은 청중이 많으리라는 점을 고려하여 본 발표문에서는 작품 인용 시 작품 소개 차원으로 긴 지면을 할애했음음 미리 밝힌다. 후에 학술발표장에서나 논문발표에서는 인용문의 분랑올 축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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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서는 천주교 인물들의 문학작품화가 오히려 교회사의 사실 여부에 따라 경계해야 할 현상은 아닌가. 정난주의 경우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천주교회의 입장에서는 천주교인들의 작품화가 소재나 배경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작품을 바라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정난주 이야기와 정난주 등장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의 오류는 정난주가
추자도에 자기 아들 황경한을 버리고 혼자 유배지 제주도에 입도했다는 이야기와 관련된 부분들이다. 이 부분은 정난주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공통 모티프다. 추자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온 이 이야기는 이후 정난주 관련 소설에 인용되며, 문학적 서술이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5)
우선 추자도 예초리에 전해지는 구전설화부터 확인해 보자. 추자도 예초리에는 「결혼 안 하던 황
씨와 오씨 이야기」가 있다. 추자도 예초리에서 채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인 1801년 정난주가 제주로 가다가 아기 황경한을 추자섬 예초리 바닷가에 내버리고 갔다. 아기는 물생이끝에 버려졌는데, 물생이끝은 물살이 아주 센 곳으로 지나가는 배가 섬 가까이 바싹 붙어야 하는 곳이었다. 여기에 이르러 배가 붙었을 때 어머니는 아이를 제주까지 데리고 갔다가는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섬바위 위에 내려놓고 떠나버렸다.
이 시각 예초리 사람 오상선은 소를 먹이러 갔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돔방에우(배내옷의 추자말)를 입은 채 사내애가 하늘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울고 있었다. 오씨는 필경 하느님이 자기들에게 준 아기로 알고 기쁜 마음에 키우기 시작했다. 오씨 집안에서는 배내옷에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므로 그로부터 황씨와 오씨 사이에는 혈연으로 여겨 결혼을 하지 않았고,황경한은 추자의 황씨 입도조가 되어 살다가 예초리의 솔박에 묻혔다.6)
조선시대 변방은 유배지였으며, 추자도도 그중 하나였다. 추자도 유배자 중에는 섬 주민의 시조가된 경우도 있었다. 황경한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다. 인용은 정난주가 제주 대정골로 유배 가다가 예초리 바닷가의 물생이끝에 배내옷을 입은 채 아기를 내버린 것을 어부 오상선 씨가 길렀고 이로써 황경한이 추자의 황씨 입도조가 되었다는 이야기7)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추자도의 지역적 특징이 물생이끝을 통해 부각된다. 정난주가 아기를 버렸다는 직설적인 서술, 그 이유가 제주까지 갔다가는 생명 부지가 어려울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는 것을 간략하게 전한다. 이 채록 설화는 어머니 정난주보다는 추자도 황씨 입도조의 내력과 이에 따른 황씨와 오씨 집안 금혼 이야기가 중심이다.
천주교나 정난주에 대한 부가적인 내용은 없다. 추자도 사람들에게는 잘 알 수 없었을 천주교 관련 내용보다는 그들에게는 입도조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전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는 소설에서도 활용된다. 박도원의 소설 『순교자의 나라』(2017,예담)에서 정난주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황사영의 아내이자 황경한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순교자의 나라』는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순교사를 다루는 전 4권의 역사소설이다. 그중 제2권 ‘피로 쓴 백서’는 황사영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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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론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이런 이야기들의 전파에 교회 역시 일조한 경우도 있다.
6) 고영철 취재·오성찬 편집, 『추자도』, 제주의 마을 시리즈 17, 도서출판 반석, 2002, pp. 181~182.
7) 고영철 취재·오성찬 편집, 위의 책, 2002,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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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정난주는 황사영과의 결혼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언급된다. “얼마 후 황사영과 정명련의 결혼식이 거행됐다. 황사영은 꿈같은 신혼의 나날을 보냈다.”8) 이후 황사영이 순교하고 그 유족들이 유배 가는 장면이 「황씨와 오씨가 결혼 안 하는 이야기」에서 다룬 정난주(정명련)가 아들을 추자도에 남겨놓는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천지가 흰 눈으로 온통 하얗게 덮인 어느 날, 작은 배 한 척이 한강 나루터를 떠나서 제물포
로 향하고 있었다.
그 배에는 대역부도 죄인으로 참형을 당한 황사영의 유족들이 타고 있었다. 관원 두 명이 그
들을 감시했고, 사공 세 명이 배를 저었다.
돛대를 하나만 단 작은 배는 해안선을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배 안에는 황사영의 어머니 이씨 부인과 두 살 난 아들 경한을 품에 안은 며느리 정명련이 넋
놓고 앉아 있었다. 고부의 찢어지는 심정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참담한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각각 가는 곳이 달랐다.
황사영의 유족들을 태운 배는 목포에서 하루를 쉬고 또다시 항해를 계속했다. 제주도 가까운
곳에 추자도가 있다. 그 섬에 가까워지자 정명련은 용단을 내리고 그 배를 주관하는 노 사공을
불렀다. 마침 관원들은 뱃멀미로 뱃전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여보시오. 내 아들은 우리 황씨 집안의 대를 이을 외동아들이라오. 알다시피 아비는 역적으
로 죽었지만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소. 아이가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 살 것을 생각하면 나
는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소. 그래서 이렇게 간절히 부탁하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시오.”
늙수그레한 사공은 선선히 대답했다.
“무슨 부탁인지 말해 보시오.”
“제발 내 아들을 저 섬,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 내려놓아 주시오. 관원들에겐 어린것이 병나
배 안에서 그냥 죽게 생겼다고 말해 주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정명련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애걸했다. 의외로 그 사공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오. 어찌 그 심정을 모르겠소. 무슨 말뜻인지 잘 알았으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안심하고 계시오.”
정명련은 품속에 간직하던 몇 가지 패물들을 내놓았다.
“이것들은 내가 시집올 때 받은 것들이오. 적당히 분배해 주시오.”
노사공은 황송해하면서 패물을 받았다.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에 기분이 좋아져서 두 관
원을 설득했다. 그들도 크게 탓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가 병이 나서 죽는 바람
에 어쩔 수 없이 수장해 버렸다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추자도 서남단 물산리에 있는 바위 곁에다 어린것을 포대기째 내려놓고 배는 삿대질하여 그곳
을 떠났다. 어린 경한은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엄마’를 외치면서 발버둥 치고 울어댔다. 그 광경
을 바라보는 어미의 울부짖는 소리가 바닷가에 메아리쳤다. 오장육부를 다 쏟아내는 듯한 여인
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배 안에 있는 사내들의 마음도 아프게 울렸다.
제주도 모슬포에 닿았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그곳에서 대정현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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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도원, 『순교자의 나라』 2, 예담, 2007,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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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현감 아문(衙門)까지 갈 수 없어서 선창가 어느 객줏집에 묵었다. 정명련은 그 밤을 꼬박 새워가며 아들을 위해 주님에게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이튿날 관원들은 정명련만 대동하고 현감을 만났다. 그들은 의금부의 전령을 전하고 정명련을 그곳에 떨군 채 현감의 인수증을 받아 가지고 가서 다시 선창으로 나왔다. 혼자 남은 황사영의 어머니 이씨 부인을 데리고 그들은 멀리 거제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씨 부인은 제주도를 돌아봤다. 마음껏 울부짖고 싶었으나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녀는 간신히 입속에서 말을 웅얼거릴 뿐이었다.
“어멈아,나 혼자 어디로 가란 말이냐? 팔자 한번 기막히다. 경한이를 낯선 섬에 팽개치더니 이제 며느리는 제주도에 내려놓고 나를 거제도에 보낸다고? 이런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냐? 어멈아,몸 성히 잘 지내거라. 혹시 아느냐? 우리가 살아남아 서로 만나게 될지……. 아니다,그런 일은 없을 게야. 나는 글렀다. 경한이도,어멈도 다시는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시복아,너 혼자 천당에서 외롭지? 기다려라. 어미도 곧 가마.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손톱만큼도 없다. 어서 나를 데려가 다오. 우리 네 식구 뿔뿔이 흩어져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아이고,금쪽같은 내 손자,저 어린것이 어떻게 살아남을꼬? 이제 눈물도 나지 않는 구나. 아이고……
어느덧 배는 제주도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조용한 뱃전에 파도만 철썩철썩 부딪힐 뿐이었다.
이씨 부인도 지쳤는지 이제 망연한 눈빛으로 바다만 하염없이 쳐다봤다.9)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추자도 예초리 구전설화와 다르게 천주교회의 신유박해를 주제로 한 소설『순교자의 나라』에서는 정난주와 황경한의 이별 이야기가 황사영 참형 후,황사영의「백서(帛書)」가 유족들에게 미친 비극과 처절함을 소개하는 일화로 기술된다.
이 장면에서도 정난주보다는 황사영의 어머니 이씨 부분이 더 부각되었다. 정난주와 아들의 이별 이야기는 추자도 설화에서와는 다르게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천대받으며 살 것을 막기 위해서 아이가 죽었다고 해 달라는 정난주의 간청으로 바뀐다. 추자도 설화에서 ‘물생이끝’ 바위는 ‘물산리에 있는 바위 곁’으로 표현되었다. 아이를 추자도에 놓고 떠나는 상황도 더욱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 정난주와 사공의 협의뿐 아니라 관원들과 사공들의 협의 과정,제주도에 도착한 후 현감을 만나는 장면,거제도로 떠나는 시어머니의 한탄이 추가되면서 황사영 가족들의 파탄을 비극적으로 그렸고,이를 정난주보다는 시어머니 이씨 즉 이윤혜의 목소리로 마무리하였다.
정난주가 주인공은 아니지만,천주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정난주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고요한 종소리』(장정옥,2016, 성바오로출판사)이다. 이 작품은 교회인가를 받은 교회 출판물로,황사영백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순교자의 나라』가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그중 하나의 사건으로 황사영 백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고요한 종소리』는 황사영 백서 사건과 함께 그의 아들 황경한의 성장 과정을 다룬다. 이 소설에서는 황사영과 황경한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정난주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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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도원,『순교자의 나라』2, 예담,2007, pp. 281〜284. 이 소설에서 추자도 이별 이야기는 1975년 발표된 김구정의『한국순교사화』에서의 정난주와 황경한의 추자도 이별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순교자의 나라』제2권의 부제인 ‘피로 쓴 백서’ 역시 순교 사학에서 황사영 부분의 장 제목과 같다. 김구정의『한국순교사학』에서 정난주와 황경한의 이별은 ‘유족들의 가는 길’이라는 장에서 다루어지는데,기본 서술의 흐름과 내용이 박도원의 소설과 동일하다《김구정,『한국순교사화』1권,가톨릭출판사,1979, pp. 432-4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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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난주가 처형장에서 아들과 함께 남편 황사영을 지켜보고,황사영은 떠나는 난주를 미안한마음으로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황사영은 처형당하는 형장에서 자신을 처연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난주를 발견하기도하고,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마지막인사를 보내기도 한다.
황사영은 죽음 앞에서 그녀가 유배지에서 겪을 고난에 괴로워하며,배론에서 비단 행상으로 자신의 일을 도왔던 여수리를 바라본다. 여수리에게 황사영은 ‘나를 기억하듯 내 아들을 기억해줘.’라고 부탁한 바있다.10) 여수리와 난주는 이후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황경한의 조력 인물들이다. 이 작품에서도 난주가 황경한을 추자도에 놓고 오는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우선 다른 인물들을 통해 간접화법으로 전달된다. 정난주와 아들 황경한의 이별 서사 전개 과정은『순교자의 나라』에서보다 더 복잡하며,정난주의 역할 역시 치밀하다. 정난주는 유배길에서 사공을 시켜 아기 황경한을 버리게 하고,다시 사공에게 부탁해서 여수리를 찾아가게 한다. 사공을 통해 황경한이 추자도에 버려졌다는 것을 안 여수리는 추자도를 해마다,철마다 방문하면서 황경한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그의 집안 내력을 전한다. 이후 황경한은 추자도를 벗어나 여수리
와 함께 비단길에서 천주교인들을 찾아다니며 친부인 황경한이 순교까지 하면서 천주교를 전하고자한 이유를 추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서사는 아버지 찾기이다.
노인이 연초에 불을 붙이고 말을 시작했다. 수일 전에 제주도로 귀양을 간 부인이 자기 배를 탔다고 했다. 그 부인이 탈 때만 해도 자신이 분원까지 오게 될 줄 꿈에도 짐작 못 했다고 했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첫닭도 울기 전에 사공을 찾아온 여인이 엽전 꾸러미를 쥐어주며 아기를 맡기더란다. 여인은 추자도 갯바위 틈새에 아기를 내려놓고 누가 데려가는지 잘 지켜봐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더란다. 엉겁결에 받아 안고 나니 아기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기를 안고 있으려니 눈앞이 캄캄해져서 날이 밝기도 전에 황새바위로 가서 아기를 내려놓았다.
[중략] 이른 새벽에 소를 몰고 가던 부부가 아기를 발견했다. 그들 부부가 바로 예초리에서 가장마음이 어질기로 소문난 오 씨 부부였다. [중략]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뭇거렸다.
“워찌서 아그를 버리고 갔을까잉? 죄인이라고 아그꺼정 못 키우게 할까 봐서.”
“아들을 죄인으로 살게 하지 않으려고 그랬을 거예요. 천민의 자식은 사람 행세도 못 하는 나
라잖아요,조선이.”“암만,어부의 자식은 좀 낫제. 적어도 천민은 아님게.”
“천출로 자라게 할 바엔 남의 집 업둥이가 낫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게비네. 것도 모르고 난 매정한 여인네라 흉을 봤당게.”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면 어떤 어머니가 자식을 버리겠어요.”
“왜 하필 추자도였을까? 거기 말고도 좋은 곳이 많을 텐디.”
“섬이라서 사람 손이 덜 타고 바닷가 사람들이 넓은 맘으로 아들을 잘 키워 줄 거라고 믿었겠
죠.” “들어 봉께 자네 말이 맞은 것 같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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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정옥,『고요한 종소리』,성바오로출판사,2016,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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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니까 육지처럼 말이 새 나갈 일도 없고 관료들의 주목을 받을 일도 없지 않겠어요.”
[중략] 한 사람의 생사가 달린 비밀이 두 사람을 친하게 해주었다. 나중에 추자도에서 만나더
라도 일체 아는 척하지 말자고 약속한 뒤 노인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11)
인용에서처럼 정난주는 아들을 죄인으로 살게 하지 않으려고 추자도에 일부러 버리고 떠난 어머니이다.
정난주가 아들 황경한을 버린것은 자신의 친정 아버지인 정약현의 권고에 따른 결단이었다.
‘버려야 산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녀는 그것을 실천했다.12) 유배길을 떠나기 전에 정난주는 이미 여수리에게 자기 뜻을 전하였다. 조선에서 노비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던 정난주는 아이를 노비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녀는 제주도로 가는 길에 추자도에서 배를 갈아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거기에서 아이를 버릴 것이니,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지 가끔 돌보아 달라고 여수리에게 미리 부탁했던 것이다.13)
정난주는 황경한이 보통 아이들처럼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14) 이후 여수리는 행상의 모습을 하고 정난주와 또 황사영의 부탁대로 철마다 추자도에 방문하여 황경한이 어른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그가 어떻게 사는지를 지켜보았다. 황경한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여수리로부터 아들을 죄인의 아들로 자라지 않게 하려고 생모인 정난주가 황경한이 홍역을 앓다 죽은 것으로 만든 후 자신을 추자도에 남기고 떠났다는 사연을 듣는다.15)
황경한은 여수리와 함께 비단길을 따라나서며 정하상을 비롯하여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 아버지 황경한의 죽음과 그뜻을 헤아리는 여정을 이어간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제주도에 살고있는 어 머니 정난주에게 편지를 쓸 것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따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이상 추자도 구전설화를 채록한「결혼 안 하던 황씨와 오씨 이야기」나 한국 천주교 박해를 다룬
소설『순교자의 나라』와 본격적으로 천주교 소설로 창작된『고요한 종소리』에서 정난주는 입도조인 황경한이나 황사영 백서 사건의 주역이었던 황사영의 아내,황경한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황경한 관련 추자도 이별 이야기가 설학와 천주교 소설에 수용되면서도 역사적 사실과 달리 정난주는 아이를 버린 매정한 어머니이며 아이가 노비로 살아가는 것을 막고자 이별을 선택한 어머니였다. 이런 이야기의 전개는 이야기를 만들어갔던 백성들의 상황과 이 이야기들을 그대로 수용한 소설가들에게서 비롯된 설정일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고려한다면,이러한 이야기는 모자 이별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노비로 사는 고통이라고 생각한 당시 민중들의 사고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육신의 생명이든 사회적 생명이든 아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모정을 지녔던 정난주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인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었던 극적 사건이자 수사적 장면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황경한과의 이별 이야기는 천주교 관련 소설에서는 어머니로서 정난주 역할에 대한 환기와 의미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정난주가 서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정난주와 황경한 관련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로 서사화되면서 주요 인물과 주제 역시 바뀐다. 추자도가 아닌 제주가 중심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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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정옥,『고요한 종소리』,성바오로출판사,2016, pp. 50〜53.
12) 장정옥, 위의 책,p. 55.
13) 장정옥, 위의 책,p. 75.
14) 장정옥, 위의 책,p. 77.
15) 장정옥,앞의 책,pp.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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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한과 그의 양부 오씨나 친부 황사영이 아니라 정난주와 그녀의 아들 황경한이 부각된다. 추자도의 황씨 입도조의 내력과 금혼 관련 주제,혹은 황사영 집안의 몰락과 비극의 참상을 보여주는 주제는 한 어머니의 수난과 극복의 서사로 전환된다.
3. 잃어버린 모성과 모성성의 회복 :『난주』(김소윤,2018)
정명련인 정난주(1773〜1838)는 1801년 제주도에 입도하여 1838년 2월 1일 사망하였다. 사망일시는 정난주가 살던 주인집 아들 김상집이 1839년 1월 23일 대정현 서성리에서 추자도의 황경한에게 보낸 부고 편지에 나온다.16) 정난주는 1801년부터 65세에 이르는 37년간 제주에서 지냈다. 인생의 반이 넘는 세월을 정난주는 제주에서 살았고 제주에 묻혔다. 황경한이 추자도의 입도조라면,정난주는 제주에 처음 입도한 천주교 여성이었다. 그녀의 제주도 입도는 추자도의「결혼 안 하던 황씨와 오씨 이야기」의 황경한처럼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2018년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김소윤의 소설『난주』는 정난주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4-3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제주 문학으로서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인정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순교자나 박애주의자,혹은 성녀와 같은 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있던 자리를 결코 망각하지 않은 여인,한양 할망이란 칭송을 받았지만 나약한 여자였고 자식을 생각하며 가슴 뜯는 애절한 어머니를 그리고자” 했다고 고백했다.17)
이 소설은 천주교 신앙과 관련된 종교소설에서 출발하지도,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았으나 천주교를 배경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인으로서의 정난주의 모습이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재현된다. 무엇보다도 소설『난주』를 통해 정난주는 한국 대중들에게 ‘어머니’로 다가갈 수 있었다. 작품의 주제와 감동이 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난주의 모성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난주』는 모성으로 난주의 삶을 조망한 작품이며,모성성을 통한 구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18)
『난주』에서도 추자도 설화가 그대로 차용된다. 그런데「결혼 안 하던 황씨와 오씨 이야기」에서 “아이를 제주까지 데리고 갔다가는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난주가 아기를 두고 갔다는 내용이『난주』에서는 다르게 전개된다.
경헌아,눈을 뜨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네가 살아가게 될 땅이다. 죽어서는 아니 된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언젠가는 꼭 만나자꾸나. 그러니 잘 봐두거라. 저 마을을,이 포구를,그리고…어미의 타는 가슴을.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너를 지키는 것이다. 나와 함께 제주로 가게 되면 너는 일평생 천한 노비로 살아갈 뿐 아니라 이 어미의 욕된 꼴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언제 어느 때 나라님의 변덕으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 나는 네가 황사영,정난주의 아들이 아닌 경헌 너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양반도 천출도 아닌 이 땅을 살아가는 보통의 양민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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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황사영 연구의 개가一김구정 씨 가보,부인 무덤 발견」,『가톨릭신문』1973년 7월 15일 자 기사 참조 ; 김구정,「황사영에 대 한 새 사료」1-4,『가톨릭 신문』1973년 7월 22일.7월 29일.8월 5일.8월 12일 자 기사 참조.
17) 김소윤,『난주』,은행나무, 2018, p. 340.
18) 김윤선,「관비가 된 어머니의 일생,『난주』」,『가톨릭평론』19, 우리신학연구소,2019, p.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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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때론 주리고 고통받겠으나 강인함으로 살아남아 끝끝내 또 다른 생명을 일구어가는 그러한
사내로 말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거라. 태생에도, 사상에도, 신앙에도. 너 된 너로 살아남
아 어떤 네가 되든…천일 만일을 하루같이 그리워하고 애태우며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아들
아…19)
정난주는 제주도에, 그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배속되었던 역사적 사실은 「결혼 안 하던 황씨와
오씨 이야기」에서는 어머니가 아이의 생명을 염려하여 추자도에 놓고 간 이야기로, 이후 천주교 소설 『순교자의 나라』에서처럼 소설 『난주』에서는 노비로 살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추자도에 남기고 떠나는 것으로 그 이유가 달라진다.
추자도 설화에서 난주가 아들의 육체적인 생명을 지키려는 어머니였다면, 이후 이야기에서는 사회적인 생명을 지키려는 어머니였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난주』에서는 이전의 서사에서는 강조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가 언급된다. 바로 “이 어미의 욕된 꼴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라는 부분이다. 이는 어머니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없는 관비가 된 자신의 모습을 아들이 보며 성장하는 것에 대한 고통이다.
난주는 유배길에서 남성들로부터 겁탈의 위기를 겪은 바 있다. 결국 정난주는 자신을 겁탈하고자 했던20) 나졸에게 협박과 회유로 아들을 부탁한다. 정난주는 아들 경한이 곁에서 어머니의 욕된 꼴도 보지 않고, 양반도 천출도 아닌 양민이 되어 다른 생명을 일구는 사내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정난주는 이 길을 아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작품에서 정난주가 버린 것은 아들 황경한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이었다. 어머니로서의 자기 자신을 포기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유배형은 강제 이주이자 사회적 사형이었다. 더구나 연좌제는 내 의지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참혹하다. 특히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고려할 때, 정난주에게 유배는 가정 공동체의 파탄이었다.
조선에서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유배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가장 존중받았던 어머니 역할의 박탈을 의미했다. 여성에게 ‘어머니’로 살 수 없는 것은 참혹한 현실이었고, 유배형은 그런 의미에서 여성에게 내려진 사회적 처벌이기도 했다. 정난주도 마찬가지다.
정난주는 결혼 후 10년 만에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늦은 출산이었다.
기다리던 아들을 얻어 어머니가 된 정난주가 다시 어머니의 자리를 잃는다. 이 소설에서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머니 역할을 포기하는 정난주의 모습은 여성의 고통과 어머니의 사랑을 절대시하던 한국인의 정서와 닿아있으며, 그러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정난주 이야기가 한국의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어머니 역할 상실, 자식과의 이별이라는 비극성 때문이다.21)
소설 『난주』에서도 난주가 유배와 함께 겪게 되는 최고의 위기와 비극은 아들 황경한과의 생이별, 더 이상 어머니의 역할을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들이 다른 부모를 만나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과 더불어 어머니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없는 관비가 된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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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소윤, 앞의 책, p. 47.
20) ‘겁탈하고자 했던 나졸’이라는 설정도 이전 서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다분히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전제한 작품이다.
21)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사화에서도 여성 순교자들은 어머니 역할을 이어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했다. 대표적인인물이 최성례 마리아이며 이순이의 시어머니 신희 역시 어린 자식들 때문에 옥에서 갈등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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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의 후반부는 제주에서의 유배 생활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런데 이 소설이 이전의 정난주 담론과 다른 새로움은 아들을 추자도에 두고 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이후의 여정인 제주 생활에서 나타난다. 정난주의 제주 생활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다시 자식을 찾는 여정이다. 모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모성성의 회복이며, 모성성을 통해 구원된 세상이다. 작품의 결말도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정난주가 추자도에 가서 아들 황경한을 다시 찾아 행복하게 여생을 마친다는 해피엔딩이다.22)
다만 추자도에서의 여생은 후일담처럼 삽입되었을 뿐이다. 이 작품의 서사 대부분은 주인공인 정난주가 제주에서 어머니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제주에서 다시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난주』에서 난주는 아들 경한 때문에 심문당할 때 배교했다. 한 아이의 어미로 살기 위해서였다.23)
이를 지켜본 시어머니 이윤혜는 “나중에 하늘에 가서 천주님과 아범을 만나거든 살아 있는 순교도 있었노라고 자랑이나 하자꾸나.”라며 난주의 배교를 옹호하고 그녀의 배교를 순교로 의미화한다. 시모 역시 어머니였기 때문에 난주의 배교를 누구보다 이해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밤마다 믿음과 배교 사이에서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난주는 시어머니 말씀에 ‘살아, 살자꾸나. 하늘에 가거들랑 살아 있는 순교도 있었노라 자랑이나 하자꾸나.’라며 자신의 배교를 순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로서의 역할,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유배자이자 관비로 제주에 남겨진 난주가 아들 황경한이 아닌 다른 이들의 어머니로 산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통해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견디며 이를 이웃에게 전한다. 그녀는 제주에서 어머니 역할을 통해 복음을 전파한다. 적어도 소설 『난주』에서 정난주는 제주지역의 천주교 공동체를 일군 천주교 신앙의 선조로 부상한다.
난주는 긴 여정 속에서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했음을 새삼 부끄럽게 여겼다. 조선 땅 누군들 제 마음껏 살아갈 수 있으랴. 신분에 갇히고, 질서에 갇혀, 상처 입고 피를 흘릴 때조차 비웃음당하며 마음껏 울음 한번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백성의 신세였다.24)
난주는 자신의 고통만을 보지 않는다. 백성의 고통을 직면하며 그 고통에서 자신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 고통의 보편성을 마주한다. 제주에 도착한 난주는 세답비(洗踏婢)로 노역에 시달린다. 제주땅의 관비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삶을 살면서도 난주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원망하면서 세월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이웃의 고통을 보았고 그들의 고통을 통해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일하는 제주 여성을 대표하는 잠부(潛婦)들의 숨비소리를 들으며 살아 있음과 살고자 하는 비명을 느끼며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채취한 대부분의 물산을 이런저런 공물과 잡역세로 빼앗기면서 지내는 제주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무게를 난주도 함께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난주는 어려운 와중에도 업둥이를 키우고, 환자를 돌보고 더 힘든 이웃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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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요한 종소리』에서도 황경한과 정난주의 재회 가능성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만나는 일은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으며, 또 그 주체는 황경한이지 정난주가 아니었다.
23) 그러나 실제로 역모죄로 처형된 죄인의 남은 가족인 여성은 배교할 필요도 없었고, 순교도 쉽지 않았다. 신앙을 증거하며 판결을 받기 전에 이미 연좌제로 관비로의 유배가 결정 나곤 했다. 같은 시기 순교자였던 이순이가 자신의 편지에서 관비가 아니라 순교자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4) 김소윤, 『난주』, 은행나무, 2018,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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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무게를 체험하면서, 관노비보다 나을 것 없는 천민들의 삶과 함께한다. 난주는 이러한 삶의 여정에서 하층민 여성의 고통을 비롯하여 세상의 고통을 직면할 수 있었다. 천주의 보살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권력의 무례한 행패가 빈번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하층민들의 삶 한복판에서 난주 역시 일상을 살고 그 일상을 넘어선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더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생명을 키워내는 삶, 이웃을 공경하는 삶을 통해서였다. 그것의 구체적인 구현이 ‘어머니 되기’였다.
그녀가 다시 살아낼 수 있었던 것, 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끄는 추동력은 황경한의 어머니만이 아닌 또 다른 이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통해서였다. 혈연에 의한 어머니가 아닌 더 가난한 자, 더 약한 자, 더 보잘것없는 자의 어머니가 되는 길, 그것이 제주에서 난주가 찾은 새로운 삶이었다.
『난주』에서 난주는 부모 없이 버려졌던 아이를 거둔다. 보말을 거두고 연을 거둔다. 제주에서 그녀가 얻은 자식 보말과 연. 이 아이들은 난주의 보호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지만 난주 역시 아이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삶의 고난과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굶주린 유민들이 거리를 헤매다 픽픽 쓰러져 죽고, 오름마다 나물 찾는 이들이 새하얀 서캐처럼 들러붙던 시절. 부모도 없이 버려졌던 아이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과 모진 추위가 몰아닥쳤던 그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이 아이의 온기와 순전한 생의 의지 덕분이었다.25)
제주에 와서 간신히 하루하루 견디어 갈 때, 어미라는 이름을 주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 바로 그 딸이다. 때때로 원통하고 억울하여 울고 싶을 적에도 그 아이의 천진한 웃음 속에서 천주를 보았고, 자식 버린 어미라는 생각에 가슴을 치며 한스러울 때에도 어미를 향한 티끌 없는 사랑에서 위로를 받았다.26)
인용은 연과 보말에 대한 난주의 생각이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다. 특히 난주는 아이가 난주 덕분에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보다는 난주의 시각에서 아이의 존재가 주는 의미를 언급한다. 아들 황경한 대신에 또 다른 아이들, 연과 보말을 받아들이면서 난주에게 어머니 되기가 제주 생활로 자리 잡는다.
역사에서 난주는 김상집과 김상윤의 유모로 지냈고, 그 인연으로 훗날 추자도의 황경한과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 기록이 남아있지만, 소설에서는 김상집의 유모로서뿐 아니라 난주가 스스로 먼저 보말과 연을 비롯하여 버림받은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구휼소까지 마련해서 아이들을 돌보고 환자를 살피는 일은 제주에서 난주가 어머니로 사는 방식이었다. 관비라 하기에는 무척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난주가 추자도의 아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도 양반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난주가 거둬 아들로 삼았던 연을 통해서였다.
연은 난주를 매개로 김상집과 김상윤과 함께 추자도의 황경헌27)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작은 해라도 끼칠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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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김소윤, 『난주』, 은행나무, 2018, p. 54.
26) 김소윤, 위의 책, p. 305.
27) 이 소설에서는 아들의 이름을 황경한이 아니라 ‘황경헌’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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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 쪽 하늘 한 번 보지 못하는 어멍인 난주를 헤아리며 추자도에 가서 난주의 친아들을 찾는 것도 연이다. 연은 추자도에서 어부로 살아가는 황경헌을 만나 그에게 난주의 사연을 전한다.
황경헌은 이레 동안 추자도에서 지낸 연을 통해 평생을 아프게 살아온 난주, 자신의 생모에 대해
알게 된다. 한양 할망이라 불리는 어머니에게 숱한 수양 자식들이 있음도 알게 된다.28) 연은 황경헌으로부터 그가 어떻게 추자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듣는다.
모진 바닷바람 속에서 다 죽어가던 황경헌을 살린 것 역시 자신을 구한 양모 정난주처럼 황경헌의 양모 덕분이었다.29)
어머니가 버려진 아들들을 구하고 그 아들들이 다시 형제가 되어 어머니를 구한다. 『난주』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시모, 친모, 양모, 며느리, 또 버린 어머니와 거둔 어머니는 모두 어머니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소설 『난주』는 이런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며, 주인공 난주는 그 모든 어머니를 대표한다.
그녀는 황경헌의 어머니에서 버림받는 아이들의 어머니, 환자들과 굶주린 이들을 보살피는 어머니로 성장하며, 다시 어머니가 되어 자신도 구원받는 인물이다.
모진 바닷바람 속에 다 죽어가던 아이를 발견한 것은 지금의 양모였다. 정 많은 양모가 거두지 않았다면 경헌은 이미 까마귀밥이 되었으리라. 오씨 성을 쓰는 그의 양부는 업둥이를 탐착지 않게 여겼으나, 아이가 커갈수록 유달리 조숙한 것을 보고는 차차 마음을 주었다. 황경헌이란 이름 석 자를 피로 새긴 어미에게 필시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지 않았으며 성을 물리지도 않았다. [중략] 하늘 아래 어느 어미가 자식을 떼어놓고 싶으랴. 부인은 한스러운 그 어미의 마음을 헤아렸고, 어느 때인가 천륜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원하던 바다.30)
인용에서처럼 이 소설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않는 금혼담이나 입도조 같은 이야기는 없다. 정난주의 아들은 추자도에서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지키고 살았다. 여성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 천륜을 지키면서 생명을 키웠기 때문이다.
『난주』에서 난주는 뇌물도 쓰고, 협박도 하면서 아들만큼은 노비가 되지 않게 한 인물이다. 천주교 신앙인으로서 자기 아들만 노비로 만들지 않은 모순적인 인물이 정난주인가? ‘양민’이 된다는 것은 정난주를 비롯한 당시 천주교인들이 희구했던 평등 세상을 지향한다. 신분 상하가 없고 누구나 인간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사는 삶, 그 삶을 위해 정난주는 작품에서 아들 황경한을 양민의 세상으로 보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야 『난주』에서 끝까지 천주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 정난주의 실체가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31)
이 작품에서 정난주는 어머니였다. 그녀에게는 어머니로 산다는 것이 존재 이유였고 어머니가 됨으로써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어머니였기에 어머니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고, 다시 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제주에서 살 수 있었다. 혈연으로 황경한의 어머니가 되었다면, 고통으로 제주의 버림받고 앓는 이들, 어머니 없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얻은 보말, 연, 상집, 상헌 등과 함께 구휼소를 꾸려나가며 생명을 지키는 어머니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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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소윤, 앞의 책, p. 59.
29) 김소윤, 앞의 책, p. 57.
30) 김소윤, 앞의 책, p. 57.
31) 작품에서 이런 부분들을 잘 드러내지 못한 것은 동시에 이 작품의 한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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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그녀가 포기했던 모성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정난주가 있어서 제주의 어린 자식들이 어머니를 얻을 수 있었다면,제주라는 땅에서 정난주는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제주는 유배지였지만,정난주를 품어 준 모태이기도 했다. 그래서『난주』 에서 제주는 버림받은 땅이 아니라 축복의 땅이 되었다.
어리석고 나약한 신자였지만 한 번도 천주의 뜻을 거슬러본 적 없던 난주로서는 이 길이 처음 이자 마지막 일탈이고 반항일 터였다. 이 순간에 난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리움에 사무친 지아비나 아들의 얼굴이 아니요,꼿꼿한 아비의 그늘이나 어미의 품도 아니고,제주에 첫걸음을
떼었을 때 온몸으로 밀려들던 검의 땅의 향취와 날선 바람의 감촉,새들의 가파른 비상과 짠 바
다의 포효와 같은 오랜 감각의 편린들이다. 아아,제주는 형벌의 땅이 아니라 축복이었다.32)33)
4. 어머니들의 어머니, 정난주 : 「난주의 바다 앞에서」(김연수,2022)
단편 소설「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강연 요청으로 추자도를 방문한 작가 정현이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였던 손유미로 개명하며 살아가고 있는 은정을 삼십여 년 만에 만나면서 시작된다. 정난주는 추자도에서 정난주에 대해 알게 된 두 인물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는 제목이기도 한 ‘난주의 바다’와 관련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동안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의 허구 사이에서 논란거리였던 부분인 정난주가 황경한을 추자도에 버린 이야기 부분이 역사 연구의 성과를 반영하여 수정되었고,이를 전제로 새로운 난주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추자도의 바다가 난주의 바다로 불리게 된 사연은 무엇인가? 그 이야기 안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구현된 또 다른 정난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정난주는 18세에 16세의 황사영과 혼인했다. 황사영은 16세에 급제를 한 인물이었다. 그 둘이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얻은 아들이 황경한이었다. 조선 사회를 생각한다면 그사이 정난주가 겪었을 마음고생과 아들을 기다린 간절함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드디어 얻은 아들을 정난주는 옥에서 키워야 했고,함께 유배지로 향했으며,결국 생이별하여 남은 생을 살아야 했다. 이 간략한 소사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인물,그녀가 정난주였다.
안내판에는 “남편이 순교한 후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 가던 정난주는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 것을 염려하여 경한을 섬 동쪽 갯바위에 내려놓고 떠났다.”라고 돼 있었고,나중에 정현이 찾아본 자료에도 모두 그렇게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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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김소윤,앞의 책,p. 322.
33)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또 하나의 후일담이 삽입된 결말인데,그 내용은 1909년 제주 본당 라크루 신부가 추자도를 방문하여 황우중이라는 정난주의 증손자,즉 황경한 손자를 만났다는 내용이다. 라크루 신부는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 땅에 심었던 천주의 소망에 깊이 감명하여 프랑스 전교지에 이를 소개했고, 이때 거둔 후원금으로 황우중에게 집과 밭을 사주었다. 난주의 많은 편지도 얻을 수 있었는데,훗날 벌어진 4-3 사건으로 편지가 모두 불타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며 정난주와 제주의 4.3을 작위적으로나마 연결하는 것으로 끝난다. 작위적인 결말이기는 하지만,정난주의 이야기가 제주의 역사와 함께 천주교회 로 들어온 순간을 작품에 활용하면서,앞으로 정난주 서사의 전개와 발전을 위한 교회 역할에 대해 제언하는 것처럼 읽히는 결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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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정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엄마는 대정현의 관비로,아들은 추자도의 관노로 삼는다는 처분이 있었으므로 아들이 죽었다고 둘러대며 갯바위에 버려두고 떠난들 관에서는 아이를 찾아내 다시 노비로 삼을 게 분명했다. 이를 피하자면 아들이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그러
니까 아이의 시신이 필요했으나 압송되는 바다 위에서 그건 결코 구할 수 없었다.34)
인용문에서처럼 정난주는 제주도로,황경한은 추자도로 처음부터 배속되었다. 그들 모자의 이별은 이미 한양을 떠나올 때부터 결정된 사실이었다. 정난주가 일부러 제주 가는 도중에 아이를 추자도로 보낸 것도 아니며,설령 추자도에 일부러 버리고 왔다고 하더라도 이름까지 배내옷에 적었다면 관으로부터 황경한의 존재를 지킬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정난주의 추자도 관련 이야기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읽으면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난주의 바다앞에서」는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른 난주 이야기를 펼친다.
소설에서 정난주는 아들을 관노로 살게 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 황경한이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정난주의 계획이다. 그만큼 정난주의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또 아들과 이별한 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절망감도 읽을 수 있다. 어미가 아들을 품고 바다로 뛰어들어 이 어미의 시신만 인양했다고 보고한다면,자신의 시신을 확인한 이상 관리들도 더는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며 정난주는 사공들을 회유한다.
갯바위에 아들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아이들 보살펴 달라는 마지막 기도를 올린 뒤,그녀는 바다로 뛰어든다. 이후 정난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저히 넘어가지 못할 푸른 벽에 가로막혀 그 바다로 몸을 던진 정난주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 지기만 했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가 싶었는데,하느님이 그런 그녀를 건져 올렸지. 죽은 줄
로만 알았던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안 그녀는 하느님을 원망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
이,죄 없는 사람들이 형장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거나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던 하느님이 왜 정작 죽겠다고 바다로 뛰어든 자신을 살려냈는지 그녀는 이해하기 힘들었어.
하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고쳐먹고 기도해. ‘저를 죽여주십시오,하느님. 저는 죽어야만 합니다.
제가 죽어야 제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 ’ 그러자 하느님은 그녀에게 올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따라 해보라시며. ‘제가 살아야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보라시며,정난주가 머뭇거리며 그래도 되느냐고 묻자,하느님은 그래야 된다고 말씀하셔. 그녀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 처럼 더듬더듬 그 말을 따라 해. ‘제가 살아야 제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그 모습을 보고 하느님은 흡족해하셨지. 그녀의 기도는 받아들여져. 대정읍으로 압송돼 관비가 된 그녀는,그럼에도 삼십칠 년을 더 살아 할머니로 죽고,그러는 동안 그녀의 아들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지. 그 하루하루는 늘 새 바람이 그녀 쪽으로 불어오는 나날이었다고 해.35)
이 작품의 마지막이다. 추자도에서 만나 난주의 바다 이야기를 정현에게 전해 준 손유미는 자신의 옛 이름 은정을 버릴 정도로 잊고 싶은 과거의 상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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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김연수,「난주의 바다 앞에서」,『이토록 평범한 미래』, 문학동네,2022, p. 64.
35) 김연수,「난주의 바다 앞에서」,『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2022,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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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난주처럼 자신의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 병으로 아이가 죽은 후 은정은 남은 가족과도 헤어지고 홀로 땅끝까지 떠밀려 진도에 도착했다. 그곳이 끝인 줄 알았는데, 추자도로 가는 배가 있었고 그렇게 추자도에 와서 정난주와 황경한의 이야기를, 난주의 바다를 알게 된 것이다. 은정 역시 난주처럼 바다에 빠져 죽고 싶었기에 누구보다 추자도 앞바다에 빠진 난주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고, 바다에 빠진 난주가 만난 하느님의 음성에서 새로운 바람, 교회의 언어로 말하면 성령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은정은 또 다른 난주가 되어 낮에는 돌봄 센터에서 일하고 다른 시간에는 추리 소설가로 산다.36) 아들을 잃은 난주가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듯이 그녀도 추자도에서 새로운 생으로 두 번째 삶을 이어간다. 은정을 다시 살게 해 준 추자도의 바다는 정난주의 바다였고, 정난주의 바다는 자신의 바다이기도 했다.
“제가 살아야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 바다에 빠졌을 때 하느님이 난주에게 가르쳐준 기도는 다시 난주가 은정에게 전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추자도 앞바다에 빠져 죽고자 했던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설정과 유사한 예가 정난주를 주제로한 연작시집 『마리아 정난주』(이청리 제18시집, 이룸신서, 2011)에 실린 시에도 있다.
이 몸 가는 길이 세상 끝이니 / 제주 바다에 이 몸 던져 /
아이와 함께 가는 / 하늘길을 가려 하오 /
아니 되오 국법 어김이 / 뱃사람들인 우리들에게 중벌이 임하니 / 아니 되오 아니 되오 / 내
아이를 먼저 바다에 던지리라 / 아니 되오 아니 되오 /
내 아이 추자도에 내려놓으면 / 당신들의 뜻을 따라가오리다 /
어이타 이 에미의 마음을 / 임금인들 하늘인들 / 가로막을 수 있사오랴
―「에미의 마음―마리아 정난주 2」 전문37)
이청리는 2002년 제주로 이주하여 제9집 『그 섬에 고운 님이 있었네』 시집 발간을 시작으로 『순
교의 피로부터 김수환 추기경』(73시집) 등에 이르기까지 제주와 천주교 관련 인물들에 대한 시집을 펴낸 바 있다.38)
그가 2011년에 발표한 『마리아 정난주』는 정난주와 그의 아들 황경한을 시적 화자로 하여 연작시로 묶은 시집이다. 이청리는 이 시집에서 70편의 연작시를 통해 정난주 마리아의 생애와 신앙을 시화했다. 이 중 두 번째 시인 「에미의 마음」에서 시적 화자인 정난주는 ‘제주 바다에 이 몸던져’ 아들과 함께 하늘길을 가겠다고 고백한다. 김연수의 소설에서 추자도 앞바다에서 죽으려 했던 정난주처럼 이 시의 시적 화자도 바다에 빠져 죽고자 했다. 김연수의 소설에서는 그녀가 실제로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다면, 이 시에서는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는 것조차도 ‘국법’을 어기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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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은정이 돌봄 센터에서 일하는 모습이나 추리 소설가의 모습 모두 치유자로서의 어머니 모습을 보여준다. 돌봄 센터가 어머니의 육체적인 돌봄을 상징한다면, 추리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힘, 이야기가 지니는 치유의 힘을 믿고 그 일을 한다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정난주가 유모로 어린 생명들을 돌보며 살았듯이, 정난주의 이야기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듯이, 은정은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회복해 나가는 인물이다.
37) 이청리, 『마리아 정난주』, 이청리 제18시집, 이룸신서, 2011, p. 20.
38) 유태복 기자, 「시 한 편 읽는 오늘 : 순교의 등불」, 『장애인복지신문』, 2021년 5월 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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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뱃사람들에게 책임 추궁으로 이어질 행위여서 결국 아들을 추자도에 놓고 가는 것으로 뱃사람들과 타협했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추자도에 떼어 놓고 / 오는 날부터 이 에미 가슴에 / 노비로 나를 부르는 소리도 / 아
이가 엄마로 부르는 소리로 들려요 / 앉을세라 잠이 들세라 / 물허벅을 등에 지는 일이 / 주님
이 지신 십자가 같아 / 걸음 걸음마다 아이 이름을 새겨요 / 바람이 그 아이를 키우고 있나요
/ 파도가 그 아이를 키우고 있나요 / 내 옷깃에 눈물처럼 젖이 흘러내려요.
―「아이를 추자도에 떼어 놓고―마리아 정난주 27」 전문
내 몸에서 뼈를 뽑아 / 추자도까지 다리라도 놓으라면 / 놓을 것 같네 /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 돌아오고 싶네 /
모세를 불러 / 그 홍해를 가르듯 / 그렇게 이 바다를 갈라 / 달려가 또 한 번이라고39) /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네 / 아니 내 꿈속에서 / 모세를 불러서라도
―「모세를 불러서라도―마리아 정난주 26」 전문
두 편의 시 모두 추자도에 아이를 두고 온 어미의 애끓는 마음을 신앙을 배경으로 시화하고 있다. 노비로 물허벅 등에 지는 고통의 나날을 주님이 지신 십자가로 여기고, 십자가의 길을 아이의 이름으로 새기는 어머니. 아직도 젖이 흐르는데 그것을 물릴 수 없는 어미의 옷깃에 흐르는 젖이 눈물일 수밖에 없어 슬퍼하는 어머니 난주. 홍해를 가르고 건너갔던 모세처럼 자신의 뼈를 뽑아 제주와 추자를 잇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아들을 한 번이라도 보고 오고 싶다는 정난주의 간절함은 특히 신앙인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그런가 하면, ‘너를 내 품에 안아 살기를 원하지만 / 주님은 너와 이 에미가 / 가야 하는 길에서 / 이 세상에서 버려짐이 / 하늘에서 온전함을 나타내는 증거이나니 / 울음도 축복이니라 (「울음도 축복이니라―정난주 46」 부분)라고 아들과의 이별을 하늘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여기며, 신앙심으로 승화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외에도 이 시집에서는 정난주의 생애를 시화함으로써 정난주의 목소리를 현재화한다. 당시 또 한명의 순교자였던 이순이 루갈다와 같이 정난주도 명문가 출신이었다. 이순이 루갈다의 글은 현존한다. 정난주 역시 여성이었지만, 글을 읽고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글이 현전하지 않지만, 정난주를 시적 화자로 하는 『마리아 정난주』와 같은 시집을 통해 글로 자신의 생애와 신앙을, 자신의 감정과 뜻을 노래하는 정난주를 만날 수 있다.
시집 『마리아 정난주』나 김연수의 소설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정난주는 200년 전의 정난주가 아니다. 그녀는 시와 이야기를 통해 현재에도 살아 있는 존재다. 시집 『마리아 정난주』가 자신의 생애를 신앙 안에서 고백하며 글로 표현하는 정난주라면,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난주는 아이를 잃은 또 다른 어머니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어머니들에게, 고통과 절망 앞에서 죽고 싶을 만큼 삶의 의지를 잃은 어머니들에게 ‘두 번째 삶’, 다시 살아야 할 삶을 전하는 부활의 메신저가 된다. 종교소설로 시작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이 소설은 신 앞에서 절규하는 인간과 그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까지도 전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정난주는 새로운 어머니로 여전히 우리곁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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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한 번이라고’가 아니라 ‘또 한 번이라도’의 오타일 듯. 이 글에서는 시집 원문 그래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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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한의 어머니였지만 소설 속 은정의 어머니, 자식 잃은 어머니들의 어머니,함께할 수 없는 아들도 여전히 자신의 삶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그 어머니가 이 시대의 문학으로 우리 곁에 온 정난주이다.
시대와 종교의 차이를 넘어 한국 사회에는 고통받은 여성들,특히 아이를 잃거나 아이를 지켜줄 수 없어서 고통당하는 어머니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체험,‘ 푸른 벽 앞에서 절망을 느끼는’ 어머니들,상처받은 어머니들,그 어머니들을 품어 그들에게 새바람을 불어주는 생명의 어머니가 된 정난주를 이런 시와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 정난주는 '제2의 바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두 번째 삶’40)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이 시대 고통당하는 어머니들의 어머니로 존재한다.
5. 어머니의 딸,동정녀 유섬이(柳暹伊) :『순교자의 딸 유섬이』(강희근,2016)
2000년대 이후 천주교 여성 인물 중에서 문학 작품으로 등장한 여성으로는 정난주 외에 유섬이가있다. 유섬이는 정난주와 마찬가지로 신유박해 시기 아버지 유항검과 어머니 신희,오빠 유중철과 올케언니 이순이 등 가족이 모두 순교한 이후 아홉 살의 어린 여아였기에 처형되지 않고 연좌제에 따라 관비로 배속되었다. 정난주는 어머니의 처지에서,유섬이는 딸의 처지에서 유배형에 처했다는 점에서 대조가 되기도 하지만,둘 다 자신의 유배지에서 칭송받은 여인이었다는 사실에서는 같다.
한양 할망 정난주와 거제 처자 유섬이.41) 이 장에서는 같은 시기 유배형에 처해 유배자로 살아야 했던 여성 인물인 유섬이를 주인공으로 한『순교자의 딸 유섬이』를 대상으로 문학으로 재탄생한 인물 유섬이에 대해 그 특징과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42)
1863년에 거제 부사였던 하겸락이 자신의 문집『사헌유집(思軒遺集)』에 남긴「부거제(附巨濟)」와「제거제유처자문(祭巨濟柳處子文)」이라는 유 처자 관련 기록이 발견되면서 역사에서 지워졌던 유섬이가 다시 호명될 수 있었다.43)
하겸락은 1862년 거제 부사로 파견되면서 알게 된 유 처녀에 대한 두 편의 글을 남긴 것인데,유 처녀가 바로 순교자 유항검의 어린 딸 유섬이였다. 이후 발표된『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하 부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천주교 신자로서의 길을 짚어 낸 하나의 허구이며 상상과 창작의 산물이다.44)
이 작품은 사료에서 주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유섬이의 삶을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해 시극의 형식으로 창작되었으며,유섬이 관련 극예술로도 공연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난주를 대상으로 한『난주』나「난주의 바다 앞에서」가 교회의 권고 없이 소설가의 자유로운 창작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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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김연수,「난주의 바다 앞에서」,『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 2022, p. 63.
41)심지어 유섬이도 한양 할망으로도 불렸다.그녀는 한양에서 온 유배자가 아닌데도 한양 할망,서울 처자로 불렸다.
42) 유섬이에 대한 기존 자료와 교회사적 의미, 하겸락의 문헌에 대해서는 졸고「사료와 문학으로 구현된 유배자 유섬이(柳暹伊, 1793〜1863)」(『교회사연구』50, 2017)를 참조할 것. 이 장에서는 유섬이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인『순교자의 딸 유섬이』를 중심으로만 논하고자 한다. 유섬이 관련 문학 작품으로는 구전되어 왔던 거제면 설학「유 처자 묘」와 구전 가요「처녀의 향수」 가 있다.
43) 이를 발견한 이는 하성래 선생이다. 하성래의 다음 글을 참조할 것. 그는 아랫글을 통해 이 자료를 소개하고 동시에 여기서 유 처녀가 유섬이임을 밝혔다(하성래,「거제로 유배된 유항검의 딸 섬이의 삶」,『교회와 역사」467히2아4. 4], 교회사연구소).
44) 강희근,「프롤로그」,『순교자의 딸 유섬이』,가톨릭출판사,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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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따라 창작된 작품이라면,『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교회의 권고에 따라 교회 공동체 내에서 주로 창작•향유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출발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전제하면서도 이 장에서는『순교자의 딸 유섬이』에 나타난 어머니와 딸,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춰 정난주의 모습과의 비교를 통해 이 작품 속 유섬이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5.1 새로운 어머니를 얻다
유섬이도 정난주처럼 가족의 순교 후 관비로 살아야 했던 유배자였다.「부거제」나「제거제유처자
문」에 따르면 유섬이의 생애는 크게 4기로 나뉠 수 있다. 제1기는 1〜9세로 거제도로 유배 오기 전,제2기는 9세에서 15〜16세로 거제도 유배 초기,제3기는 15〜16세부터 40세까지 흙돌집에서 독거한시기,마지막 제4기는 40여 세에서 기세 죽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이런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1기 말부터 4기가 시작되는 시기를 다룬다. 가족들과 헤어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거제로 유배 온 이후 중에서도 흙돌집 시절까지를 서사화하였다. 이 작품의 시작은 유섬이와 그의 남동생 일석과 일문은 어머니인 신희,올케인 이순이,할머니와 마지막 인사 장면이다. 여기에 어른은 모두 여성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어머니 신희는 유섬이에게 기도를 가르치고,이순이는 섬이에게 쓴 편지를 전한다. 유섬이는 이 여성들에게 신앙을 배우고 받아들인 인물이다. 당연히 여성들의 기도와 삶이 유섬이의 이후 생활에 영향을 끼쳤을 것을 작품은 암시한다.
유섬이의 유배지 생활은 양어머니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어머니와 이별한 유섬이는 유배지에서
또 다른 어머니를 만난다. 정난주가 양딸과 양아들 등 양자들을 맞아 어머니로 살았다면,유섬이는 양모의 딸이 된다. 작품에서는 거제 부사였던 이영철과 이방,형방들이 논의한 끝에 양반가를 물색하여 죄인을 위탁한다는 결정에 따라 안골 김 초시의 과수댁인 초시댁에게 유섬이를 위탁하였는데,초시댁은 유배 죄인 유섬이를 죄인이나 노비로 삼지 않고 그녀의 새로운 어머니가 된다.
초시댁 / 언니,관아에서 섬이를 맡기고 갔지만 저로서는 어떻게 감당할까 어젯밤 한숨도 못 잤
어요. 한편으로는 단신구에 딸 하나 얻었으니 기쁜 마음 헤아릴 길 없이 좋고,다른 한편으로 관아를 생각하면 엄정하고 엄정한 일이라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겨져서 뜬눈으로 지냈어요.
섬이 / (눈물 글썽거리며) 죄송해요,마님! 정말로 죄송해요,마님! (흐느낀다.)
좌수댁 / 섬이는 진정하거라. 어린 네가 무슨 죄가 있겠노. 무슨 죄가 있어 혈혈단신 바다 건너
왔겠노. 이 집에서는 죄인이란 마음 없애거라. 이 집은 김 초시 어른 생시부터 사람이 살면서 사람 구실 하는 것이 제일이라,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 제일이라 가르쳤니라. 집은 사람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주는 것이라 가르쳤니라. 이 집은 그런 집이다. [중략]
좌수댁 / 그건 과찬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내가 온 것은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집에 볕살이 들어오게 함이야. 일찍이 홀로 되어 남편 잃고 혈육 없이,삯바느질로 세월을 벗 삼아 살아온 불쌍한 내 동생,외롭고 서러운 시간들을 소리 없이 누르고 살아온 내 동생!
(울음 섞인 소리) 오늘부터 그 짙은 구름장을 조금이나마 걷어 내고 살거나. 섬이를 양녀로 삼아라.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힘이 되니라. 힘이 되어 흐르면 뜨거움이 되니라.
초시댁/ 아,언니! 언니 말이 옳아요! 내가 어찌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언니,고마워,고마워요.
좌수댁 / 섬이야,지금부터 초시댁 마님이 네 어머니다.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는 산 너머 계시
고 천지에 못 떨어질 어머니는 바다 건너 천 리에 있으니 얼마나 외롭고 아프겠느냐.
초시댁 / (섬이의 손을 잡고 그윽이 바라본다.) 섬이야,우리 언니 말씀대로 그렇게 하자.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어 비가 오면 비 오는 날의 어머니,눈이 오면 눈 오는 날의 어머니
가 되어 줄게.45) (38〜40)
인용에서처럼 유섬이가 양녀가 되는 과정은 여성들에 의해 진행된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던
초시댁과 초시댁의 이종 언니인 좌수댁의 결정과 보살핌 속에서 유섬이는 초시댁의 양녀로 성장한다. 초남이의 어머니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천주 신앙을 가르쳐주었다면,초시댁은 유섬이에게 밭에 자라는 나물에 대해,바느질 등 살림에 대해 가르쳐준다.
“저는 천국이 어딘지 몰랐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천국임을 알았습니다. 천주님,천주님! 그 천국을 왜 천국으로 데려가십니까? 돌려보내 주세요.”46)라는 유섬이의 기도처럼 유섬이에게 어머니는 천국, 하늘나라와 같은 존재였다. 친모를 잃음으로써 하늘나라를 잃은 유섬이에게 새로운 엄마,양모가 초시댁이다. 초시댁은 유섬이를 위로하고 돌보는 존재이고,유섬이를 지지하는 존재이다. 천주학쟁이들이 기도하며 마을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이난돌의 고발 때문에 유섬이가 관아로 끌려갔을 때 섬이를 변호하고 지키는 사람도 양모이다. 양모는 유섬이가 기도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은 부모를 잃고 곡하는 소리요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를 자탄하고 애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처벌이 아니라 어머니를 잃은 효녀에게 오히려 조선 예법에 맞게 상례의 남은 부분을 지키도록 해 달라는 간청까지 한다.47)
이처럼 이 작품에서 유섬이는 마을 사람들과 관아의 경계 속에서도 양모의 보호와 도움 속에서 천주교인으로서의 기도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양모를 어머니로 부르며 양모의 목소리를 하늘이 준 목소리라고 칭송하기도 한다.48) 양모는 유섬이에게 잃어버린 어머니를 대신하는 새로운 하늘나라였다.
5.2 어머니와의 두 번째 이별
유섬이가 16세가 되자 유섬이는 좌수댁의 아들 윤 도령과 그의 친구인 강 도령을 비롯하여 동네
총각들의 흠모 대상이 된다. 강 도령은 유섬이가 양모와 머무는 초시댁 담장의 매화를 ‘섬이매’라고 부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동네의 매파는 어장주(漁場主) 외아들에게 혼례를 치르게 하자고 혼담을 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섬이는 혼인을 거부한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관노가 되고 관비가 될 터인데 이를 차마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는 정난주가 황경한이 노비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공통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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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강의근,앞의 책,pp. 38〜40.
46) 강희근,앞의 책,p. 44.
47) 강희근,앞의 책,pp. 49-50.
48) 강희근,앞의 책,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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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섬이는 혼인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을 양모에게 의탁하기보다는 양모를 설득하여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주도하는 여성으로 부각된다. 16세의 유섬이가 혼담이나 연정의 감정뿐 아니라 뭇 남성들로부터 자신의 동정을 보호하기란 쉽지 않았다. 유섬이는 혼담이 오갔던 어장주 아들 변학술의 행패 사건을 계기로 동정을 지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제안을 양모에게 한다. 그것은 흙돌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유섬이는 자신은 가족들을 위해,가족들이 옳다고 하신 일을 지키며,쓰러지지 않으면서 쓰러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49) 양모를 설득한다. 아버지,어머니,오라버니,그리고 올케언니 모두 예수님의 손바닥을 친 가족이니 자신도 도령의 손바닥이 아니라 예수님의 손바닥을 치고 싶다고,그 길을 위해 흙돌집을 지어 거기에서 지내고 싶다고 그 뜻을 전한다. 양모는 유섬이와의 이별이 섭섭하면서도 흙돌집을 지어준다.
유섬이는 자신의 동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어머니가 되어 준 양모와의 작은 이별을 감행한다. 친모와의 이별이 순교와 유배로 인한 강요된 이별이었다면,두 번째 양모와의 이별은 동정을 지키기 위한 이별이며,가족과 천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택 한 이별이었다.
41세까지 유섬이는 흙돌집에서 스스로 갇혀 25년을 지낸다. 흙돌집에서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작품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그곳에서 유섬이는 천주께 기도와 바느질을 하면서 동정녀로 살아간다. 흙돌집이 지어지고 난 뒤 동네가 언쟁이 없어지고 우환이 사라졌으며,한 가족처럼 나누고 베푸는 자비의 공간이 된다. 유섬이의 흙돌집은 마을의 사랑이 되고 수호처가 되고 자비의 공간,동네의 자존심으로 인정받는다. 유섬이는 살아 있는 법과 같은 존재로 마을에서 칭송받는다.
이러한 내용은 하겸락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다. 하겸락의 기록과는 달리 작가는 이 작품으로써 천주교인으로서의 유섬이를 부각시키고 모든 행위와 행적을 통해 천주교인으로서의 유섬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겸락의『사헌유집』의 기록에서는 천주교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데는 시대적인 한계와 유학자로 하겸락이 지닌 한계가 있을 수 있었다면,이 작품은 천주교인으로서의 유섬이를 복원하고 종교적인 내용을 통해 유섬이를 찬양한다. 유섬이가 지키고자 했던 정결함,동정은 유가적인 질서 안에서의 정결보다는 당시 천주교인 특히 유섬이의 오라버니 부부인 유중철과 이순이의 동정을 자신도 따르고자 한 결단일 수 있었다. 이를『순교자의 딸 유섬이』에서는 이순이가 남긴 편지를 삽입하여 그 근거로 삼았고,유섬이의 흙돌집을 통해 동정녀 유섬이의 천주교 신앙을 표현하였다.
그런 면에서 유섬이에게 천주교의 정체성을 다시 입힌 작품이『순교자의 딸 유섬이』이다. 유섬이는 양모와의 이별과 흙돌집 생활을 통해 천주교인 동정녀 유섬이로 부각되었다.
5.3 어머니의 딸로 돌아오다
『순교자의 딸 유섬이』의 결말은 유섬이가 흙돌집에서 나와 양모와 재회하는 장면이다. “지금 밖에는 제 양어머니의 병환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어머니 곁에 있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깊으신 섭리가 저를 밖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밖에 계시는 안골 어르신과 이웃들이 이제 당신의 이웃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그 이웃 속으로 나가려 합니다.”라고 기도한 후 유섬이는 ‘초시댁’을 돌보기 위해 흙돌집을 허물게 하고,세상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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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강희근,앞의 책,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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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기존의 유섬이 관련 사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내용이 이 시극에 삽입되었다. 즉
유섬이가 흙돌집 안에서 기도 생활을 했다는 것,이순이 루갈다가 그녀에게 편지를 남겼다는 것,흙돌집에서 나오게 되는 이유가 병든 어머니를 돌보고,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유섬이의 정결과 신앙심,이순이 루갈다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족들의 이별 장면과 루갈다의 편지 장면을 창작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유섬이가 “순교자의 딸답게 매운 피바람 속에서도 매학로 피었다가 그 향기로 주님의 집에 닿았다.”고50) 덧붙인다. 유섬이가 흙돌집에서 나와 마을에서 어떻게 30여 년을 보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이어지지 않는다.50 51) 이 작품에서 유섬이가 이웃 들과 격리되어 홀로 지낸 25년은 유섬이가 이웃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였다.
초시댁 / (아픈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섬이 곁으로 가 섬이를 껴안는다.) 아가,괜찮으냐.
섬이 / (어머니를 꼭 껴안아 주며) 어머니,제가 어머니께 못 할 짓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초시댁 / 용서가 무엇이냐. 이 어미는 우리 딸이 자랑스럽구나. (눈물을 흘린다.)
동네 사람들 / 유 처녀,유 처녀! 수고 많았네요. 우리 곁으로 와 주어 고마워요,고마워요.
동네 처녀들 / 유 처녀님은 저희의 자존심입니다. 환영합니다. (만장의 박수 소리)
섬이 / (몸을 겨우 가누며 동네 사람들을 향해 절을 올리고) 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구해주시고 칭찬까지 해 주시다니,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집에 들어가 살면서 여러 가지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흙돌집 밖에 여러분과 이웃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 곁으로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흙돌집이 되겠습니다. 살아 있는 흙돌집이 되겠습니다. (박수 소리)52)
작품의 마지막 장면으로 유섬이가 흙돌집에서 나와 어머니와 재회하고 이를 바라보던 이웃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유섬이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친모를 통해 어머니가 천국이라고 여겼던 유섬이는 양모를 통해 어머니가 이웃사랑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양모는 유섬이에게 첫 번째 이웃이기도 했다. 정난주가 아들을 잃고 유배 생활 중에 제주에서 만나는 이들을 새로운 자식으로,이웃으로 받아 들이는 삶을 살았다면,이 작품에서 유섬이는 어머니를 잃고 양모를 어머니로,또 이웃으로 섬기며 천주 사랑의 길을 따르는 인물이다. “순교자의 딸” 유섬이는 “어머니의 딸” 유섬이이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 작품으로 탄생한 정난주나 유섬이에게 유배 생활 중 천주 사랑의 길은 무엇보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통한 이웃사랑의 길이었다.
6. 맺음말
정난주는 1801년 제주도에 입도하여 37년 동안 제주에서 살다 제주에 묻혔다. 28살에 제주로 와서 65세가 될 때까지 생애의 반 이상을 제주에서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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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강희근,같은 책,P. 110.
51) 이는 시극이라는 장르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시극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시•공간에서의 공연을 전제로 한다. 작가는 흙돌 집에서 나온 유섬이의 삶보다는 흙돌집에서의 삶에 비중을 두면서 유섬이가 주님의 사랑을 통한 이웃사랑을 깨닫는 절정의 순간 으로 끝낸다(김윤선,「사료와 문학으로 구현된 유배자 유섬이(柳暹伊, 1793〜1863)」,『교회사연구』50, 2017, pp. 75〜78 참조).
52) 강희근,『순교자의 딸 유섬이』,가톨릭출판사,2016, p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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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도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녀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남편은 이미 죽은 이후였고,시댁은 역적의 집안이 되었으며,마재 고향집에는 친정아버지가 1821년까지 생존했으나 출가한 딸이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유배자가 아니어도 조선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난주의 작은아버지 정약전과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을 기다릴 수 있었다면,정난주는 처음부터 그런 희망이나 기다림을 품을 수조차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남성 유배자들과 달리 관비로 살아야 했다. 정약용이나 정약전이 유배 생활 동안에도 글을 쓰기도 하고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정난주는 자신의 뜻과 처지를 글로 남길 수 없었다. 그녀는 입이 없는 존재,복종과 노동으로 살아야 하는 관노비로 지내야 했다. 유모나 양모,양딸에 앞서 이것이 그녀들이 감수해야 할 삶의 조건이었다.
그녀가 제주 관비가 된 것은 남편 황사영의 역모죄에 대한 연좌제에 따른 것이니,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고 배교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정난주에 대한 기록마저도 남성들에 의해서 가능했고 남성들의 이야기에서부터 파생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사건을 기록하되 정난주의 생애나 그녀의 뜻을 쓸 수 없었다. 그녀는 뿌리뽑힌 자이고 버림받은 자였으며,강제 이주자이자 노예요 죄인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가능하였고,어머니였기에 처절했다.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못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정난주는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졌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이야기를 통해서,무엇보다도 교회를 통해서. 뿌리뽑힌 자,버림받은 자,강제 이주자,노비,죄인이었지만 정난주는 어머니였다. 돌아갈 곳이 없는 정난주였지만,그녀는 아들을 품고 아들을 지키며 아들을 키울 수 있는 자리,'어머니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그녀가 이룬 교회의 자리였다! 그녀가 염원했을 ‘어머니의 자리’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문학을 통해서,또 교회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2000년대 이후 발표된 문학 작품들을 통해 드러나는 정난주 관련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기록과 구전 자료에서 시작한 정난주 서사는 황사영이나 정약용 가계에서 아내나 딸,조카로 소개되고 인용되던 인물에서 주인공으로 부상한다. 그런데 문학 작품을 포함하여 정난주 관련 이야기들은 정난주에게서 비롯되었지만,정난주를 사실 그대로 복원한 것이기보다는一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이 시대의 관점에서 정난주를 새롭게 바라본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 들은 정난주가 희구했을 ‘어머니의 자리’를 함께 희망하고 복원하는 이야기들의 변주이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대를 반영하며 그녀의 어머니상은 새로운 면들을 더해갔다. 이러한 변화는 정난주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우리에게 필요한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도 새로운 시각에서 또 다르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가능하다면 정난주는 계속 부활하고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난주 이야기가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
인지 이에 대한 제언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
첫째,정난주에게 아들을 지킨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승된 이야기와 문학 작품의
변하지 않는 핵심 주제가 있었다면,정난주는 유배 죄인이면서도 아들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한 여인이다. 혈육으로서 내 자녀로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양민으로 사는 길을 어머니 정난주는 열어주고자 했다.
이는 유배 이후 관비로 평생을 살았을 정난주 자신의 소망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노비도 아니고,출세자도 아닌 삶! 출세자,권력자로서의 양반에 대한 회의가 없었다면 한국의 천주교 양반층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순교자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정난주 이야기에서 ‘노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그녀의 처사가 마치 내 아들은 안 되고 다른 자식은 된다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거론되는 일부 어머니나 어른들과 유사한 일화로 희석되지 않아야 한다. 소설 『난주』에서 혈육을 넘어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은 그녀의 아들이 양민으로 살기를 바랐던 희구가 자기의 혈육만이 아닌 세상 사람들 모두에 대한 바람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 문학적 시도로도 읽힌다.
그것은 그 자체로 또한 당시 사람들이 품었을 희망의 반영이기도 했다. 정난주 이야기의 힘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로, 문학으로 만난 정난주는 세상의 끝에서, 유배 죄인이면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감히 바라고 실천하고자 한 여성으로 탄생하고 전승되었다. 앞으로 정난주 서사가 이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정난주가 제주의 여인으로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서론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제주교구사의 시작이 정난주라면, 정난주를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도 정난주와 관련해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신의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주 유배는 결코 천주가 정난주에게 주려는 사랑과 은총의 단절이나 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개인적으로 여성 유배인으로 시작한 제주교구의 역사가 자랑스럽다.―문학 작품으로 만나는 정난주와 천주의 관계 역시 그러하였다. 천주는 그녀를 살렸고, 그녀는 제주에서 끊임없이 천주를 부르고 천주를 따르며 배교자가 아닌 신앙인의 삶을 제도 교회의 울타리 없이도 자신의 삶으로 이어나간다. 그녀는, 또 유섬이는 스스로 자신들이 교회가 되었다. 난주는 제주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주를 형벌의 땅이 아니라 축복의 땅으로 삼는다. 이러한 시각이 앞으로 제주와 함께하는 정난주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유배자의 땅, 죄인들의 땅이 아니라 그들을 품어주고 그들에게 다시 어머니의 자리를 통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한 생명의 땅 제주. 그 제주가 정난주를 강인한 제주 여인으로 새로 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것은 그대로 제주교구의 카리스마이기도 하지 않을까? 먼 땅에서 험로를 거쳐 가족을 잃고 도착한 여성이 제주에서 37년의 세월을 살아낼 수 있었던 이야기들, 잠녀들의 숨비소리 같은 생명력이 정난주와 함께 더욱 풍요롭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제주의 정난주 이야기는 더 많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을 품어야 할 것이다. 정난주가 살고 묻혔던 대정지역이 이재수 난과 겹치는 역사는 그래서 더욱 아픈 역사이며 우리가 정난주 서사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셋째, 정난주가 한국 현대소설의 주인공이 되면서 정난주 소설의 주제는 모성 담론으로 수용되었
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어머니 서사로서 정난주의 이야기가 고통받는 어머니들의 어머니를 대변하는존재로, 또 그들을 치유해 주는 어머니의 역할로 부상할 수 있었던 점은 천주교인 정난주의 서사가 한국 사회에도 기여한 부분이다. 한국교회에서 공경받는 여성은 크게 어머니와 동정녀였다. 정난주와 더불어 논의했던 유섬이는 동정녀였고, 정난주는 어머니였다. 동정녀는 조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한편으로는 천대받는 여성이었고, 아들이 없는 어머니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유섬이와 정난주는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그것도 유배지에서 지역민들에게 칭송받을 수 있었고 지역 공동체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이웃이었다. 이 점은 이 시대에 한국 천주교회에 주는 정난주와 유섬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머니나 동정녀 담론만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 담론과 여성 역할에 대한 제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어머니나 동정녀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필요하다.
황경한의 모친 정난주나 고아가 되어 거제로 유배 간 유섬이는 위대한 어머니나 순결한 동정녀로 칭송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세상의 최하급 관비, 노비였다! 관비와 노비도 칭송받는 삶을 살 수 있었던 힘은 양반가 집안으로서 그들이 가졌던 이전 신분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천주 신앙에서 오는 것인가. 혹 전부는 아닐지라도 천주 신앙이 그들을 유배로, 나락으로 이끈 원인만이 아니라 이들이 유배지에서도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이를 보여주면서도 예술적 성취를 이룬 문학 작품의 창작을 고대한다, 앞으로 교회도 이 시대 천대받는 여성들을 존귀한 삶으로 초대할 수 있는 연대와 영성을 정난주와 유섬이 이 야기를 통해 얻고 모색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정난주가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민이 된 아들을, 그 아들과의 재회를 꿈꾸었듯이, 유섬이가 흙돌집을 꿈꾸고 그곳에서 이웃사랑을 꿈꾸었듯이 교회 공동체는 이 시대 버림받고 천대받은 존재들에게까지도 새로운 꿈을 꾸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위 냉담자가 많아지고, 입교자들은 줄어드는 시대, 우리에게는 새로운 복음의 언어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것이 문학의 언어, 광의로 표현하자면 이야기의 언어라고 하고 싶다. 교회는 많은 이야기와 함께 풍요로워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교회 이야기들이 잘 전수되고 더 아름답고 복된 구원의 이야기들로 풍요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야기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이야기를 통해 교회 공동체를 이어갈 수도 있고, 이야기를 통해 교회 공동체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이야기는 복음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을 가능케 하며, 새로운 시각은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나아간다. 이야기가 된 복음이, 정난주와 유섬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1909년 제주 본당 주임 라크루(M. 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전교를 위해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에 황경한의 후손을 만났다. 1970년대 초, 교회사가 김구정과 김병준 신부는 김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 돌보던 정난주의 무덤을 발견했다. 1977년 이 무덤이 순교자 묘역으로 단장되었다가 1994년 대정 성지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제 정난주는 제주 천주교회의 어머니로, 교회의 경계를 넘어 이야기가 된 문학을 통해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있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이 이야기들을 지원하고 지지하고 함께하면서, 오래되었으되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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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제2발표 토론문
문학으로 만나는 천주교 여성,정난주와 유섬이’ 에 대한 토론
강옥희 (상명대학교)
그동안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제주지역 천주교 전래의 시작을 연 정난주 마리아는 천주교회사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의 간난신고를 경험하면서도 한없이 인간적이고 고결한 품성을 지니고,주변의 어려움을 넘기지 않고 고뇌하고 실천했던 여성으로,문학의 소재로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김윤선 선생님의「문학으로 만나는 천주교 여성,정난주와 유섬이」는 천주교 역사상 보기 드물게 여성으로서 제주에서 천주교 복음 전래의 중심이 된 인물인 정난주를 형상화하고 있는 다양한 문학작품과 신유박해로 정난주와 비슷한 시기에 거제에 유배되었던 처녀 유섬이의 이야기를 통해 천주교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매우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글입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의 논지에 공감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첫 째, 정난주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녀의 아들 황경한과 관련한 추자도 구전설학와 황사영「백」
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의 아내로서 시작하여 소설『난주』에 이르러 문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모성을 통한 구원의 이야기로 옮아갔다고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입도조(入島祖)의 어머니이
자,신유박해의 주인공이었던 황사영의 아내라는 주변적인 인물에서 서사의 중심인물로 변화한 것은 모성을 통한 구원의 의미 이외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둘째,정난주 관련 이야기들은 “정난주가 희구했을 어머니의 자리를 함께 희망하고 복원하는 이야기의 변 주이며”,“그 과정에서 시대를 반영하며 그녀의 어머니상은 새로운 면을 더해갔다. 이러한 변화는 정난주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우리에게 필요한 어머니상이기도 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정난주라는 인물을 통해 선생님께서 이야기하는,대중에게 소구되어 문학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던 ‘시대를 반영한 우리에게 필요한 어머니상’이 무엇인지를 여줘봅니다.
셋째,논의 과정에서 정난주가 살았던 대정 지역이 이재수의 난과 겹치는 아픈 역사이며 정난주의 서사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신축교안(辛丑敎案)이 신유박해 이후 부패한 관리들로 인한 세폐와 천주교의 문제가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한양 할망’으로 추앙받던,그리고 제주의 천주교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던 정난주의 서사를 어떻게 이재수 난의 역사적 의미와 연결하여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넷째,김소윤의『난주』는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 제주 역사의 중요한 국면인 4.3과 정난주 이 야기가 서사의 직접성은 없지만 상관성을 흥미롭게 고찰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선생님께서는『난주』 의 마지막에 삽입된 4- 3 관련 후일담을 작위적이지만 정난주의 이야기가 제주의 역사와 함께 천주교회로 들어오는 순간을 작품에 활용하면서 정난주 서사의 전개와 발전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제고하는 제언으로 읽힌다고 했는데,그렇다면 그러한 방법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다섯째,그동안 정난주와 관련한 문학작품은 거제 처녀 유섬이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공경받는 중요한 이야기 화소가 ‘어머니’와 ‘동정녀’임에도 불구하고 정난주와 달리 거제 처녀 유섬이의 이야기가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된 것은 논의에서 언급한 시극(詩劇)『순교자의 딸 유섬이』한 편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대중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로 동정녀 유섬이는 흥미로운 이야기 학소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더욱 접하기 힘든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난주와 유섬이의 문학적 형상화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여쭤봅니다.
마지막으로 문학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더 이상 많은 이들에게 향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문학이 새로운 복음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언어로 교회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드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통한 복음보다는 정난주라는 콘텐츠를 새로운 양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의 복음 이야기로 만들어 나갈 때 변학하는 시대에 발맞춰나가는 방법이 아닌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여줘봅니다. 감사합니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