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국토대종주후기
가수 싸이의 희트곡 강남스타일가사중 “갈때까지 가볼까?”에 녹아들어 말띠의 해 2014년초 지인들과 우연한기회에
“자전거국토대종주”라는 꿈을 꾸게되었습니다.
종주일정은 4월2일부터 4월6일까지 4박5일간으로 하고, 훈련은 동절기인 1월은 각자가 체력훈련을 날이 풀리는
2월부터는 매주토요일 모여서 아라뱃 길과 한강변에서 라이딩하기로 조금은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된 거죠. ~ㅎ
사실 2개월만에 하루150km정도의 자전거타기를 5일간 계속해서 소화한다는 것은 너무 역부족이었습니다. 어쩌튼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내서 띄염 띄염 나름대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훈련이 진행되면서 내자전거가 값나가고 좋은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부산까지 고장없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되었지요. 하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일행들의 종주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 하지 못하면 언제 또 도전해보겠냐?”는 집사람의 충고에 마음을 다잡고
거문도 1무1박3일 부부여행에 집사람만 보내기로 하였답니다.
그래도 자전거 좀 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첫날은 간다”는 겁니다. “둘째날도 첫날 온게 있으니 좀 힘들어도
간다”였습니다. 하지만 “셋째날은 포기한다”는게 통설이랍니다.
그럴때마다 종주에 대한 나의 의지를 다지며 포기할 수 없는 자기최면을 걸었고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종주의지를 알렸었습니다.
4월1일 종주를 떠나기전 날은 공교롭게도 장인 제사일이었습니다. 오후에 일찍 출발하여 충남서천 처갓집에 가서
“낼 종주떠나니 제사를 일찍 지내자”고해서 일찍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12시가 조금 넘었죠.
4월2일 아침 피곤해서 그랬던지 조금 늦게 일어나 서둘러 짐을 꾸리고 집사람이 싸준 김밥을 챙겨 허겁지겁 서둘러
문산역으로 향합니다.
다행히 5시56분차를 타고가면서 일행과 만나 6시35분경 능곡역에 도착했습니다.
라이딩 출발은 능곡역부터입니다. 잠시후 한강변으로 접어듭니다. 날씨는 좋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평소 다른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회의사당, 63빌딩도 보이고 한강철교, 잠실철교를 건너며
라이딩을 진행해나갑니다. 처음만난 힘든 고갯길을 지나 천서리에 위치한“봉진막국수”에서 돼지고기 수육에 막국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곳 사장님말씀이 “고개가 너무높고 힘들어 손님들이 못넘어 온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땡기는
식욕에 너무 많이 먹어 힘들어 죽을 뻔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주보에서 만난 나이드시고 점잔으신 청원경찰아저씨께서
찍어주신 “여보 사랑해”사진은 그분에게 고마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지요.
첫날의 여정은 강천보가기전 모텔“소풍”에서 풀었습니다. 여주시내에 나가서 저녁도 먹고 필요물품도구입하였지요.
여주도 다른지역과 다름없이 여기저기 6.4지방선거의 물결이 프랑카드로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4월3일 아침 누룽지와 김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강천보에 들러 인증도장을 찍은후 2시간 채않되어 충청북도
충주시로 접어듭니다. 자전거길도 여느 자전거길과 똑같습니다. 스쳐지나가는 농촌의 풍경도 경기도의 시골풍경과
똑같네요. 선선한 아침바람과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하지만 충주 탄금대에 도착해 쉬면서 가야할 소조령과 이화령고개를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여기서 종주길을 접고 되돌아가는 일행도 있었고 이 길을 두 번 넘었다던 어떤분은 지금
이대로 가면 고개를 밤에나 넘어야할꺼라는 말이 귓가를 맴돕니다. 정말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네요. 그래서 부지런히
길을 재촉합니다. 왕의 온천 수안보에서 한숨 돌리고 물을 보충한 뒤 타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소조령과 백두대간의
길목 이화령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백두대간 종주중 2006년5월14일 조령고개에서 시작 이곳이화령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감회가 새로웠지요.
휴식도 잠시 땀흘려 올라왔던 길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고고씽~문경에 도착합니다.
“에이스모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기상청 예보대로 저녁부터 비가내리기 시작하네요. 저녁은 100g에 10,000원하는
문경한우 소고기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3일차 4월4일 운좋게 일찍문을 연 식당에서 두부된장찌게로 식사를 하고나니 제법 몸이 가볍습니다. 사실 지난 이틀을
지나보니 빵과 초콜렛,과자는 자주 먹어도 잠시뿐인데 반해 밥을 먹고 나면 든든하고 힘이 납니다. 이게 밥심인가 봅니다.
문경이 추운지역이라 그런지 길가에 벚꽃이 한창이네요. 들판에 비닐하우스며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 모습이 정겹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드디어 낙동강700리길 시작 이정표가 보입니다. 지금까지 한강,새재길을 지나 마지막으로 가야할 낙동강 길인거죠.
700리길이면 280km!!! 시작이면서 끝입니다.
상주박물관과 자전거박물관을 들어가면서 강변길이 아닌 산길을 넘어갔습니다.
자전거박물관에 들러 자전거를 무상 점검해준 친절한 상주시청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건내고 나왔습니다.
어느덧 가던 길은 나의 외갓집 경북 선산군 고아면 예강1구 동네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촌이었던 이곳에
아파트가 즐비하네요. 문득 까만 얼굴에 하얀이를 보이고 웃으시며 “아이고 이자슥 우용이 아이가 ~? ”하시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던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ㅠㅠ . 저 멀리 구미시와 금오산이 보입니다.
마지막 날 부산에서의 귀가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서 계획보다 좀 더 지나갔습니다.
라이트를 켜고 밤길을 갔습니다. 강정고령보에서 인증도장을 찍고 오리고기와 돼지불고기로 저녁을 먹은뒤 이름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정을 풀었습니다.
4월5일 일어나보니 오른발 뒷꿈치가 약간 부었네요.어제 좀 무리했던 모양입니다.나중에 안일이지만 오른발을 너무
많이 써서 무리가 왔다네요. 사실 내심 걱정했었습니다. 그 자리가 2년전 족구하다가 인대가 파열되어 5주간 꼼짝못하고
치료한적이 있었거든요. 암튼 걱정이 돼서 남들보다 먼저 출발해서 살살 어떻게 아픈지를 추스려가면서 다시 정상적
으로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넘어온 소조령,이화령은 고개도 아니었습니다. 다람재와 구름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람재는
우째 우째넘었는데 1.6km나 되는 구름재는 느낌으로 이화령보다 더긴 것 같았습니다. 오르는 고개 우측 옹벽에
라이딩객들이 써논 갖가지 격려와 욕설들이 써 있었습니다. 오르는 동안 너무나 재미있어서 배꼽빠지는줄 알았습니다.
“ㅇㅇ사랑해”"나 이제 재대한다”등등이었고 가장 인상적인 낙서는“ㅆ발 다시는 않온다”“이명박 이게 자전거길이냐?”
는 등 MB에 대한 욕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오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네요.
오죽하면 우리일행들도 MB에게 벌 줄일 있으면 돈내게 하지 말고 콩밥 먹이지 말고 하루한번만 이 고개를 자전거타고
넘어가게 했으면 좋게다하더군요. ㅋㅋㅋㅋ
암튼 자전거 길도 아닌 두매산골 능선 등산로를 넘고 또 넘어 남지철교가 보이는 꽃밭길에서 폼 잡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지철교를 지나면서 만난“장모횟집”에서 붙여논 웅어회에 홀려 다 늦은 점심을 웅어 새꼬시로 맛있게 회덮밥
비벼 요기를 하고 발길을 재촉합니다. 자전거길 이정표에 낙동강 하구 뚝 100km이내임을 알리는 표시가 보이네요.
100km이내라!!! 정말 얼마남지 않았나 봅니다.
종주의 마지막 밤은 창원시 하남읍 수산리 “황토방”에 머물며 인근 주막에서 홍어회와 막걸리 한잔으로 마감합니다.
4월6일 마지막 날 앞으로 나아갈 길은 낙동강 하구 뚝 종점까지는 약70여km입니다.
빵으로 대충 때우고 나서는데 김밥집이 문을 열었네요. “ㅎ~ 반갑습니다” 순두부백반과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
순풍에 돛단 듯 라이딩이 편안 합니다. 아니 모든 일이 전부다, 보이는 모든 것들 모두다 해피합니다. 다가오는 하구
뚝 종점을 생각하면서 순간순간을 즐기며 어느덧 부산구간에 도착합니다. 하구뚝까지 20여km구간 벚꽃길 붐비는
부산시민들이 반갑습니다. 내가 신고 다니는 캠프라인등산화 본사공장도 보이네요. 하구뚝도 손에 잡힙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나와함께 고생한 자전거를 높이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전거 국토대종주~~~~끝!!!
인증쎈터에 가서 수첩에 스티커도 붙이고 등록을 마친후 기념메달 신청했습니다. 집으로 오는데는 한달 정도걸린다 하네요.
마지막으로 자갈치시장에서 회 한접시에 소주잔기울이며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아~!!! 똥인지 된장인지 뭣도 모르고 시작한 자전거국토대종주 알고서는 또 다시 못할 것 같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