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설교에 자신감
<아신대 신성욱교수님의 글-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설교문 작서하기
기회가 되시면 세미나에 참석해 보세요. 서울한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수영교수 올림
[1] 이번 학기는 신학생들과 제자 목사들의 설교문을 받아서 분석비평을 계속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미리 내게 보낸 설교문으로 설교를 직접한 후에 설교원고의 내용과 시연한 부분에 대한 장단점을 얘기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주 적어도 7편의 설교문을 띄어쓰기에 문제 있는 부분과 오타까지 수정하는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이젠 설교 원고라면 들여다보기 싫을 정도로 피곤한 작업이다.
[2] 설교문 분석비평하면서 띄어쓰기와 오타까지 수정해주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건 내가 그걸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일을 몇십 년째 하다 보니 설교자들이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나 오타가 무언지를 잘 알 수 있다. ‘로서’와 ‘로써’를 구분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습니다”나 “~입니다”가 되어야 할 문장을 “~던 것입니다”나 “~인 것입니다”로 잘못 사용하는 이들도 너무 많다.
[3] 설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절감하는 어려움이 많다. 신학교에 들어오는 이들 중 대부분은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려는 이들이다. 목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설교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전공들처럼 신학교엔 설교에 재능을 가진 사람만 들어와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이들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피아노를 잘 못 치는 사람은 시험에 합격 자체가 불가하다.
[4] 미술에 재능있는 아이들이 자라서 미술을 전공하는 과에 들어간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의 대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미술 전공학과에 합격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다른 전공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 설교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이들을 딱 한 학기만의 강의를 통해 설교 잘하는 사람들로 바꿔놓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5] 설교를 잘하려면 일단 설교의 내용인 성경에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뿐이던가! 성경 본문에서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게 추출해서 그 내용을 기초로 기가 막힌 설교원고를 작성해야 한다.
본문 저자의 메시지가 충실하게 담겨 있으면서도 맛깔스럽고 드라마틱한 한편의 강해설교문을 작성하는 작업 또한 만만치가 않다.
국어실력과 문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갖춰야 할 가장 소중한 재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6] 맛있고 영양도 만점인 설교원고가 작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달에 죽을 쑤면 설교를 망치게 된다.
전달에 특별한 은사가 필요하다. 그렇다. 설교는 전달이다. 전달되지 않는 설교는 실패작이다. 이 또한 타고나는 것이다.
설교를 시켜보면 천부적으로 잘 전달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달에 은사가 별로인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전달 잘하는 이들로 변하게 하려면 특별한 전략과 본인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7] 한 학기 90분 강의를 통해서 성경해석의 실력과 원고작성의 실력과 전달의 실력을 갖추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한 학기만의 강의로도 학생들의 설교에 현저한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매학기마다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로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설교원고로부터 발견하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8] 거의 모두가 ‘3대지가 아닌 원포인트의 흐름으로 설교문을 작성한다’는 점과 ‘예화를 한꺼번에 다 전해버리지 않고 서론과 결론 두 부분에 나누어서 소개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원고를 분석할 때마다 이런 공통점을 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짧은 시간의 강의를 통해서도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볼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설교는 목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9] 그렇다면 설교학 강의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일반대학원 예배설교학 전공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다.
3학점짜리의 설교학 과목만 수강하기 때문이고, 또 학생수도 많지 않아 설교시연을 길게 할 수 있고, 분석비평 또한 자세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스펙이 전혀 없음에도 장년 천 명이 넘는 교회의 담임으로 청빙되어 지난 1월부터 경기도 의왕시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자 목사가 있다.
[10] 지난 3년간, 월요일마다 전라도 목포에서 양평까지 와서 수업을 듣고 졸업한 한 목사는 지금 신바람 나는 목회를 하고 있다.
’3대지 설교‘에서 내가 창안한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설교‘ 방식을 터득한 후 교인들의 기대치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수년 전, 이 목사의 설교를 좋아하던 한 교인 가정이 광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거리가 있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11] 광주로 이사간 그 가정이 한 달 만에 주일날 자기 교회에 나타난 것이다.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광주에 가서 설교가 좋은 교회들을 찾아서 설교를 들어봤는데, 모두가 3대지 설교여서 들을 수가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원포인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다시 왔으니 계속 출석하게 해달라 했다는 것이다.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설교에 익숙해지면 3대지로 하는 설교는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이다.
[12] 대부분은 3개의 대지가 들어있지 않은 본문임에도 주일만 되면 어김없이 3개의 대지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인위적인 설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게다가 30분짜리 설교를 딱 한번 들은 청중들은 3가지의 대지를 머리 속에 다 저장하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나게 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설교의 내용으로 한 주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비성경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한 3대지 설교가 한국 강단에 끼치는 폐해는 크다.
[13] 모든 3대지 설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설교자들은 본문에서 핵심이 되는 하나의 중심 메시지를 추출해서 영양만점의 맛깔스러운 식단을 잘 마련해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원포인트의 설교를 하고 싶어한다.
설교학에서는 원포인트 설교의 당위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How?’라고 하는 방법을 제시 못하고 있다.
[14] 현대 설교학에서 최고의 과제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3~40분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앞으로 원포인트로 설교할 수 있는 설교의 프레임이 많이 개발돼서 보다 성경적이면서 효과적인 설교로 성도들의 삶을 더욱 알차고 풍성하게 변화하도록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6월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서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설교’ 세미나를 개최하고자 한다.
전단지가 만들어지면 페북에 올릴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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