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길어져서 답글로 남깁니다.
상담일지 속에서 만난 수민이를 생각하는 유경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수민이를 잘 돕고 싶은 마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참 귀하고 고맙습니다.
상담일지만으로도 이런 마음을 가졌는데, 수민이를 한 번, 두 번 만나고 알아가며 이 마음이 얼마나 더 깊어질까요.
진심으로 돕고자 하니, 마음에 걸리는 게 생길 것 같아요.
사회사업이 끝나면 아이와의 관계도 끝나는 걸까?
그럼 아이가 상실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까?
당사자와의 관계의 깊이는 얼마큼이어야 할까?
저는 2018년 여름을 시작으로, 매 학기마다 단기사회사업을 했습니다.
많은 아이와 어른을 만났고, 또 헤어졌습니다.
제 사진첩은 그때 만났던 아이들과 이웃들로 가득합니다.
때때로 사진을 넘겨보며,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거저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헤어짐을 전제로 만납니다.
복지사업에 종속하는 일시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 사이의 관계는
복지 사업에 종속하는 일시적 관계입니다.
당사자 쪽 관계 곧 ’당사자의 인간관계와 지역사회 이웃 관계‘에 비하면 말단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사업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좋으면, 준비 자원 재주가 좀 부족해도 내용이 부실해도, 잘될 수 있습니다. 잘됩니다.’
복지요결 68쪽 사회사업가와 당사자 사이의 관계"
단기사회사업으로 만났고, 단기사회사업을 마치며 헤어집니다.
당사자가 자기 삶을 잘 살아내기를 응원하고 돕고자 하지만, 사회사업가가 다 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한계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몫을 생각합니다.
먼저는 유경 선생님이 다짐하고 생각한 것처럼, 내가 수민이의 한 사람이 되어줍니다.
믿어 주고, 나의 존재를 응원해주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칭찬하고 기뻐하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수민이 쪽 관계를 살리는 일에 주목합니다.
수민이와 부모님과의 관계, 동네 어른들과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사회사업가인 내가 없어도, 풍성한 관계로 자기 삶을 잘 살아낼 수 있게 다양한 관계가 얽히고설키도록 돕습니다.
어떻게 당사자와의 관계가 칼로 무 자르듯 사업 시작-만남, 사업 끝-종료될 수 있을까요..
나의 일상을 살다가 잊기도 하고, 문득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기도하고...
그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여느 관계가 그러하듯요.
다만 오늘의 만남에 집중할 뿐입니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 ‘오늘’이라고 합니다.
오늘! 지금! 당장!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요.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자랍니다.
오늘 나에게 칭찬하고 감사하는 선생님, 응원하고 믿어주는 선생님.
그 마음이 수민이를 두드리고, 움직이게 할 것 같아요.
유경 선생님, 고맙습니다. 응원해요.
제 생각이 답은 아닙니다.
아이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아요.
별 선생님께서 보태어주신 이야기처럼요.
수민이와 만나가며, 유경 선생님의 답을 세워가길 응원합니다.
더하여, 연무사회복지관 김은진 선생님께서 쓰신 ‘한 번쯤 고민했을 당신에게’ 내용 가운데
유경 선생님의 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탭니다.
“당사자와 관계의 깊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요?”
<당사자와 연락 주고받아도 될까?>
더하여 사회복지 현장실습이나 자원봉사 활동으로 복지관에서 당사자와 관계를 맺는 이들은 당사자와 개인적인 연략을 주고받아도 되는지 고민합니다. 만나는 횟수가 길어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경우, 아이들 대부분은 어른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활동하는 도중, 선생님이 떠나고 나서도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기도 하고 SNS에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활동 중에는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언제든 연락하면 받아줄 것처럼 하다가, 활동이 끝나면 아이들 연락을 딱 끊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전과 다른 선생님 반응에 상처받고 속상해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미숙한 존재로 보고 때로는 과잉보호합니다.
자전거를 잘 타려면 넘어져 봐야 하듯이, 사람과 잘 교제하기 위해서는 상처도 얼마쯤 받아봐야 합니다.
상처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감정(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의식을 가진 존재로 나옵니다.
(...)
우리가 흔히 부정적 감정이라고 여기는 슬픔이가 사라졌으니 라일리는 행복했을까요?
모든 감정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슬픈 감정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감정입니다.
이를 나쁜 감정으로 취급하고 없애려 하기보다는 자기감정을 잘 다루도록 돕는 게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아닐까요?
<결국, 인격적 만남이 중요>
당사자와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져야 하느냐?
연락처를 주고받아도 되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되고 안되고를 답하기에는 사람 관계 상황 등 고려할 것이 많습니다.
사람 관계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복지사는 인격적 관계 나아가 인간적 관계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품격을 따집니다.
상대가 장애가 있건 가난한 노동자건 간에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만남에 관심이 있습니다.
인격적 만남 안에서 때와 상황에 따라 그 적정한 ‘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마음이 아닐까요?
나와 이 사람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관계의 깊이를 달리할 것인지는 함께 정할 일입니다.
아니, 명확하게 정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합니다.
최소한의 지켜야 할 기준은 마련하되 때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면 좋겠습니다.
여느 사람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말이죠.
인격적으로 만나온 사람이면 대부분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집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당사자를 만났으니 전문적이고 업무적인 관계로 선을 긋기보다는 그저 인생길에 만난 ‘벗’으로 여기고 여느 사람 만나듯 대하면 좋겠습니다.
‘벗 하나 있었으면_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로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첫댓글 오늘 만남에 집중하자는 말씀 고맙습니다.
오늘, 지금, 당장이라는 세 단어가 마음에 확 들어왔어요.
유경 선생님의 마음까지 헤아려주시고 선생님의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린이 여행사 수료식 뒤, 혜리가 홍유진 선생님께 전했던 편지 가운데>
즐겁고 알찬 여행이 되었고 좋은 추억이 가득한 여행이었어요.
코로나 속에서 만나서 마스크를 쓰고 만나야 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어요.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친구들이랑 친해진 것도 같았고 무엇보다도 제가 길을 안내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뻤어요.
항상 실습생 선생님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가 되면 선생님이랑은 서먹해지고 연락을 안 해서 사이가 멀어지거나
저를 잊을까 봐 두려웠는데 지금도 두려움이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즐거운 추억이 가득하니까 그걸로 다 된 거에요.
항상 저를 도와주는 유진 선생님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