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사람은(1)
2018년 2월 4일 / 대예배 / 히브리서 10:32-11:6
히 10:32-11:6 /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되던 때의 아름다운 날들을 언제까지나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또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도 주님과 함께 이겨 낸 그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33) 어떤 때 여러분은 조소를 당하고 매를 맞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때는 그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34) 감옥에 갇힌 자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또 여러분의 재산을 다 빼앗긴다 해도 기쁨으로 견디어 낸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있는 더 좋은 것이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 되어 기다리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3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장차 여러분이 받을 보상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36)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그다지 많이 지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38)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께 대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뒷걸음질 쳐 물러서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39) 우리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거나 비참한 운명에 처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11:1)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2)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 6)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➊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➋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믿음이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는 구약의 하박국 구절은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장17절에 인용되어지며, 갈라디아서 3:11과 히브리서 10:38에도 인용되어졌습니다.
합 2:2-4 /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대답하셨다. `내가 이제 네게 보여주는 것을 여러 서판에 명백히 써서 공개하여 그것을 누구나 대번에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여라! 3) 왜냐하면, 내가 지금 네게 보여주는 계획들이 아직도 정해진 시각을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들은 느리지만 꾸준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그 시각을 향하여 달리고 있으니 절대로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 성취가 느리고 지체되더라도 꾸준히 기다려라. 그 시각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단 하루도 넘기지 않을 것이다. 4) 이 사실을 깨달아라. 악한 사람들은 제멋대로 허풍을 떨다가 멸망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가 있다(저 갈대아 사람의 마음은 교만으로 가득 차서 부풀어 있고 그 속에 성실함이 없다. 그러나 의인은 자신의 진실함으로써 살 수가 있다!).
롬 1:16-17 / [믿음을 통한 구원]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소식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초청받고 있습니다. 17) 이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 곧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해 줄 자로 만드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갈 3:10-11 / 그렇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셈입니다. 성경이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하나라도 어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 유대교의 율법을 고스란히 지켜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여태까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는 길은 믿음의 길뿐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이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사람에게 살길이 있다'고 한 말도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라
■ 2018-01-29 동아닷컴에 실린 글입니다. /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전미라와 그의 남편인 가수 윤종신이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한국체대·사진)의 물집 잡힌 발 사진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중계방송해설을 맡았던 전미라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늘 아침 정현 선수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오른발이 아닌 나머지 왼쪽발을 사진으로 보게 됐다. 차마 말이 안 나올 정도의 처참한 지경이었고 눈물만 쏟아졌다.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고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일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라며 발가락부터 발바닥, 발꿈치 전체가 온통 너덜너덜해져 생살이 다 나온 상태를 보고 이 발바닥이 과연 사람 발 모양인가 싶을 정 도여서 기겁을 할 정도였다.”고 심경을 전했다.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 전(前)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 테니스 샌드그런(27·미국) 등을 연파하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4강 신화를 쓴 정 현(22·한국체대). 그가 하드코트에서 열리는 이번 호주오픈에서 발바닥에 물집이 심하게 퍼지고, 피멍까지 드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이를 견뎌내는 투혼을 펼쳤다.
정 현은 현지 멜버른의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았는데 호주 쪽 의사가 “고통 정도를 1~10이라고 할 때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15”라고 답해 의사를 놀라게 했다. 테니스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금은 나아진 것으로 안다”며 “정현은 어렸을 때부터 아픈 상태에서 경기를 많이 했고,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발바닥에 피멍이 들고도 이번 경기 때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정말 멋진 선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랜드슬램대회는 최장 3세트(3전 2선승제)를 치르는 남자프로테니스(ATP) 정규투어 대회와는 달리 5세트(5전 3선승제) 경기를 해야 하고, 우승하려면 무려 7명을 이겨야 하는 등 험난하기 그지없는 토너먼트다. 정 현은 그동안 호주 <정현이 공개한 발.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오픈을 비롯해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 윔블던, 유에스(US)오픈 본선에 출전했지만 이번처럼 5회전까지 뛴 적이 없었고, 최고 3회전까지 올랐었다. 하드코트에서 치르는 호주오픈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프랑스오픈이 열리는 클레이코트((clay court - 모래와 자갈을 깐 토대 위에 찰흙을 다진 테니스 코트)와 달리, 선수가 리턴할 때 발이 미끄러지지 않아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며, 발바닥까지 심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경기를 포기하기 전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팬 분들 앞에서, 훌륭한 선수 앞에서 내가 100%를 보여주지 못하는 건 선수로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힘든 결정을 내렸다.’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으로 정 현에게서 배울 점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예수님 앞에서 100%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성도로서의 자세나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2세에 불과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은 세상 경험이 많은 우리로서도 배워야 할 점입니다.
▶ 일곱번 넘어져도 /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 올바로 사는 이들은 수도 없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또다시 일어서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못된 짓만 일삼으며 사는 자들은 재난을 만나 한번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가 없을 것이다.)
지옥에 갔다 온 어느 목사님의 간증에서 나온 것인데, 정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어 좀 그렇지만 … .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지옥의 한 장면인데, 이러한 장면을 보았다라고 합니다. 지옥의 사자들이 거기에 있는 영혼들에게 ‘여기는 소망이 없는 곳이다. 여기는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냥 절망과 좌절만 있는 곳이다. 너희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고, 어떤 재기도 할 수 없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그리고 그 소리는 그곳의 영혼들을 그렇게 사로잡고 있고, 그들의 상황도 마치 그처럼 정말 괴로움과 절망만 있는 상황이었다고 … .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꼭 지옥에 가서 구경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지. 세상의 어떤 뉴스를 들어도 거의 다 소망이 없는 잔혹한 현실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고, 마치 우리에게 ‘뭘 그리 용쓰니? 그냥 그대로 살어. 인생은 다 그런 거야. 일어나지 마. 일어나면 너만 더 힘들어.’라고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될 대로 되라하며 그냥 순응하고 또 포기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지. 뭐?’하고 합리화하게 되지는 않는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인생이 너무 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너무나 크시고, 전능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잠언 24:16을 통해 ‘절대로 그렇게 주저앉아 포기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은 후반절의 인생을 맡기실 때는 그렇게 포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 1. 넘치 못할 산이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넘지 못할 파도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우리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여 허덕이며 가야하는 우리 인생인데 <후렴> 이럴 때 우린 누굴 의지 하나요 주님 밖에 없어요 나는 그 길 갈 수 없지만 주님이 대신 가요 2. 참지 못할 분노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참지 못할 슬픔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우리 살아 갈 길은 눈물의 골짜기 내 힘으론 참지 못해 늘 흐느끼네
2. 목표를 절대로 낮추지 말라
“나는 많이 부족한데... 이런 말씀은 목사님이나 의인에게 주어지는 말씀이지... 나 같은 사람하고는...”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의인은 욥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매사에 완벽한 자들을 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 1:8을 보면 “그래, 내 종 욥도 유심히 보고 왔느냐? 온 땅을 살펴보아도 욥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진실하고 올곧은 사람은 없다. 그는 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라 못된 짓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하고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단이 “한번 하나님께서 그를 내리쳐 그의 재산을 모두 거두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장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부을 것입니다.”(욥 1:11)라고 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있는 재물 다 탈취 당하였고, 종들까지 죽었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양 떼와 목자들이 모조리 불에 타죽었고, 갈대아 사람들이 세 무리로 떼를 지어 쳐들어와서는 종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낙타 떼를 빼앗아 가버렸으며, 아들과 딸들이 강풍이 불어 닥쳐 집이 쓰러지는 바람에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욥 1:20-22 / 그 말을 듣자 욥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픔에 못 이겨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얼굴을 묻으며 21)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빈 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 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22)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욥은 그릇된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기 2장에 넘어가서는 사단이 혹독한 질병으로 시험합니다.
욥 2:3 / “그래, 내 종 욥도 유심히 보고 왔느냐? 온 땅을 살펴보아도 욥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건실하고 올곧은 사람은 없다. 그는 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라 못될 짓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네가 욥이 아무런 까닭 없이 하나님을 모시며 사느냐고 하기에 그를 내리쳐 보라고 하였다만, 그래, 어떻더냐? 욥은 여전히 건실히 믿음을 지켜 가며 살고 있지 않느냐?”
욥 2:5, 7-8 / “어디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욥의 뼈와 살을 내리쳐 보십시오. 그의 몸을 해쳐 보시란 말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찬양을 할까요? 아마도 욕을 해댈 것이 분명합니다.” 7-8 / 사단은 하나님 앞을 물러 나오자 곧 욥을 내리쳐 그의 몸에 심한 종기가 나게 하였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말할 수 없이 심하게 번졌다. 8)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 도자기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다.
욥의 아내마저 속이 타서 기어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욥 2:9-10 /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그래,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믿음을 지키고 있단 말이에요. 참, 속 터지는 양반 다 보겠네. 차라리 하나님에게 욕이나 퍼붓고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10) 욥이 대답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요. 당신조차도 어리석은 여자같이 말하는구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때 우리가 얼마나 좋아했소. 그런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어찌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소.” 욥은 이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말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다.
대사도 야고보는 욥의 경우를 들어 초대교회 성도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약 5:10-11 /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로 이겨 낸 주님의 예언자들을 본받으십시오. 11) 그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내 주께 진실했으므로 지금 하늘나라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욥은 슬픔을 이기며 끝까지 주님을 믿은 사람의 모범입니다. 욥이 겪어 낸 일을 보고 우리는 주님의 계획이 축복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한없는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욥이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몰려오는 고통 속에서 때때로 원치않는 원망과 불평을 했겠지만 실족하도록 하지 않고 곧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욥이 설령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께 불평했다할지라도 누구 한 사람 욥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욥 23:10-11 /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고난을 통하여 욥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가 곁길로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지냈다고 말합니다.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에 필히 있어야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체득되어집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존재하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말로만 듣던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하나님이었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오는 말씀을 귀하게 여겨 살았음으로. 그 말씀의 진실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삶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그 안에서 위로를 얻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분변하게 되며 그 안에서 믿음이 굳세지는 것입니다.
일정한 음식처럼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일정한 음식이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하나님과 영적인 바른 관계를 위하여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육의 양식보다 더 귀한 것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왜냐하면 육의 생명은 한시적이지만 영혼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고백하기를, “내가 고난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했다. 고난은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인 것을 발견했다.” 루터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가르쳐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고난의 깊은 물속을 통과하도록 하실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백련강(白鍊剛) / 좋은 쇠는 뜨거운 풀무 불에서 백번 단련된 다음에 나오는 법이며,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는 법입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자만이 참된 인생의 단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여기서 포기하거나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할 것입니다.
속담에 ‘가마 불로 구워 낸 도기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험한 바다는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보다, 눈비, 바람맞으며 자란 들꽃이 강한 것입니다. 쓰라린 아픔이 없이는 귀한 진주가 탄생될 수 없는 것이고, 뜨거운 불을 통과하지 않고는 정금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고난의 때를 지나지 않고는 진정한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불로 연단된 인격은 영구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며, 어려울 때에는 주님은 나를 안고, 업고 가십니다.
욥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정말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수준이 너무 얕기에 쉽게 피곤해하며 자주 넘어지고도 하며, 낙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일전에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은 농담을 하면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거론하며 한국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로 농담을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세계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 총재는 세계은행 역사상 백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 올랐습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김 총재는 2013년 12월 3일, 용강 중학생들에게 영어로 30분가량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힘들다고 목표를 낮추지 말라’는 말로,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열정(Passion)’이고, 또 하나는 ‘목표(Purpose)’고, 셋째는 ‘끈기(Persistence)’라고 하며, 이 세 가지 중에서 끈기가 가장 어렵고 힘들지만, 성공의 가장 큰 요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 꿈이 있으나 끈기가 없어서 중간에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입니다.
■ 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 이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 글입니다. 「이 학생은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소아마비였다. 하지만 결코 움츠리지 않고, 앞날의 희망이 살아 움직였다.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겨울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그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질척이는 시장 바닥 좌판에 앉아서,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다. 그날 밤 그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쳐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그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뒤뚱거리며 올라가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고 울었다.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희망을 고백했다. 그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중증 뇌성마비인 형과 나를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그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후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그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차디찬 도시락을 꾸역꾸역 드시고 있었다. “엄마, 나 합격 했어.” 하고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한참동안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그날 저녁은 시장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듯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시고 눈물만 닦으셨다. 우리 세 식구는 어떤 역경이 온다할지라도 결코 희망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기로 했다.」 이 글은 서울대 합격생의 생활수기 중 일부로,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에 있으며,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형도 미국에서 모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보살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어떤 역경이 있다할지라도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릅니다. ➊ 분명한 목표가 있다. ➋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다. ➌ 목표를 이루기 위한 끈기가 있다. ➍ 긍정적인 생각이 있다. 여러분도 어떤 환경에서든 긍정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빌 4:11-14 / 내 처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유를 누릴 줄도 압니다. 배가 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13)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이처럼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도와주려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3. 믿음의 사람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 어떤 여자가 극장에서 밤 프로를 보고 나올 때 실수로 수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떨어뜨리고 돌아 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집에 돌아 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황급히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핸드폰이 아님)를 걸었습니다. “어제 밤 프로를 본 사람인 데요 다이아몬드 목걸이 분실신고 들어 온 것이 있나요?” 지배인은 없다고 말하면서 잠깐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면 앉았던 자리에 갔다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어제 밤에 영화를 보았다는 자리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컴컴한 극장 그 의자 밑에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영이라 청소를 다음 날 아침에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배인은 기뻐하면서 급히 전화통 앞으로 달려와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응답이 없었습니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기를 끊어 버린 것입니다. 전화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여 찾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결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기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약 5:7-8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십시오. 마치 농부가 귀중한 곡식들이 잘 익어서 추수하게 될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듯이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주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는 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인 이유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기에 믿음은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사라 둘 사이에 낳은 자녀가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99살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89세가 되어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의학적으로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00살에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시험까지 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100살에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이 다시 도로 살려 주실 것이라는 새로운 믿음도 터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칼로 찔러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삭을 통하여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기다림은 무서우리만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순종까지 하게 됩니다.
노아를 보아도 믿음의 힘이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죄악이 가득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만큼은 당대의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려고 계획하셨을 때에 그 비밀을 그의 종 노아에게 보여 주시고 그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경건의 씨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 때에 노아는 홍수가 임할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장장 백여 년 동안 방주를 만든다는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인데,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었겠습니까? 노아 자신도 때로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였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 다루듯이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권면을 해 주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몇 번이나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는지는 몰라도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이 있기에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림의 믿음은 무서운 힘을 발휘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몬 / 아기를 낳은 후에 지켜야 하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마리아가 성전에서 정결 예물을 드릴 때가 되자 아기를 주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날 성전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선지자?)이 와 있었습니다. 그는 바르고 경건한 사람으로서 성령이 충만하여,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이라고 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왕(그리스도)을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이 정한 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려고 들어왔습니다. 시므온은 아기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을 하였습니다.
눅 2:29-30 / 주여, 주께서 제게 약속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30) 주께서 세상을 위하여 보내 주신 구주를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은 길이 참습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참는다’는 말입니다. 무섭게 참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막을 달릴 때 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삼십 리를 뛰어도 물을 삼키지 않고 참을 정도의 참음을 의미합니다. 언제까지 참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에머슨(Emerson)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오래 기다리기 때문이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힌두교도 하나를 구원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서아프리카(West Africa)에서는 한 명 전도해서 구원받게 하는데 14년이 걸렸습니다. 뉴질랜드(New Zealand)에서는 한 명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9년 걸렸습니다.
■ 탈무드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아브라함이 자기 집 앞에 있는데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배고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를 집안으로 불러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가라고 권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부탁하여 시원한 우유와 빵을 그 나그네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빵과 우유를 먹는 나그네에게 아브라함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나그네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페르시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믿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큰 논쟁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장막에 있을 자격이 없으니 당장 나가시오.” 나그네는 화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위하여 50년을 참고 기다렸는데 너는 한 시간도 못 기다리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4.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본 사람들
히 11:35-39 /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 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36)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37-38)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 믿음을 지켜낸 믿음의 선배들 / 2000년의 기독교역사는 온갖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제자 12사도들이 예외없이 순교를 당했고 기독교 초기 스데반집사를 시작으로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참형을 당했고 그들의 뒤를 이어 서모나교회 폴리갑, 이그나시우스 등 이른바 속사도 교부들의 장엄한 순교를 비롯해 AD64년 로마황제 네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로마에 카타콤이나 터키 카파도기아 3층 지하 동굴과 수천 개의 동굴로 구멍이 뚫려 마치 고층건물같이 보이는 신자들의 피란지였든 산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박해를 받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 여인네들(크리스천)이 반지나 목걸이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십자가를, 요즈음 젊은 목회자들은 특이하게 십자가를 만들어 달아놓았지만 그런데 원래 이 십자가는 그렇게 자랑스럽게 들어 내놓거나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십자가 형법은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행해지던 것인데 로마에 전해졌습니다.
십자가는 형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무서운 형틀입니다. 그것도 도망가다 잡힌 노예나 아주 극형을 받은 사람에게만 십자가형틀에 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극형을 받아도 같은 로마사람에게는 십자가형을 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십자가형은 무섭고 견디기 힘든 형틀이었습니다.
주후 325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기독교를 박해하는 동안 그 무서운 십자가를 예수님에게 지웠고 그 후 기독교인에게 지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밀라노 신교 자유칙령을 내리기까지 기독교는 325년간을 박해와 순교를 피해 땅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아무리 박해와 순교를 당해도 기독교는 적어도 300년 이상을 순교하면서 버틸 수 있는 저항력이 있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 십자가 종교입니다. 십자가를 무서워하지 않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이 같은 순교의 피를 흘린 교회가 그 후 2천년 동안 세계로 퍼지면서 각종 저항에 부딪치며 발전했으며 순교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 전래된 기독교도 순교의 피를 흘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 식민지하에 1919년 3.1만세운동에 희생된 유관순열사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그녀의 고향교회인 제암리 교회는 교인 전체 23명이 교회 안에 갇힌 채 일경에 의해 불태워 죽임을 당했습니다. 36년간 일제의 무단통치하에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투옥되고 갖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대표적인 순교자요, 일제 말 신사참배 거부로 목회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로 이름도 빛도 없이 목숨을 잃은 장로, 집사, 일반 신도들의 순교까지를 말한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천 명의 기독교 순교자들이 이 땅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해방의 기쁨을 즐길 여유도 없이 불어 닥친 6.25 동족상잔의 민족 갈등이 진행되는 3년간의 전쟁기간에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순교한 기독교인의 수는 또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두 학생 아들을 좌익계열에 의해 졸지에 잃었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패주하는 인민군의 총탄에 장렬한 순교를 하였고 역시 패주하는 인민군에 의해서 영암교회 24명이 집단적으로 순교를 당했고, 영암에 염산교회는 교인의 2/3인 77명이 집단학살 되었고, 같은 지역 야월교회 교인들 55명 전원이 가족적 혹은 집단적으로 송두리째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외에 인민군에 의해 알게 모르게 희생된 기독교인의 피해는 그 숫자를 파악조차 할 수 없습니다.
황제를 신으로 경배해야하는 신성로마의 황제체제하에서 기독교는 무신론자라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다. 황제숭배를 하는 사람에게는 리벨루스(자유)라는 증명서를 주어 그 증명서를 가진 사람은 자기 신을 섬길 수 있었지만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자기종교도 섬길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증명서가 없으면 국가 공무원도 될 수 없었고 시장에 가서 물건도 살 수 없었다.
주후 64년에 로마 황제 네로는 오래된 도시 로마를 새로운 로마로 건설하기 위해서 부하를 시켜서 불을 질러 전소하도록 하고 그 누명을 기독교인들에게 씌워 방화범이라는 죄목으로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극형에 처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유괴한 후 길러 남자아이는 노예로 팔아먹고 여자아이는 창녀로 팔아넘기는 파렴치범들의 못된 악행으로 치안상태가 악화되자 경찰당국은 치안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아이들을 잡아다가 피를 먹고 살을 먹는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 투옥하고 고문과 극형에 처했고, 기독교는 남녀가 함께 모여 연애를 하며 성적 범죄를 저지른다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을 파렴치범으로 잡아다가 극형에 처했습니다.
처형방법도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죽였습니다. 막내 제자 요한은 꿇는 가마솥에 집어넣어 죽였습니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시내 현재까지도 그 건물이 전해 내려오는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갑은 86세 나이에 불붙는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에 처했습니다. 로마치하에 기독교인들을 원형극장에 몰아넣고 굶주린 사자밥이 되도록 하고 구경거리로 삼은 것은 쿼바디스 영화나 책들을 통해서 익히 아는 일입니다.
옷을 다 벗기고 벌거벗은 몸에 짐승의 가죽을 입혀서 들판에 뛰게 하고 사나운 사냥개들을 풀어서 물어뜯어 죽였고, 알몸에 역청을 발라 나무에 묶어 높이 달고 연회를 하는 밤을 밝히는 횃불로 태웠습니다. 놋쇠를 달구어 몸의 예민한 부분에 붙이는가 하면 손과 발에 불을 지르고 몸에는 찬물을 끼얹어 고통을 더하도록 했습니다. 뜨겁게 달군 쇳물을 몸의 예민한 부분에 부어 타들어가게 했습니다. 신체의 일부를 잘라서 보는 앞에서 불에 태웠습니다.
해미 가톨릭성지나 합정동 절두산 성지에 가면 구한말 가톨릭 신자들은 육모방망이로 맞아 죽고, 생매장 또는 수장을 당하는 등 마치 보리타작하는 것처럼 양발을 붙잡고 큰 바위에다 태기를 쳐서 머리가 부셔지고 팔다리가 부서지는 참혹한 형벌을 당했습니다.
유관순은 옥중에서 고문을 당하여 전신에 피멍이 들고 방광이 터지는 등 무참하게 죽였고, 일제하에 만세를 부르던 제암리교회 23명을 교회 안에 가둬 불 태어 죽였으며, 불에 타다 뜨거워 창문을 부수고 나오면 총칼에 죽였습니다. 남편이 불에 타죽는 것을 보며 울고 있는 아낙네를 칼로 목을 쳐 죽였습니다. 전라도 영광에 소재한 염산교회 담임목사의 5자녀와 사모를 목사가 보는 앞에서 장작에 맞아 죽였고, 목사와 장로를 비롯한 염산교회 77명, 야월교회 55명 전원을 몽둥이로 때려 죽였습니다. 때로는 무거운 돌을 목에 달아 인근 바다에 수장했고, 여인들은 줄줄이 칼로 목을 쳐 죽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히 12:1-4 / [하나님의 훈련] 이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둘러앉아 우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속도를 늦추거나 뒤로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다리에 달라붙어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죄를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정해 놓으신 이 특별한 경주에 인내를 가지고 달려갑시다. 2)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3) 만일 여러분이 지치거나 낙심케 되거든 죄인들의 무서운 만행을 참고 견디신 예수의 일을 생각하십시오. 4) 여러분이 죄나 유혹과 맞서서 싸우고는 있지만 아직 피 흘릴 정도로 심한 싸움을 치른 경험은 없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