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卽事(산중즉사) - 산에서 우연히.
僧房雖本靜 승방수본정
승방이 본래 고요한 곳이라고는 하나
入夏轉淸虛 입하전청허 虛-魚
여름 되니 더욱 맑고 허허롭네
愛獨朋從散 애독붕종산
홀로 있는 것을 즐기니 벗들도 떠나고
嫌喧客任疎 혐훤객임소 疎-魚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니 손님도 뜸하네
蟬聲山雨後 선성산우후
산에 비 그치자 매미울음 요란하고
松籟曉風餘 송뇌효풍여 餘-魚
새벽 바람결 솔 소리 아련하네
永日東窓下 영일동창하
온종일 밝은 창 아래에서
無心讀古書 무심독고서 書-魚
그냥 옛날 책이나 읽을까 보다.
雖(수) ; 비록, 그러나, ~라 하더라도, ~라 할지라도.
轉(전) ; 굴러 옮기다. 여름이 되니 ~하게 전개 되었다.
嫌(혐) ; 싫어하다. 혐오(嫌惡)하다.
喧(훤) ; 시끄럽게 떠들다.
松籟(송뇌) ; 뇌(籟)는 퉁소의 일종으로 구멍이 셋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 흐르는 소리를 나타낸다.
曉風(효풍) ; 새벽바람.
永日(영일) ; 하루종일.
東窓(동창) ; 동쪽으로 난 창. 여기서는 창의 방향을 이름이 아니라 밝은 창 이라 푸는 것이 시운에 맞다.
여름 승방에 친구도 오지마라 손님도 오지마라. 아마 하안거 기간이었던가 보다.
7월 보름에서 역산하여 100일 되는 날부터 하안거에 들어간다. 보통 4월 보름께를 잡는다. 100일간 먹는 것 말 하는 것 다 닫는다. 위벽이 맞붙지 않을 정도와 사지가 궂지 않을정도 취음완동(取飮緩動) 한다.
대사와 함께 공부하던 승려들은 그런 하안거 수련 차 다 나갔다. 대사급 승려들은 하안거 라고 별스럽게 수다를 떨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간을 정하여 속인을 멀리 하고 행주좌와 일거수 일투족에 정성을 들인다. 보우대사는 선승이지만 독서량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허응당집」에 수록되어있는 글들의 수준이 몹시 빼어나다. 대사는 수시로 자신이 느끼는 바를 시로 적었고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글로 지어서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설법하는 데 사용하였다.
금강산에서 보낸 초창기는 보우대사가 선 수행을 깊이 체험한 때이기도 하고 불교와 유교 등 경전을 탐독한 시기이기도 하다. 훗날 불교와 유교를 넘어서 당대의 학자들과 널리 사귈 수 있을 정도의 수행과 공부를 이 시기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백미는 頷聯(함련)과 尾聯(미련)의 前後(전후)구 셋째칸의 대구다. 붕과 객, 동과 객은 평측무관 작시가 가능함에도 철저한 대를 이루면서 운의 흐름이 거침없이 매끄럽다. 혹자는 2,4不同(부동)을 강조 하지만 평측 규정만 잘 지키면 저절로 2,4부동은 지켜지므로 따질 필요는 없다. 역자가 굳이 평측 표시를 도모함은 이렇게 시스템을 지키면서도 부드러운 시를 지음을 초심자도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노파심의 發露(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