祗摩尼師今立[或云祇味] 婆娑王嫡子 母 史省夫人 妃 金氏愛禮夫人 葛文王摩帝之女也 初 婆娑王獵於楡飡之澤 太子從焉 獵後 過韓歧部 伊飡許婁饗之 酒酣 許婁之妻 以携少女子出舞 摩帝伊飡之妻 亦引出其女 太子見而悅之 許婁不悅 王謂許婁曰 此地名大庖 公於此 置盛饌美醞 以宴衎之 宜位酒多 在伊飡之上 以摩帝之女 配太子焉 酒多後云角干
지마 이사금(祗摩尼師今)[혹은 지미(祇味)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파사왕(婆娑王)의 큰아들이다.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왕비는 김씨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 마제(摩帝)의 딸이다. 앞서 파사왕이 유찬(楡飡) 연못가에서 사냥할 때 태자가 따라갔었다. 사냥을 마치고 한기부(韓歧部)를 지날 때, 이찬 허루(許婁)가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술기운이 오르자 허루의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 그러자 이찬 마제(摩帝)의 아내도 또한 자기의 딸을 데리고 나왔다. 태자가 그녀를 보고 기뻐하였으나 허루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임금이 허루에게 말하였다.
“이곳 땅 이름이 대포(大庖, 큰 부엌)인데, 그대가 이곳에서 훌륭한 음식과 좋은 술로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해주었으니, 직위를 주다(酒多, 술이 많음)라고 하여 이찬 위에 두어야 마땅하겠다.”
마제의 딸을 태자의 배필로 삼았다. 주다는 뒤에 각간이라고 일컬어졌다.
2년(서기 113) 봄 2월, 임금이 몸소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창영(昌永)을 이찬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옥권(玉權)을 파진찬으로, 신권(申權)을 일길찬으로, 순선(順宣)을 급찬으로 삼았다.
3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拜昌永爲伊飡 以參政事 玉權爲波珍飡 申權爲一吉飡 順宣爲級飡 三月 百濟遣使來聘
3년(서기 114) 봄 3월, 우박이 내려 보리싹을 상하게 했다.
여름 4월, 홍수가 났다. 죄수들을 심사하여 사형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었다.
三年 春三月 雨雹 麥苗傷 夏四月 大水 慮囚 除死罪 餘悉原之
4년(서기 115) 봄 2월, 가야가 남쪽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가을 7월, 임금이 가야를 직접 정벌하였다.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넜다. 가야인들이 숲 속에 병사를 매복시키고 기다렸으나, 임금이 이를 모르고 곧장 나아가니 복병이 나와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임금은 병사를 지휘하여 떨쳐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하였다.
四年 春二月 加耶寇南邊 秋七月 親征加耶 帥步騎 度黃山河 加耶人伏兵林薄 以待之 王不覺直前 伏發圍數重 王揮軍奮擊 決圍而退
5년(서기 116) 가을 8월, 장수를 보내 가야를 공격하게 하고, 임금은 정병 1만을 거느려 뒤를 따랐다. 가야는 성을 닫고 굳게 지키고 있었는데, 마침 비가 오래 내렸으므로 회군하였다.
五年 秋八月 遣將侵加耶 王帥精兵一萬以繼之 加耶嬰城固守 會久雨 乃還
9년(서기 120) 봄 2월, 커다란 별이 월성(月城) 서쪽에 떨어졌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3월,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九年 春二月 大星墜月城西 聲如雷 三月 京都大疫
10년(서기 121) 봄 정월, 익종(翌宗)을 이찬으로 삼고, 흔련(昕連)을 파진찬으로 삼고, 임권(林權)을 아찬으로 삼았다.
2월, 대증산성(大甑山城)을 쌓았다.
여름 4월, 왜인이 동쪽 변경에 침범하였다.
十年 春正月 以翌宗爲伊飡 昕連爲波珍飡 林權爲阿飡 二月 築大甑山城 夏四月 倭人侵東邊
11년(서기 122) 여름 4월,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 나무를 꺾고 기와를 날리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다.
서울의 사람들이 왜병이 크게 몰려온다는 헛소문을 듣고 산골짜기로 다투듯 들어가 숨었다. 임금은 이찬 익종 등을 시켜 그들에게 사실을 알리도록 하였다.
가을 7월,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쳐 흉년이 들었으며, 도둑이 많아졌다.
十一年 夏四月 大風東來 折木飛瓦 至夕而止 都人訛言倭兵大來 爭遁山谷 王命伊飡翌宗等諭止之 秋七月 飛蝗害穀 年饑多盜
12년(서기 123) 봄 3월, 왜국과 강화하였다.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5월, 금성 동쪽의 민가가 내려앉아 연못이 되었는데, 그곳에 연이 돋았다.
十二年 春三月 與倭國講和 夏四月 隕霜 五月 金城東民屋 陷爲池芙蕖生
13년(서기 124) 가을 9월, 그믐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三年 秋九月庚申晦 日有食之
14년(서기 125) 봄 정월, 말갈(靺鞨)이 북쪽 변경을 크게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했다.
가을 7월, 그들은 또다시 대령(大嶺)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넘어왔다. 임금이 백제에 서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자, 백제는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 돕게 하였다. 적병은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다.
十四年 春正月 靺鞨大入北境 殺掠吏民 秋七月 又襲大嶺柵 過於泥河 王移書百濟請救 百濟遣五將軍助之 賊聞而退
16년(서기 127) 가을 7월, 초하루인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六年 秋七月甲戌朔 日有食之
17년(서기 128) 가을 8월, 장성(長星, 혜성)이 하늘 끝까지 뻗쳤다.
겨울 10월, 동쪽 지방에 지진이 났다.
11월, 우레가 쳤다.
十七年 秋八月 長星竟天 冬十月 國東地震 十一月 雷
18년(서기 129), 이찬 창영이 죽자,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삼아 정사에 참여시켰다.
十八年 伊飡昌永卒 以波珍飡玉權爲伊飡 以參政事
20년(서기 131) 여름 5월, 큰 비가 내려 백성들의 집이 떠내려가고 물에 잠겼다.
二十年 夏五月 大雨 漂沒民戶
21년(서기 132) 봄 2월, 궁궐의 남문에 불이 났다.
二十一年 春二月 宮南門災
23년(서기 134),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가을 8월, 임금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었다.
二十三年 春夏 旱 秋八月 王薨 無子
[네이버 지식백과] 지마 이사금 [祗摩尼師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