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822 칠갑산(6)
사십 대 남자가 비좁은 책방에 들어서면서 “아이, 드럽게 덥네.”라고 말하자
다리 저는 책방 주인이 “야 이눔아, 지금 볏모가지가 쑥쑥 나와야 할 때여. 농사짓는 사람들은 날씨가 서늘하여 속이 타고 있는디, 오디서 더워 죽겠다고 혓바닥 덴 소리를 하는 겨.”라고 쏴붙인다.
“아이 젠장할 사돈 옘병이 내 고뿔만 못 하는 말도 물러유.”
“야, 이눔아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두 헐떡거린다구, 네 놈이 필시 속 끓인 일 있으니깨 오늘같이 서늘한 날 염불 빠진 년 같이 어기적거리고 돌아댕기며 중얼거리는 겨!”
“아니, 니알이 입추며 말복 아니유. 옛날 으른들께서 삼복더위에는 천기(天氣)가 쇠하고 토기(土氣)가 왕성해서 몸과 마음이 허해지니 중복과 말복에는 개의 기(氣)를 받아야 한고 말씀하셨는디. 성님, 이 아우 속 불 좀 끄게 보신탕 한 그릇 안 사주려오.”
“이눔 봐라, 천기가 어떻구 토기 어떻구 하길래 개입에서 상아 나나 부다 했더니, 개장국 초 친 소리하구 앉았네.”
“아니, 성님은 워째서 저만 보만 개벼룩 씹듯이 저를 못 씹어 안달이시유.”
“글줄이나 읽었다는 네놈이 할 일 없이 돌아댕기니깨 베기 싫어서 그러는 겨. 니가 알먼 월마나 안다구 문자 써가며 개풍류질이여.”
“들어보슈 성님, 낮에 낳은 자식은 애비를 닮구 밤에 낳은 자식은 에미를 닮는다는 말이 있잖아유. 말복날 낮에 태어난 저는, 마음은 그렇지 않는디, 왜 자꾸 삐딱하게 아버지처럼 세상을 살아가는지 모르것유.”
“야 이눔아, 너두 여기 오신 신부님한티 잘 말씀드려 승당엘 댕겨 봐라. 타고난 본성이 악질이라두 수양을 하면 개과천선하는 볍이여.”
그때서야 책을 고르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를 발견한 사십 대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처음 뵜것유. 신부님은 여태 즈덜 얘기 다 들으셨으니깨 한 가지 묻것는디유, 왜 성경이다 불경이다 사서오경이다 성현들께서 하신 좋은 말씀을 죄 다 읽어도 사는 것은 맨날 마찬가지래유?”
“야야, 쓰잘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니 대가리나 칠갑산 광대리 물에 씻고 와라.” 하며 책방 주인이 끼어들었다.
“썩어빠진 정신으로 경서를 읽으면 뭐하냐? 너 같이 정신은 썪어 가지구 책만 잔뜩 읽어 주둥이만 까진 놈이 이 세상에 쌔 빠졌어. 다리가 병신이라 책 장사를 하구 있다마는 수양에는 마음이 없으면서 지식욕과 명예욕만 꽉 찬 머저리한테 책을 팔고 나면 꼭 쥐약을 팔고 난 기분이 든단 말여.”
나는 저녁밥을 준비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사제관으로 돌아왔다.
한마디도 못 하고 죽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론과 제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 종교에 대한 반감이 깊은 저들에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뇌하는 오늘의 사제들 마음처럼 길고 짙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칠갑산 서녘에 석양이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