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자 문우님이 부산시단 (2023.37호 여름호) 작품상에 당선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낡은 구두 / 류정운
선뜻 뒤따르지 못한 구두를 기억한다
멀어지는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걸음을 잊은 채 서 있었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곁을 내주지 않았던 지난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늙은 어머니를 부축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래도록 뒤척이는 새벽, 방해받지 않는 하얀 밤을 그릴 때마다 그 구두, 되살아났다
바닥 아래 숨겨진 민낯을 들켜버릴까 봐
한밤중에 구부리고 앉아 눅진한 먼지를 닦는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낯익은 구두까지
한달음에 내 앞으로 달려 나온다
물길에 찌그러지고 터진 뼛조각들의 잔영이 너덜거리고 있다
쫓아갈 길이 망연해진 지금
발바닥 티눈이 잘라내지도 못할 만큼 두꺼워졌는데,
뾰족했던 구두 어느새 둥그런 코를 얻어
하릴없이 그 길을 갔다 돌아온다
류정운
2017년 푸른문학≫ 봄호 신인문학상 시 부문, 가을호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경남 남해출생, 그림나무 시문학회, 전국약사문인회, 푸른문학회, 솜다리
문학회 회원 수상경력 : 제7회 한국약사문학상 시부문 대상 저서 : 그림나무 동인지 공저, 푸른문학회 우리들이 사랑하는 100선 공제(2017, 2018) 약사문예 공저(2021). 솜다리문학 공저(제2호 4호 5호)
부산시단 37호> 2023 여름호 제34회 작품상 심사평
접수된 작품 수는 총 167 여 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20편이었다. 본심 심사위원 3명은 각자 3편을 뽑아, 심사위원 2명이상이 뽑은 5편을 최종심에 올려 심의하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노을 앞에서, 청어구이, 비 오는 날, 버스 안에서, 섬이 생긴 자리 낡은 구두 순으로 순번을 정한 후 저자를 확인했다.
작가상 후보작 '노을 앞에서'는 고승호 시인, 작품상 후보작 '청어구이'는 이용철 시인, '비 오는 날 버스 안에서'는 김현주 시인, '섬이 생긴 자리'는 조성범 시인, '낡은 구두'는 류정운 시인이었다.
공교롭게도 고승호 회장이 작가상 후보로 뽑혀 고심 끝에 심사에서 제외하고 다시 차순위인 청어구이를 작가상으로 '비 오는날 버스 안에서 낡은 구두 2편을 작품상으로 정했다. 섬이 생긴 자리의 조성범 시인은 작가상 수상 후 2년 이내 제한 규정에 따라 제외됐다.
사람은 자기 앞의 삶과 현실 속에서 부단히 상처받고 그 상처로 숨 쉬며 꿈꾸며 포옹한다. 그래서 시인은 내일의 흐릿한 희망보다 오늘의 뚜렷한 절망을 믿고 사랑한다.
시는 개인적 의식과 현실적 환경의 틈 사이에서 싹트는 부재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관념을 배제한다기보다는 구체적 대상에서 느낀 작가의 심상이나 정서를 어떻게 언어와 결합하고 형상화할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례를 작가상 수상작 청어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벚꽃 흩날리는 저녁, 소주 한 잔 앞에 두고 연탄 석쇠 위에 청어를 굽는 화자는 무엇을 굽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의 이별 편지이거나 그리운 추억이거나, 회한이거나, 아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통증을 태우며 검게 탄 청어는 마침내 뼈만 남았다. 짧고간결하지만 그 속에서 품은 의미는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다. '뼈만 남은 봄'이라는 마지막 연의 함축적 표현에서 작자의 적지 않은 내공을 느끼게 된다.
작품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이지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시에서 정서적, 환기적 기능을 가진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 무한한 의미의 진폭을 넓혀갈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 아닐까.
이상 세 편의 작품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장면을 섬세하게 포착해내어 자신만의 시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인식의 공간을 넓혀 나가고 있는 점이 돋보였기에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예심 : 박혜숙, 김순여, 박래원, 신항원, 최은복
본심 : 차달숙(위원장/글), 김수민, 조현숙
* 심사평 주 : 등단 25년 이상 작품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