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훈련 45
상상을 성화할 것
우리는 상상을 통해 아주 쉽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것에 대하여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가 알렉산더 화이트는 “그리스도인의 심상이라는 신성한 직분과 화려한 봉사”라고 말했다.
추상적인 묵상만으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좀더 깊이 오관을 의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단순하고, 상당히 초라한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자신도 이 방법으로 가르치시며 늘 상상력에 호소하셨다. 많은 경건의 거장들도 마찬가지로 이 길을 권장한다.
아빌라의 테레사도 “나의 명철로는 숙고할 수 없으므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궁리하여 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녀의 말에 동감할 것이다. 우리들 역시 지적인 접근을 했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냉담했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상상은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프랑수아 드 살르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서 우리가 묵상하는 신비한 것 안에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켜 이리 저리로 배회하지 않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새를 새장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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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거나 매를 가죽 끈으로 묶어 손 안에 머물게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이들은 상상은 신뢰할 수 없으며 악한 자에게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서 상상을 반대한다. 그런 우려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우리의 모든 능력과 마찬가지로 상상도 타락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성(타락한 상태의)을 취하여 거룩하게 하신 후 그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 것처럼, 상상도 거룩하게 하신 후 그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상상도 사탄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모든 능력이 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상을 가진 피조물로 만드셨다. 그리고 피조물의 주이신 하나님은 상상을 구속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신다.
상상에 대한 또 하나의 우려는 인간의 조작과 자기 기만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지나친 상상”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상상해 낼 수 있다. 성경도 악한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을 한다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롬 1:21)? 그러니 우려를 가질 만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헛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좋아 하나님의 생각을 하고, 그의 앞에서 즐거워하고, 그의 진리와 길을 원한다. 우리의 이런 삶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은 더욱 우리의 상상력을 그의 뜻을 위해 사용하신다.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체험은 어떤 일이 가능하다는 영상을 받는 체험이다. 종종 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그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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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그림에 그들과 함께 동참하노라면 깊은 탄식이 나오거나 눈물이 흐르게 된다. 후에 그들이 “어떻게 그걸 알았습니까?”라고 물으면 “글쎄, 몰랐어요. 다만 보았을 뿐이에요”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상상을 성결케 하여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의 성육신 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에 맞도록 적응시키시고 육화하셔서,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상상을 이용해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르치신다.
(리처드 포스터 『영적 훈련과 성장』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5. pp. 4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