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건(崔庸健, 1900년 6월 21일 ~ 1976년 9월 19일)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출신으로 중화민국과 소련의 군인(일제 시대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 사회주의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석천(石泉)[2] , 자(字)는 추해(秋海), 룡건(龍建), 용근(龍根). 다른 이름으로 영수사(嶺秀舍), 최용건(崔鏞健), 최룡건(崔龍建), 최석천(崔石泉), 최추해(崔秋海), 김지강(金志剛) 등이 있다.[3] 평북 태천군 출신이다. 형제자매로는 최형건(남동생) 등이 있었다.
최용건은 1900년 6월 21일 대한제국 평북 태천군 서성면에서 성리학자인 최니학의 아들로 태어나 태천소학교를 다녔다.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룡천군에서 살았다 한다. 선친 최니학은 1942년 김두운(아호는 충제), 문창수(아호는 강제), 김형로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 습격을 모의했다가 검거되어 구치소에 투옥된 뒤, 1943년 총살형(사형)이 집행되었다. 동생인 최형건은 을유년 해방 후 조선로동당의 초급당 비서(조선로동당 당무위원 겸무)와 평양 기업소 국제책무위원장 겸 당무비서 등을 역임했다. 또한 이외 몇수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