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 좋다 돌아가고 싶다
흔희 사람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를 묻는다, 얼른 생각해서 무엇이 중요한가할 것이다. 식물로 예를 든다면 토양이 좋은 곳에 자란 채소는 싱싱하고 자양분을 많이 받아들여 사람들이 먹었을 때 맛나 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그 태어난 곳이 중요할 것이다. 사람은 도회지에서 태어나 시골에 가서 사는 경우도 있다. 거꾸로 시골에서 태어나 도회지에 와 사는 경우도 있다. 내가 바로 거꾸로 인 것이다, 해 뜨자 낮달이 따라 오고, 어느새 저녁녘이면 산그늘때라 어둠살이 친다. 하늘에 별들이 경쟁하듯 황홀을 연출한다. 그런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별을 닮았다 . 무엇을 해도 스스로 잘 하고 산다. 그래서 난 시골이 좋다. 나는 다시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참 천진난만하게 살았다. 늘 인생에는 장밋빛만 있을 줄만 알았다.
온유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성장한 것 같다. 이것은 사촌오빠들이 나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늘 너를 등에 업고 다니는 작은아버지는 너를 많이 예뻐해 주았다.” 라고 얘기를 귀에 따까리가 앉도록 들었다. 나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 언니 둘 밑으로 남동생 둘 나는 기울지 않는 중심부였다. 그리고 저 집에 셋째 딸이 고추를 달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라는 얘기를 역시 귀에 따까리가 앉도록 들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 줄 몰랐다.
나는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가물 가물하지만, 우리 마을에 윤 희라는 어르신이 계셨다. 그 집 딸이 우리 탁아소 선생님이었다. 원을 그리면서 율동을 하고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지요~”라고 노래를 부르며 “탁아소“ 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도시로 얘기하자면 유치원인 셈이다.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기에 세상이 마냥 아름다울 줄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세상의 나다움을 찾아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설레는 맘으로 살아보려고 애쓴다.
6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가 스크랩 해 놓은 앨범을 펼쳐 보게 되었다. 그 앨범에는 많은 사진과 아버지의 “새마을금고 이사장 시절 의 기사가 실린 내용 이었다. 마을을 부흥시켰다는 내용의 기사가 곡삭의 알곡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적혀 있었다. 그 기사 내용을 보고 아버지의 딸로서 훌륭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던 것이 선명하게 뇌리에 기억되어 있었다. 나는 늘 생각이 많았고, 늘 고민 고민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굵다란(?)흔적이다.
참 꿈이 많았던 소녀였다. 그래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지금은 아마도 고인이 된 이모교장선생님은 회장, 부회장을 교장실로 불렀다.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1리(慶北 醴川郡 柳川面 花枝一里)”를 한자로 적어서 가르쳐 주었다. 그때 그 교장선생님은 붓글씨를 매우 잘 썼고, 앞으로 이 정도 한문 정도는 쓸을 줄 알아야한다고 특별히 가르쳐 주었다. 6학년 여 부회장이었던 나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긍정의 씨앗들이 내 마음속에 소록 소록 자라기 시작했다.
고향은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낮밤으로 기억에 도드라지는 것은 왜 일까? 내 고향 예천군 유천면이다. 예천(醴泉)은 글자 그대로 단술 샘이다. 유천면은 본래 "버드 내" 이었다. 한자오 고쳐서 "버들 유(柳)" 자에 "내 천(川)" 자 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도 좋다 화지(花枝)라는 "꽃가지 마을" 이다. 이 어찌 좋은 이름이 아니랴!
내 고향 자랑은 지금이 딱 좋다. 남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서부는 산지이고, 남부는 해밯 100m 안팎의 낮은 구릉성산지이다. 북부는 백마산(白馬山, 383m), 국사봉(國師峰, 728m) 등의 산들이 솟아 있다. 산지에 둘러싸인 산간침식분지이다. 한천의 지류인 유천이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구릉성산지 사이에 하계망을 펼쳐 산지를 개척하고 있다.
5개의 초등학교가 모여 중학교가 된 유천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임하였다. 나를 3년 동안 담임을 했던 이모영어선생님은 나에게 역시 특별하신 선생님이다. 선생님 생일날 학교 앞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 많은 학생들과 함께 갔다. 처음으로 우유와 소시지(sausage)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난생 처음 먹었던 우유와 소시지는 구수하고 참 맛있었다. 하늘같은 선생님의 사랑을 여전히 받으면서 시골의 순수하고 철없었던 그 시절들이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나는 아름다운 세상에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 기억에 시골은 말 그대로 자연과 더불어 학습하며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봄에는 새파랗게 자란 보리밭에 보리밟기를 하였고, 가을이면 고추밭에 비닐하우스를 걷었으며, 여름에는 옥수수, 감자,,, 등을 삶아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과 자연의 사계절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부자인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 같다.
정겹고 그리운 내 고향 시골이 있어서 너무너무 좋다. 자연의 일부인 나를 발견한 지금 나는 참 행복한 사람 같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지구에서 하나의 작은 점인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분석하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일 줄 알고 그 안에서 행복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내가 나는 참 놀랍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 늘 깨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서 늘 배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래서 어쩌면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20230703)
첫댓글 진솔한 글 그때를 그려보며 독자인 저도 행복해집니다. 아름다운 추억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언니가 계셔서 힘이되고 용기를 얻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페지기.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