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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작은 도자기 인형
암스트롱 의사는 꿈을 꾸었다. 무더운 수술실이었다. 땀이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이 굳어져 메스를 힘껏 쥘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예리한 칼날인가……
이거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살인을 했
던 것이다…….
그 여자의 몸은 여느 때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그녀는 본디 다루기 힘
든 큰 몸집이었다. 그런데 가냘프고 여윈 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얼굴이
덮여져 있다.
그가 죽여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간호사에게 물어 볼까. 그녀는 가만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물어 볼 수 없다. 물어 보면 의심을 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은 누구일까? 왜 얼굴을 덮어 놓았을
까……아무래도 얼굴을 보아야겠다. 아, 그 정도면 되었어. 젊은 실습생이
손수건을 벗겨 버렸던 것이다.
에밀리 브랜트였다. 그가 죽여야 할 사람은 에밀리 브랜트였다. 얼마나
악의에 찬 눈인가! 입술이 움직이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죽음은 언제나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지금 웃고 있다. 아니, 간호사, 손수건을 덮지 말아 줘. 나는 보
고 있지 않으면 안 돼. 마취시키지 않으면 안돼.
에테르는 어디 있나. 에테르를 분명히 가져왔는데……에테르가 없나,
간호사? 포도주가 있다고? 좋아, 그것으로 됐어. 손수건을 걷어 버려, 간
호사.
그렇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앤터니 머스턴이었다! 얼굴이 보랏빛이
되어 비틀려 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웃고 있다. 웃으며 수술대를 흔들
고 있다! 정신차려! 위험해! 간호사, 잡아 눌러 줘! 잡아 눌러 줘!
암스트롱 의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침이 되었다. 햇빛이 방안
에 비쳐 들었다.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로저스였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부르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암스트롱 의사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침대에 일어나 앉으
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아내가 눈을 뜨지 않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습니다.
모습이 이상합니다.」
암스트롱 의사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 가운을 몸에 걸치고 로
저스의 뒤를 따랐다.
누워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여자 위로 의사는 몸을 굽혔다. 그리고 차
가운 손을 쥐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그가 몸을 일으켜 침대 곁에서
물러난 것은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로저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내는――아내는…….」
「그렇소. 죽어 있소.」
로저스의 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듯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침대 옆의 테이블로 갔다가 세면대에 가본 다음 누워 있
는 여자 곁으로 되돌아왔다.
로저스가 말했다.
「죽은 원인은――심장입니까?」
암스트롱 의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평소에 건강했소?」
「류머티즘 증세가 좀 있었습니다만…….」
「최근 의사에게 진찰받은 적이 있소?」
로저스는 암스트롱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랫동안 의사의 진찰을 받은 적 없습니다. 아내도 나도.」
「심장이 나쁜 것 같은 증상이 있었소?」
「아니오, 그런 징조는 없었습니다.」
「잠은 언제나 잘 잤소?」
로저스의 눈이 의사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손을 모아 쥐고 우물쭈물하
며 말했다.
「잘 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면제를 써왔소?」
로저스는 놀라서 의사를 쳐다보았다.
「수면제라고요? 내가 알고 있는 한 먹은 적이 없습니다.」
암스트롱은 세면대 쪽으로 갔다. 병이 몇 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로
션, 라벤더 향수, 설사약, 화장수, 치약, 칫솔. 로저스가 화장대 서랍을 열
었다. 그러나 수면제는 아무데도 없었다.
로저스가 말했다.
「어젯밤에는 선생님이 주신 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9시에 아침 식사 종이 울렸을 때에는, 모두들 일어나 종이 울리기를 기
다리고 있었다.
매커서 장군과 판사는 테라스를 거닐며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베러 크레이슨과 필립 롬버드는 저택 뒤 언덕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
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육지 바라보고 서 있는 윌리엄 헨리 블로어를 보
았다.
블로어가 말했다.
「아직 모터 보트가 오는 것 같지 않소. 아까부터 지켜 보고 있었는데
…….」
베러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데븐셔는 한적한 곳이에요. 무엇이나 다 느리지요.」
필립 롬버드는 반대편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날씨는 어떨까요?」
블로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을 거요.」
롬버드는 입술을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 안으로 바람이 불어올지도 모르오.」
「돌풍일까?」
아래쪽에서 종소리가 들려 왔다.
롬버드가 말했다.
「아침 식사로군. 나는 배가 고프오.」
블로어는 롬버드와 나란히 급하게 경사진 비탈질을 내려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그 젊은 사나이는 왜 자살했을까. 나는 지난밤 내
내 그 일을 생각했소.」
베러는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롬버드가 걸음을 좀 늦추며 말했다.
「자살 말고는 달리 생각되는 점이 없소?」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소. 그보다 먼저 동기요. 그는 틀림
없이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다고 보오.」
에밀리 브랜트가 응접실에서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그녀는 날카롭게
물었다.
「보트가 왔나요?」
베러가 대답했다.
「아직 안 왔어요.」
모두들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이드 테이블에 달걀, 베이컨, 차, 커피 등
이 놓여 있었다. 로저스가 문을 열어 그들을 들여 보내고 밖에서 문을 닫
았다.
에밀리 브랜트가 말했다.
「저 사람 얼굴빛이 나빠 보이는군요.」
창문 옆에 서 있던 암스트롱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차린 게 없더라도 참고 잡숴 주십시오. 로저스가 혼자서 준비했습니
다. 로저스 부인이 일할 수 없었으므로…….」
에밀리 브랜트가 말했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나요?」
암스트롱 의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사를 시작합시다. 달걀이 식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여러 분들과 이
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모두들 의사의 말에 따랐다. 접시의 음식이 나눠지고, 커피와 차가 따
라졌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해외 뉴스, 스포츠, 네스호의 괴물이
다시 나타난 일 등이 순서없이 이야기되었다. 대화에 깊이 빠져 드는 사
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암스트롱 의사는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면서 헛
기침을 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실은 로저스의
아내가 어젯밤 잠든 채 숨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베러가 외쳤다.
「어머나,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들이 섬에 오고 나서 벌서 두 사람
이나 죽다니!」
워그레이브 판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나지막하고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믿어지지 않는 일인데, 원인은 무엇이었소?」
암스트롱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해부가 필요하다는 거요?」
「어쨌든 이대로는 사망진단서를 쓸 수 없습니다. 건강 상태도 몰랐으
니까요.」
베러가 말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여자 같았어요. 어젯밤 그런 충격을 받았으니 틀
림없이 심장마비일 거예요.」
암스트롱 의사가 말했다.
「심장이 멈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멈췄는가 하는 게 문제
입니다.」
에밀리 브랜트가 또렷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양심이에요!」
의사는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슨 뜻입니까, 미스 브랜트?」
에밀리 브랜트는 얼굴빛도 달라지지 않고 말했다.
「여러분들도 들었잖아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전 주인을 죽인 죄를
문초받았어요.」
「그럼, 당신은…….」
「나는 그것이 정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보았을 테니까요.
그녀는 놀라서 기절했지요. 죄가 밝혀졌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숨길 수
없었던 거예요. 공포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해도 될 거예요.」
암스트롱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만, 여느 때의 건강 상태를 확실히 알지 않고
는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심장이 약했다든지…….」
에밀리 브랜트는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모두들 놀라며 에밀리 브랜트의 얼굴을 보았다.
블로어가 난처한 듯 말했다.
「그것은 좀 지나친 말이군요, 미스 브랜트.」
그녀는 눈을 빛내며 모두들 둘러보았다. 그리고 턱을 내밀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죄인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받아 죽는 것을 의심하나요!
나는 의심하지 않아요.」
판사가 조용히 무릎을 두드렸다. 그는 비꼬임어린 말투로 천천히 말했
다.
「내가 오랫동안 죄를 재판해 온 경험에서 말한다면, 하느님은 단죄와
속죄에 대한 일을 우리들 인간에게 맡기고 있소. 그러나 그 일을 쉽게 해
나갈 수는 없소. 빠른 길은 없는 거요.」
에밀리 브랜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잠자코 있었다.
블로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2층에 올라가 먹거나 마신 것은 없었소?」
암스트롱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소.」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요. 물을 마셨는지도 모르지요. 꼭 차를 마셔야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모든 잠자기 전에 차를 마시지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고 로저스가 말했소.」
「흠, 과연. 그러나 그로서는 그렇게 말하겠지요!」
무언지 확신하는 듯한 말투였으므로 의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블로어
를 쏘아보았다.
필립 롬버드가 말했다.
「그럼, 당신은…….」
「그렇소! 우리는 어젯밤, 저마다 저지른 죄를 들었소. 미치광이의 잠꼬
대였는지도 모르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것이 사실이었다
고 합시다. 로저스 부부가 노파를 죽였다면 어떻겠소? 그들은 지금까지
마음놓고 있었는데…….」
베러가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였다.
「아니예요, 마음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블로어는 이야기 허리를 잘려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눈이 여자는 늘
이렇다고 말하는 듯 베러를 보았다. 블로어는 말을 이었다.
「어쩌면 마음놓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눈앞의 위험은
없었을 거요. 그런데 어젯밤 누군지 알 수 없는 미치광이가 나타나 사실
을 밝혔소. 그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었지요? 그녀는 놀라 정신을 잃었
소.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저 사나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
하고 있소? 여자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여 뜨거운 지붕 위를 걸
어가는 고양이처럼 벌벌 떨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오.
그리고 그의 입장은 또 어떻소.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시치미떼고
있었소. 그런데 모든 게 밝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소? 열에 하나, 여
자는 진실을 실토하오. 여자들에게는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배짱이 없지
요. 언젠가는 모든 것을 고백하기 마련이오.
로저스로서는 여자가 살아 있는 게 위험하기 이를 데 없소. 자기는 자
신있지만, 여자는 어떨지 모르오. 그리고 만일 여자가 고백한다면 그의
목도 달아나오! 그래서 찻잔에 무엇인가를 넣어서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
도록 한 것이오.」
암스트롱이 침착하게 말했다.
「침대 옆에 빈 잔은 없었소. 그런 것은 아무데도 없었소. 나도 조사해
보았소.」
블로어는 외치듯 말했다.
「물론 있을 리 없지요! 여자가 마시고 난 뒤 잔과 받침접시를 깨끗이
치워 버린 거요.」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매커서 장군이 그 침묵을 깨뜨렸다.
「어쩌면 당신 말대로일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그
런 일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블로어는 소리내어 웃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감정적인 일은 생각할 수 없는 법입니다.
」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동안 문이 열리며 로저스
가 들어왔다. 그는 모두를 한 사람씩 둘러보며 말했다.
「뭘 좀더 드시겠습니까? 토스트가 적어서 죄송합니다만, 방을 아껴 둔
겁니다. 새 빵이 오지 않아서요.」
워그레이브 판사가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며 물었다.
「모터 보트는 늘 몇 시에 오나?」
「7시에서 8시 사이입니다. 때로는 8시 지나서 올 때도 있습니다만, 오
늘 아침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만일 프레드 내러컷이 병이라도 나면 그
의 동생이 오게 되어 있는데요…….」
필립 롬버드가 말했다.
「지금 몇 시요?」
「10시 10분 전입니다.」
롬버드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로저스는 그대로 선 채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매커서 장군이 큰소리로 말했다.
「자네 아내가 참 안됐네, 로저스. 지금 의사 선생으로부터 들었네.」
로저스는 머리를 숙였다.
「네, 고맙습니다.」
그는 비어 있는 베이컨 접시를 들고 나갔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테라스에서 필립 롬버드가 말했다.
「모터 보트 말인데…….」
블로어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오, 롬버드. 나도 같은 생각을 하
고 있었소. 두 시간 전에 오도록 되어 있는 모터 보트가 아직도 오지 않
소. 어째서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사고가 아니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이것도 계획의 하나요. 처음부
터 계획된 일이오.」
「그럼, 오지 않을 것으로 여기오?」
그의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성난 듯한 목소리였다.
「모터 보트는 올 리 없어!」
블로어는 떡벌어진 어깨를 돌려 말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장군?」
매커서 장군이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올 리 없소. 우리는 모터 보트가 없으면 이 섬에서 나갈 수 없
소.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되었던 거요. 우리는 이 섬을 떠날 수 없소……
아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이오. 여기가 종말이오. 모든 것의 종말
이오…….」
장군은 말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다시 이었다.
「그것이 평화요. 참된 평화인 거요. 마지막까지 와서――이제 더 앞으
로 갈 수 없소. 평화요…….」
장군은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테라스를 가로질러 바다로 이르는 비탈
길을 내려가 바위가 바닷속에 솟아 있는 섬 끝으로 걸어갔다. 절반쯤 졸
고 있는 듯 힘없는 걸음이었다.
블로어가 말했다.
「저 사람은 머리가 돌아 버렸어! 곧 모두들 저렇게 미쳐 버리겠지.」
필립 롬버드가 말했다.
「당신은 그렇지 않을걸.」
전직 경감은 대답했다.
「내가 미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거요.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걸, 롬
버드.」
「고맙소, 지금은 완전히 제정신이오.」
암스트롱 의사는 테라스로 나갔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왼쪽에는 블로어와 롬버드가 있었다. 오른쪽에는 워그레이브가 머리를 숙
이고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암스트롱은 잠시 생각하다가 워그레이브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 로
저스가 저택 쪽에서 당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암스트롱은 로저스를 바라보았다. 로저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몇분 전까지 그토록 건강한 모습이었는
데, 어떻게 된 일일까?
「부탁입니다. 저택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의사는 얼굴빛이 달라진 로저스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오?」
「여기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로저스는 식당문을 열었다. 의사는 안으로 들어갔다. 로저스는 그 뒤를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암스트롱이 말했다.
「무슨 일이오?」
로저스의 목 근육이 움직였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까스로 입
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
「틀림없이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는 게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쓸데없는
소리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잠자코 있
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수수께끼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로저스는 다시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저 조그만 인형――테이블 한복판에 있는 인형 말입니다. 틀림없이
열 개가 있었는데…….」
「그렇소. 어제 저녁 식사 때 세어 보았지.」
로저스는 그 가까이로 다가섰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내가 뒤처리를 할 때 인형이 아홉 개만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그리 큰일로 여기지 않
았지요.
오늘 아침 식사 때는 마음이 불안해서 인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지
금 돌아와 보니……내 말이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적접 보십시오. 인형이
여덟 개뿐입니다. 두 개가 줄어들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형이
여덟 개밖에…….」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