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자들의 영성
1.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교회사 초기부터 많은 위대한 순교자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교회의 자랑거리라는 차원을 벗어나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러한 순교자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오늘날의 우리들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과제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현세대에게, 신앙생활을 단순히 취미생활로 밖에 여기지 않는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을 미개한 신화속의 인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순교자들은 아직까지도 온몸으로 증거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가 우리의 순교자들에게 보인 관심은 실로 미흡하다. 순교자들에 관계된 역사적 사실자체 규명, 외적인 공경이나 현양의 표현양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깊이 깨달아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2. 순교영성이란?
1) 순교(殉敎)
순교영성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순교'라는 단어의 명확한 의미규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순교란 말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행동"1), "신앙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2)을 의미하며 '증인'을 뜻하는 희랍어 'μαρτυ?'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래 '순교'와 '순교자'의 원어인 'μαρτυριον'과 'μαρτυ?'는 단순히 증언과 증거자를 의미했지만 이 단어들이 그리스도교에 수용되면서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증거, 증언만을 뜻함이 아니라 피 흘림을 통한 신앙의 증거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순교는 엄밀히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自發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3)
그러나 이처럼 순교가 단순히 외적인 피흘림을 통한 신앙의 증거만을 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교부시대부터 광의적 의미의 순교, 다시 말해서 주의 계명과 복음적 삶을 철저히 사는 것 자체도 순교로 보았던 것이다.
비록 피흘림의 순교는 아니지만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사셨던 분들, 바로 교회의 오랜 전통 속에서 이미 순교자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성모님을 순교자들의 모후라고 칭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무혈의 순교자, 혹은 하얀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는 많은 성인성녀들, 모두 넓은 의미의 순교자들인 것이다.
결국 순교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물리적이며 협의적인 순교와 비록 피는 흘리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복음적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영적이며 광의적인 순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순교영성(순교정신)이란
그렇다면 순교영성이란 무엇인가? 순교영성에 대해 정확한 의미규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순교영성이란 말은 흔히 순교정신이란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곧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의 모든 신앙과 신념과 모범적 삶 모두를 총칭하는 것이다. 즉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생명까지도 포기하며 사는 삶,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순교영성, 순교정신인 것이다.
a)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Ⅰ고린 10,31)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순교자 김대
건 신부에 관한 기록(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下, p.119)
b) 포기함 :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24)
어떤 것을 포기하든지 간에 포기함 없이 순교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순교자들이 자신의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많은 것을, 심지어는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도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것을 뛰어 넘어 순교하고자 하는 자신의 원의까지도 포기했던 것이다.
"나는 순명으로 이렇게 얽매어 있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였더라면 지금은 조선의 내 전교지방에 들어갔거나 아니면 천국의 빨마 가지 위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다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최양업신부 서간집」, 임충신/최석우 역주(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1984), p.83)
꼭 외적으로 목숨을 버리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위해 많은 자리를 비워 놓으며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신앙생활이, 그리고 그러한 신앙의 자세가 바로 순교영성의 특성인 것이다.
c) 그리스도를 닮음 :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 안에서 나타나는 순교의 특성 중 첫째이며 근본적인 측면은 스승이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며 따름'이다. 즉 예수 친히 하느님의 탁월한 순교자이시며, 순교자들의 원형7)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고 길을 가셨는데 내가 왜 이 길을 걷기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니, 나는 예수를 한발 한발 따라 가겠다.' 이렇게 결심하니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순교자 이경언의 편지(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 pp.144-145)
d) 하느님 나라의 갈망(渴望) : 우리 순교자들의 순교영성 중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다. 그리고 순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도 사실은 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저는 다시 같은 모양으로 죄를 짓기 보다는 추위로 얼고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의 괴로움을 잘 참아 받음으로 저는 죽은 뒤에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순교자 장성집의 증언(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 pp.416-417)
3) 일상에서의 순교정신
그러면 목숨 바쳐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 우리 신앙의 선조(先祖)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며 또 무슨 의미인가? 도대체 순교영성, 순교정신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물론 오늘날은 예전과 같은 박해의 상황은 있지 않다. 그러나 내면적(內面的)인 박해의 상황은 항상 있어왔음을 알아야 한다. 내 욕망에 의한 박해, 내 의지에 의한 박해, 사회의 불의에 의한 박해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하느님의 뜻과 나의 뜻, 하느님의 선과 나의 욕망, 죄에로 기울려는 경향 등은 우리의 내면속에서 끊임없이 박해의 상황을 야기 시켜왔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왔는가? 사소한 일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자주 우리의 일상에서 배교자들이 되었던 것은 아닌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교회는 교부시대부터 이미 무혈의 순교, 일상에서의 순교를 높이 평가해왔다. 즉 주의 계명과 복음적 삶을 철저히 사는 것 또한 순교로 보았던 것이다.
순교영성의 중심은 목숨을 바치는 것 자체가 아닌 것이다. 목숨을 바치는 행위가 없더라도 하느님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사는 삶이 바로 순교영성의 핵심인 것이다.
자료 : <한국 순교자 영성 연구소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