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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이우혁 기자 goodays4@newscj.com
‘한글 철학자’ 박정진 문화인류학 박사 인터뷰
“번역 철학의 괴리감, 순우리말 철학 통해 극복할 수 있어”
“다른 나라말 철학을 배울 수 있지만 우리 삶과 편차 존재”
“스스로 철학 않으면 철학 공부해도 주체성 찾을 수 없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글 철학자 박정진 인류학 박사가 ‘순우리말 철학’과 ‘스스로 철학하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결국 철학의 주체가 내가 되지 않으면 그 철학은 깊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4.07.26.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최근 40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니체는 모두 독일의 철학자다. 그들이 기록한 저서들도 독일어로 쓰였다. 언어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얼’이 담겨 있다. 얼은 정신의 줏대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한글 철학자인 박정진 박사는 “다른 나라말로 쓰인 철학을 배울 수는 있지만 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철학은 자신의 삶에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는 과정으로 남의 철학은 아무래도 우리의 삶과 편차가 있기 때문에 철학의 효용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박정진 박사는 “남의 철학은 공부하면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할 수는 없다”며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우리말이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한글 철학’은 우리 문화가 한 발 더 내딛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인류학박사인 박정진 박사는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한양대 의과대학 의예과를 수료하고, 같은 대학 국문과로 옮겨 졸업한 뒤, 영남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언론인, 문화인류학자, 문필가, 시인으로서 120여권의 저서와 1천여편의 시를 썼고 세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평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박정진 박사는 훈민정음 창제 580년 만에 등장한 순우리말 철학인 ‘한글로 철학하기’의 저자이다.
박정진 박사는 “한글 철학은 동아시아의 천지인 사상과 음양오행 사상이 어우러진 순우리말 철학”이며 “훈민정음 28자와 같은 28 철학소를 통해 모든 사상을 아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진 박사의 순우리말 철학 저서 ‘한글로 철학하기’ 표지. ⓒ천지일보 2024.07.26.
아래는 박정진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큰 줄거리와 특징을 파악하고 나니까 둘 사이에서 우리 한글 철학을 쓸 여지랄까, 힘과 자신감이 생겼다. 한글 철학을 하고 싶다고 한글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동서철학의 주요 개념을 파악하고 난 후 우리말에서 그에 준하는 혹은 그와 유사한 개념이 있는지 찾게 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말 속에 숨어있는 철학소(철학적 키워드)를 발견했다. 즉 한글 철학은 철학적 소양과 한글에 대한 관심의 합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서양철학이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벗어나서 자국의 언어, 즉 독어, 영어, 프랑스어로 철학을 하면서 성립됐다는 것을 알게 된 점도 크게 영향을 줬다.
칸트도 박사학위 논문을 라틴어로 썼지만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해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독일어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를 모르면 철학을 못 하는 것처럼 돼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철학의 관념론, 경험론, 합리론이라는 것도 사실 독일, 영국, 프랑스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풍토와 기질에 맞는 철학이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은 마치 철학을 하려면 이상의 세 가지 방법론으로 해야 하는 것처럼 돼버렸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자로 철학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유학과 성리학, 그리고 노장철학은 모두 한자로 된 철학이다. 한글로 철학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동안 한민족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훈민정음의 창제는 무엇보다도 ‘애민(愛民) 정신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자신들이 한문 세계, 사서삼경과 성리학의 전문가들이었으니까 훈민정음 창제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몰랐을 것 같다. 당시는 특히 성리학-사대주의의 시대였으니까 한문으로도 선진문물을 구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오늘의 언어학적, 문자학적 입장에서 보면 획기적인 문화 사건이다. 남녀노소,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는 표음문자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 덕에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한글을 자신의 문자로 채택하는 국가도 있다.
한글은 발음기호 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은 거의 없는 지경이며 자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한글은 미래 문자, 혹은 인터넷 시대의 문자라고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등 한글 예찬론자들이 많다.
세종대왕은 또한 과학적 보편성으로 세계를 바라본 ‘신왕(神王)’에게 가까운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물론이고, 농업과 산업 등 생활 전반에서 문화를 확대재생산하고 더욱이 과학적으로 문화를 운영하는 데에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세종대왕이 없는 한국, 한민족은 생각할 수 없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글 철학자 박정진 인류학 박사가 ‘순우리말 철학’과 ‘스스로 철학하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결국 철학의 주체가 내가 되지 않으면 그 철학은 깊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4.07.26.
― “철학은 자기 땅에서 자기 말로 써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한글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이며, 다른 언어로 철학을 표현하는 것과의 차이점에 대해.
그동안 한민족은 한자문화권의 일원으로 한자로 된 철학, 요컨대 유교 철학, 성리학, 노장철학, 불교철학에 힘입어 살아왔고, 근대에 들어서는 라틴어 계통의 구미 철학에 의존해서 철학을 해왔다. 나는 이를 ‘번역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의 동양철학, 서양철학은 철학적 내용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일반백성(국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언어로 구성된 철학이기 때문에 철학적 의미와 내용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확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절실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자신이 일상어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철학은 필연적으로 철학의 깊이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필요성도 절실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현실에 딱 맞아떨어지는 철학이 아니니까.
철학은 자신의 삶에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는 과정인데 남의 철학은 아무래도 우리의 삶과 편차가 있기 때문에 철학의 효용성이 줄어든다. 남의 철학은 공부하면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할 수는 없다.
철학의 주체성은 스스로 철학 할 수 있는 힘의 주체성이다. 스스로 철학하지 않으면 아무리 동서철학의 고전들을 섭렵하면서 철학 공부를 했다고 해도 주체성을 찾을 수 없다. 철학 공부와 철학하기는 다른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양자 사이를 혼동해 왔다. 요컨대 칸트 철학이나 니체 철학을 많이 공부를 하고 그것에 정통하면 저절로 우리 철학이 되는 줄 착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철학 교수들이 많다. 말하자면 그러한 철학 교수들은 ‘오늘날의 집현전 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 엘리트들에게는 국민들이 안중에 없다. 지식을 개인적 명예나 권력을 얻는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족속들이다.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것과 같다. 남의 장단에 춤을 출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장단을 잃어버리면 문화적 독립 약속을 지킬 수 없다.
― 한글이 인류의 근본적인 소리를 표현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와 구체적인 사례는.
이것은 훈민정음이 인간의 발성 구조를 토대로 만들어진 문자라는 데에 주안점이 있다. 그리고 한글의 제자원리는 천지인·원방각 사상을 내재하고 있다. 한글은 또한 이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닿소리의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와 홀소리의 ‘아래아(·)’ ‘ㅣ’ ‘ㅡ’는 가장 간단한 기호(훈민정음 당시 28자)로서 문자를 만들고 있다. 또한 후음인 ‘ㅇ’은 마치 아라비아 숫자의 ‘0’과 같은 역할(숫자자리)을 한다. 마치 닿소리 자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ㅏ’를 ‘아’로 발음하고 있다. 닿소리와 홀소리의 조합은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가 없다. 자연의 소리와 동물과 새들의 소리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또한 세계 문자에서 홀소리를 별도로 독립시킨 문자는 한글뿐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문자의 혁명이다. 홀소리를 중심으로 초성과 종성에 닿소리를 조합시킴으로써 단어를 완성한다. 어떤 언어학자에 따르면 영어와 한글은 같은 어근(語根)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같은 어근의 단어가 3천자에 이른다고 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글 철학자 박정진 인류학 박사가 ‘순우리말 철학’과 ‘스스로 철학하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결국 철학의 주체가 내가 되지 않으면 그 철학은 깊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4.07.26.
― 박사가 주장하는 순우리말 철학, 특히 ‘알-나-스스로-하나’ 철학에 대해, 이 철학이 현대 철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은 바로 생명을 말한다. 인간은 물론 모체에서 나올 때 알이 아니지만 태아로 있을 때는 양수 속에 있다. 그것을 알이라고 한다면 모든 생명의 상징으로 ‘알’이라는 단어가 보편성을 갖게 된다.
결국 모체에서 태어난 인간은 태어나서 ‘나’가 되는 것. ‘나다(태어나다, 자라나다, 생겨나다)’라는 동사가 명사가 된 것이 바로 ‘나’이다. 그래서 ‘알-나’가 성립된다.
그 다음 태어난 나는 반드시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은 젖먹이에게도 해당한다. 아무리 젖을 주어도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는 점에서 삶은 엄밀하게 말하면 스스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것’이 삶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사물을 대상화하는 동시에 대상에게 어떤 목적을 부여(의미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 부여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순우리말로 <알-나-스스로-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종착역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한국인은 죽음을 ‘돌아갔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그래서 <알-나-스스로-하나>는 <알(알다)-나(나다)-스스로(살다)-하나(하나 되다)>로 동사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앎이라는 것이 생명을 앎에 이르러야 하는 철학적 순환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앎은 앎의 궁극에 도달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 속에는 생성·변화하는 자연에 순응하는 철학적 태도가 숨어 있다.
현대의 철학은 사물(사물 존재)에 대한 ‘인식’(인식론)에서 이제 삶을 중시하는 존재론(사건 존재)의 특징을 보인다. 인식론이 본질(essence)에 치중하는 철학이라면 존재론은 실존(existence)에 치중하고 있다.
말하자면 <앎의 철학>에서 <삶의 철학>으로 중심 이동을 한 셈이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Being(존재)’의 철학에서 ‘becoming(생성)’의 철학으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존재’라는 말이 이중적으로 쓰여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서양철학은 자연의 ‘생성’을 ‘존재’로 표현하는 철학(현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철학은 ‘존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심지어 존재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성공적으로 읽으려면 문맥에 따라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잘못 읽으면 현상학으로 돌아가게 된다. 오늘날 서양철학의 존재론에는 ‘존재’라는 말에 암묵적으로 생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철학적으로 접근할 때 한글의 어떤 특징이 도움이 되는지.
우리는 흔히 어떤 규정을 할 때 육하원칙을 사용한다. 아시다시피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가 그것이다. 철학에서, 특히 근대철학에서 ‘나(I)’는 매우 중요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도 ‘나’는 중요한다. ‘나’와 ‘누구’와 ‘이다’의 조합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
우리말의 <알(물질)-얼(정신)-올(시간)-울(공간)-을(대상 목적)-일(삶)>은 여기에 대응한다. 한국인은 생명을 상징하는 ‘알’의 변용으로써 육하원칙을 만들어낸 민족이다. 인간은 ‘일(노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말에서 철학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저는 한글 철학에서 28개의 철학소를 찾아냈다. 훈민정음이 28자모로 구성돼 있는데 신비스럽게도 한글 철학을 구성하고 보니 28철학소(素)였다.
한글의 철학소들은 모두 음양오행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각 철학소들은 상대적이면서도 이중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 ‘나’가 없는 ‘너’는 있을 수가 없다. ‘나’와 ‘남’도 마찬가지다.
― ‘나’ ‘너’ ‘남’ ‘님’ ’놈’ 등의 한글 키워드를 통해 한국 철학이 세계 철학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철학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 혹은 ‘철학적 말놀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 아닌 존재가 ‘남’이고, ‘나’를 스스로 대상으로 하면 ‘너’가 되고, ‘님’은 높은 존재를 나타내고 ‘놈’은 낮은 존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런 구조는 나를 중심으로 ‘안팎, 상하’ 관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음양오행적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형성도 ‘하나+님’으로 보면 하늘과 같은 높은 존재를 드러내는 우리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사용되기 전부터 한민족은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 한울님’등으로 최고신의 존재를 표현해 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도리어 ‘여호와’에 해당하는 존재를 우리말에서 찾은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하나님의 주인은 한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알-얼-올-울-을-일’도 ‘알’을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할 수 있다. ‘마음-몸-말-마당-마을’도 ‘마’를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할 수 있다.
박정진 박사의 순우리말 철학 저서 ‘한글로 철학하기’ 표지. ⓒ천지일보 2024.07.26.
― 한글이 ‘천지인 세계관’과 ‘우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이 한국 문화와 철학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천지인 세계관은 한민족의 고대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앞서 말한 ‘울(우리, 울타리)’의 개념으로 어떤 장소에 함께 있는 존재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모임도 ‘우리’가 될 수 있지만 사해동포, 인류, 나아가서 만물을 ‘우리’라고 할 수 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우리’가 되는 셈이다.
‘우리’라는 개념은 확정성이 높은 순우리말이다. ‘우리나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나+라)’의 복합어이다. 나의 복수가 ‘나라’이다.
결국 ‘나’가 확장된 것이 ‘나라’이고 ‘나라’에 ‘우리’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이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한민족은 ‘한국’을 ‘우리나라(한 울타리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나 목표는.
지금 한국은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6.25전쟁의 참혹한 역사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됐다.
다만 경제적 부와 물질적 풍요는 선진국의 요건이긴 하지만 결정적 요건은 아니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자신의 풍토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철학과 자생종교가 필수적이다. 이 둘은 문화적으로 스스로 독립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 외래문물을 수입하는 것은 문화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좋은 일이긴 하지만 토착화라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일종의 기술 모방이나 번역문학, 번역 문화로는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는 말. 왜냐하면 오리지널(original)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바로 그 오리지널을 가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본인의 저서 ‘한글로 철학하기’는 바로 그러한 과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한글 철학 보급에 여생을 바쳐야겠다 마음 먹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한글 철학은 미래세대에 민족적 자신감, 국가적 자긍심을 가지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글 철학자 박정진 인류학 박사가 ‘순우리말 철학’과 ‘스스로 철학하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결국 철학의 주체가 내가 되지 않으면 그 철학은 깊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4.07.26.
― 철학에 관심이 없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글은 영어와 함께 고대의 인류가 사용한 언어의 어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한글 철학의 성립 혹은 정립은 인류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BTS의 인기도 한글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다. 세계적인 한글 배우기 붐도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돼가는 징조다.
여기에 ‘발음기호 문자’라는 한글의 특성이 크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문자가 없거나 어려운 지역에서는 한글을 자국의 문자로 채택하는 나라가 늘어날 것이다. 한글 철학은 한국을 세계 중심 국가로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세계가 ‘하나의 울타리에 사는 운명공동체’임을 한글은 잘 말해주고 있다. 지구는 ‘우리지구’가 된다. 우리 민족에게는 예부터 마고(麻姑) 사상이 전해오고 있다. 마고라는 모계사회의 여신 사상이 한국의 산천에 흩어져 있다.
‘삼신할머니’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한글에 깔린 ‘홀소리(母音) 중심’ 사상, 그리고 한국의 여성·모성 중심사상은 인류를 평화로 이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상으로서 고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사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