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줄 상
정경희
지난 해 연말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살림살이 정리를 하였다. 내 인생의 마지막 집일 텐데 전자제품이나 가구들은 좀 괜찮은 것으로 바꾸고 평소 쌓아 두기만 했던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버리자. 이제 나이도 있는데 욕심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겠다. 20년 이상 살면서 버릴 줄 모르고 들이기만 했던 묵은 짐들을 들쑤셔가며 버리고 또 버렸다. 집이기에 망정이지 풍선이라면 벌써 터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며, 가슴이 시원해졌다.
이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어 여유로운 마음으로 창고 문을 여니 먼지 쌓인 종이상자 하나 눈에 띈다. 무엇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조심스레 들추는데 아, 맞다. 친정엄마의 장롱 한 쪽에 있던 내 어릴 때 받은 상장과 앨범이었다. 나도 참 진정 나의 보물 상자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었다.
인쇄된 상장용지에 이름만 손 글씨로 쓴 것과 잔뜩 멋을 부린 손 글씨만으로 된 상장도 있다. 종이크기도 각각 달라 반쪽짜리 얇은 종이도 있다. 요즘처럼 규격화된 출력물만 보는 눈으로 반백년이 더 지난 옛 상장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지금에야 추억을 불러오는 단순한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상을 받았던 그때는 언제나 좋았다.
유달리 누렇게 빛바랜 상장 하나 집어 들었다 그 종이는 바스라 질 듯 한데 생각은 어제인 냥 선명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우등상을 받았고, 엄마는 맞춘 액자에 상장을 넣어 내 작은 방 벽에 걸어 주었다. 잘 했다는 말은 없었지만 읍내 중심가까지 한참 걸어가 액자 사 온 것을 보면 좋아했을 것이다. 상장이 든 액자는 거의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고, 집안 어른과 이웃들은 언제나 나를 칭찬하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하였다. 상장과 칭찬덕분인지 나는 학교생활이 무척 즐거워졌다.
그래서일까?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6년 개근과 3년 개근상을 모두 받았다. 개근상은 성년이 되어서까지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상을 받으면 그냥 좋았고, 어깨 맨 가방안의 책과 공책이 흔들리도록 깨금발을 뛰면서 집으로 왔다. 깨금발을 뛰면 순간이지만 몸은 하늘을 날고, 어깨는 쫙 펴지며 기분은 최고가 된다.
가끔은 온전히 내가 정말 잘해서 상 받은 것처럼 우쭐대기도 했는데 그 때는 왜 그걸 몰랐다. 티 나지 않게 나를 챙겨준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 아침잠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이불 둘둘 말아 겨울잠 자는 곰 마냥 엉덩이 쳐들고 엎드려 있으면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리곤 하였다. 연필깎이가 있던 때도 아니고, 칼질에 서툰 딸 위해 젊은 엄마는 햇살비친 마루 끝에서 매일 연필 깎고 필통을 챙겨주었다. 손에 잡은 옛 상장을 보고 있는데 귓전에는 ‘사각사각’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듯하다. 문틈 사이로 보이던 엄마의 뒷모습과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는 엄마가 딸에게 주는 아름다운 사랑의 상이었던 것이다.
요즘 학교는 성적우수보다 특기적성에 따라 분야별로 상을 많이 주기도 하고 전체 졸업생에게 모두 상 주는 곳도 있다. 여러 사람들 중 특별히 잘 하니까 상을 주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진학에 필요하니까, 직장인은 인사고과에 반영되면 조금이라도 혜택이 있을까 싶어 상을 받으려 애 쓴다. 우연히 자동차 타고 시골길 지나다보면 ‘김 아무개 무슨 상 수상을 축하 합니다’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물론 큰 상이고, 자랑스러우니 지인들이 축하해 주는 것이지만 지역 사회에다 더 많이 이름 알리고, 앞으로 무언가 한자리 하고 싶은 이의 욕심이 보이기도 한다.
상장 종이 한 장 펄럭이며 들고 와 엄마에게 내밀면, 무던한 엄마가 빙그레 웃으면 그것이 끝이었던 그 때와는 너무 다르다. 개근상도 그렇다. 성적 우수상이야 자랑하면 미운 털이 박힐 것이다. 개근상은 ‘근면 성실’하게 살아온 증표니까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때면 12년 개근상 받은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참 열심히 학교 잘 다녔네. 12년 개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라는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완전 달랐다.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란다. 얼마나 자유분방한 세상인데 고지식한 꽁생원 취급 받는다고 말이다.
상의 사전적 해석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제는 상 받을 일도 없고, 어느 기관의 장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을 줄 수도 없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보겠다는 모험심은 옅어지고, 지난날을 아름답게 포장해 떠올리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는 초로의 백수에게 업적이나 잘한 행위가 있을 리 없다. 그 옛날 한 장의 상장보다 근처 마트의 행운권 당첨이 더 신날 수 있겠다싶기도 하다.
현재 나로서 타인에게 상장 줄 입장은 아니다. 다만 인연되는 이들과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면 그것으로 흡족하겠다. 형식을 갖춘 상이 아니라도 칭찬해주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아 준 어른들 덕분에 어린 나는 칭찬받은 고래처럼 즐겁게 춤추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이는 종이 한 장의 증만을 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 누가 상 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도 꽤 멋질 것 같다. 추억이야 눈물 날 듯 아름답지만 현재의 삶이 어디 그런가? 눈물 날 듯 힘들어질 때 가끔은 나에게 상을 주고 칭찬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어른으로 익어 가고 싶다.
지난 연말 나는 나에게 새 아파트를 선물했다. 신혼의 젊은이들도 넓은 집에 사는데 지금에서야 겨우 100㎡대에 진입했으니 사치라 할 수 없다. 40여 년의 직장생활 마감으로 겨우 장만한 집이니 당연히 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큰 소리 치고 싶다. 그동안 정신적 충족을 추구하며 무슨 도인이라도 되겠다는 듯이 세상 내려다보는 여유를 부렸는데 역시 나도 물질만능시대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이다. 종이 상장 펄럭이며 엄마 찾던 그 기쁨보다는 못하지만 내가 나에게 상으로 받은 새 집과 소리 없이 돌아가는 가전가구에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만끽(滿喫)하고 산다.
나를 있게 하고, 돌아볼 추억 만들어준 낡은 상장은 깨끗한 상자에 고이 모셔두고 오늘도 열심히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마음의 먼지까지 스스로 쓸고 닦으며 내가 나에게 상 줄 기회를 찾는다.
(20240523)
첫댓글 수정하여 두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척척 알아서 하니 대단하십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