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 최명순
‘첫아이’는 결혼을 하여 처음으로 낳은 아이를 일컫는다. ‘첫아이’와 ‘맏이’는 다르다. 첫째 아이를 일컫는 순 우리말에는 '큰아이', '첫째'가 있다. ‘첫아이’는 집단 중에서 가장 연장자를 이르기도 하며 때론 막내의 반대말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첫아이’일지라도 외동의 경우에는 대부분 ‘첫아이’나 ‘맏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맏이’는 보통 장남, 장녀를 뜻하기는 하지만, ‘장남’이나 ‘장녀’라는 단어는 남자 중에서만, 여자 중에서만 지칭하기 때문에 장남이나 장녀라도 반드시 ‘첫아이’인 것은 아니다. ‘첫아이’는 ‘장남’이나 ‘장녀’처럼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특성을 그대로 갖기보다는 성별을 따지지 않고 순서에 따른 둘째, 셋째 등으로서의 특성, 혹은 '막내'와 같은 특성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장남과 장녀가 모두 있는 집안이라면 한 명은 맏이이다. 우리 형제 중 장남이자 맏이 이야기를 ‘첫아이’의 소재로 삼고자 한다. 부모의 생각이나 교육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맏이’에게는 바쁜 부모가 챙겨주는 대신 동생들을 잘 돌보라고 시킨다든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맏이’가 부모에게 먹을 것을 더 많이 받더라도 동생들에게 넓은 아량을 베풀어 일정 부분을 같이 나눠먹고 양보를 시키는 교육방법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첫아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체격이 왜소하다는 생각이다. 나름대로 그 이유를 유추해보았다. 백여 호가 넘었던 고향마을의 첫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세심하게 떠올려 본다. 수 백 명이 넘는 맏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만의 생물학적 근거를 발견할 수있었다. ‘첫아이’가 체격이 작은 것은 먹을 것을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동생들 때문에 배를 곯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쪼그라들었다고 생색을 내거나 이제 나를 섬기라는 맏이들의 희생적 역할에 대한 일방적 주장이 아닐까도 싶다. 우리 집안에서 맏이인 형이 연락을 끊고 살면서 ‘지차 맏이’의 애환 어린 삶이 나에게 주어 졌다. ‘지차 맏이’란 둘째이지만 맏이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맏이 왜소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형보다 나는 키가 한 뼘은 더 크다. 그러나 동생들 때문에 못 먹어서 체격이 왜소해 졌다는 맏이들의 주장에 나는 절대 동의 할 수가 없다. SCI에 기고를 해서라도 ‘첫아이’ ‘첫 새끼’ ‘왜소 이론‘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이론으로 평가 받고 싶은 심정이다.
신념으로 굳어진 나의 ‘첫아이, 첫 새끼 왜소론’은 조혼 등으로 미성년인 부모가 낳은 아이나 성장 발육이 덜 된 동물들의 새끼가 둘째나 셋째 보다 현저하게 작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열여덟에 시집을 왔다. 야곱은 동생이지만 에서보다 작은 체격으로 눈이 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 그러나 성경에서 에서가 ‘첫아이’인지 누나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둘째이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맏이 역할을 한 세월 속에 설움도 억울함도 참으로 많았다. 부모에게서 자식이 금은단지 같은 것은 시대를 떠나서 마찬가지이다. ‘첫아이’에 대한 애증어린 삶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속담도 있다. "애가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첫 번째 자식 때는 싹싹 닦고 소독까지 해서 주고, 둘째 자식 때는 혀로 핥아 닦아주고, 셋째 자식 때는 집 개 물어 닦아준다."는 말이 있다. 기울인 정성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속설 가운데 맏이는 대체로 '반듯하게' 크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말이 있다.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수없이 되뇌어 본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넘기고 양보의 미덕만 주창하는 우리 집 맏이와 형수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집안 대소사 주관은 물론 부모님 병 수발 등은 응당 교육 혜택을 많이 받은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그 역할에 대해 후회해 보지는 않았다. 맏이인 형은 부끄러움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최근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형은 작은 키에 몹시 민감했다. 그러한 성격이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집안 대소사에 발걸음을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부른 히틀러는 이미지 메이킹의 대가였다고 한다. 독단적 이미지의 대명사인 히틀러에게도 작은 키와 왜소한 체구는 콤플렉스였다. 그는 키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진은 늘 상반신만 찍었다고 한다. 엊그제 뉴스에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대담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콤플렉스를 노출했다고 전한다. "이미지에 민감한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하이힐'을 신고 '아킬레스 건'을 노출했다." 지금도 형은 내 옆에 서기를 꺼려한다. 혹시라도 옆에 설 때면 어김없이 까치발을 든다.
세계를 지배하는 인물들에게도 콤플렉스가 있거늘 보통사람들에게는 오죽하랴 싶다. 늦었지만 형을 이해한다. 지금은 시골에서 텃밭을 함께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 작은 키로 인하여 한평생 겪었을 고달픈 삶을 이제야 이해하는 못난 동생이 용서를 빌고 싶다. 형님 오래도록 ‘황혼연가“를 함께 부릅시다. 이제 까치발은 내려놓고 못 다한 우애를 나누어 보십시다.
힘들게 걸어 온 길
이제 혼자서 그만 걸어가오.
손잡고 우리 함께 걸어가오.
고생한 형님 미안하고 고맙소.
손잡고 걸으면서 모질고
긴 세월 잊으며 살아갑시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