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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비행기에서 어느 미국인과 하나님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어요. 하지만 그 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어떤 에너지라고 믿습니다.” 그 미국인의 주장이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강력한 에너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저서 ‘요한복음 강해’에서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반감은 지나치게 강조되는 인격성(personality)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다른 저서 ‘노자와 21세기’에서 신은 비인격체이며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관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비인격적인 물질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인격체와 비인격체의 차이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인격체는 자기 의지와 자기 결정력을 가지고 있다. 이성적인 생각과 사랑을 할 수 있으며, 감정이 있기에 기쁨과 슬픔,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자기감정을 상대방과 나눌 수 있다.
비인격체는 완전히 다르다. 인격이 없는 짐승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며 본능으로 산다. 동물은 자의식이 없다. 동물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사는가’ 고민하거나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것을 봤는가. 동물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내가, 참된 나인가 아닌가를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인격이 있는 인간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동물보다 더 못한 비인격체가 있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이 없고, 의사소통이 없으며, 아름다움과 선함을 인식할 수 없는 물질이다. 먼지 흙 바위 에너지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 등이 다 비인격체다. 우주의 텅 빈 공간 95% 이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고 한다. 이런 물질에는 자의식이 없고, 도덕성이 없으며, 자유의지가 없고 감정도 없다. 바로 이런 것이 비인격체 물질이다.
만일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이런 물질이나 에너지라면 그 신은 피도 눈물도 인정도 사랑도 희망도 결여된, 무인격적인 돌덩어리나 다름없다. 그런 비인격의 신이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평소 누군가가 자신을 잘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믿어주며 사랑해 주기를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속마음을 알아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만일 하나님이 그저 ‘슈퍼파워 에너지’라면 이런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없다.
하나님이 인격체이기에 그분과 사랑의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아껴 주듯이, 자녀가 부모에게 안기고 의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런 사랑의 관계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이 차가운 돌덩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격체이심에 감사하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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