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성 성당(구 구포동 성당)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공베르 신부의 열정이 서려있는 안성포도의 고향
도로주소: 경기도안성시 혜산로 33
경기도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현 수원교구 소속. 경기도 안성시 구포동 80-1 소재. 1900년 10월 19일, 충청도의 공세리 본당(貢稅里本堂)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착한 의견의 모친. 관할 구역은 안성시 동쪽 지역과 보개면 · 서운면 · 금광면 일부.
공소 시대 안성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이미 박해 시대로,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전후해서는 이웃의 죽산(竹山)과 안성군 소촌만면(所村萬面, 현 대덕면)의 모산리와 명당리, 서리면(西里面, 현 안성시)의 계촌 등지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몇몇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러나 이들 공동체는 박해로 와해되어 버렸고, 훗날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이 모여 새로 교우촌을 이루게 되었다.
기록에서 이들 교우촌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883년으로, 당시 충청도와 경기도 남부 지역을 담당하던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가 그 해 안성 지역을 방문하고 ‘바울 공소’(현 안성시 미양면 馬山里의 岩洞)를 설립하였다. 두세 신부는 이때 죽산과 직산(稷山) 등지에도 공소를 설립하였고, 다음해에는 ‘궁말 공소’(현 충남 천안시 성환읍 安宮里)를, 1887년에는 ‘선바위 공소’(현 안성시 금광면 梧山里의 立岩)를 설립하였다.
이후 안성 지역은 수원 갓등이(현 왕림) 본당에 있던 앙드레(Andre, 安學吉) 신부, 충청도 간양골 본당(현 충남 예산군 예산읍 間良里)의 파스키에(Pasquier, 朱若瑟) 신부가 차례로, 혹은 지역별로 사목을 맡게 되면서 공소가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1895년 공세리 본당이 설립된 뒤에는 그 초대 주임인 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천안 · 직산 · 진천 등과 함께 안성 지역의 공소들을 순방하였으며, 1896년 경기도 미리내 본당이 설립된 뒤에는 이곳의 강도영(姜道永, 마르코) 신부가 안성 북쪽 일부 지역을 맡아보았다.
또 1900년 1월에는 제8대 조선교구장인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이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당시 안성 일대의 신자수는 7~8개 공소에 모두 350명 가량이었다.
구포동 본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하면서 2000년 1월 1일 본당 명칭을 안성 본당으로 변경하여 옛 이름을 되찾았다. ‘100년에서 다시 태어나는 100년’을 주제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가진 안성 본당은 2000년 10월 3일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식 및 기념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