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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면초가 비류신은 샛별 같은 눈에서 극히 예민한 광채를 쏟아내면서 음산한 실내를 응시했다. 빗물이 철썩철썩 떨어지는 소리 외에 실내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흐를 뿐. 별안간 한 가지 무서운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는 깜짝 놀라 전신을 부르르 떨며 재빨리 실내로 뛰어 들어갔다.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워 손을 뻗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비류신의 안력은 이미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해져서 실내의 정경을 훤히 볼 수 있었다.날카로운 눈길로 응시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샘물처럼 솟았다. 소대호는 여전히 포단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은빛 수염과 백발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굳게 다물고 있는 입가에는 두 줄기의 핏자국이 나 있었다. 분명히 그가 죽은 지가 오래된 것이다. 비류신은 놀람과 슬픔으로 너무 복받쳐 아예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그는 소대호의 시체 앞에 털썩 꿇어앉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하제일의 고수였던 노인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의 이런 말없는 흐느낌은 큰소리로 통곡하는 것보다 더욱 애달팠다. 소대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하루밖에 안되었었지만 비류신은 그에게 비할 데 없는 두터운 은혜를 받았다. 우르릉 쿵… …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나자 비는 더욱 거세게 퍼부었다. 뚫어진 천정으로 빗물이 떨어져 내려 하늘도 절세 기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몹시 처량하게 들렸다. 비류신은 땅에 꿇어 앉아 묵도를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엎드려 큰 절을 아홉 번 했다. 마침내 그는 비통한 심정을 안은 채 서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차례 뇌성이 지나간 후 빗줄기는 차츰 가늘어졌다. 비류신은 슬픔과 고독감에 젖어 정원에 우뚝 서서 땅바닥에 깔려 있는 백골들을 둘러보았다. 비류신은 가슴 속에서 복받치는 온갖 슬픈 감정을 한숨으로 불어냈다. 그가 몸을 조금 움직이자 그의 몸은 어느새 담장 위로 올라서 있었다. 비로소 자기의 경공이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심후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가 소대호로부터 수십 년의 공력을 전수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늘에 끼인 먹구름이 여전히 흩어지지 않아서 대지는 먹장같이 어두웠다. 그러나 비류신의 형형한 눈빛은 칠 장 밖에 있는 풍경들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는 이때 앞 쪽에서 많은 인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그는 칼날 같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그의 형형한 눈빛 속에는 한 줄기 싸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이때 소대호가 정중히 부탁하던 말이 뇌리를 스치자 그는 가슴이 섬뜩해졌다. ‘나는 아직 공력이 크게 증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몸에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으니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나를 기다리는 것이겠지.’ 비류신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담 밑으로 소리 없이 뛰어내려 곧장 왼쪽으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바로 이때였다.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버드나무 위에서 한 줄기의 인영이 쏜살같이 날아 내려와 비류신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저쪽 편에 있던 사람들도 비류신을 발견한 듯 신속하게 비류신을 둘러싸고 달려오면서 무기를 꺼냈다. 비류신은 싸늘한 눈길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어젯밤에 만났던 그 건장한 노인을 위시하여 검은 경장(勁裝)을 한 십이 명의 장한들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늙은이는 비류신을 알아본 후 가슴이 철렁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녀석은 정말 죽지 않았구나!’ 원래 이 건장한 늙은이는 바로 당금 흑도의 거물 마곡인(魔谷人) 마대부(馬大夫)였다. 지신도 소대천에 의하여 지령보에 들어오게 된 그는 전적으로 소대호의 행동을 감시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소대천은 소대호가 많은 무림 기보(奇寶)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외부의 사람이 침입하여 그 보물을 가져갈까봐 두 명의 무서운 고수를 시켜 지키도록 했던 것이었다. 마곡인 마대부는 싸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녀석, 그 늙은 괴물이 혹시 죽은 것이 아니냐?” 비류신은 그를 경멸하는 듯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 비천하고 사악한 무리들아, 너희들은 물을 마시면서도 근원을 생각지 않는 놈들이구나. 왕년의 보주는 그의 동생 소대천의 모략에 빠져 비참하게 되었는데도 너희들은 도적을 상전으로 모시며 추호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니… 흥, 비모(飛某)는 오늘밤 너를 죽이겠다…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휘! 하고 한 줄기의 강맹한 장풍이 마곡인 마대부를 향해 뻗쳐갔다. 마곡인 마대부는 극히 오만한 인물인지라 비류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전혀 경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비류신의 위맹한 장풍이 뻗쳐오자 소스라쳐 놀랐다. 그로서는 너무나도 뜻밖에 당한 일인지라 막아낼 여유가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그는 왼손을 휘두르면서 맹렬히 마주쳐 갔다. 비류신은 이미 소대호가 수십 년 동안 수련한 공력을 전수 받았으므로 그가 뻗쳐낸 일장의 위세는 실로 막대하였다. 두 사람의 장풍이 맞닥뜨리는 순간, 마곡인 마대부의 몸은 퉁겨지듯 솟아오르더니 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비류신은 그 기세로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쌍장을 번개같이 휘둘러냈다. 순간 산이라도 밀어낼 듯한 두 줄기의 경력이 십이 명의 흑의 대한을 향해 광풍 노도처럼 몰려갔다. 비류신이 한 번 손을 쓰자 네 명의 흑의 대한이 맨 먼저 위맹한 장풍에 격중되어 입으로 선혈을 토하면서 이 장 밖으로 날아가 숨을 거두었다. 마곡인 마대부는 비록 비류신의 일장을 맞고 땅에 쓰러졌지만, 그는 공력이 극히 심후한 인물인지라 곧 단전(丹田)의 진기를 끌어올려 용솟음치는 기혈을 누르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야앗!” 그는 날벼락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질풍같이 비류신을 향해 덮쳐갔다. 비류신은 손을 펼쳐내는 순간 마대부가 덮쳐 오는 것을 보자 하는 수 없이 몸을 약간 틀어 왼손으로 잽싸게 마대부를 향해 맹공을 가했다. 마곡인 마대부는 두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별안간 한 줄기 강맹한 잠력(潛力)이 뻗쳐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흑도의 고수로써 내공이 심후하고 더욱이 장력(掌力)에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쌍장으로 가슴을 보호함과 동시에 세차게 평행으로 내밀며 뻗쳐 오는 장력을 향해 마주쳐 갔다. 쌍방의 장력이 맞닥뜨리자 펑! 하는 폭음에 이어 광풍 노도 같은 회오리바람이 흙먼지를 말아 올렸다. 두 사람은 각기 한 걸음씩 밀려났다. 이때 옆에 있던 열 명의 경장 대한들이 기회를 틈타 장검을 치켜들고 은빛 검광을 번뜩이면서 일제히 비류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비류신은 무양무음진경의 절묘한 초식을 터득한데다가 또 소대호로부터 많은 기묘한 비기 (秘技)를 전수받은 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때 상대방의 이러한 진식(陣式)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믿는 것이 있어서 두려움이 없었다. 자신의 잔질(殘疾)이 이미 완치되었을 뿐 아니라 공력 또한 극히 강대해졌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흥!” 비류신은 비웃음을 날리고 동시에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는 쌍장을 휘두르면서 기묘하게 두 경장 대한의 검을 쥔 오른팔을 움켜잡고 한 번 끌어당겼다가 힘껏 떨쳐내었다. 다음 순간 두 마디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두 대한은 각기 가슴에 일장을 맞고 오장이 으스러졌고, 입으로 선혈을 내뿜으며 죽고 말았다. 휘! 휘! 두 자루의 장검이 다시 좌우에서 비스듬히 찔러왔다. 비류신은 재빨리 몸을 돌리면서 맹렬히 쌍장을 뻗쳐 지극히 오묘한 수법으로 두 대 의 등줄기를 향해 장력을 쏟았다. 그러자 두 대한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꾸라져 죽었다. 비류신은 살기가 충천했다. 그는 두 사람을 거꾸러뜨린 후 다시 세차게 공중으로 몸을 솟구치면서 두 발로 잽싸게 걷어찼다. 다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길게 여운을 끌었다. 다른 두 대한이 머리가 부서져 피를 사방으로 뿌리면서 나무토막처럼 나뒹굴었다. 비류신은 단숨에 여덟 명의 경장 대한을 죽여 버렸다. 그의 괴이한 신법과 장법에다 그의 다리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더욱이 그의 악랄한 살인수법은 상대방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류신은 그대로 살기가 가시지 않아 그 가짜 잔금섭혼신편을 맹렬히 펼쳐내면서 사납게 웃어 제쳤다. “으핫하하하하… …” 잇달아 처참한 울부짖음 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는 가운데 네 사람 역시 차례로 쓰러져 뒹굴었다. 비류신은 네 사람을 죽인 다음 날카로운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곡인 마대부는 언제 도망쳐 버렸는지 간 곳이 없었다. 비류신은 처참하게 죽어간 십이 명의 시체들을 쓸어보았다. “하하… 핫하하… …” 한차례 사람의 혼을 빼앗을 듯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질풍처럼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구대문파의 신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 만약 지령보의 고수들에게 다시 협공을 받는다면, 나는 무공이 크게 증진되었다 할지라도 두 주먹으로는 도저히 많은 적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일단 잡히는 날이면 천여 명의 창생들이 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신속히 지령보를 빠져나가 우선 자기의 마구간으로 돌아간 후에 계획을 세우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줄곧 지붕을 뛰어넘고 정원을 지나 번개처럼 달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가 한창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양쪽에서 인영이 번뜩이더니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소협, 축하 하네.” 맞은편 우뚝 솟아있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 뒤에서 갑자기 칠십 세가량의 노인이 돌아 나왔다. 흰 눈썹이 눈을 덥고 긴 수염을 가슴께까지 드리운 선풍도골의 노인, 그는 바로 소대호의 형 월광검 소대풍이었다. 비류신은 그를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큰일 났구나! 그가 진정 소대호가 말한 것처럼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을 한 비류신은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던 기세를 멈추고 공손히 읍했다. “선배님, 어젯밤의 지시로 후배가 병을 치료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처량한 음성으로 물었다. “비소협, 노부의 둘째 아우는 지금 어떤가?” 비류신은 그가 소대호의 안부를 묻자 내심 슬픔을 금치 못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그… 그 어르신네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나직이 탄식을 하더니 엄숙한 얼굴에 무한히 애통한 빛을 드러냈다. “노부가 자네에게 그를 구해 달라고 했더니, 뜻밖에도 오히려 그를 며칠 앞당겨 죽게 했군. 아… 모두 노부의 잘못이야, 그리고 그 죄악의 괴수… 잔악하고 음독한 셋째 아우의 죄가 더욱 크다.” 비류신은 안색이 휙 변하더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맺힌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기필코 그분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습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서글프게 한숨을 쉬었다. “비소협, 자네는 누구를 찾아 그의 복수를 하겠단 말인가?” 비류신은 사납게 외쳤다. “그분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모두 몰살시켜 버리겠습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곧 정상을 회복했다. 돌연 비류신은 소대풍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은 제 은인의 형님이시니 그분이 누구에게 참해를 당했는지 아시겠지요?” 월광검 소대풍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얘기를 하자면 길지. 과거의 일은 모두 지나간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은 원한이 언제나 풀릴 것인지… …” 비류신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소대풍에게 몹시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만면에 회한과 비통의 빛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자 속으로 생각했다. ‘소대호는 자기의 형도 음흉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혹시 이 사람은 과거에는 그런 사람이었으나 십팔 년 동안 자기의 과오를 뉘우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지금 내가 소대호의 지난 은원 관계를 알아내자면 이 사람밖에는 없을 것이다.’ 비류신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이제(二弟)는 저에게 태산같이 무거운 은혜와 바다처럼 깊은 정을 베푸셨습니다. 그분의 원한 맺힌 일은 후배의 일이 끝난 후 기필코 명백하게 조사해 내겠습니다. 후배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노 선배님께서 별 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급히 말을 받았다. “비소협, 잠깐만! 내가 자네에게 알려 줄 일이 있네. 그것은 바로 둘째 아우의 일이지. 음… 나는 이미 늙어서 곧 죽을 몸이니 자네와 한 번 헤어지면 다신 만날 날이 없을 거야. 난 줄곧 자네를 기다리면서 지난 시절의 원한 맺힌 일을 자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네. 그래야 자네가 그 일을 조금은 쉽게 풀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노 선배님께서 그 일에 대해 얘기해 주신다면 후배는 더욱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바로 이때. 적막에 쌓인 밤하늘로 돌연 괴상한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누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류신은 안색이 변하면서 황급히 말했다. “노 선배님,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순간, 월광검 소대풍은 귀신처럼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비류신의 오른손 맥문을 세차게 거머쥐려 했다. 이 갑작스런 습격의 수법이 민첩하고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비류신은 깜짝 놀라 발을 약간 물리면서 오른손을 뒤로 뿌리쳐 상대방의 손길을 피했다. 그는 칼날 같은 눈썹을 곤두세우며 그 원인을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월광검 소대풍이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비소협, 자네는 보 안의 길을 모르니까 무턱대고 뛰어나가다간 그들에게 저지당할지도 모르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자네를 만나러 온 것은 바로 둘째 아우의 일을 자네에게 알려주려고 한 것인데… 지금 이곳은 이야기 할 장소가 못 되니 나를 따라오게!” 그의 말소리는 극히 진지하고 추호의 거짓이 없었다. 그리고 또 그는 방금 일격을 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비류신은 하마터면 그를 의심하여 공격할 뻔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노 선배님께서 길을 안내하십시오.” 월광검 소대풍은 몸을 돌이켜 서서히 앞으로 걸어갔다. 비류신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소대풍의 걸음이 얼핏 보기에는 아주 느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극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마치 미풍에 날리는 깃털처럼 가볍게 땅 위에서 몇 치 떨어져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류신은 속으로 그의 경공에 감탄하면서 뒤를 따라 몇 개의 정원을 지나고 누각을 돌아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외따로 서 있는 원실(院室) 문 앞에 이르렀다. 이 원실 주위는 매우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돌계단 위에는 국화와 각양각색의 화초들이 심어져 있어서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월광검 소대풍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원실은 내가 기거하고 있는 곳이라서 보통의 사람들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걸세.” 그는 곧 왼손으로 가볍게 문을 밀고 번개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비류신도 서서히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워 손을 뻗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소대풍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류신은 그가 실내를 촛불로 밝히려 들어갔거니 생각했다. 별안간 비류신의 등 뒤에서 바람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한쪽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비류신은 오른손 맥문을 이미 누구에겐가 잡혀 버렸다. 상대의 동작은 실로 번개와 같이 빨라서 높은 무공을 지닌 비류신으로서도 피하지 못했다. 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채 피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맥문을 잡혀버린 셈이었다. 맥문은 바로 인체의 서른여섯 대혈 중 하나인지라 상대방에게 잡히기만 하면 즉시 반신이 마비되어 항거할 힘을 잃게 된다. “으하하하… …” 등 뒤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그것은 말소리로 바뀌었다. “비소협, 나의 무례를 용서하게. 잔금섭혼신편을 내가 갖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네는 역시 보존하기가 어려울 걸세.” 말이 끝나고 실내는 갑자기 환해졌다. 이 방은 오륙 장 가량이나 넓었으나 아무런 물건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으며, 사방으로 창문이 있었지만 모두 쇠창살로 얽어 놓았다. 벽 위에는 몇 개의 등불이 밝혀져 있는데, 이곳은 바로 용담호혈로써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 아니었다. 비류신은 상대방의 말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월광검 소대풍은 바로 자기 곁에서 다섯 자 거리에 우뚝 서 있었고, 자기의 맥문을 잡고 있는 사람은 얼굴이 창백한 오십 세가량의 늙은이였다. 그 늙은이는 키가 작달막하고 포악스럽게 생겼으며 턱 밑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비류신은 자기가 소대풍의 음모에 당한 것을 알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막 호통을 치려고 하다가 돌연 떠오르는 바가 있어 억지로 삼켰다. ‘나는 이미 상대방에게 맥문을 잡혀 전신의 경력을 잃어 버렸는데, 호통을 쳐서 그를 격노시킨다면 그들은 강제로 뺏으려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꼼짝 못하고 그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 아닌가!’ 그는 마음속의 분노를 누르고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이런 계교를 써서 강제로 물건을 빼앗는다면 자신의 신분이 손상된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월광검 소대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소협, 자네가 순순히 잔금섭혼신편을 내놓는다면 난 절대로 자네의 목숨을 해치지 않겠네.” 비류신은 냉랭히 말했다. “이제 보니 선배님은 잔금섭혼신편을 가지려고 그러시는군요. 채찍은 내 어깨에 걸려 있으니 가져가시오!” 이때 작달막한 늙은이가 음산하게 웃었다. “으흐흐흐… 자네는 우리들 면전에서 바보 행세를 하지 말게. 그채찍이 진편독자가 모방해 만든 가짜라는 것을 누가 모른단 말인가?” 월광검 소대풍이 말을 받았다. “비소협, 현명한 사람의 눈은 속일 수가 없는 법일세. 노부의 둘째 아우는 자네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고 자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을 뿐 아니라, 또 많은 보물을 자네에게 주었을 거야. 그러나 난 잔금섭혼신편과 채찍집만이 필요할 뿐 나머지는 일체 손을 대지 않겠네.” 비류신은 지금의 상황이 자기에게 극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채찍을 넘겨 줄 수는 없었다. 이때, 소대호가 하던 말이 그의 귓전을 스쳤다. ‘이 잔금섭혼신편은 극히 진귀한 보물이라서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은 생명처럼 여기는 법일세. 그 이면에는 채찍보다 더욱 귀중한 한 가지 비밀이 갈무리되어 있지… …’ 비류신은 이러한 소대호의 말이 떠오르자 가슴이 섬뜩해졌다. ‘소대풍은 채찍과 채찍집만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그 비밀이 채찍집에 담겨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연금(軟金)으로 만든 채찍집에는 비밀이 담겨 있을 만한 이상한 데라곤 없던데… …’ 비류신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배님, 잔금섭혼신편은 소 보주께서 나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그분은 제게 목숨을 걸고 보존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나더러 그분과의 약속을 어기란 말씀입니까?” 비류신의 맥문을 잡고 있는 늙은이가 소리 질렀다. “흥! 잔금섭혼신편은 극히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야. 그래서 내가 자네의 눈앞에 닥쳐온 대화(大禍)를 해소시켜 주기 위하여 그것을 취하려는 것이지. 한데 자네는 어찌 그리 속이 좁은가.” 월광검 소대풍도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비소협, 자네는 그것을 알아야 하네. 그 채찍은 극히 처참한 사연과 관련이 있어서 수십 년 동안 강호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적지 않은 마두들도 암암리에 그 채찍의 행방을 조사하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는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걸세… …” 비류신은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내 절대로 이 채찍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끔 하겠습니다.” 월광검 소대풍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하나, 강호 무림 인물들의 이목은 극히 예리하여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네에게 그 채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더구나 시일이 흘러 이 소문이 강호에 널리 퍼지는 날에는 커다란 풍파가 일어날 걸세. 그리고 이 채찍이 나의 둘째 아우의 수중에 있었으므로 장차 마두들이 찾으러 온다면 우리 지령보는 적잖이 골치가 아플 거야. 심지어 살인 방화 등의 참혹한 사건이 일어날 걸세. 비소협, 재삼 고려해 주기 바라네.” 비류신은 소대풍이 자기에게 암수를 쓴 것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 겉으로는 인자하기 그지없는 노인이 교활하고 흉악한 인물이란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비류신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이 채찍이 당신의 손에 들어간다고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비소협, 그 점은 안심하게. 나는 결코 그 채찍이 탐이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닐세. 나는 그 채찍의 소식을 천하 무림에 널리 알려서 그 채찍과 관련이 있는 무림 인물들을 지령보에 모이게 한 다음, 그 채찍의 비밀을 해결하는 방법을 상의하려는 것일세.” 비류신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말은 귀신이나 믿을 것이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절대로 채찍을 물려준 사람의 부탁을 어겨 가면서까지 이 채찍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오.” 작달막한 늙은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는 끝내 잔금섭혼신편을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을 심산이군. 경배(敬杯)를 받지 않고 벌주를 마시겠다니, 그렇다면 하는 수 없이 강제로 빼앗아야겠군!” 말을 하는 사이에 비류신의 맥문을 잡고 있던 왼손에 경력을 가하면서 늙은이의 오른손은 그의 품속을 더듬었다. 비류신은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는 사이 문득 소대호가 자기에게 전수해 준 붕혈폐맥법(崩穴閉脈法)이 떠올라 암암리에 오른팔의 혈맥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이에 작달막한 늙은이가 강제로 채찍을 뺏으려 하는 것을 보자 차갑게 쏘아보며 재빨리 왼손을 뒤집어 상대방의 오른손 맥문을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힘껏 뿌리치면서 늙은이의 가슴팍에 있는 급소에 일장을 가했다. 이 반격은 실로 너무나 갑작스런 것이었다. 작달막한 키의 늙은이는 기지가 비상하지만 비류신이 오른팔의 맥문을 잡힌 채 반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는 전신의 경력이 풀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퍽! 하는 소리를 들었다. “윽!” 그는 신음소리와 함께 왈칵 선혈을 토해내면서 수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비류신의 일장에 가슴팍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이다. 늙은이의 공력은 극히 심후하지만 비류신의 일장에 나가떨어지자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를 본 월광검 소대풍은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러나 곧 살기가 충천하여 귀신처럼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비류신 앞으로 다가들면서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비류신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상반신을 약간 틀어 일장을 피한 다음, 오른쪽 무릎을 힘껏 치켜들어 소대풍의 아랫배 급소인 단전을 쳐올렸다. 이 일초의 공세는 실로 신묘하고 절륜하여 소대풍과 같은 절정의 고수마저 급히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대풍은 물러서자마자 다시 신속하게 덮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비할 데 없이 빠른 동작으로 주먹과 손바닥을 교차시켰고 그 안에서 날카로운 경기가 광풍 폭우처럼 뻗쳐 나왔다. 그는 그 같은 기세로 연달아 십이초를 공격했다. 그러나 비류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쌍장을 춤추듯 휘둘러 현묘하고 정심한 초식을 발휘하여 단숨에 소대풍의 강맹하고 빠른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월광검 소대풍은 그의 괴이한 수법과 웅혼한 경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에게 그러한 경력이 있을 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아우가 수십 년간 수련한 공력을 그에게 전수해 준 모양이구나. 이러한 실력으로 그가 일 년이라도 더 수련한다면 강호무림에서 그를 이길 자를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소대풍은 비류신을 죽여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이때, 비류신은 소대풍이 주춤하는 기회를 틈타 쌍장을 잇달아 떨쳐내면서 몸을 약간 위로 솟구치더니 오른발로 잽싸게 그의 등 뒤 장문혈(章門穴)을 걷어찼다. “흥!” 월광검 소대풍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틀어 극히 이상한 각도에서 비류신의 오른쪽 발목을 향해 일장을 가했다. 그들은 모두 절세의 고수들이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생사를 판가름하는 동작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위세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암암리에 위맹한 경력을 뿜어내고 있어서 누구든지 상대방의 경력에 부딪히기만 하면 중상을 입거나 당장에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실로 위기일발이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비류신은 이미 무양무음진경의 현묘한 초식을 익숙하게 연마했는지라 손을 뻗칠 때마다 상대방이 막아내기 어려운 괴이한 절초를 구사하였다. 비류신은 별안간 오른발을 치켜들면서 몸을 뒤로 날리면서 동시에 왼발을 번개같이 날려 소대풍의 목줄기 급소를 걷어찼다. 이러한 공세는 무림에서는 실로 보기 힘든 괴이한 공세라 소대풍은 손을 거두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때 비류신은 이미 땅에 내려서 있었다. 월광검 소대풍은 비웃는 투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무공은 실로 고강하군. 그러나 오늘밤 이 방에서 살아 나갈 생각은 하지 말게.” “반드시 그렇지도 않을 거요!” 비류신은 찬물 같은 조롱을 퍼붓고 나서 다시 번개같이 쌍장을 휘둘러 날카로운 공격을 가했다. “흥!” 월광검 소대풍은 사납고 독랄한 살수(殺手)를 잇달아 뻗쳐냈다. 비류신은 극히 기묘한 초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역시 소대풍과 같이 수십 년의 공력을 지닌 고수를 당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는 상대방의 마치 산을 무너뜨릴 만한 강맹한 장세에 계속 몸을 비틀거리면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광검 소대풍은 격투를 계속할수록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당금 무림에서 자기의 둘째 동생 소대호를 제외하고는 자기의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이 드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비류신과 같이 젊은 사람이 일시에 일류 고수로 비약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획! 획! 그는 쌍장을 신속히 밀어내는 비할 데 없이 강맹한 경력으로 비류신을 다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어 마치 유령과도 같이 비류신의 곁으로 덮쳐들면서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향해 맹공을 가하고, 오른손으로는 별빛과 같은 강기를 뿜어내며 비류신의 허리를 후려쳤다. 이 일초이식(一招二式)은 측면 공격인 데다가 비할 데 없이 독랄하고 괴이하여 비류신은 빈틈을 찾아 반격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나 소대풍은 이미 비류신이 다른 쪽으로 피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가 왼발로 비류신의 가슴 밑 심장 부분을 힘껏 걷어찼다. 비류신이 그의 발길에 차이기만 한다면 죽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중상은 면치 못할 것이다. 비류신은 다급한 나머지 번개같이 원위치로 되돌아가서 어깨를 이용해 자기의 얼굴을 공격해오는 소대풍의 왼손을 쳐올렸다. “윽!” 비류신은 어깨에 일장을 맞자 어깨뼈가 부서진 듯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 속의 기혈이 뒤집혀 올라 전신을 비틀거리면서 칠팔 보나 물러났다. 월광검 소대풍이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겠는가. 비류신이 몸을 가누고 채 서기도 전에 소대풍은 두 줄기 광풍노도와 같은 장풍을 비류신의 머리를 향해 덮쳐갔다. 비류신은 두 눈에 무서운 광채를 쏘아내면서 노성을 지름과 동시에 공력을 두 손으로 잔뜩 끌어 모아 소대풍의 장세를 향해 맹렬히 떨쳐내었다. 펑! 날벼락 같은 폭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비류신의 몸뚱이는 이 장 밖으로 날아갔으며, 소대풍도 창백한 얼굴이 되어 몸을 비틀거리며 칠팔 보를 물러선 후에야 바로 섰다. 비류신은 가슴 속의 기혈이 용솟음쳐 올랐으나 억지로 공력을 운행하여 상세를 호전시킨 다음, 노한 눈길로 소대풍을 노려보면서 사나운 일격을 기다렸다. 바로 이때-- 비류신의 일격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작달막한 늙은이가 득의에 찬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퉁기듯 몸을 솟구치더니, 왼쪽 벽에 튀어나온 쇠막대기를 힘껏 잡아당겼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월광검 소대풍은 독수리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라 곧장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비류신을 향해 덮쳐 내렸다. 비류신은 그 작달막한 늙은이의 괴상한 웃음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그가 딛고 서 있는 마룻바닥이 한차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다 싶은 그는 세차게 진기를 끌어올려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바로 이때 월광검 소대풍의 날카로운 장력이 이미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 리고 그가 서 있던 마룻바닥은 어느새 검은 함정으로 변하여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류신은 혼비백산, 정신없이 쌍장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소대풍의 일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공중에 떠 있는 비류신은 힘을 쓸 수 없어서 장력이 강하지 못했다. 더구나 위에서 덮쳐 내리는 소대풍의 공력이 극히 심후한데 어찌 막아낼 수 있겠는가.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비류신의 몸은 줄이 끊어진 연처럼 함정에 떨어져 내렸으며 소대풍은 번개같이 왼손을 뻗쳐 비류신의 허리를 힘차게 낚아챘다. 비류신은 소대풍이 위에서 내리치는 일장에 별로 심한 내상(內傷)은 입지 않았다. 그는 소대풍이 자기의 허리를 향해 손을 뻗치는 것을 보자 신속히 낙지천근추(落地千斤墜)의 신법을 펼쳐 더욱 속도를 빠르게 하여 함정 속으로 떨어졌다. 싹! 하는 소리와 함께 비류신의 어깨에 걸려 있던 가짜 잔금섭혼신편이 소대풍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다음 순간, 비류신이 떨어져 내린 함정의 구멍은 신속하게 닫혔다. 비류신은 다시 천근추 신법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삼사 장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떨어져 내리는 순간에도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함정 속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뼈를 찌르는 듯한 추위만이 엄습할 뿐이었다. 비류신은 이 함정이 얼마나 깊으며 또 함정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리에 모았던 진기를 급히 위로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두 발은 솜처럼 가볍게 땅바닥에 닿았다. 바로 이 전광석화와도 같은 찰나에 비류신 곁에선 돌연 냉랭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한 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번개같이 덮쳐들었다. 그는 이 함정에서 자기를 공격할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소스라쳐 놀라며 잽싸게 오른 손을 밀어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비류신의 맥문을 잡지 않고 바로 번개같이 비류신의 가슴으로 손바닥을 뻗쳐왔다. 비류신은 가슴에 일장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오른손도 동시에 상대방의 가슴에 닿았다. 순간, 그의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두 마디의 신음소리에 이어 붙어 있던 두 사람은 즉시 떨어졌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