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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1 /이사야 59: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기도응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분입니다. 죠지 뮬러는 일생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분은 한 번도 못 받았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많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도가 응답된 사례들이 성경에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일생 한 번도 기도응답을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저는 제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제가 혹시 인간적인 생각으로 잘 못 응답 받은 것은 아닌지 몇 달을 확인하는 기도를 했는데, 주님께서 몇 가지 음성으로 다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꿈속에서 성경 말씀으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호 6:3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새벽 빛으로 표현했습니다. 날마다 단 하루도 어김없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신실하신 분입니다. 언제나 새벽이 되면 날이 밝기 시작합니다. 천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그리고 작년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지구가 종말을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일정하게 변함없이 새벽이 되면 날이 밝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마 7:7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응답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일생 기도응답을 한 번도 못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그 사람의 잘못이죠.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응답을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기 때문도 아니라면 당연히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본문은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 되지 못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서고 아닙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기도응답을 막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응답 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이유를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1.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 4:2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닙니까? 골대를 향해서 볼을 차지 않는데 어떻게 골인이 되겠습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당연히 기도응답이 없는 것이죠.
김창환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10가지 유형’을 말씀하셨는데 나누겠습니다.
①‘바쁘다’형입니다. 할 일이 많아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망설임형’입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망설이다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③‘포기형’입니다. 한두 번 기도해 보다가 그만두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역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④‘천하태평’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고 하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고 응답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도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역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⑤‘넋두리형’입니다. 자신의 신세타령만 하다가 기도를 끝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지만 구체적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⑥‘과시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대중기도는 유창하게 잘하지만 하나님과 만나는 개인기도생활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운동은 해야 건강하고, 밥은 먹어야 배부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해야 응답이 있는데, 개인기도시간이 없으니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⑦‘자기 핑계형’입니다. “기도는 아무나 하나?”라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응답을 포기하는 것이고, 기도를 포기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도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⑧‘의심형’입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자신이 없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시는데, 이런 사람들은 의심하고 믿지 못하니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⑨‘게으름형’입니다. 기도응답을 받기 원하고 그래서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게을러서 기도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큰 옥토를 가지고 있어도 땅을 기경하지 않고, 파종하지 않고, 관리 하지 않으면 열매도 거둘 수 없듯이,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⑩‘무지형’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몰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도 엄마와 대화를 합니다. 아기는 옹알이로도 엄마와 대화를 합니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는데 무슨 지식이 필요합니까? 기도의 방법을 모르는 분들은 제가 몇 달 전에 한 ‘기도의 방법’이라는 제목의 설교 1번부터 5번까지 다시 들어보시고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모른다는 핑계로 기도를 안 해도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시간의 헌신과 몸의 헌신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세요. 전화벨이 아무리 많이 울려도 가만히 있으면 절대 상대와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기도도 해야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E.M 바운즈는 “하나님을 위해 큰일들을 이룬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언제나 기도에 능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기도에 능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기도는 그의 삶과 사역의 기초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아시나요? 삼상 12:23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사무엘이 한 말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죄라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응답은 기도를 해야 받는 것입니다.
2. 대상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6:9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초월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부자지간, 부녀지간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게 기도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잘못 된 것입니다. 시 115:6,7에 보면 우상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합니다. 우상은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무능하다는 것입니다. 무능한 우상은 기도응답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예술가가 좋은 나무 하나를 구했습니다. 그는 그 나무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는 나무로 자기가 섬기기 위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하고 남은 나무로 삼겹살을 구워먹었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 그 예술가가 만든 우상이 능력이 있을까요? 없지요. 그 우상에게 기도한다고 기도응답이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혹시 응답이 된다면 그 응답은 우상의 능력이 아니고 귀신의 장난입니다. 그런데 귀신을 섬기는 사람은 죽음 후에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에 귀신이 주는 응답은 낚시꾼의 미끼와 같은 것입니다. 미끼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목적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듯이 귀신이 주는 응답은 아무리 좋아보여도 결국은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겔 14:3입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이스라엘의 장로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묻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마음에 우상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골 3:5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아주 곤란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원하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탐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탐심은 탐욕스러운 마음입니다. 분수에 지나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도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탐심을 가진 사람의 기도는 응답이 될 수 없습니다. 탐심을 가진 사람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상은 그들의 기도의 대상은 자기 욕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도 목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욕심이 되고, 탐심이 되고, 탐욕이 되고, 우상숭배가 됩니다. 솔로몬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 왕이 대제사장과 함께 항구에 서서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다가 대제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이 항구에는 하루에 배가 몇 척이나 드나들고 있나요?”, “세 척입니다.” 솔로몬이 화가 났습니다. “나를 놀리는 게요. 지금 눈에 보이는 배만 세어도 열 척도 넘지 않소.”, “왕이시여. 수많은 배가 드나들어도 결국은 세 척입니다. 돈이라는 욕망을 실은 배, 명성이라는 욕망을 실은 배 그리고 쾌락이라는 욕망을 실은 배 세 척뿐입니다. 이 세 가지 욕망이 배를 항해하게 하는 힘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 세 가지 때문에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돈과 명성 그리고 쾌락이 목적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고 생활을 위한 도구입니다. 명성도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입니다. 쾌락도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쾌락이 아니라 희락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욕심이 되고, 탐심이 되고, 탐욕이 되고,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도의 대상 중에 하나는 사람의 시선입니다. 마 6:5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은 신앙인의 미덕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잘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 세 가지 중에서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시선만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인데.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가 잘못 된 것이고, 그래서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그 순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며 하나님과 부자관계, 부녀관계가 성립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온 천지의 창조주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놀라운 일이고 엄청난 사건입니다.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리는 혜택이 많습니다. 혜택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인들이 받는 혜택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조정민목사님은 중국인들이 누리는 혜택 때문에 자신이 계몽이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자국민이 혜택을 받아야지 중국인이 자국민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몇 달 전에 갑자기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자금이 좀 부족해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대출 받기 전에 부동산과 은행 측에서 저에게 예상 대출 금액을 알려주어서 자금 준비에 이상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DTI(Debt to Income)라고 해서 소득 대비 상환 부담률을 기준으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제 소득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은행 측에서 예상했던 대출보다 적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돈을 준비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집값대비 대출이 되었었는데 이제는 소득대비 대출이 되니 제가 상당히 곤란에 처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규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33살 중국인은 89억 타워팰리스를 100% 대출로 샀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리는 혜택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죄사함 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는 혜택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혜택이 기도응답의 특권입니다. 마 7:11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전에 제가 어린이 사역을 하시던 어느 목사님의 간증 중에 들은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목사님이 아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붕어빵을 보더니 “아빠, 붕어빵 먹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너, 돈 있어. 돈도 없는데 어떻게 붕어빵을 먹어?” 그런데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붕어빵을 집어서 먹었습니다. 목사님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돈도 없는데 붕어빵을 먹으면 어떻게 해?” 아들은 “나는 없지만 아빠가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에 아들이 걷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빠, 택시 타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너, 돈 있어? 없잖아” 그런데 아들은 택시를 세우더랍니다. “택시!” 목사님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택시를 잡으면 어떻게 해?”, 아들이 “나는 없어도 아빠는 있잖아!”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것이 아들의 특권입니다.
마하은 청년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하은 청년의 학비와 매달 생활비를 보내줍니다. 프랑스에는 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마하은 청년에게만 학비와 매달 생활비를 보내고 있을까요? 그 청년이 제 아들이고 제가 그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유학생들은 저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저는 다른 유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국립이기 때문에 학비가 1년에 약 80만 원 정도입니다. 감사하게도 프랑스 정부에서 집렌트비 일부를 보조해줍니다. 제가 마하은의 학비와 매달 생활비를 보내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제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하은은 저에게 아들의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믿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응답의 특권을 누리게 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부자관계, 부녀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조적인 측면이 아니라 구속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4.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7-10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 질병이 간질이었다는 설도 있고 안질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저는 심한 안질로 봅니다. 그 증거는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체험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에 강력한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때 바울은 눈이 멀어 3일간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데미지가 평생 갔을 것입니다. 갈 4:15입니다.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은 자신들의 눈을 뺄 수 있었다면 빼어서 바울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왜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바울에게 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 6:11입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의 편지는 주로 다른 사람이 대필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의 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이가 대필한 편지가 자신의 편지임을 확증하기 위해서 그 편지의 일부만 큰 글씨로 직접 썼습니다. 바울은 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눈병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그 병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가시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그 눈병으로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병을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눈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바울은 하나님께 자기의 눈을 치료해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병을 치료해주신 것이 아니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치료해달라고 기도했던 병은 치료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병 때문에 바울은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함 때문에 주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바울을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주승준목사님이 사용한 예화입니다. Bruce Almight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Bruce는 사람이름이고, almighty는 전능한 이라는 말입니다. Bruce라는 사람은 TV 방송국에서 일하는 reporter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방송국에서 무시를 당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었서 늘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는 “나도 8시 뉴스와 9시 뉴스의 앵커도 할 수 있는데,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늘 지방에 내려가 작은 사건들을 취재하는 그런 일들이야”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일 때문에 직장 상사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그는 홧김에 사표를 내고 직장을 나오게 되었지만, 막상 그에게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 화를 내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제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정말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Bruce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 맞습니까? 어떻게 제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도 Bruce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이 녀석아! 너는 왜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으냐? 나도 너 같은 녀석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나도 너 같은 녀석 때문에 피곤하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그것은 내가 너에게 나의 전능한 힘을 일주일 동안 줄 테니까, 네가 나 대신 7일 동안 하나님 역할을 좀 해라. 나는 네 덕분에 휴가를 좀 다녀와야겠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휴가를 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돌아서서 가시는데, 물위를 걸어가셨습니다. 그 때 Bruce는 자신도 물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정말 모든 것이 자기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다 되었습니다.
그는 신이 났습니다. 그가 길을 걸어가다가 소화전을 보고 “소화전아 터져라”라고 외치니까 물이 솟아나옵니다. 그리고 길에 예쁜 아가씨가 치마를 입고 오는데, 그쪽을 향해 “바람아 불어라”고 외치자 여인의 치마가 바람에 올라갑니다. 이렇게 그는 며칠 동안 신이 나서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하루는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바로 전 세계의 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수백만, 수천만이 동시에 기도를 하니, 도무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기도가 메일로 올라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교인들의 기도가 밤새도록 메일로 오는데, 도저히 다 읽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꾀를 부리는데, 그것은 모든 기도에 “Yes”라고 응답을 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제는 됐구나!” 하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도시에 폭동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고, 차를 뒤엎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중에 한 남자가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은 사기다” 그래서 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로또 복권을 샀는데, 그것이 일등으로 당첨이 되었소. 그런데 일등 당첨금이 단돈 17$밖에 안 되오. 그러니 이것은 사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Bruce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난밤에 사람들의 모든 기도에 “Yes"라고 응답을 설정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로또를 사면서 ”하나님, 일등 되게 해 주세요“라고 한 기도가 다 응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로또를 산 사람들은 다 일등 당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주목사님은 영화의 이 장면을 보다가 중요한 것을 깨달으셨답니다. “아, 그렇구나. 만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욕심을 따라 했던 기도를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셨더라면, 나는 벌써 멸망의 길로 갔겠구나!” 맞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들이 해 온 욕망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더라면, 아마 우리들 가운데는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멸망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다 응답 되는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도는 하나님께서 “NO!”라고 응답하셔야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답이 “YES!”이든 “NO!”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것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다. 어느 아빠가 딸을 기절 시킨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을 하고 아빠와 어린 딸이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매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린 아이가 자기도 아빠처럼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고 싶었습니다. “아빠! 나도 먹고 싶어요.” 아빠는 장난으로 딸 아이에게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아빠가 한눈 파는 사이에 청양고추를 입에 넣고는 아싹하고 씹어버렸습니다. 그 아이는 청양고추의 매운 맛을 감당하지 못해서 기절하영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 중에는 많은 경우 이렇게 기도가 응답 되면 우리에게 해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은 절대 주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지 않는 것이 유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이라고 판단하시면 우리가 기도해도 그 문제를 그대로 두십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가장 정확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도 문제가 그대로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교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네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1.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대상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4.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언제나 늘 귀한말씀 에 깊은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