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짐을 내려놓기
누구든 자신의 힘과 마음의 작용을 알게 되면, 잠재의식에 좋은 것들을 주입 시킬 수 있는 쉽고 빠른 방법을 찾고 싶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용의 법칙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가장 쉬운 방법이 “짐을 내려놓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이상학자는 이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자연에서 만물에 무게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은 중력이며, 바위를 지구 위로 아주 높이 옮길 수 있다면 그 바위는 무게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한 말의 뜻입니다. 그는 세상의 진동을 극복하고, 완벽함, 완성, 삶, 기쁨만이 있는 4차원의 영역에서 기능했습니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내 멍에를 메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시편 55편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투쟁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며, 사람은 항상 “멈추어 서서” 신의 구원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초의식(또는 내면의 신성)이 인간의 싸움을 대신하고 그에게서 짐을 덜어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이 짐을 지려고 한다면 법칙을 어기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짐이란 부정적인 생각이나 조건이며, 이 생각이나 조건은 잠재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잠재의식을 의식이나 논리적인 생각에만 의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논리적인 생각에 의지하는 마음(지성)은 개념이 제한되어 있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짐을 초의식(또는 내면의 그리스도)에게 맡겨 “가벼워지게” 하거나 “본래의 무”로 분해하는 것은 얼마나 과학적일까요.
이 이야기가 그 예시입니다. 돈이 절실히 필요한 여성이 내면의 신성, 즉 초의식에 짐을 맡기기로 한 후 “나는 이 궁핍의 짐을 (내면의) 신성에게 맡기고 자유로운 풍족함을 누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족함에 대한 믿음은 그녀의 짐이었고, 그녀가 그것을 풍부함에 대한 믿음을 가진 초의식에 던졌을 때, 공급의 눈사태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신성), 영광의 소망”을 봅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내 학생 중 한 명이 새 피아노를 받았는데, 그녀가 오래된 피아노를 옮길 때까지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여분의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래된 피아노를 간직하고 싶었지만, 보낼 곳을 몰랐습니다. 그녀는 절박해졌습니다. 오래된 피아노를 지키려면 새로운 피아노를 되돌려보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나는 이 짐을 내면의 그리스도에게 던지고, 나는 자유로워진다”고 반복해서 말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잠재의식에서 오랜 세월 자리해 있던 의심과 두려움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재의식 속에 버려진 이 오래된 것들이 이제는 사라지기 위해 표면으로 떠올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사람은 여호사밧처럼 적(부족이나 질병의 상황)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심벌즈를 두드리며 구원받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학생은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러야 합니까?”라고 계속 내게 말했고, 나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을 때까지”라고, “짐을 내려놓으면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재의식에 인상을 남기려면 적극적인 믿음이 항상 필수적입니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여러 장들에서 나는 이 요점을 강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물고기에 대한 감사를 드리기전, “무리에게 땅에 앉으라고 명했을 때” 적극적인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단계가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주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적극적인 믿음은 사람이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오해로 인해 한 여인이 깊이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화해의 모든 제안을 거부했고 어떤 식으로든 여인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법칙을 알게 된 그녀는 분리의 모습을 부인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성한 마음에는 분리가 없으므로 신성한 권리에 의해 내 사랑과 동반자 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매일 식탁에 그를 위한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적극적인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잠재의식에 그의 귀환에 대한 그림을 각인했습니다. 1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어느 날 그가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잠재의식은 종종 음악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음악은 4차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혼을 수감에서 해방시킵니다. 이를 통해 멋진 일이 가능해지고 성취가 쉬워집니다!
이 목적을 위해 매일 빅트롤라(축음기의 상표명 -역자주)를 사용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또 다른 여성은 종종 춤을 추며 긍정을 표현합니다. 음악과 동작의 리듬과 조화는 그녀의 말을 엄청난 힘으로 전달합니다.
영적 법칙을 배우고 있는 우리, 학생들은 “아주 작은 변화의 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현실화 전에는 “세상으로부터의 신호”가 찾아옵니다. 콜럼버스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새와 나뭇가지를 보았고, 이는 땅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인생 게임의 현실화 직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종종 학생은 종종 그러한 신호가 게임의 결과라 여기고 아주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면서 실망합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접시 세트에 대한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친구가 오래되고 금이 간 접시 세트를 선물했습니다.
그녀는 내게 와서 “접시 세트를 달라고 신성에 요청했는데 금이 간 접시를 받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접시는 세상으로부터의 신호일 뿐입니다. 접시는 여러분의 접시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콜럼버스의) 새와 나뭇가지로 보세요.”라고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믿음 만들기’는 잠재의식에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자신이 부자라고 믿고 성공했다고 믿는다면 “적절한 시기에 수확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항상 “믿고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나는 매우 가난한 한 여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가난함을 느끼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부유한 친구들에게서 약간의 돈을 벌었고, 그들은 그녀에게 그녀의 가난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조심하고 저축하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들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번 돈을 모두 모자를 사는 데 쓰거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며 황홀한 마음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생각은 항상 아름다운 옷과 “반지와 물건들”에 집중되었지만,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경이로운 세상에서 살았고, 그녀에게는 오직 부만이 현실처럼 보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부자와 결혼했고, 반지와 물건들이 현실화되었습니다. 그 남자가 “신의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호사스러움만을 상상했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 호사가 나타나야만 했습니다.
잠재의식에서 모든 두려움을 지워내기 전까지 인간에겐 평화나 행복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잘못 전달된 에너지이며, 그 방향을 바꾸거나 믿음으로 변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의 학생들은 나에게 자주 “두려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나는 “무서워하는 것에 다가가면 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자는 당신이 두려워할 때만 사나워집니다.”
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는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이 도망가면 사자는 당신을 쫓아갑니다.
나는 이전 장에서 개인이 두려움 없이 돈을 쓰면 ‘궁핍’이라는 이름의 사자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보여드렸습니다. 신이 그의 공급원이라는 변함없는 믿음을 보인다면, 실패란 없습니다.
나의 학생 중 많은 이들이 가난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서 지금은 풍성하게 공급받고 있는 것이지요.
잠재의식은 신께서 주시는 분(공급자)이자 선물이라는 진실에 감명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시는 분, 즉, 신과 하나일 때 그는 선물과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신의 선물을 주시는 신성께 감사합니다.”는 멋진 문장입니다.
인간은 분리와 부족에 대한 생각을 통해 오랫동안 자신의 선과 공급에서 자신을 분리해 왔기 때문에, 때때로 잠재의식에서 이러한 거짓된 생각을 몰아내려면 다이너마이트가 필요하며, 이러한 다이너마이트는 큰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앞서 설명한 예에서 개인이 두려움 없음을 보임으로써 어떻게 자신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는지 보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 동기가 두려움인지 믿음인지 알아내기 위해 매시간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두려움과 믿음 중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몇몇 이들의 두려움은 성격 탓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피하지 마십시오. 기꺼이 그들을 만나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선의 사슬에서 황금 고리”가 되거나, 자신의 길에서 조화롭게 사라질 것입니다.
어쩌면 몇몇 이들의 두려움은 질병이나 세균에 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세균이 가득한 상황에서 두려움 없이 방해받지 않고 면역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사람은 세균과 같은 속도로 진동하는 동안만 세균에 감염될 수 있으며, 두려움은 사람의 진동을 세균의 진동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 물론, 질병이 가득한 세균은 모든 것을 객관화하려 드는 육적인 마음(의식)의 산물입니다. 세균은 초의식이나 신성한 마음 속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저 인간의 “헛된 상상”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악에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인간의 해방은 “눈 깜짝할 새에” 올 것입니다.
물질 세계는 사라지고, 4차원 세계, “놀라운 세계”가 현현될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어라.” (계 21:4)
(플로렌스 스코블 쉰 『인생 게임과 그 법칙』 신우빈 옮김. 유페이퍼,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