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31일(금) 호세아 4:1-3 찬송 574장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개역 개정)
- 북이스라엘의 관영한 죄악상 고발과 하나님의 심판 선포 -
어제 말씀으로 음란한 고멜과 선지자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통해
상징적으로 선민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온갖 죄악을 범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을 대조적으로 보여준 본론 전반부 1:2-3:5이 마감되고
오늘 말씀부터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여러 측면에서 직접 지적하여 책망하고
회개를 호소하며 하나님의 심판 및 회복을 선포하는 본론 후반부 4:1-14:9이 전개된다.
이러한 본론 후반부는 모두 9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문맥하의 본문은 9편의 설교로 구성된 본론 후반부 전체의
일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북이스라엘 관영한
죄악된 모습을 지적하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즉 본문에서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전반에 관영한 죄악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1-2절), 아담의 범죄로 이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낸 것(창3:17-18)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11:9-12)이
그들의 범죄로 인해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3절)
여기서 북이스라엘의 죄로 언급되는 것은 모두 9가지이다.
그중 가장 앞선 세 가지(1절)가 주로 하나님을 상대한 종교적인 범죄라면
뒤에 언급된 여섯 가지(2절)는 주로 사람을 상대한 도덕적인 범죄라 할 수 있다.
특별히 히브리 원문은 사람 상대의 죄악 가운데 앞선 5가지를
모두 부정법 절대법(infinitives absolute)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북이스라엘 사회에 이상의 죄들이 매우 관영해 있었음을 반영해 준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범죄한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3절)은
북이스라엘이 얼마나 철저하게 심판받을 것인가를 가히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3차에 걸친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국토가 초토화 됨은 물론 B.C.722년에는 완전히 멸망당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왕하17:1-6)
이상의 사실에서 죄의 심각한 결과를 보게 된다.
즉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죄의 당사자인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극적인 운명에 빠져들게 했음은 물론
인간의 삶의 터전인 자연까지 파괴시켰다.
특별히 인간의 죄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롬8:21-22의 내용과
상응하는 사실로 죄의 무서운 파급 효과를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의 죄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무서운 결과에 경각심을 갖고
혹시 지금 이 순간 죄의 늪에 빠져 있다면 즉각적인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힘입어 죄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1b-2절)「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1절 하반절에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없고’라는 표현이 3회나 제시되는데 이는 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
반드시 간직해야 할 것들을 갖추지 못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울러 이어 나오는 2절 표현에서는 저주,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피가 피를 뒤이음 등의 표현이 나열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엄히 금하신 것들로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이를 나열하면서 호세아는 ‘오직 ~뿐이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있지 말아야 할 죄악된 것만으로 가득한
답답한 현실에 처하였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면모를 단적으로 묘사한 이 말씀들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갖춰야 할 것,
간직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은 다 잃어버린 반면
버려야 할 것,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 행해서는 안 되는 것들만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혹 우리의 삶의 자리나 우리 교회의 현실 가운데도
하나님 앞에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행해야 할 것을 행치 않고 도리어 버려야 할 것,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행치 말아야 할 것들을 행하고 붙들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가 침체하고 세상으로부터 온갖 지탄을 받는 오늘날
더더욱 깊이 새겨야 할 중대한 교훈이다.
과거 초창기 한국 교회는 핍박과 고난 중에 있었지만
나라와 민족, 세상 앞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이 사회의 교육과 문화, 그리고 도덕과 윤리를 주도하였다.
그리하여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당시 참 신앙인들은 소수였지만 모두 진실한 애국자들이었고
시대의 선각자로 기억되며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수적으로 과거와는 비할 바 없을 만큼 성장하였지만
그 영향력이 과거 소수일 때보다 미미하며
도리어 이 세상 가운데 지탄의 대상, 심지어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접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를 세상이 악하여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세상의 악함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도리어 교회를 향한, 또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이러한 세상의 지탄과 멸시 속에서 교회가 마땅히 지키고 간직하고 행해야 함에도
하지 못한 일들, 교회가 버려야 할 것들,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결코 행치 말아야 할 일들을 행한 것들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땅히 간직해야 할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끝내 멀리하고
오직 악한 것들만을 추구함으로 멸망의 자리에 이르렀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경고와 책망, 권면의 말씀을 멀리함으로 파멸에 이른 사실 또한 상기해야 한다.
교회와 우리들도 이 사실을 마음에 헤아리지 않고 다시 돌이켜 바른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세상으로부터 더 큰 멸시와 지탄을 받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엄중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마땅히 회복해야 할 것, 행해야 할 것을 행하며
버려야 할 것, 근절해야 할 것, 행치 말아야 할 것을 바로 알고 아는 대로 행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