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며 머물러라. 빠띠목카를 지키고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머물러라.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조그마한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잘 받아 지녀 공부지어라.”
3.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사랑 받고 호감을 사고 존중받고 존경받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전념하며 선(禪)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觀]을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4.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얻게 되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5.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게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보시해준 그 시주자들에게 큰 결실과 공덕이 있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禪)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6.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나의 친지들이나 혈족들이 죽어 청정한 마음으로 나를 기억하는 그들에게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7.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싫어함과 좋아함을 극복하고, 싫어함이 나를 지배하지 않으며, 싫어함이 일어나는 족족 이를 극복하고 머물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8.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지배하지 않으며, 두려움이나 공포가 일어나는 족족 이를 극복하고 머물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고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바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사종선]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얻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0.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물질[색]을 초월하여 물질이 없는[무색] 저 [네 가지]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닿아서 머물기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1.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듣 자[예류자]가 되어, 더 이상 [네 가지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기를.’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2.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가 되어서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끝내가를.’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3.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기를[불환자].’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4.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여러 가지 신통변화[신족통]를 나투었으면 좋겠다. 즉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며,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마치 허공에서처럼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고, 물속에서처럼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고, 땅 위에서처럼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고,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고,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하기를[신족통].’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5.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인간의 능력음 념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기를[천이통].’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6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내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대하여 꿰뚫어 알면 좋겠다. 즉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탐욕을 여윈 마음은 탐욕을 여윈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성냄을 여원 마음은 성냄을 여윈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어리석음을 여윈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원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수축한 마음은 수축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고귀한 마음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고귀하지 않은 마음은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여,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95]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머,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기를[타심통] .’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님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7.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기를[숙명통].’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8.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눈[천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에 가고 나쁜 곳[악처]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알면 좋겠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정견업)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곳[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내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알기를[天眼通]’ 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심해탈]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기를[루진통].’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20.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며 머물러라. 빠띠목카(계목)를 지키고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머물러라. 바른 생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조그마한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잘 받아 지녀 공부지어라.’ 라고 [앞서]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원한다면 경(M6)이 끝났다. |
| 빠띠목카(계목)? 학습계율을 뜻한다. 이것은 이것을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을 해탈케 하고, 악처 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빠띠목카라고 한다. 상좌부는 비구 계목은 모두 227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바른 행실이란 몸과 말로 범하지 않는 것이 바른 행실이다. 계를 통한 단속은 모두 바른 행실이다. 행동의 영역이란 기생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고, 과부의 집, 술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으며 성인들의 출입을 좋아하고 이로움을 바라고 유가안은을 바라는 그런 가족을 위지하는 것이 행동의 영역이다. 배워야 할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이라 한다. 학습하는 항목, 혹은 학습해야 할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이라 한다.(전재성 : 재가신자의 계행은 의무계율이 아니라 학습계율로서 수행규범이라고 볼 수 있다.)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지]에 전념하며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사마타에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위빳사나를 구족한다는 것은 일곱 자기 수관, 관찰을 말한다. 그것은 무상의 수관, 괴로움의 수관, 무아의 수관, 염오의 수관, 탐욕의 빛바램의 수관, 소멸의 수관, 놓아버림의 수관이다. 싫어함이란 유익한 법들에 대해 혹은 멀리 떨어진 외딴 처소에 머무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것이고, 좋아함이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해탈이란? 청정도론 주석서에 평화로운 해탈을 무색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부변처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이다. “평화로움이란 것은 구성요소가 평화롭고 대상이 평화롭기 때문에 평화롭다. 해탈이란 반대되는 법들로부터 해탈했고 또 대상에 대해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해탈이다.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은 색계선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 : 평화로운 해탈들이란 구성요소들도 평화롭고 대상도 평화롭기 때문에 평화로운데 이것은 무색계 해탈들을 말한다. 몸으로 체득하여란 정신적인 몸으로 체득하여, 증득하여라는 뜻이다.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 정신적인 몸이란 함께 생긴 정신의 무더기 = 수,상,행,식의 4온)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 족쇄 : 유신견과 의심과 계금취의 세 가지 속박이다. 이들은 무더기와 태어날 곳과 존재 등으로써 무더기와 태어날 곳과 존재 등을 얽어매기 때문에 족쇄라고 부른다. ~~~~~~~~~~~~~ [전재성 박사 주석] 계행을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멈춤을 이루고 선정을 버리지 말고 통찰을 갖추어 한가한 곳에서 지내는 자가 되라? 이 문장은 이 경전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각 문단에서 반복되는데, 완전한 세 가지 배움(삼학)을 포함한다. ‘계행을 원만히 하는 것’은 보다 높은 윤리에 대한 수행(증상계학)을, ‘안으로 마음의 멈춤을 유지하고 선정을 경시하지 않는 것’은 보다 높은 마음에 대한 수행(증상심학)을, ‘통찰을 성취’하는 것은 보다 높은 지혜에 대한 수행(증상혜학)을 뜻한다. 그리고 ‘한가한 곳에서 지내는 것’은 원의는 ‘텅빈 집에서 지내는 것’이지만 역자가 ‘한가한 곳’으로 의역한 것으로 멈춤과 통찰을 성취하기 위해 가는 것이므로 마지막 두 수행을 포괄한다. 나는 세 가지 결박을 부수고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삶이 정초되어 올바른 깨달음을 궁극으로 하는 흐름에 든 님이 되고 싶다? 흐름에 든 님은 세 가지 결박(三結), 즉 ① 개체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② 의심(疑), ③ 규범과 금계에 대한 집착(戒禁取)을 끊는다. 흐름에 든 님은 최대한 일곱 번째 태어남에서는 반드시 열반에 든다. 일래자? 한 번 돌아오는 님은 열 가지 결박 가운데 흐름에 든 님이 끊어야 할 세 가지 결박(삼결)과 더불어 ④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 ⑤ 분노를 거의 끊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④, ⑤ 대신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언급 되고 있다. 불환자? 천상계의 청정한 하늘(淨居天)에서 열반에 드는 자이다. 그는 세 가지 결박(三結)은 물론이고 다른 두 가지 결박,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 분노를 완전히 부순 자이다. 확장된? 커다란, 광대한, 계발된 높은 이란 뜻으로 미세한 물질계(색계)나 비물질계(무색계)의 마음을 말한다. ‘계발되지 않은 마음’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계의 마음을 말한다. 한역에서는 ‘확장된 마음’을 대심(대심)이라 하고, ‘확장되지 않은 마음’을 소심(소심)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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