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본당의 설립은 교구장 파 야고보(J. Pardy) 주교의 청주․청원군 지역 본당 설립 계획에 따라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파 주교는 1964년 8월 수동 351-3번지 일대의 부지 2,500평을 매입한 뒤, 1964년 9월 6일자로 ‘성 안나’를 주보로 하는 ‘수동 본당’을 설립함과 동시에 그 초대 주임으로 함제도 제라르도 신부를 임명하였다. 아울러 수동 새 부지에 성당과 함께 복자회관 즉 청년회관을 건립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수동 본당은 서운동․내덕동 본당에 이어 청주시내의 세 번째 본당이 되었다. 그러나 수동에는 미사를 봉헌할 장소가 없었으므로 함 신부와 신자들은 성당 건립 때까지 옛 북문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함 제라르도 신부는 1964년 12월 29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분원을 설립하고, 1965년 2월과 3월에는 복대와 개신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5일에는 성당 기공식을 갖고 건축을 시작했으며, 이후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어 1966년 8월 15일의 대축일에는 성당(157평)과 사제관(77평)이 파 주교의 집전 아래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한편 강당 겸 청년회관(140평)은 수녀원과 좀더 늦게 완공되어 9월 26일의 복자 축일 때 축복식을 가졌다. 또 1967년 5월에는 성안나유치원이 개원하였다.
1971년 2월에는 오송 본당으로부터 신전(현 흥덕구 신전동)․강서(현 흥덕구 강서동)․새터말(현 흥덕구 지동동) 등 3개 공소를 이관받고, 1972년 5월 1일에는 내덕동 본당으로부터 화계(현 흥덕구 화계동)․원평(현 흥덕구 원평동) 공소를 이관받으면서 1972년 말의 신자수는 6개 공소에 2,098명을 기록하였다. 이때 복대 공소는 강서 공소에 통합되었다. 이후 본당에서는 1973년 11월에 현재의 유치원 건물을 완공했으며, 1974년 10월 7일에는 첫 번째 자본당으로 ‘사직동 본당’을 분리 설립하고, 1979년에는 수동 15년을 발간하였다.
2대 주임 정충일(안토니오) 신부 재임기인 1985년 5월에는 단체 회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관(150평)을 신축하였고, 1986년에는 유치원을 4학급으로 증설했으며, 1987년 8월 15일에는 신설된 내덕1동 본당(현 덕암 본당)으로 우암동 일부 지역을 분할해 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성당 부속 시설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본당에서는 4대 주임 김홍열(시몬) 신부 재임기인 1997년 5월 26일 회관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고, 5대 주임 이승용(마태오) 신부 재임기인 1999년 10월 25일에는 본당 설립 35주년 기념 미사와 함께 성안나회관(약 482평) 축복식을 가졌다. 6대 주임 이중권(마태오) 신부 재임은 2002년 6월에서 그 다음해 2003년 10월 약 1년 정도 사목하시다가 선종하셨다. 7대 주임 장인산(베르나르도) 신부 재임은 2004년 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신자들에게 영성 교육을 함께 하셨으며, 8대 곽동철(요한) 신부 재임은 2008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였으며, 성당 내부와 회관 내부 수리를 했다. 9대 김영수(시몬) 신부 재임은 2011년 9월부터 현재 진행중이며 신자들의 친교와 함께 쉬는교우에 전념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