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 유정란 농원엔 김연창 시인이 살고 있다.
사진 최대식
2007. 3월 6일 12시 출발했다. 늦은 출발이라 서둘러야 했는데
싸아한 바람은 산등성이를 타고 봄의 길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움트고 있는 들녘으로도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흔들고
여린 풀잎 끝자락에 매달려 휘청거리는 바람
그래도 양지바른 산기슭으로 꽃은 제모습을 잊지않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산모퉁이를 돌아 봄은 함양 청미래 농원앞으로 오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햇살의 발은 얼어있는 함양 김연창시인의 마을까지였다
고드름이 손가락 길이보다 더 길게 질서있는 조각처럼 매달려 어여쁘고 생경스러웠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바람에 휘감긴 처마밑에서 감상했다
높은 지역이라 아직 많이 춥다
봄이 멀어 있는 듯 먼 산봉우리 끝에 하얀 모자를 쓴듯한
백운산에는 눈이 덮여 있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김연창시인의 고향은 경북 상주군 낙동면 화산리 종골동의
상산 김씨 희본성의 집단속에서 탄생했던 시인은 어릴적 그 풍경들로 인해
밑바탕에 많은 수채화가 그려져 있게 되었다
고종 황제가 좋아했던 씨가 없는 감 이야기와 상주이야기
그리고 아버님은 시인이 4살때 돌아가신 탓으로 얼굴 하나 기억 할 수 없다
그즈음 시골에서 어머니 혼자 자식을 키우기 힘들어
대구로 이사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대구를 떠나지않게 되었었다
중학교때 설문지조사에서 각자의 꿈을 써내라고 할땐
당시는 주로 과학자, 대통령등의 꿈을 써내는데 김시인은
목장주인이라고 써냈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은
"넌 그 흔하게 써내는 꿈은 써내지않고 목장주인이 뭐냐고." ^^
93년 결혼 한후 부인이 속셈 학원을 경영하고
건축과를 나온 김시인은 인테리어를 하던 당시 돈도 많이 벌었고
속셈학원도 그 당시는 정말 수지맞은 기회여서
아파트를 평수 넓게 마련할 수 있었고 아마 88올림픽때까지는
여유로웠으나 IMF경제가 터짐과 동시에 속셈학원은
침체가 되기 시작했다 초암논술로 학원을 바꾸고
경북대학교 논술 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방통대 국문과를 졸업 한후
직접 논술자료들을 연구해가면서 논술학원을 운영해왔던 삶이
무색하게 된 경위는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간염보균자였던 시인은 인터페롤 항암제를 일년마다 매일 한병에 70,000원 하는
항암제를 맞아야 했고 97년 98년 고생을 하면서 지금은 항체가 생겨서 건강해졌으나
인터페롤 부작용으로 정말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 부작용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충동증을 유발 시키는 것이 무서운 경로였다
부인은 심적으로 힘겨웠고 서로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있어도
천만원의 전세 살다가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었던 기쁜 날도 있었지만
삶은 여전히 도시 한복판에서 날마다 같은 시간처럼 보내야 하는,
그래서 시인의 감성을 불러 일으킨 것이 함양 동호인들의 땅 분양과
청미래 유기농 농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삶의 가치관도 없이 매일 어느누구도 다르지않게
그저 시간속에서 그렇게 도시를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못내 힘들어졌다
마음이 허용하지 않아 삶의 정석을 버리기로 했다
부인을 설득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부부는 함께 하기로 마음이 합해졌고
아이들도 큰 딸(중학교 1학년 김미지)은 좋다고 하지만 작은 아들(5학년 김상민, 김똘방이라고 함)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기온이 차가운 오지에다 포장이 안된 길도 따스해지기만 하면 질척거리고...등등
그래도 적응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않았다.
함양에 오면서 먼저 아내의 음식솜씨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제법 걸린 시간이지만...
무공해 김치와 청국장, 그리고 각종 나물과 동김치등은 최고였다
매번 어머니 음식처럼 따라잡기 어려웠으나 점점 익숙해져가는 귀농의 시간이
우리들의 점심을 융숭하게 유기농으로 대접을 받게 했고
시인님의 아내와 정겨운 이야기 자리를 펼쳐지게 했다
분양 받은 땅에서 집을 계획해서 짓고 살게된 부푼 마음을 가늠해보았다
높은 지대에 훤히 내다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을 유리로 설정해놓은
유리의 성 같기도 한 집으로 들어서서 느낀 것은 시골을 생각했던 상상과는 판이했다
문을 닫기만 하면 따스하고 저절로 마음이 밝아져가는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일이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천정은 굵은 대나무로 길게 메워놓아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냈고
집 지을때는 재료 비용도 절감해서
좋은 이면이 있었다 화장실도 궁금해서 방을 거쳐 뒤로 연결된 문을 열었더니
푸세식은 결코 아니고 양변기로 정갈한 향기를 전해 줄 만큼 어여쁜 공간이었다
선반을 만들어 놓아 "녹색평론" 이라는 책부터 시집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녹색평론" 에는 백낙청 선생님과 염무웅선생님들의 평론등 작품들이 들어있어
몰래 지난 해의 책 한권을 빼어들고 나왔다 지금도 미안하지만...
도시에서 살다가 그렇게 계획을 하고 마음을 챙겨서 귀농한다는 것은 보기만 해도
힘든 일이지만 계획없이 도시를 버리고 내려오는 귀농인들이 실패를 종종 한다는
이야기도 가슴이 아릿해져오게 했다
무언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도시에서 다짐을 하고 가족을 이끌고
귀농하게 되지만 대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들
땅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려와 쉽게 희망을 버리게 되는 일들
모든 것들이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함도 무계획도 안타까울 뿐이라고.
해병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지않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김시인도 해병대를 언급하면서 삶을 지탱해오는 것들이 아마 그 뚝심에 있지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함양 땅을 분양 받으면서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듯이
삶이 자연히 친환경 적으로 마음과 몸이 차분히 가 앉고 있다는 것
아마도 시인의 몸은 자연히 맑은 땅으로 밀려들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땅이 부르고 있었는지도? ㅎ
함양 마을에 도착되어 미래를 가꾸어 나갈 꿈에 계획 되지않은 일이 있었다
녹색대학교 (최초 대안대학) 설립에 의해 건축과를 나온 탓으로 건축기획을
전반적으로 맡아 모든 환경적인 복잡한 일들과 맞부딪히게 되어
식견을 다해 잘못된 부분을 시행에 옮겨놓으면서
녹색대학교는 많은 마음들이 모아져야 할 위치에서도 힘겹게 경제적인 문제를
어렵게 감당해야 했다.
믿어야만 할 사람에게선 배신의 힘겨움도 있지만 일찌기 사회적인 현실감 있는
사람에게선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흔히 말 잘하는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현실에선 대단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소박한 꿈에 그런 말 잘하는 사람과는 근접하기 싫어
그저 지나가는 일이거니 싶을만치 참 싫은 일들도 삶에는 꼭 있게 마련이었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어 갔으나 김시인의 집에서는 이미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
서둘러 나와서 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조금 간다기에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내곡마을까지 내려와 김시인의 차로 옮겨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좁고 협착한 길로 자꾸만 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
이상하다
왜 이렇게 높고 힘든 산으로 자꾸 올라가기만 하지?
아직도 바람의 성질은 급하기만 했다
작은 승용차도 아닌데 좁은 산허리를 타고 가는 길이 은근히 겁이 났다
10분정도 걸렸나 싶다
일반 주택보다 4채정도의 크기로 벽이 훤히 뚫려있는 양계장이 산중턱에 펼쳐져 있었다
진돗개의 외침같은 소리도 산을 타고 우렁우렁 울려서 마치 세상과는 다른 외진 시골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바람은 산허리를 밀고 내려와 양계장의 뚫린 허리를 지나 숲을 이룬 나무사이사이로
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땅은 한나절 내내 녹았을텐데 다시 얼고 있었다 얼음을 구경하지 못한 남쪽의 겨울은
초겨울 정도의 날씨로만 지탱하고 있는 듯 했기에 마냥 즐거웁게만 바라보던 내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계장은 수천수백마리의 닭들이 머리만 내밀고 물을 쪼아먹고
모이를 먹고 알을 생산해 내는 기계적인 곳만 보아 왔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다
벼슬이 유난히 붉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하얀 수탉은 힘차고 근엄하기까지한
자태가 당당했다
붉은 암탉 15마리를 수탉 한마리가 거느리는 꼴로 한울이에 넣어서 양계를 하고 있었다.
울이의 바닥엔 부엽토를 깔아두어 계분과 합해져 농사에 좋은 호기성 균이 배양되어
냄새가 나지않았다. 그리고 울이는 앞뒤가 개방, 자연바람이 소통되게 하여 차갑고
신선한 산바람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어 냄새가 전혀 나지를 않았다
그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울이 속에서는 유정란을 생산하는 닭들이
자연스럽게 노닐고 있었다
나는 추워서 덜덜 떨어야 했다 그리고 유기농이라고 바로 그 알 하나를 손에 쥐어준
시인의 유정란...
아...이렇게 해서 내게까지 오는 유정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식한 식견에서는
감 잡을 수 없는 자연의 형태라고 말하고 싶다
여름엔 신선한 풀도 뜯어서 먹이고 사료도 검토된 천연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알레르기가 많은 요즘 아이들의 식생활에 유정란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김시인이 강조를 했다
나도 은근히 식품으로 인해 알레르기성을 유발하곤 하던 그런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식품을 위협하는 조리식생활에서
눈에 보이지않는 위험성을 모르고 막연하게 사는 까닭으로
모든 알레르기는 다 지니게 된 것이 현 식생활의 공포이리라
시인의 미래는 이렇다
이 청정한 땅을 넓혀가면서 생태학습장을 펼쳐놓고 시인학교를 열고 싶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느끼고 즐겼으면 한다
생각으로만 있는 친환경이라는 말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우리의 후손들로 부터 빌려온 자연환경을 폐허된 환경으로 결코 물려주어선 안되는 것이다
김시인의 부드러우면서도 강경한 말이었다
내 가족만 살아가면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 즐기면서 이런 환경에서
여유라는 외적인 것과 내적인 감성의 모든 것을 풀어놓고 글을 쓰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런 무해한 아름다움을 함께 누려가면 더 행복하지 않는가
대금을 불어주면서 지금 아이들과 열심히 배우러 함양 시내로 나가는데
아이들은 단소를 배운다. 복식호흡을 하기때문에 더욱 건강해지는 마음 하나
얼마나 잘 들어왔는지...그 도시를 일주일에 두번씩 유정란 배달로 인해
대구로 달려가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식생활이 걱정스럽다
모두가 평화롭게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작년 4월 20일 돌개바람때문에 농장이 모두 날아갔다 복구하느라고 많이 힘들었다
이젠 MBC방송국 춘천MBC 9시 뉴스에서 취재해 갔었고 KBS방송국 그리고 농촌대학
교육방송등의 방송을 많이 탔으나
귀농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환경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지않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모든 문화적인 것들이 느린편이고
나쁘게 되어가는 길은 너무 빨라서 아이들이 위험하다 정말 너무 위험한 세상이 되버렸다
김연창시인의 농장에서는 바람만 느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느끼고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세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온 다음날
유정란을 바로 한알 입에 터트려 넣으면서 참 감사함을 새삼 느꼈다
이러한 마음들이 아주 많아져야 세상이 조금은 살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유정란 구입은 택배주문도 가능합니다 (한 꾸러미 10알에 3.300원)
청미래 농장 주소: 경남
농장 전화 055 - 963 - 3343
휴대폰 011 - 9546 - 7775
http://cafe.daum.net/bluevillfarm
...움직이는 카페지기 최상해.
첫댓글 수고 많았습니다.부부의 평온 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는데.그 평온함은 그냥 나오는것이 아니였음을..늘 건 강 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낙문협의 많은 문우님들께서 청미래농장을 즐기게 되기를 희망합니다.이권섭시인님의 농장과는 또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토마토농장과 더불어 문우님의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카페지기 최상해 시인님 너무 수고 하셨고 김연창 시인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함에 묻어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 하십시요
김연창 시인님의 모습 반가움을 전해요...움직이는 카페지기님....고생 하셨어요....그리고 감사드립니다^^
김연창선생님 배성근선생님 건강의 적신호에 슬기롭게 대처하시며 일상에 충실하시는 지혜와 낙문협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쓰시는 열정도 새삼 존경합니다. 또 한 일인다역 주부며 직업인인 여인의 몸으로 움직이는 카페지기 역활에 발벗고 동참하심에 놀라웁고, 본인도 본인이려니와 남편되시는 분의 외조가 없이는 불가능할것이라 생각하기에 내외분의 뜨거운 열정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주부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하나 있는 아들의 엄마 역할도 제대로 못하지만 모두가 도와 주시고 함께 나누기때문에 할일이 있고 낙동강문학은 달려가는 길만 있지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청암님의 차돌 같아 보이는 체격에 또 그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슬기롭게 대처한 처사가 귀감 입니다 김연창 시인님의 귀농 생활도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자연과 친화 되어 생활 하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만남에 모습이 아름답습니다.찾아가는 낙문협의 보람입니다.수고했어요.
모든 이들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김연창 선생님의 삶도 마찮가지로 한 편의 다큐메터리 입니다.. 아마 주변에 이런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는 잘 없을겁니다...꼭 가보고 싶습니다..그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고 싶군요...최상해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끝없는 인고의 노력과 귀농하여 자연과 씨름하며 삶의 보람을 찾으시는 모습 감동입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지요 여장부 해빈님에게도 감사의 박수을 보냅니다 늘건강하세요
에고~~! 이 모든 관심 정말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모두들 놀러 한번 오세요. 뭐 약속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바람처럼, 구름처럼 예정 없이 오시는 님들이 더욱 반갑습니다. 도시의 분주함을 벗어던지고 한밤 유유자적할 수 있다면 더욱 좋구요. 백두대간 자락이라 여긴 맑은 밤이면 아직 은하수가 흐른답니다. 유년의 노랫가락처럼.....
김연창 선생님 청암 수석 부회장님 /참으로 힘든 역경을 이겨 나오셨군요 .많은 생각에 머물다 갑니다 /건안 하십시요
아고...살면서 고생하는 일이나 행복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길들이 모두 각고의 어려움들을 지나가곤 하는 가 봅니다 어딘들 한가지씩 어려움이 없었겠냐마는 사는 모든 일들이 그런 어려움들을 겪어가면서 더욱 진한 인생을 생각하게 되지요 수석부회장님도 오랜 병마에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모두 지나간 추억처럼 인생 한페이지를 장식하지요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정란 먹으면서 ㅎㅎ
김시인님의 삶도 예사롭지가 않았네요 삶의 우여곡절이 있어서 일까요? 김시인님의 글속에서 진한 삶의 깊이를 가늠하게하는 맛을 느낍니다 지난 1월에 부산 엄궁에서의 등단식때 뵈었던 김시인님의 후덕하고 넉넉하기만 할것 같은 인품이 보기 좋았고 부러웠었는데 이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반갑기만 합니다 . 매사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감동으로 깊은 흔적을 납깁니다 감사드리며... 해빈님!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소식들 전하여주시는 "움직이는 카페 해빈 최상해님"께 최상의 경의를 표합니다 ㅎ~~~
김연창 시인님, 취재해주신 해빈님, 이래서 삶이 아름답다 하겠지요. 자연속에 핀 한송이 국화, 진한 향기와 함께 마주한 기분입니다. 어쩌면 우리 님들과 더불어 미래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